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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약 육성해 어르신 만성질환 예방·관리의 한 축 맡아야”[편집자주] 김해시는 한방 진료서비스 분야와 생애주기별 한의약건강증진사업을 활발히 추진 중이다. 그 공로로 2019년, 2020년에 한의약 건강증진사업 우수기관, 우수사례, 우수 시범사업으로 선정됐을 정도로 큰 관심을 갖고 있다. 또 김진규 의원(더불어민주당·사회산업위원회)이 발의한 ‘김해시 한의약 육성 조례’가 제정됨에 따라 지역 예방진료와 만성질환 관리에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이에 김 의원으로부터 한의약 육성을 위한 구상을 들어봤다. Q. 그간에 이룬 성과와 입법활동에 관한 소개 부탁드린다. 주요 경력으로 김경수 전 국회의원의 조직특별보좌관과 김해시 축구협회 부회장을 지낸바 있다. 김해시의원으로는 제8대에서 비례대표로 당선됐고 현재 제9대 김해시의원으로 당선돼 더불어민주당 교섭단체 대표를 맡아 김해시의회에서 일하고 있다. 2023년 경상남도 장애인정책 우수의원에, 2024년에는 김해시 공무원노조 선정 베스트 시의원으로 선정되는 등 소외 계층과 시민의 안전 등에 큰 관심을 갖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입법 활동을 전개해 왔다. 발의해 제정된 주요 조례에는 △김해시 한의약 육성을 위한 조례 △김해시 예방접종 지원에 관한 조례 △김해시 아동복지 및 아동안전에 관한 조례 △김해시 청년 창업 지원 조례 △김해시 위기가구 발굴 및 포상에 관한 조례 △김해시 인권보장 및 증진에 관한 조례 △김해시 아동·청소년 부모 빚 대물림 방지 지원 조례 △김해시 노동자 작업복 공동세탁소 설치 및 운영 조례 △김해시 아동학대 예방 및 피해아동 보호에 관한 조례 등이 있다. 특히 아동학대 예방 및 피해 아동 보호, 소상공인 보호, 어린이 보호구역 개선, 아동양육시설 보육사 충원, 필수 노동자 처우 개선, 플랫폼 노동자 쉼터 설립, 중대재해 사전예방 등에 관해 시의회 5분 발언을 통해 이 문제들을 제기하고 정책개발을 촉구했으며 입법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Q. ‘김해시 한의약 육성 조례’를 발의하게 된 계기는? 우리나라 의료시장이 사실상 현대의학에 치우쳐있는 가운데 지역 어르신들께 더 폭넓은 의료선택권을 드리고 싶은 마음에서 출발했다. 올해 8월 기준 김해시 주민등록 인구 53만2736명 중 65세 이상 인구는 8만4592명으로 전체의 16%에 달해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요즘 어르신들은 수술 등이 필요한 큰 병이 오기 전에 미리 발병 위험을 줄이고 전반적인 건강을 증진하는 예방 중심 건강관리에 관심이 많다. 한의약은 예방 중심의 의료체계를 갖추고 있다. 이에 김해시는 지역사회 통합건강증진사업의 일환으로 한의약 건강증진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전체 통합건강증진사업 예산 중 한의약 사업에 편성된 금액은 미미하며 사업의 질적인 면에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김해시 한의약 육성을 위한 명확한 법적 근거와 재정 지원 근거를 마련해 기존 사업에 전문성을 더하고 확대 시행하기 위해 조례를 발의하게 됐다. Q. 한의약이 김해시에서 갖는 의미는? 앞서 말했듯이 고령사회에 진입한 김해시에서 예방의학과 만성질환 관리에 강점이 있는 한의약의 수요는 갈수록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조례를 근거로 한의약을 체계적으로 육성한다면 기존 현대의학 중심의 공공의료에서 느꼈던 일부 아쉬운 부분을 보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Q. 김해시의 산업 발전분야에서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은? 한의약의 산업화와 관광자원화를 통해 지역 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잠재력이 분명히 있다. 김해는 가야문화의 뿌리를 지닌 도시로 전통과 역사성을 가진 한의약과의 조화가 자연스럽다. 한방 식품, 한방 화장품, 치유 관광, 웰니스 산업은 국내를 넘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분야다. 특히 가야문화와 연계한 ‘역사+치유’ 관광은 김해만이 내세울 수 있는 차별화된 전략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 기존 한의약 건강증진사업을 추진 중인 김해시보건소 외에도 다양한 부서 간의 긴밀한 협업이 필수다. Q. 한의약 육성사업의 성공을 위해선 김해시 관내의 한의사단체와의 협업이 필요한지? 현재 김해시에서 추진 중인 통합돌봄 재택의료 시범사업, 난임부부 한의치료 지원사업 등이 관내 지정 한의원들의 적극적인 협력 하에 운영되고 있다. ‘김해시 한의약 육성을 위한 조례’가 본격 시행되면 기존 한의약 건강 증진 사업을 강화하거나 새로운 사업을 발굴할 수 있을 것이다.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인 만큼, 행정이 일방적으로 추진할 것이 아니라 지역 한의사회를 비롯한 현장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듣고 이들과 함께 기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본 조례에는 ‘김해시 주요 한의약 시책의 추진을 위해 필요한 경우 관계 기관·단체 등에 협조를 요청할 수 있고, 협조 요청을 받은 기관·단체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협조하여야 한다’는 규정을 뒀다. 이는 행정이 지역 한의계와 긴밀히 소통하고 협력할 수 있는 근거가 되므로 김해시 한의약 시책의 전문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업무협약(MOU) 체결 등으로 더 많은 관내 한의원의 참여를 끌어낼 수 있다면, 한방진료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접근성을 높여 만성질환 관리 부분에서 한방진료의 보편화를 촉진할 수 있고, 지역 내 보건 취약계층에게 양질의 한방 의료서비스를 제공해 의료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데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Q. 현재 김해지역 등 지방자치단체의 일차의료, 지역의료, 필수의료가 처한 현실과 어려움 극복을 위해 마련 중인 방안이 있다면? 최근 정부가 발표한 국정과제 주요 항목에 ‘지역격차 해소, 필수의료 확충, 공공의료 강화’가 포함돼 있는 데서 알 수 있듯, 오늘날 김해시를 비롯한 비수도권의 일차의료, 필수의료 체계는 상당히 위태로운 상황이다. 필수의료 분야 기피 현상이야 어느 지역이든 사정은 비슷하지만, 만 18세 미만 아동 인구가 전체 인구의 18%에 달하는, ‘아동친화도시’를 표방하는 김해시에서 소아진료 인프라, 특히 응급·야간 소아의료체계가 공백 상태인 것은 젊은 인구의 유출로 이어질 수 있어 더욱 심각한 문제다. 뿐만 아니라 심뇌혈관질환 환자에 대한 응급 치료 체계 또한 미흡해 다른 지역의 3차 병원으로 이송되느라 목숨과 같은 골든타임을 허비하는 일도 지방에서는 비일비재하다. 이처럼 필수의료 인프라 확대, 공공의료체계 컨트롤 타워 확보 등을 위해서는 공공의료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경남도와 김해시는 300병상 규모에 영유아·심혈관 전문병원인 ‘김해공공의료원’ 설립 준비에 착수한 상태로, 2032년 준공을 목표로 내년 기획재정부에 예비타당성조사를 신청할 예정이다. 미약하게나마 필수의료 부족 문제를 보완할 수 있는 대안으로 한의약 육성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예방 중심의 한의약 프로그램을 제도적으로 육성 및 보급한다면 중증 치료 이전 단계에서 일찍이 시민 건강을 관리할 수 있어 의료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의료 격차 해소에도 도움이 되는 등 실질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Q. 김해시의회 사회산업위원으로서 내년 3월 통합돌봄사업 추진과 관련해 김해시의 준비사항과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내년 3월부터 전국적으로 시행되는 의료·요양·돌봄 통합지원 사업(약칭 돌봄통합지원 사업)과 관련, 김해시는 2023년부터 경남 지자체 중 유일하게 보건복지부 시범사업을 시행하며 정식 사업 준비를 착착 해오고 있다. 내년 정식 사업 시행을 앞두고 타 지자체의 벤치마킹이 줄 이을 만큼 지역사회 중심 통합 돌봄 체계 구축에 있어서는 선도 지자체라고 자평한다. 김해시는 어르신이 살던 곳에서 건강하고 인간다운 생활을 지속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 계속 거주’를 목표로 보건의료 분야, 요양돌봄 분야, 주거지원 분야, 인프라구축 분야 등 7개 분야 35개 사업을 진행하며 돌봄 사각지대 해소에 기여하고 있다. 지난 회기 때 사회산업위원회 동료 위원이 내년 본 사업 시행을 위한 근거 조례를 발의했다. 이를 근거로 행정에서는 내년부터 대상자를 기존 노인에서 노인, 장애인, 기타 돌봄이 필요한 분들까지 확대할 수 있도록 미리 대상자 발굴과 서비스 제공기관 점검, 재원 마련 등에 힘쓰고 있다. 돌봄통합지원 사업(현 지역사회 통합돌봄 사업)의 핵심은 재택의료 서비스다. 한의약 진료의 경우 한의사와 간호사, 사회복지사로 구성된 의료팀이 장기요양등급 판정을 받은 환자의 거주지에 방문해 진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현재 이 사업에 참여 중인 관내 한의원은 두 개 권역당 각 한 곳씩, 총 두 곳에 그쳐 아쉬움이 남는다. 내년 3월부터 돌봄통합지원 사업이 정식으로 시행되면 관련 부서에서는 참여 한의원을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이에 따라 더 많은 돌봄 사각지대에 계신 분들이 양질의 한방 의료 서비스를 통해 몸과 마음의 건강을 회복하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길 바라며, 본 사업이 지역사회에 성공적으로 안착될 때까지 세심하게 살피도록 하겠다. Q. 그 외 한의약 발전을 위해 한 말씀 부탁드린다. 한의약 육성은 오랜 전통 의학을 보존하는 차원을 넘어 미래 먹거리를 창출하는 일이다. 따라서 한의약과 양의약을 대립적인 관계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며 조화롭게 발전하고 협업을 이뤄나가야 할 관계로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대의학의 과학적 근거와 한의학의 전통적 지혜가 결합하면 질병의 예방부터 치료, 재활, 돌봄에 이르기까지 시민들에게 더욱 폭넓고 체계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김해시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한의약 육성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지역사회에서 두 의료체계가 균형 있게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통해 시민의 건강권과 진료 선택권을 보장하고 나아가 지역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데도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한의계에서도 지역사회와 긴밀한 소통을 이어가 주길 부탁드린다. 저 역시 김해시의회 의원으로서 시민의 건강과 삶의 질 향상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지속적으로 제도적 기반을 다져 나가겠다. -
論으로 풀어보는 한국 한의학(304)김남일 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최근 AI의 물결이 전국을 뒤덮고 있다. 세계적 추세에 대해서는 아직 실감이 가지 않지만 최소한 국내만 놓고 본다면 가히 열풍이라 할 수 있다. 대형서점에 나가보면 가판마다 놓여있는 관련 서적들의 물결 속에 그 출판의 양과 질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몇 개의 책을 구입해 보면서 어떤 지식에 대해 이해할 만하면 다른 신지식이 등장해서 이전의 책이 헌책이 되는 현상이 매우 빠른 속도로 일어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어떤 책은 이러한 흐름으로 판매량이 떨어질 것을 염려해서인지 출판연도와 날짜가 서문이나 추천사 등에 기록하지 않으려는 듯한 노력을 하는 느낌을 보이기도 한다. 최근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확산으로 인하여 인문학의 위기론이 이야기되기도 한다. 반면 이러한 AI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인문학적 견해를 가진 유형의 인간형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것은 반복적 업무나 데이터 기반의 분석 기술에 의해 인간을 대체하는 직군이 계속 발생할 수 있지만, 기계가 모방할 수 없는 인간고유의 역량이 더욱 중요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인문학이 이러한 역량을 길러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디지털과 한의학과 인문학을 연결시킨 ‘디지털한의인문학’의 문법적 맥락은 이제 수면 위에서 논의되어야 할 시점으로 넘어왔다. 오랜 기간 한의학을 인문학적 입장에서 바라보는 습관으로 살아온 필자와 같은 의사학자로서의 한의학자는 앞으로 한의학의 미래에 대한 본질적 차원에서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주어진 데이터에서 답을 찾아가는 AI와 비교할 때 인간의 비판과 질문의 능력은 문제의 본질을 파고들어갈 수 있다. 각종 질문형 AI를 통해 받는 답변은 항상 일정하지는 않지만 방향성이 있는 치료법, 처방 등이 제시될 수 있다. 그러나 같은 발열, 두통, 복통, 오한 등의 증상이라도 그 원인은 전혀 상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을 일선에서 오랜 기간 활동하는 한의사라면 모두 알고 있다. 실제로 몇몇 한의학 전문 AI를 통해 질문을 해보았을 때, 몇 개의 원인과 증상별로 예시를 나열하고 마지막에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전문가 한의사와 상담이 필요합니다”라는 식의 맨트가 붙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만약 한의학을 디지털한의인문학적 측면에서 개발하기 위해서 어떤 방안이 좋을가 생각해본다. 과거의 지식으로부터 미래의 질문에 답을 주는 생성적 지식 플랫폼을 구축하는 길을 만드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처방전을 담은 대형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동의보감, 방약합편, 의방유취, 향약집성방 같은 고의서뿐 아니라 근현대 한의사들의 임상 처방 기록과 관련 연구 논문, 의안 기록 등이 디지털 텍스트로 변화된 형태로 디지털화가 필요한다. 어떤 증상에 대해 해당하는 처방을 찾아내는 인공지능은 이러한 바탕에서 진입이 쉽게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시대별, 의가별, 학파별 치료술의 조합 등은 학습이나 연구뿐 아니라 치료에 있어서도 깊이 고려하는 한의사들이 존재한다. 지역별 특성, 약재 특산 지구별 차이, 체질별 차이, 성격적 경향성, 다국적 시대에 고려해야 할 국적별 차이 등 고려해야 할 차이가 수없이 발생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러한 분야가 디지털한의인문학 분야의 담당구역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차이를 고려한 디지털화 방안은 한국 한의학의 세계화 방안과도 연계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여기에 있다. -
신미숙 여의도 책방-68신미숙 국회사무처 부속한의원 원장 (前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편집자주] 『신미숙의 여의도 책방』은 각 회마다 1개의 키워드에 5권의 도서를 추천하는 형식으로 이어갑니다. 오십견으로 2주일에 한 번 오실까 말까 하셨던 국회 파견 외부 공무원 한 분이 “이번에는 종목이 바뀌었어요, 오늘은 허리입니다. 원장님”하고 인사를 하시며 오랜만에 내원하셨다. 언젠가 장인어른과 장모님께서 한 분은 뇌졸중 후유증으로, 다른 한 분은 척추수술 후유증으로 휠체어 생활을 하고 계셔서 두 분 모시고 어디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본인과 아내분이 각각 휠체어를 밀어야 해서 어깨가 아프고 보니 이런 일상 생활도 많이 힘들더라고 말씀하셨던 게 생각났다. 요통의 경위와 함께 두 어르신들 안부를 여쭈려던 찰라, 먼저 털어놓으신 요통의 히스토리는 다음과 같았다. 그 대단한 병들도 다 이겨내신 분들이 지난 초여름 차례로 폐렴을 앓으시더니 최근 한 달 간격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두 어르신들의 장례를 치루고 이런 저런 절차 다 밟고 나니 이번에는 두 분이 30년 넘게 사셨던 아파트 짐 정리가 남아 있더란다. 그 다음 입주민들의 이사 날짜가 정해진 터라 먼저 외부 청소업체를 부르고 온 식구들이 붙어서 같이 작업을 했지만 그 긴 시간 한 가족의 추억과 역사가 뒤섞여 있는 공간이었던 지라 당근 거래용과 폐기용으로의 버릴 것의 분류와 최종으로 남길 것의 선정에 있어서 가족들간의 의견이 엇갈렸으며 남길 것 중에서도 내 것이냐, 네 것이냐의 작은 갈등까지 조정하고 정리하자니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고 한다. 두 어르신의 짐정리를 하며 미니멀리스트를 결심하지 않기가 힘들더라는 이야기도 덧붙이신다. 세상을 떠난 이들과의 소중한 추억 포장지만 살짝 뜯어서 선물 내용만 확인하신 듯한 수년 전 어버이날 선물해드린 속옷박스하며 세탁소 택도 뜯지 않은 드라이 완료된 패딩에 코트에 한 번도 신지 않으신 어르신용 운동화, 간편화가 들어있는 신발 박스들, 그 많은 화장품 세트는 왜 뜯지도 않으신 건지? 휠체어 타시느라 흙 한 톨 묻어있지 않은 꽤 비싸 보이는 지팡이 개수를 세며 ‘휴우, 이 많은 걸 다 어떻게 이고지고 사신 걸까?’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더란다. 어찌어찌해서 청소에 이사에 작은 집수리까지 그나마 어깨가 도와줘서 일 잘 마무리했다 생각했었는데, 앉았다가 섰다가를 수백번 하고 나니 한 번도 겪지 않았던 견디기 힘든 허리 통증이 발생했다는 기나긴 스토리. “큰 일 하셨어요. 장례에서 짐정리까지 만만치 않은 과정이셨겠지만 아내분이 얼마나 든든하셨을까요? 정말 귀한 일 하신 거예요. 이 요통은 좋은 일 하시다가 발생한 거라, 오래 안 갈 겁니다. 며칠 입원하셨다 생각하시고 중요한 업무만 처리하시고 바로바로 퇴근하셔서 댁에서 누워서 많이 쉬셔요. 며칠간은 날마다 제 진료실 들르십쇼.” 생각해보니 친정 아버지께서는 돌아가시기 한참 전에 이런 상황을 미리 상상이라도 하셨는지 다섯 딸들 불러 놓으시고 당신이 수집하신 모든 애장품들을 공평하게 나눠주셨다. 수십권의 앨범도 한 곳에 쌓아두시고는 사진 한 장 또 한 장 꼼꼼히 들여다 보시며 각자의 독사진은 당사자들에게로 또한 서로 가져가겠다는 사진에 대해서는 토론을 붙이거나 가위바위보를 시키기도 하셨다. 그리고 선물받고 개시도 못한 셔츠들, 넥타이, 지갑과 벨트 세트, 카메라, 기타, 장구, 북과 북채도 사위들과 손자 손녀들에게 골고루 나눠주셨다. “죽은 뒤에는 죽은 사람 짐 처리하기가 애매해진다고 하더라. 버릴지 말지 너희들 마음 심난할까봐 미리미리 적재적소로 위치 이동시키는 거다. 아버지 죽을 준비하는 거 아니다. 지금 해둬야 내 마음이 좋을 것 같아서 그런다.” 아버지의 실행력 덕분에 돌아가신 후 우리 가족들이 따로 정리할 짐은 거의 없었다. 아버지 것이라고 부를 만한 게 이렇게도 없었나... 너무도 깔끔해서 뭔지 모르게 죄송했고 뒤이어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잔물결처럼 몰려들었다.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 (케이틀린 도티, 반비, 2020년 1월) - 나처럼 멋진 여자가 시체를 처리하는 이런 창고에서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스물세 살 여성이 장례업에 종사하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것은 어딘지 수상쩍었다. - 심박조율기 속에 든 리튬 배터리를 화장 전에 미리 빼놓지 않으면 화장로 속에서 그것이 폭발한다고 한다. - 집에서 죽은 사람을 데려오는 일을‘하우스 콜’이라고 부른다. 의사는 더 이상 어쩌지 못해도, 장의사 직원들은 밤이든 낮이든 기꺼이 간다. - 이제는 환자의 마지막 순간에 입회하는 사람은 의사이다. 생사 문제를 하늘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의학이 다루게 된 것이다. -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안다면, 옛날에 적대시했던 사람을 용서하고 일을 덜 하고 여행을 더 하고 사랑에 빠지고 싶어질 것이다. - 늘어나는 노인 인구를 적절히 돌볼 만한 자원이 우리에게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의학적으로 개입하여 그 노인들을 살리려고 한다. - 죽음은 우리 삶에서 의미를 없애기 위해 나타날 수도 있지만 사실 그것은 바로 우리 창조성의 원천이기도 하다.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 (줄리언 반스, 다산책방, 2023년 10월) - 아버지는 현대식으로 죽었다. 의학이 생명을 연장해 주었으나 그렇게 얻게 된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질 때까지 몇 달을 살다가 병원에서, 가족 없이, 어느 간호사가 최후의 몇 분을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 현대 의학은 죽어가는 기간을 늘리는 것으로 유명한 유언을 양산하는 데 일조해 왔다. - 몽테뉴는 죽음을 물리칠 수 없는 우리가 죽음에 반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한시도 놓지 않는 것이라고 믿었다. - 나는 인생의 의미가 죽음에 달려 있음을 이해한다. 먼저 붕괴하는 별들이 죽지 않는다면 우리에겐 행성도 없다. - 우리는, 당신과 나는 아마 병원에서 죽을 것이다. 현대적인 죽음이며, 전통적인 관례가 끼어들 여지가 거의 없다. - 우리는 살고, 우리는 죽고, 우리는 기억되고, 우리는 잊힌다. 『수명이 다하느냐, 돈이 다하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코가지 사라, 윌스타일, 2025년 7월) - 왜 아버지는 이렇게나 제멋대로이고 자기중심적일까... 지금 여기서 요구를 다 들어준다면 더 안하무인으로 나올 것도 예상이 됐다. - 노인 돌봄에 지쳐 일어난 사건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마음이 술렁인다. - 노인 돌봄 문제는 가족 혼자 끌어안고 있으면 금방 탈이 난다. - “감정 제어를 못 하고 같이 사는 가족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도 전형적인 치매 증상입니다.”의사는 치매 환자 가족이 놓여 있는 상황을 숙지하고 있는 모양이다. 곧바로 내 심정을 이해해 주었다. - 어느새 딸인 나보다 덩치가 작아진 늙은 아버지의 굽은 등을 보고 있자니, 어쩌면 자신의 노화에 제일 당황하고 있는 건 아버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돌봄 생활이 길어질수록 젊은 시절의 부모님 모습은 귀찮은 노인의 노습으로 바뀌어 즐거웠던 기억도 흐려지게 될 것이다. - 나이 많은 노인들로 넘쳐나는 병원 대기실에 발을 들일 때마다, 이 사람들은 정말로 치료가 필요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 아버지 역시 딸이 종이 기저귀를 채워줄 때까지 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내가 죽는 날』(애니타 해닉, 수오서재, 2025년 7월) - 호스피스와 완화 의료가 죽음을 생각하고 관리하는 방식을 바꿔놓은 건 분명하다. - 환자는 일방적인 침습 의료 단계에 따라 움직이는“빠른 의료의 컨베이어 벨트”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워졌다. - 삶이 끝나가는 환자가 스스로 어떻게 임종할지 결정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 의사와 의료 기관 개입은 의료 조력 사망에 사회적,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중요한 척도다. - 현대 의학의 경이로운 연명 능력에도 불구하고 좋은 죽음을 바라는 마음은 여전히 문화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 의료 조력 사망은 인간이 삶의 마지막을 직접 결정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 삶의 마지막을 앞당기는 것은 의지력과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본인의 죽음이라는 냉혹한 진실을 받아들이고 눈을 똑바로 뜬 채 죽음을 향해 걸어가야 한다. - 삶의 마지막이 의료화되면서 죽음은 종종 삶의 당연한 단계가 아니라 실패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당신에게 끝까지 다정하기로 했다』 (폴커 키츠, 김영사, 2025년 8월) - 모든 질병은 항상 언젠가는 발생한다. 그러나 치매는 교활하다. 피해자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모르는 방심한 상태에서 공격을 당한다. - 최근 몇 년 동안‘요양의 필요성’이라는 개념이 좀 더 광범위해졌다. 이제는 침대에만 누워 있거나 겉으로 보기에 바로 알아차릴 수 있는 정도의 치매 환자만 요양 대상에 포함해서는 안 된다고 여기게 되었다. - 고령자를 돕고 싶은 사람들이 해야 할 과제는 남은 시간 동안 그들이 과거를 정리할 수 있게 돕는 것이라고 노인학자 나오미 페일은 말한다. - 어느 순간부터 아버지는 살이 점점 빠졌다. 체중이 급격하게 줄어들어 사람들이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였다. 아버지의 변화는 나를 두렵게 했다. - 아버지와 함께 걸었던 길을 혼자 걷는다. 한때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길 바라도 되는 건지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나중에는 아직 한동안 더 살아 있기를 바라도 되는 일인지 고민했다. - 병이 진행될수록, 아버지가 우리의 세계에서 멀어져 자신만의 세계로 더 깊이 들어갈수록, 우리는 모두 더 잘 지내게 되었다. 몇 주 전, 친정 아버지의 기일이었다. 벌써 2년 전의 일이라니... 시간은 늘 마음의 그것과는 다른 속도로 흐르는 모양이다. 아버지를 떠나보내기 전후의 많은 일들을 떠올려본다. 언니와 나는 세 동생들을 대신해 더 자주 만나 장례 관련 절차들을 미리 학습해야 했다. 전남 장성에 집안의 장지가 있지만 우리들이 모두 수도권에 생활하고 있기에 멀리 모시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결론을 가장 먼저 내렸다. 그 후 납골당과 수목장을 몇 군데 둘러보는데 이 분야도 장삿속으로 무장된 영업력 최강자들에게 이미 잡혀먹은 듯하다. 봉안 기간의 상한선이 30년이냐 그 이상이냐에 따라서, 납골당 공간이 얼마나 넓냐에 따라서, 로얄층에 해당하는 눈높이 안치단이냐 발밑이냐에 따라서 가격은 참으로 꼼꼼하게도 세분되어 있었다. 그저 흙에 묻히고자 하는 소박하고 친환경적인 마인드를 가진 분들이 주로 찾으실 수목장 또한 중대형 소나무에 돗자리를 깔 수 있는 절할 공간이 확보된, 주차장으로부터 멀지 않은 평지에 위치한 곳은 5천만원부터 시작한다고 했다. 언제까지 보존 가능하냐는 질문에 초기 관리비 5년치만 선납이고 그 이후는 어차피 흙과 섞이는 거라 저 나무 밑에 아니 이 산 속에 부모님이 계신다 맘 편히 잡수시면 된단다. 물론 비석이나 표지석 같은 걸 따로 하고 싶으면 그 비용은 추가라며 옵션에 대해서는 더욱더 친절한 안내를 곁들였다. 초고령화로 인한 多死 시대 도래…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납골당도 수목장도 아니면서 가까이에 모시는 방법을 모색하던 중 한 의원님께서 하셨던 “우리는 일본 사람들이 집안에 작고한 가족들의 위패나 영정을 모시는 방식으로 몇 해 전 돌아가신 선친을 집안에 모셨다”는 말씀이 떠올랐다. 다름 아닌 “가정 봉안”이었다. “언니야, 우리도 아버지 집에 모시자”라는 의견을 제시하고 검색해보니 화장한 유골분을 스톤으로 만드는 장례는 처음에는 주로 반려 동물을 잃은 슬픔을 치유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사람에게도 적용되어 추모석, 영혼석, 유골 보석, 메모리 스톤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고 가정 봉안을 위해서는 필수적인 과정으로 고려되고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경우 예약이 가능할 것으로 추정되는 화장장 근처에 관련 업체가 몇 군데 있었고 우리는 그 중 가장 가까운 곳으로 미리 마음을 정해 두었다. 그 결과, 아버지는 현재 당신이 평소에 자주 계시던 서재방의 책상 위에 생몰년도가 표기된 작은 이름표와 함께 교사 시절의 사진 속에서 우리를 향해 늘 웃고 계신다. 이런 저런 방법을 모색하는 과정은 꽤 고통스러웠으나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또 있었을까?’ 생각하며 부모님 임종 이후의 절차를 미리 준비하고 있다는 지인들이 고민을 털어놓는 경우, 내가 겪었던 2년 전의 경험들과 그 결과로서의 가정봉안의 방법들을 구체적으로 공유하곤 한다. 2025년 1월 24일 ‘장사 등에 관한 법률(장사법)’ 개정안에 따라 기존의 매장, 화장, 자연장(수목장)에 이어 산분장이 드디어 합법화되었다. 산분장(散粉葬)이란 바다와 육지의 일부 장소에 화장한 유골의 뼛가루를 뿌리는 장례이다. 『제 죽음에 동의합니다, 끝없는 안락사 논쟁』(KBS, 2024년 4월), 『봉안 시설까지 포화, 장례 문화 완전히 바뀌어야』(조선일보, 2024년 10월),『화장장 못 구해서 3일장 힘든 시대... 부산 21%, 서울 46% 그쳐』(동아일보, 2025년 4월) 등등 죽는 과정과 죽음 이후의 처리 방식에 대한 논의와 보도가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다. 진정 초고령화로 인한 다사(多死)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아버지의 두 번째 기일을 보내며 인간은 결국 죽는 존재라는 엄중한 사실을 다시 한 번 되뇌어본다. “나는 날마다 모든 면에서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는 에밀 쿠에의 자기암시 글귀가 문득 신선하게 느껴진다. 가을을 머금은 선선한 바람 덕분이다. 짧아서 소중한 것은 인생일까? 아니면 가을 바람일까? -
한의학 교육의 현재와 미래Ⅱ ⑰한상윤 원광대 한의과대학 교수 (한의학교육학회 회장)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원광대 한의과대학 한상윤 교수(한의학교육학회 회장)로부터 한의학 교육의 질적 향상과 함께 우수한 인재 양성을 위해 ‘한의학 교육의 현재와 미래Ⅱ’ 코너를 통해 한의학 교육의 발전 방향을 소개하고자 한다. 한의학은 오랜 전통을 지닌 학문이지만, 그 전통에만 머무른다면 미래를 준비할 수 없다. 의료 환경은 지금 이 순간에도 빠르게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고령 사회의 도래, 만성질환의 급증, 환자 중심 의료(patient-centered medicine)의 등장,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으로 인한 디지털 헬스케어 등 의료인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환경에서 환자를 마주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한의사가 과연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이를 위해 한의학교육은 무엇을 가르쳐야 하고 어떤 변화를 이뤄야 하는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최근 한의사의 의권(醫權) 확대를 둘러싼 논의가 사회적으로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진단용 방사선 기기, 초음파 장비의 활용, 한·의 협진의 활성화, 공공보건 분야에서의 한의사 역할 확대 등이 논의되고 있으며, 국민 역시 더 안전하고 과학적이며 통합적인 한의 진료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의권의 확대는 단순히 한의사의 권리가 확보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국민의 건강권 보장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의사의 의권 확대가 국민에게 더 이로운 결과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한의사에게 더 높은 수준의 전문성과 책임성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한의사는 정확한 진단과 근거 기반 치료, 환자 안전에 대한 높은 감수성을 가져야 하고, 이를 위해서 한의학교육의 변화가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의권 확대와 교육의 변화가 서로 맞물리며 함께 가야하는 이유이다. 교육 철학의 전환이 필요 현재 한의과대학의 교육과정은 기초·임상 한의학과 일부 생의학 과목을 포괄하고 있는데, 사회가 요구하는 한의사상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학생들은 졸업 후 한의사가 되어서야 현장에서 영상진단기기 활용법이나 다학제 협력 경험을 새로 배우며 시행착오를 겪고, 때로는 사회적 불신과 직면하게 되기도 한다. 급변하는 의료 환경과 사회적 요구에 비추어 영상진단기기 활용 능력, 데이터 기반 임상 의사결정, 근거 중심 한의학(Evidence-Based KM), 다학제 협력 능력 등은 필수 역량으로 교육과정에서 충분히 다뤄져야 할 것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한의학교육은 단순히 과목 몇 개를 추가하는 수준이 아니라, 교육 철학의 전환을 필요로 한다. 과거에는 지식을 암기하고 이를 시험으로 확인하는 교육이 중심이었다면, 앞으로는 문제 해결력, 비판적 사고력, 환자 중심의 소통 능력, 협업 역량을 길러주는 방향으로 한의학교육이 변화해야 한다. 사회적 책임 의식의 교육 강화 일단 첫 번째로 현대화된 교육과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영상진단, 디지털 헬스케어, AI 진단 보조 시스템 등 최신 지식을 커리큘럼에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이를 통해 한의사가 현대 의료 환경에서 소외되지 않고, 의료계 다른 전문가와 대등하게 협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한의대 교육과정에 최신 연구 논문을 활용한 사례 기반 학습(CBL), 문제중심학습(PBL)을 확대하고, 학생들이 스스로 근거를 탐색하고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훈련을 강화하는 것도 좋은 방향이다. 임상실습의 질을 제고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아직도 학생들은 충분한 환자 경험 없이 졸업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 환자를 대상으로 한 체계적 실습, 표준화 환자(SP)를 활용한 임상술기 평가(OSCE), 개별 피드백 중심의 실습 교육이 정착되어야 한다. 이는 학생들에게 자신감을 주고, 환자 안전에도 직결될 것이다. 아울러 소통과 협업 능력을 배양하는 것은 한의학교육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현대 의료는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방식이 아니라, 의사·치과의사·약사·간호사 등 다양한 전문가가 팀을 이루어 환자를 돌보는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다. 한의사 역시 다학제 팀에서 효과적으로 소통하고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야 하며, 이를 위해 모의 협진 수업, 시뮬레이션 기반 팀 트레이닝, 환자·보호자와의 커뮤니케이션 스킬 교육 등이 필요하다. 끝으로 전문직 윤리와 사회적 책임 의식의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의권 확대 논의에서 국민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안전과 신뢰가 될 것이다. 한의학교육은 학생들에게 환자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태도와 공익을 고려한 의사결정, 평생학습 역량을 길러주어야 한다. “교육의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아” 이러한 변화는 대학의 노력만으로는 어렵다. 교육 혁신에는 국가와 사회적 관심과 정책적 지원이 병행될 때 더욱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의권 확대가 법과 제도의 영역에서 논의될 때, 그에 걸맞은 교육적 준비가 함께 이뤄져야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교육의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그러나 방향성을 제시하고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여러 한의과대학에서 한의학교육실을 중심으로 교육과정 개편, 교수 역량 강화, 학생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한의학교육실은 한의학교육의 컨트롤타워가 되어, 사회가 요구하는 교육을 구체적 실행으로 옮기고 성과를 관리하는 핵심적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결국 사회가 요구하는 한의학교육은 한의사 개인의 성장을 넘어, 환자의 안전과 건강, 나아가 국민 의료체계의 발전에 기여하는 교육이다. 한의학교육은 전통을 지키되 시대를 외면하지 않아야 하며, 학문적 깊이와 실용적 역량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
“한의학의 국제적 위상과 과학적 접근법을 확인”[한의신문] 지난 8월 27일부터 29일까지 일본 사이타마현 가와고에에서 개최된 ‘제52차 국제 신경이학·평형측정학회(NES)’는 한의학이 국제 의료 학술 분야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그 발전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뜻깊은 자리였다. 1974년 독일의 클라우스 프렌즈 클라우센 교수가 설립한 이 유서 깊은 국제학술단체는 50여 년간 전 세계 의사와 연구자들이 모여 이명, 난청, 어지럼증과 같은 청각·평형질환 연구의 중심축 역할을 해왔다. 이번 학회에는 헝가리, 인도, 중국, 미국, 싱가포르, 한국, 일본, 베트남 등 8개국이 참여했으며, 한의대 학생으로서 이러한 국제적 학술 교류의 현장을 직접 목격할 수 있었던 것은 매우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한국 한의학의 눈부신 연구 성과 발표 이번 학회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한국 한의사들의 활발한 연구 발표였다. 총 7명의 한의사가 다양한 주제로 발표를 진행했으며, 이는 한의학이 국제무대에서 당당히 학술적 성과를 인정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순간이었다. 황재옥 원장님의 이명 환자 EEG(뇌파) 바이오마커 연구를 시작으로, 이경윤 원장님의 이명과 청력 손실 치료에 대한 포괄적 접근법, 백승태 원장님의 환자 설문 기반 진료 분석, 강혜영 원장님의 청력 손실을 동반한 이명에 대한 한의학적 효과 연구가 이어졌다. 또한 맹유숙 원장님의 재발성 돌발성 난청 치료 사례, 김태엽 원장님의 한방치료와 뉴로피드백 결합 연구, 이희동 원장님의 만성 난청 회복 사례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연구가 발표됐다. 이러한 발표들은 단순히 개별적인 연구 성과를 넘어 한의학이 현대 의학과 어떻게 융합하며 발전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구체적 사례들로 확인할 수 있었다. 전통의학과 현대과학의 융합적 접근법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한의학적 치료가 전통적 방법론에만 국한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맥진검사(심안맥진기), 체열검사, 미세청력검사, EEG 뇌파 분석, 뉴로피드백과 같은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진단 도구들이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었으며, 한약·침·약침·추나치료와 더불어 TSC 방식의 소리 재활훈련까지 통합적으로 접근하는 치료 체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접근법은 기존의 서구 의학적 치료로는 한계가 있는 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적 대안을 제시하는 동시에 한의학의 과학적 근거를 확보하는 중요한 방법론으로 평가받고 있다. 국제적 관심과 인정, 그리고 학술적 교류 학회 참여 전에는 한의학에 대한 각국 의사들의 시선이 다소 회의적일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으나, 실제 현장에서는 오히려 적극적인 관심과 질문이 이어졌다. 특히 일본을 비롯한 여러 국가의 의사들이 한국 한의학의 이명 치료 접근법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였으며, 이는 각국의 의료 현실과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대안적 치료법으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았음을 의미한다. <왼쪽부터 사카타 히데아키 교수와 필자> 일본 사이타마 의과대학병원 이비인후과 사카타 히데아키 교수가 강조한 ‘전인적 치료의 필요성’은 한의학의 변증논치와 전일적 관점 철학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이는 동서의학 간의 학술적 접점을 찾을 수 있는 중요한 지점이었다. <김태겸 학생(세명대 한의학과 본과 4학년)> 한의학 국제화의 상징적 순간 이번 학회의 가장 의미 있는 순간 중 하나는 황재옥 원장님께서 NES 학회 차기 회장으로 임명된 것이었다. 2007년부터 꾸준히 해외 학술대회에 참여하며 한의학의 가치를 국제적으로 알려온 노력이 결실을 맺은 이 순간은, 한의학이 단순히 참여하는 위치에서 주도하는 위치로 발전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말이 K-Culture를 통해 입증되었듯, 한의학도 고유한 철학과 치료법 덕분에 세계에서도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학회에 직접 참석하면서 깨달은 것은 한의학이 단순히 전통의학으로만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근거를 갖춘 현대적인 치료 방법으로도 인정받고 있다는 점이였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국제무대에서 한의학이 어떻게 이야기되고 있는지를 가까이서 본 경험은 제게 큰 자극이 됐고, 앞으로 공부를 이어가는 데 중요한 방향을 제시해 준 계기가 됐다. -
"침술에서 기원한 문신술, 그 역사에 대하여"[한의신문] 문신은 오늘날 주로 미용과 자기 표현의 수단으로 이해되지만, 고대에는 치료와 의례적 의미가 깊이 결부된 행위였다. 최근 Lancet(1999), Science(1998) 논문과 Yoshida(2000)의 분석, 그리고 Oumeish(1998)의 고찰은 문신이 단순 장식이 아닌 치료적·의학적 목적을 가진 시술이었음을 보여준다. 본 기고문에서 필자들은 문신과 침의 기원이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 그리고 현대 한의 미용 임상에서 그 의미를 어떻게 계승하고 있는지를 제안해보고자 한다. 5200년 전 아이스맨이 들려준 문신과 혈자리의 관련성 1991년 발견된 5200년 전 티롤 아이스맨(이름은 ‘외치’로 붙여졌다.)의 61개의 타투에서 연구자들은 아이스맨의 타투가가 단순한 장식이 아닌 고대 침술의 일부 형태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문신(타투)를 그룹화 하고, 침구 전문가들의 입회하에 검토된 문신의 위치는 족태양방광경의 그룹과 유사했으며, CT 상 아이스맨이 요추부 척추관절증을 앓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연구는 해당 문신들이 방광경 위치에 있음을 지지한다고 연구자들은 설명했다. 특히 BL60 혈자리와 십자형 타투가 일치하는 지점들에서 연구자들은 흥미로운 발견이라고 언급했으며, 침구치료의 기원이 중국 뿐만 아니라 유라시아 대륙에서의 선사시대 인류의 광범위한 문화 접촉에서 기원하였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드러냈다. 연구진은 문신이 단순 장식이 아니라, 자가치료 및 시술 지침이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Dorfer et al. 1998, VanderPloeg K et al. 2009) 외치의 문신이 의료용 문신인지, 경혈의 의미를 내포하는지에 대한 학계의 토론을 시계열적으로 탐색한 송석모의 연구에서도 외치의 문신은 만성 근골격계 통증을 치료하기 위해 시술된 치료용 문신(medicinal tattoos)이라는 점이 지지를 얻는다. (Song SM. 2022) 서구 의사들을 교육하기 위해 만들어진 침구의학 교과서인 ‘Medical Acupuncture’의 ‘Acupuncture for Skin Condition’ 파트의 서두에 이러한 아이스맨 이야기를 밝히고 있다. 고대 문신의 의료적 의미, 침구침술과 밀접한 연관 문신이 외부의 의복으로 가려진 곳에 존재한다면, 그 의미는 장식적 가치를 넘어선 것일 것이다. 아이스맨 뿐만 아니라 고대 시베리아·페루·칠레 등지의 미라에서도 장식적 가치를 넘어선 문신이 확인된다. (Dorfer et al. 1998) 특히 목이나 척추부 등 외부에 드러나지 않는 부위의 단순 문양은 치료 목적의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한다고 연구자들은 이야기한다. 일본 침구학회지에 게제된 Yoshida(2000)의 논문에서는 문신에 대한 동아시아 사례를 검토하며, “문신은 원래 병의 치료를 위한 것으로, 침 시술과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즉, 고대인은 바늘로 피부를 찌르고 먹이나 숯가루를 문질러 넣어 통증을 완화하는 방법을 활용했고, 이러한 풍습이 문화적으로 전승되어 지금에 이르렀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실제로 현대의 연구들을 통해 경혈과 피부의 신경접합체가 연관 가능성이 높아 치료의 주요한 타겟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 밝혀지고 있다. (Kim DH, et al. 2017) 이처럼 의료적 문신과 침구술은 오래전부터 깊은 연관을 지녀왔다. 문신, 인류의 전통적 문화를 어떻게 현대적으로 계승할 것인가 구(舊)세계 문명에서 대체·보완의학이 치료, 의례, 미용의 경계에서 발전했음은 명백하다. (Oumeish OY et al. 1998) 고대 이집트, 인도, 중국, 아랍-이슬람 의학에서 문신·흉터·피부 표식은 질병 치료뿐 아니라 미적·종교적 의미를 지녔다. 특히 이집트 파라오 시대의 미용 의술, 중국의 침술, 아랍의 흉터 요법(scarification)과 약초·꿀·헌혈 요법 등은 모두 문신과 유사한 ‘피부 침습적 행위’를 기반으로 하여 치료와 미용을 동시에 추구했다. 즉, 문신은 단순히 피부에 남은 흔적이 아니라, 인류가 질병과 맞서며 자연·종교·미적 요구를 아우른 행위였다. 오늘날 문신은 주로 미용 목적의 시술로 인식되지만, 의학적 영역과 점차 융합되고 있다. 피부재생, 색소 교정, 흉터 은폐, 탈모 등에서 의료적 문신(dermatography, medical tattooing)이 활용되며, 이는 환자의 삶의 질 개선에 기여하고 있다. 이는 문신이 동아시아 뿐만 아니라 아랍지역에서도 피부 상처를 가리기 위한 도구로 활용해온 인류의 역사적 유산이라는 반증이다 (Oumeish OY et al. 1998). 중국의 연구진은, 이러한 의료적 문신에 대한 기초 연구로 경락학의 皮部 이론을 바탕으로 해, 족삼리(ST36)에 문신을 한 동물 그룹에서 침자극 그룹, 대조군에 비해 지속적 자극효과를 줄 수 있음을 시사하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Zhao LZ et al. 2016) 저자들은 경혈 문신은 치료 효과와 미적 효과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새로운 시도로 제안되었으나, 안전성 확보와 제도적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1세기 한의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문신 문신 시술을 하는, 혹은 레이저를 통해 문신 제거를 하는 한의사들은 메디컬 타투(Medical tattoo) 영역에 관심과 노력을 기울일 것을 주문한다. 유방제거술 이후 유두를 복원하면서 문신을 하기도 하고, 두피 문신도 넓게는 미용과 의료의 공통영역으로 본다는 점에서 그렇다. 오늘날 문신은 미용 목적이 주류이나, 의사학적으로나 한의 침구학적 서사에서 문신이 미용 뿐만 아니라 의료적 역할과 결합되어 있었음은 자명하다. 또한 의료도 미용과 결합되는 영역이 점차 커질 것이다. 백반증 환자의 치료 사례 처럼, 의료 목적의 메디컬 타투가, 환자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사실은 자명하다. 메디컬 타투를 시행하는 이승철 원장(이루다한의원)은 “백반증, 흉터, 탈모 등에 대해 메디컬타투를 진행하며 환자가 컴플렉스를 극복하고 모자를 쓰지 않고도 당당하게 외부 활동에 나서는 등 자존감을 회복시키고 편안한 일상을 느끼게 하는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고 밝혔다. 필자들은 향후 후속 기고문을 통해 현대 한의의료에서 침구술을 계승하여 문신과 관련된 현대 한의임상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참고문헌] Dorfer L, Moser M, Spindler K, Bahr F, Egarter-Vigl E, Dohr G. 5200-Year-Old Acupuncture in Central Europe? Science. 1998;282(5387):242-243. Dorfer L, Moser M, Spindler K, Bahr F, Egarter-Vigl E, Giullén S, Dohr G, Kenner T. A medical report from the Stone Age? Lancet. 1999;354(9183):1023-1025. Kim DH, Ryu Y, Hahm DH, Sohn BY, Shim I, Kwon OS, Chang S, Gwak YS, Kim MS, Kim JH, Lee BH, Jang EY, Zhao R, Chung JM, Yang CH, Kim HY. Acupuncture points can be identified as cutaneous neurogenic inflammatory spots. Sci Rep. 2017;7:15214. Song SM. Are the tattoos of the 5200-year-old Tyrolean mummy the oldest remains of acupoints? J Korean Med Classics. 2022;35(2):1-15. 吉田集而 (Yoshida S). 鍼灸の起源を考える [Considering the Origin of Acupuncture]. 全日本鍼灸学会雑誌 (Journal of the Japan Society of Acupuncture and Moxibustion). 2000;50(2):139-150 Oumeish OY. The Philosophical, Cultural, and Historical Aspects of Complementary, Alternative, Unconventional, and Integrative Medicine in the Old World. Arch Dermatol. 1998;134(11):1373-1386. doi:10.1001/archderm.134.11.1373 VanderPloeg K, Yi X. Acupuncture in modern society. J Acupunct Meridian Stud. 2009;2(1):26-33. Zhao LZ, Chen Y. Effect of acupuncture-point tattooing at Zusanli (ST36) on peripheral leukocytes in rats: a randomized parallel controlled study. J Pract Tradit Chin Intern Med. 2016;30(4):87-123. Yim YS, Sohn IC, Kang YS, Kim SC, Kim JH. Archeological Quest on the Origin and Formation of the Stone Needle in the Korean Peninsula. Korean J Orient Med. 2009;15(2):51-61. [공동기고] 이승철 이루다 한의원 원장 김재돈 다래한방병원 대표원장 곽도원 서울특별시한의사회 부회장 추홍민 한의임상해부학회 임상연구지원 TF 위원장 장인수 대한통합레이저의학회 회장, 우석대학교 한의과대학 한방내과학 교수 최유민 우석대학교 한의과대학 침구의학과 교수 김재효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경혈학교실 교수 △란셋의 그림 △사이언스에 게재된 아이스맨 논문 △백반증에 대한 실제 한의원 치료 사례 (환자 초상권 동의 득함) -
줄기세포유래 엑소좀 기술·컴파운드 K 약리작용 결합 ‘눈길’[편집자주] 만성적인 통증과 염증으로 삶의 질이 저하되는 난치성 관절염, 암 치료 후 재발 관리 및 다양한 내과 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이들 질환의 근원에는 ‘노화세포(Senescent cells)’가 유발하는 만성 염증이 핵심적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본란에서는 ‘산삼 엑소좀 약침’과 ‘발효홍삼 컴파운드 K약침’의 병합(칵테일) 요법(이하 병합요법)이라는 한의치료법을 통해 노화세포를 표적으로 삼아 재발을 막고, 근본적인 치료를 돕고 있는 김태엽 인제한의원장으로부터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하게 된 계기 및 장점, 향후 전망 등에 대해 들어봤다. Q. 노화세포가 만성 염증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데. “노화세포는 단순히 늙어서 제 기능을 못하는 세포가 아니라, 죽지도 않고 분열하지도 않으면서 주변 조직에 만성적인 염증을 유발하는 물질들을 끊임없이 분비하게 되며, 이를 ‘노화 관련 분비 표현형(SASP)’이라고 한다. SASP 물질들이 축적되면 주변의 정상 세포들을 손상시키고 염증 반응을 지속적으로 일으켜 만성 질환을 악화시키고 재발을 유도한다. 즉 난치성 관절염의 경우 노화된 연골 세포들이 관절 내에 만성 염증을 유발해 연골 파괴를 가속화하게 되며, 암 환자에게는 암세포 주변의 노화세포들이 암의 성장과 전이를 돕는 환경을 조성키도 한다. 또한 당뇨·고혈압 등 만성적인 내과 질환에서도 혈관이나 장기 내 노화세포가 축적돼 기능 저하를 일으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따라서 재발되는 난치 질환을 근본적으로 치료하기 위해서는 노화세포를 효과적으로 제어하고 만성 염증의 고리를 끊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 Q. 한의학에서는 세포치료 개념을 어떻게 적용하는지? “개개인의 줄기세포를 직접 배양하고 주입하는 방식의 세포치료는 비용이나 기술적인 문제, 그리고 한의의료기관에서의 적용 한계 등으로 인해 모든 환자에게 보편적으로 적용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한의약적으로도 노화세포를 변화시키고 몸의 자연치유력을 극대화하는 ‘한의약 세포치료’의 개념이 존재한다. 즉 단순히 세포를 주입하는 것을 넘어, 우리 몸 속의 기존 세포들이 다시 건강하게 기능하고, 노화 세포의 유해한 영향을 줄이도록 돕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최근 의학계에서는 ‘엑소좀(Exosome)’이라는 세포간 정보 전달물질이 각광받고 있다. 엑소좀은 세포가 분비하는 나노 크기의 작은 주머니인데, 이 안에 RNA, 단백질, 성장인자 등 다양한 생리활성 물질을 담고 있어 주변 세포의 기능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줄기세포에서 유래한 엑소좀은 줄기세포의 재생 및 조절 능력을 응축해 놓은 것과 같아서, 직접 줄기세포를 사용하는 것과 유사한 효과를 나타내면서도 안전하고 안정적이다. 이런 관점에서 한의약 세포치료는 엑소좀을 한약재와 결합해 노화세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만성 염증 환경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Q. 병합요법(엑소좀과 컴파운드 K)의 기전 및 시너지 효과는? “이 병합요법은 노화세포와 만성 염증이라는 난치 질환의 핵심 원인을 다각도로 공략하기 위해 설계됐다. 먼저 ‘산삼 엑소좀 약침’은 산삼의 핵심 유효성분을 나노 크기의 엑소좀에 담아 뛰어난 생체 흡수율과 표적 전달력을 가지며, △세포 활력 증진 및 재생 유도 △강력한 항염증 및 항산화 효과 등의 기전으로 노화세포와 만성 염증에 작용하게 된다. 또한 ‘발효홍삼의 컴파운드 K약침’의 경우에는 홍삼의 핵심 성분인 진세노사이드가 체내에서 최종적으로 흡수돼 약리 작용을 나타내는 형태인 ‘컴파운드 K(Compound K)’를 주성분으로 하고 있다. 홍삼의 유효 성분은 장내 미생물에 의해 컴파운드 K로 전환되어야 체내 흡수가 용이하며, 한의학적으로 컴파운드 K는 넓은 치료 스펙트럼을 가진 치료 물질로 이해된다. 이에 홍삼을 미리 발효시켜 컴파운드 K 형태로 만들어 흡수율과 효능을 극대화했으며, △노화 세포 제거(Senolysis) 촉진 △면역 조절 및 항암 효과와 같은 기전으로 노화세포와 만성 염증에 강력하게 작용하게 된다. 특히 이 두 가지 약침을 병합해 인체에 직접 주입하면, 산삼 엑소좀이 전반적인 세포 활력 증진과 항염증 작용으로 최적의 치료 환경을 조성하는 동시에, 컴파운드 K가 노화세포를 표적하여 제거하고 면역을 조절하는 강력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더불어 해당 질환 부위의 경혈이나 통증 부위, 또는 면역력을 강화하는 혈자리에 직접 약침을 시술해 국소적인 효과와 전신적인 효과를 동시에 얻을 수 있다.” Q. 병합요법을 통한 임상적 기대효과는? “먼저 재발성 난치 관절염의 경우 노화된 연골세포와 관절 내 염증을 유발하는 노화세포를 줄이고, 연골 재생을 촉진해 통증 완화는 물론 관절 기능 회복과 재발률 감소에 기여, 관절염으로 인한 삶의 질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또한 암 환자 관리 및 재발 방지에 있어서도 암 치료 후의 만성 염증 환경을 개선하고, 면역력을 증강하며, 노화세포 축적을 억제해 암 재발률을 낮추고 전이를 억제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암 환자의 면역 기능 회복과 장기적인 삶의 질 개선을 도모한다. 이와 함께 혈관, 장기 등 내과 질환과 관련된 노화세포를 줄여 만성 염증을 해소하고, 손상된 조직의 재생을 도와 기능 회복을 촉진하며, 이는 당뇨·고혈압 등 대사성 질환, 자가면역 질환, 만성 소화기 질환 등 다양한 난치성 내과 질환 관리에 새로운 치료법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외에도 노화세포의 축적은 우리 몸 전반의 노화를 가속화하는 만큼 이 병합요법은 노화세포 관리를 통해 전반적인 신체 기능 개선 및 건강수명 연장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Q. 그외 하고 싶은 말은? “이 병합요법은 재발되는 난치 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에게 새로운 희망이자, 한의학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전통 한의학의 깊이 있는 통찰력인 ‘정기(精氣)의 회복’이라는 개념에 현대 과학의 엑소좀 기술 및 컴파운드 K의 약리 작용을 결합, 난치성 질환의 근본적인 원인인 노화세포와 만성 염증을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증상을 완화하는 것을 넘어, 세포 수준에서 질병의 진행을 억제하고 몸의 자연치유력을 극대화해 재발을 방지하는 근본적인 치료를 가능하게 한다. 앞으로도 한의학은 끊임없이 발전하며 국민의 건강한 삶을 위한 든든한 동반자가 될 것이며, 이를 위해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보다 나은 한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해 나갈 계획이다.” -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551)김남일 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일주일 전 제21회 국제동양의학학술대회로 대만에 출국하여 학술 발표에 참석했다. 크게 변화하고 있는 시대에 한국의 한의학자로서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하는 기회가 된 것 같았다. 학술 발표를 마치고 마지막 날인 9월1일 월요일 國立陽明交通大學을 방문하는 일정이 아침에 잡혔다. 국립양명교통대학의 정문을 지나니 臺灣國立中醫藥硏究所의 입구로 가게 되었다. 대학 구내에 연구소가 있었던 것이다. 회의실로 올라가 자리에 앉아서 중앙에 있는 좌석을 보니 이 연구소 수이짱(蘇奕彰) 소장과 대한한의사협회 윤성찬 회장이 앉은 메인 좌석의 뒤로 그림과 글씨가 작품처럼 수놓아 있었다. 이번 방문단을 위해서 준비한 아름다운 현수막인 것이었다. 모두 네줄의 글씨는 다음과 같았다. 위의 세줄은 첫째 줄 가장 크게 “臺灣淸冠一號, 二號”, 둘째 줄은 조금 적은 글씨로 “臨床療效曁基礎科學硏究雙論文”, 셋째 줄은 둘째 줄과 같은 크기로 “榮登高點數國際學術期刊成果發表會”라고 적혀 있었다. 이 세 줄은 박스로 묶여 있고 글자의 색은 노란 색, 바탕는 국방색으로 되어 있었다. 아래에는 본 연구의 정식 명칭인 “衛生福利部國家中醫藥硏究所”와 이 연구소의 로고와 회의 시간이 쓰여 있었다. 대한한의사협회의 방문을 맞이하기 위해서 연구소의 중요 보직자들도 다수 참석했다. 본 연구소는 코로나 19가 전세계적으로 유행했던 시기에 크게 활약한 바가 있었다. 2019년 12월 중국에서 코로나 19가 발생했을 때 이듬해 3월에 본 연구소에서 NRICM101(淸冠 1號)를 개발하여 많은 효과를 거두어 이를 대만의 처방약으로 보험급여를 시작하고 해외 50여개국에도 수출하여 큰 성과를 냈다는 것이다. 게다가 재확산기에는 NRICM(淸冠 2號)를 개발하여 치사율을 74% 감소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는 것이다. 이날 회의에서 대한한의사협회 관계자들은 대만에서 코로나 시기 중의약으로 대응했던 경험을 소통하는 기회를 가졌다. 의사학을 하는 필자에게 매우 흥미로운 점이 발견되어서 본 회의 석상에서 질문을 했다. 방문객들에게 지급된 기념품 가운데 CD가 한 장 포함되어 있었는데, 제목이 “一代大醫 黃玉階”였기 때문이다. 필자가 평생 인물에 대한 고찰을 해왔지만 대만에서 활동한 중의사인 黃玉階라는 인물은 처음 듣기 때문에 질문을 하게 된 것이다. 통역을 통해서 전달된 필자의 질문에 수이짱(蘇奕彰) 소장이 직접 대답하기를, 黃玉階 先生의 제자 杜聰明과 본인 수이짱(蘇奕彰) 소장은 3대에 걸친 학문적 사승관계를 갖으며, 이 맥락에서 淸冠 1號와 淸冠 2號가 개발되게 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黃玉階(1850〜1918)는 『疙瘩瘟治法』 등의 서적을 지은 臺灣의 의학사에서 손꼽히는 傷寒學의 태두 中醫師이다. 그의 선조는 청나라시기 건륭시기(1735〜1796)에 臺灣으로 이주해서 지금의 臺中市에서 태어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杜聰明 敎授(1893〜1986)는 臺灣 최초의 의학박사로서 中西醫學의 연구에 헌신한 인물이다. 수이짱(蘇奕彰)은 “중의학의 과학화와 중서의학 융합”이라는 정신을 이어받아 청관1호, 청관2호를 개발한 인물로 꼽힌다. 학문적 바탕은 傷寒學으로서 中醫學의 학리를 바탕으로 약물을 개발하여 수많은 사람을 살린 것이다. 이들 세 학자들의 활약상은 한국에서 거울로 삼을만한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삼대에 걸친 백년의 처방으로 대만의 전통의약이 팬데믹을 잠재운 것이다. -
증여세에 대한 오해 “바로 잡습니다!”이주현 세무사/세무법인 엑스퍼트 창원점 앞으로는 AI가 가족 간 이체 내역을 파악해 증여세 폭탄을 맞을 수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유튜브나 각종 SNS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던 내용이었다. 얼마 전 국세청이 국세행정에 AI 시스템을 도입하겠다는 발표를 한 이후 근거 없는 거짓뉴스들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이번호에서는 증여세에 대한 오해를 바로 잡고, 가족 간 안전하게 돈을 이체하고 이체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증여세와 관련된 각종 오해 1. AI가 개인 간 거래내역을 들여다본다? 이 같은 오해는 임광현 신임 국세청장이 취임식에서 AI를 활용해 탈세를 적발하는 시스템을 도입하겠다는 말에서 비롯된 오해로, 개인 간 통장이체내역을 추적하는 것과는 관련이 없다. 간혹 증여세 과세 대상이 되는 증여거래가 있을 때, 정확한 세금 신고를 위해 증여기준일 전 10년 간의 통장거래내역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증여세 과세체계 특성 상 과거 일정 금액 이상의 유사한 증여거래가 있을 경우, 합산해서 재신고가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고, 개인 간 소액의 계좌이체 자체가 증여세 과세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2. 가족에게 50만원 이상 이체하면 증여세가 과세된다? 현실적으로 가족들 간에 50만원을 이체하는 거래는 꽤 빈번하게 이뤄진다. 생활비를 지원해주는 목적일 수도 있고, 병원비를 지원해주는 목적일 수도 있다. 과세관청도 가족 간 50만원을 이체했다는 그 사실만으로는 증여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다만 그 이체 금액이 통상적이지 않고, 그 금액을 이체받은 자녀가 본인이 벌어들인 소득을 초과하는 금액의 부동산을 구매하거나 하는 등의 비정상적인 거래가 이뤄지는 경우에 과세관청은 자녀가 현금을 증여받아 부동산을 구매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때 그 부동산 취득자금을 소명하지 못한다면 증여세가 과세되는 것이다. 3. AI가 자동으로 증여세를 부과한다? 국세청이 도입하려는 AI 시스템은 비정상적인 거래를 선별하는 도구일 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담당 조사관이다. 또한 무조건 과세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소명이 가능하다면 당연히 증여세 부과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다. 안전하게 이체하는 방법 AI가 개인 간 이체내역을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도,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서 안전하게 송금하는 방법을 알아두시면 좋을 것 같다. 1. 이체 메모 남기기 생활비나 병원비, 교육비 등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체가 이뤄질 때 송금메모란에 메모를 남겨두면 향후 증여추정이 발생하더라도 소명이 훨씬 수월하게 이뤄질 수 있다. 2. 거액의 현금이체가 필요할 경우에는 차용증 작성하기 간혹 가족 간에 큰 금액의 돈을 차용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가족 간에 잠깐 돈 빌려주는 건데 ‘차용증까지 작성해야할 일이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과세관청의 입장에서는 해당 거래가 증여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오히려 가족 간 거래일수록 더 엄격하게 차용증을 작성해야 한다. 차용증에 정해진 양식은 없지만, 다음에 해당하는 내용은 꼭 들어가는 것이 안전하다. (1) 채권자와 채무자를 구분해서 작성하기 차용 거래가 이뤄지는 주체를 구분해둬야 한다. 두루뭉술하게 이뤄지는 거래가 아닌, 확실히 돈을 반환받을 의도가 보여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2) 차용 금액 (3) 이자율 가족 간 무이자로 차용거래가 이뤄지는 경우, 무이자로 자금을 대여함으로써 얻는 이익에 대해 증여세가 부과될 수 있기 때문에 당좌대출이자율만큼의 이자율을 설정하는 것이 안전하다. 차용금액이 소액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금액이 큰 경우에는 증여세 부과의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4) 상환기간 상환기간은 일반적으로 2년에서 5년 정도가 권장된다. 금액의 액수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상환기간이 너무 길 경우에는 사실상 반환받을 의도가 없다고 보여질 수 있기 때문에 일정 기간 동안 균등액을 상환받고, 그 상환내역을 통장거래내역으로 남겨두는 것이 안전하다. 3. 증여재산공제 활용하기 증여재산공제란 증여자와 수증자가 배우자 및 직계존비속, 그 외 6촌 이내 혈족·4촌 이내 인척에 해당하는 경우에 일정 금액을 증여세과세가액에서 공제하는 것을 말한다. 위 금액은 10년간 증여하는 금액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10년 동안 위 공제금액 이내의 금액을 증여하는 경우에는 세액이 발생하지 않는다. 마무리하며 증여세는 막연히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라, 세법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사전 준비를 통해 충분히 대처가 가능한 세금이다. 세무 전문가와의 사전 상담과 체계적인 계획 수립은 세무 리스크를 줄이고 보다 안전한 미래 설계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세무법인 엑스퍼트 창원점 이주현 세무사 카카오톡채널] https://pf.kakao.com/_xgJrFK E-Mail:sjtax0701@gmail.com, 연락처:010-3553-3127 -
케데헌을 통해 다시 보는 한의학의 整體觀송상열 원장(화성시 귤림당한의원) 전 제주한의약연구원 초대원장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의 전 세계적 신드롬이 좀처럼 식을 줄을 모른다. 흐름을 보건대 한 편의 영화에 국한된 일시적 유행이 아니다. 한류의 도도한 흐름은 음악이나 영상을 넘어 음식과 뷰티 그리고 한국어에 이르기까지 문화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최근 트럼프와 대치하던 일론 머스크가 SNS에 올린 표현이 ‘나는 깨어있다’는 한글 문구였다. 우리가 영어나 한문 표현을 통해 말의 권위를 싣듯이, 반대로 서구에서 한국어를 섞어 힘을 빌리는 행위가 노래가사를 넘어 일상생활 속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한국의 모든 것이 세계인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다소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우리에겐 그런 자격이 충분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국민은 각자의 분야에서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치열하게 살아왔다. 아이돌 문화만 해도 다른 나라 젊은이들은 적응하기 힘든 고된 연습과 노력의 시간들이 있었다. 다양한 분야에서 이룬 현재 우리의 성공 사례들은 모두 이런 노력에서 얻어진 결실이다. 강인한 DNA, 우리 힘의 근원으로 작용 단지 우리의 성실과 근면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더 근원적인 연원이 있을 수 있다. 역사적으로 56개 민족이 통합된 중국에 우리 민족만 흡수되지 않은 게 신기하지 않은가. 옛부터 주변 강대국들과 대치하면서 작은나라로서는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어쩌면 이런 과정에서 우리의 DNA에는 강인함이 새겨졌고 현재 우리의 힘의 근원으로 작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식민지배와 전쟁 등 굴곡진 역사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체득된 힘과 지혜로 우리는 단숨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었고 이제는 첨단기술과 문화 분야까지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우리가 보기에는 그냥 평범히 살아왔던 모습들이 알고 보면 큰 걸음과 도약의 시간이었고 이제 그동안 농축되었던 씨앗들이 글로벌 플랫폼의 기회를 타고 하나하나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을 객관화 해보면 이제 우리는 자신감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케데헌>은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우리의 모습을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하였다. 매기 강 감독은 의도적으로 작품 속에 구석구석 한국다움을 녹여 넣었다고 설명한다. 영국 BBC 분석에 따르면 <케데헌>의 성공 요인 중 하나는 바로 이 진정성(authenticity)이었다. 서구의 시각에 맞춰 짜깁기 하지 않고 냅킨 위에 젓가락 올려놓는 것까지 우리의 일상 그대로의 모습으로 어필한 것이다. <케데헌>의 이러한 성공은 우리 한의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의학은 서구 의료 체계와 다른 고유의 정체성 때문에 늘 한계로 느끼며 다소간 패배의식에 젖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케데헌>처럼 한의학의 ‘진정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곧 우리만의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분을 치료하려면 전체를 봐야 한다” 한의계도 양방과의 의료 이원화로 원천적인 갈등과 경쟁의 구도 속에서 살아남았다. 일본 한의학이 일찌감치 제도권에서 배제된 반면, 우리는 해방 이후 2차례나 폐기 법안이 상정되었으나 살아남았고 그 후 의료보험 적용 등 제도적으로 꾸준히 국가 의료체계에 편입, 강화되었다. 한의학 치료 형태 또한 과거의 전통방식만 따른 게 아니라 당대의 조류를 흡수하며 부단히 발전해 왔다. 지금의 침, 부항, 탕약 등 그 세부적 형태가 모두 옛날과는 달리 현대 문물을 적용한 것이다. 내용적으로도 의료장비 이용이나 추나, 약침의 시술 등으로 꾸준히 확장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거져 주어진 것이 아니라 많은 한의사들의 노력과 집념의 결과들이다. 특히 중의학과도 차별되는 약침 시술은 짧은 역사임에도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약침은 한약의 침습적 주사방식으로 현대적 응용을 극대화한 형태이다. 그 효과도 직접적이며 소화기를 거치지 않기에 더욱 효율적이다. 요즘은 피부 미용으로 확장하는 등 약침의 가능성은 무궁하다. 특히 독성 성분을 다루는 봉독, 사독 등 독 기반 약침은 전문성이 두드러진다. 식약공용 약재가 무분별히 난립하는 상황에서 독을 다루는 전문가로서의 위상에 걸맞기도 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약침 시술 시 양방의 국소적 접근 방법을 쫒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 방식의 정체관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케데헌>에 나오는 한의사가 설명하듯 ‘부분을 치료하려면 전체를 봐야 한다’는 整體觀적 관점이다. 주사 형태의 약침이라고 해서 한의학 원칙에 예외일 수 없다. 약침이 양방 주사 치료와 비슷한데다 해부학을 기반으로 치료 포인트를 삼는 경우가 많다 보니 자연히 국소적 부위의 대증치료에 보다 집중하게 한다. 특히 최근 한의계가 초음파 장비를 사용하게 됨으로써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강화되는 듯하다. 양방 주사제를 대체하는 용도 쯤으로 국한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약침 시술시 어느 곳에 얼마나 인젝해야 하는지에만 관심사이고, 평소 가지고 있는 증상이나 질환, 질병의 기간, 환자 나이 등 전신 상태는 고려사항이 아닌 게 되어버린다. 만약 국소 부위의 일시적 효능만을 쫒는다면 양방의 리도카인과 스테로이드를 따라갈 약재가 없을 것이다. 감초주사니 태반주사니 천연물을 약재로 쓰는 것은 양방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것을 한의학적 해석으로 전신에 걸쳐 쓰는 것은 우리에게만 주어진 권한이다. 우리의 장점이 과연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정체관은 실제 치료 효과에 있어서 더 우수한 결과로 이어지는 요인이다. 필자의 5만건의 임상사례 경험상 사독약침의 효능도 정체관적으로 접근할 때 빛을 발했다. 예컨대 사독약침의 대표적인 주치증으로 痺證이 있다. 痺證은 통증만이 아니라 관절불리, 근력저하, 감각이상을 동반하는 근골격계 증상이다. 그리고 이 비증은 素問의 痺論편에 의하면 오장으로 침범하면 불면, 소변빈삭 등의 합병증이 생기게 된다. 실제로 임상에서 노인들의 근골격계 통증에는 대부분 감각이상이나 근력저하를 동반하거니와 이런저런 내과적 증상들을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다. 이 증상들을 종합적으로 치료하는 것이 사독의 주요 효능인 것이다. 필자의 경우 사독약침 시술시 만성 요통 환자의 경우, 통증 부위에만 시술하지 않고 통합적인 관점으로 평소의 불면과 소변빈삭도 고려하여 선혈하고 전체적으로 치료한다. 시술 용량이나 선혈도 전신 상태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이런 전체적 치료를 통해 주소증도 근본적으로 치료되고 다양한 동반 증상들도 개선되어 몸이 전반적으로 건강하게 된다. 정체적 관점은 우리만의 배타적인 권한 결과적으로 환자들은 만족도가 높아지면서 고가의 치료비에도 수용적이며 줄곧 중장기적인 재진으로도 이어진다. 간혹 정형외과처럼 아픈 데만 치료해 줄 것을 요청하는 환자도 있지만 대개는 전체가 호전되는 과정에서 근본적인 치료가 이루어지므로 이러한 정체관적 치료방법에 대한 신뢰감을 더 갖게 된다. 사독약침으로 한의원의 높은 평판과 적지 않은 매출을 이끌어내는 필자의 비결은 바로 정체관적 관점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우리 중 일부는 정체관이 과거의 고루한 관념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점이 한의학의 차별성이자 주목하는 이유이다. 제도적으로도 정체적 관점은 우리에만 주어진 배타적인 권한이다. 한가지 약침으로 근골격계와 내상을 동시에 치료할 수 있다. 치료면에서도 환자들에게 만족도가 높다. 이런 효용감이 양방의 지속적인 폄훼 속에서도 살아남은 실체적 이유이다. 최근 <케데헌>에 힘입어 한의원에 찾는 외국인이 증가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아마도 부분에 대한 정교한 치료보다 한의학의 ‘전체를 보는 치료’를 원해서 일 것이다. 바야흐로 글로벌 시대, 세계인으로부터 한국 문화 전반이 각광받는 이 즈음 정체관적 관점과 치료방식이야말로 한의학의 빛을 발하게 할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