“치료자가 환자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치료자가 환자를 따라가는 것”
베이직 코스에서 어드밴스드 코스까지, M&L(Mindfulness & Loving Beingness)과 함께한 지난 1년의 여정은 저에게 치료자로서의 태도와 방향을 근본적으로 되묻게 한 시간이었으며, 동시에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제 자신의 마음을 다시 바라보게 한 치유의 과정이었습니다.

이번 어드밴스드 코스에서 진행된 트라우마 테라피 실습 중 트라우마 방과 마인드풀니스 리소스 방을 오가며 기억을 회복해가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이 과정은 힘든 기억과 안전한 감각을 번갈아 연결하면서, 과거의 상처를 압도되지 않은 채로 다시 마주할 수 있도록 돕는 구조였습니다. 베이직 코스 당시에는 다소 막연한 이미지에 가까웠다면, 이번에는 훨씬 더 구체적이고 감각적으로 그 장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감각과 정서를 다시 되찾게 하는 통로
가장 편안한 자세에서 제 숨길을 느끼며 떠올려 본 장면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퇴근 후, 따뜻한 음식 냄새와 TV 소리가 은은히 들려오는 주방에서 온 가족이 식탁에 모여 하루를 나누던 순간. 아무리 고된 하루였어도, 세상에서 저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 재잘재잘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를 마무리하던 그 따뜻한 공기와 정겨운 냄새.”
실습 과정에서 저는 리소스 방으로 이동하며 힘들었던 순간을 떠올릴 때마다, 가족의 온기와 정겨운 분위기가 그 기억 위를 부드럽게 감싸며 저를 다시 현재로 데려오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 장면을 떠올리는 순간, 몸의 긴장이 스르르 풀리며 깊은 안도감이 마음을 감싸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그 안도감은 곧 ‘안전하다’는 감각으로 이어졌습니다. 저에게 있어 마인드풀니스는 단순히 현재에 머무는 기술이 아니라, 고된 임상 현실 속에서도 저를 지지해주는 ‘정서적 안정감’이자 잊고 있었던 감각과 정서를 다시 되찾게 하는 통로임을 실감하게 됐습니다.
저는 우석대학교 부속 전주한방병원 한방신경정신과 2년차 수련의로 근무하며, 지난 2년간 암병동을 주로 맡아 암환자 분들과 보호자 분들의 삶 깊숙한 자리에서 함께해 왔습니다. 특히 올해 들어 임종을 맞이하는 환자분들이 많아지며, 삶의 마지막 문턱에서 마주하는 두려움과 상실, 그리고 남겨진 이들의 슬픔을 곁에서 지켜보게 됐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저는 점점 ‘몸의 치료’만으로는 결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고통스러운 육체보다 더 깊게 남는 것은 두려움과 외로움, 그리고 관계의 아픔이었습니다. 환자분들의 마지막 시간이 조금이라도 덜 아프고, 덜 외롭고, 의미 있는 기억으로 남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은 자연스럽게 제 진료의 중심이 됐습니다.
그러나 병동 진료를 하다 보면, 환자분이나 보호자분들의 말과 행동으로 인해 마음이 상처받는 순간도 적지 않았습니다. 감정적으로 지치고 흔들렸던 그 시기에 M&L을 접하게 되었고, 그분들을 ‘저를 힘들게 하는 대상’이 아닌, 각자의 고통과 서사를 안고 살아가는 존재로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됐습니다.
M&L은 내 자신을 이해하고 보듬는 과정
처음에는 치료자로서의 스킬을 쌓고자 신청한 코스였지만, 돌이켜보면 M&L은 누군가를 치료하기에 앞서 ‘제 자신을 이해하고 보듬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치유의 경험이 있었기에 타인의 아픔에도 조금 더 부드럽게 다가갈 수 있게 됐습니다.
한방신경정신과 수련의로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제가 환자분들의 문제를 ‘직접 해결해 줄 수 없는 경우’가 매우 많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원래 저는 문제가 생기면 감정에 오래 머무르기보다는 빠르게 해결책을 찾고자 하는 성향이 강한 편인데, 정신적 고통은 해결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머무는 과정’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베이직 코스와 어드밴스드 코스를 거치며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됐습니다.
우리는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는 존재가 아니라, 환자분들께서 자신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도록 옆에서 돕고 지지하며, 그 과정 속에서 안전하고 따뜻한 관계를 형성해 힘이 되어드리는 존재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깨달음은 앞으로 한방신경정신과 전문의로 살아갈 저에게 깊은 위로이자 분명한 길잡이가 됐습니다.
또한 여러 기법들을 실제 임상에 적용하며 어려움을 느꼈던 순간들도 있었습니다. 주요 우울장애, 불안장애 등 환자분들께 스킬을 적용했을 때 기대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아 자신감을 잃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프라인 실습과 온라인 줌 미팅을 통해 경험을 공유하고, 유수양 원장님, 강형원 교수님, 최보윤 원장님과 선후배 동료 분들의 진심 어린 피드백을 받으며 다시 중심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이번 어드밴스드 코스에서 가장 깊게 남았던 말씀은, “치료자가 환자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치료자가 환자를 따라가는 것입니다.”라는 문장이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진료 전 ‘오늘은 이 기법을 적용해야지’라는 의도를 가지고 접근해왔지만, 그 의도가 환자분들의 속도에 방해가 되지는 않았을까 되돌아보게 됐습니다. 이제는 환자분들의 흐름을 믿고 기다리며, 라포가 충분히 형성된 후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Jewelry Therapy나 Inner Child Work와 같은 기법들을 적용해 나가고자 합니다.
우리 모두는 외부 자극을 해석하는 고유한 장치를 가지고 있으며, 그 해석의 과정 속에서 생각과 감정이 만들어지고 행동으로 표출됩니다. 이러한 일련의 체계를 ‘자기 정체성’이라 부르며, 이는 곧 ‘생존 전략’이 되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 반복적으로 기본 욕구가 거부되고 단절될 경우, 자기와의 연결이 끊어지고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Mindfulness는 이러한 내면을 알아차리는 힘이며, Loving Beingness는 그 존재를 따뜻이 품는 태도입니다. M&L을 통해 저는 제 생존 전략에 얽힌 서사를 들여다보고, 제가 본래 원했던 삶의 방향을 다시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You are your own star.” 이 문장은 이제 제 삶과 진료의 철학이 되었습니다.

치료란 관계 속에서 이뤄지는 따뜻한 만남
앞으로 저는 몸과 마음을 함께 바라보는 한방신경정신과 전문의로서, 환자분들의 속도를 존중하고 기다릴 줄 아는 치료자가 되고자 합니다. 단순히 증상을 조절하는 것을 넘어, 환자분들이 자기 자신과 다시 연결될 수 있도록 돕는 한의사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고통의 순간에도 자기 안의 빛을 발견할 수 있도록 곁에서 조용히 지켜주는 존재, 그리고 안전한 장을 함께 만들어가는 치료자가 되고자 합니다.
M&L은 저에게 ‘치료란 관계 속에서 이뤄지는 따뜻한 만남’임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만남은 환자와 저 모두에게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시간임을 알게 됐습니다.
따뜻하고 안전한 장 속에서, 저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고, 그 힘으로 또 다른 이들의 마음을 지켜보고 싶습니다. 이 길의 끝에서 만날 저의 모습이, 조금 더 따뜻하고, 조금 더 단단한 치료자가 되어 있기를 바랍니다.
좋은 인연으로 많은 서사들을 만나볼 수 있었음에 깊이 감사드리며, 이 소중한 여정을 함께 다뤄주시고, 깊은 통찰과 따뜻한 가르침으로 방향을 밝혀주신 유수양 원장님, 강형원 교수님, 그리고 모든 티처 분들께 마음을 다해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 M&L심리치료 프로스킬 트레이닝 코스는?
: 2013년부터 1년 과정으로 열리고 있는데, 올해 10기 코스는 17명이 수료하여, 현재까지 총 261명이 M&L심리치료적 관점을 일상과 임상에 응용하고 있다.
몸과 마음을 하나로 보는 한의학의 전인적 관점이 더 중요시 여겨지는 요즘, M&L심리치료는 비단 한방신경정신과 전문의에게만 필요한 공부가 아닌, 임상의 어떤 장면에서든지 좀 더 안전한 환자의사관계 속에서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있는 한의사나 한의대생이 반드시 접해보면 좋을 공부라는 것이 수료한 분들의 공통된 견해다.
내년 11기 코스는 4월경에 오픈 될 예정이며, M&L심리치료에 대한 자세한 안내는 mnlkorea.com에서 살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