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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으로 풀어보는 한국 한의학(316)김남일 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필자는 20년 넘게 ‘歷代名醫醫案’을 찾아 정리하여 ‘민족의학신문’에 게재해왔다. 의안(醫案)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단순히 “어떤 약을 써서 나았다”는 결과의 보고가 아니다. 환자의 證狀, 脈象, 그리고 환자의 나이, 성별, 당시의 계절적 기운까지 아우르는 종합적 사유의 정수다. 종이 위에 박제된 이 방대한 기록들은 그간 현대 과학의 잣대 앞에서 ‘경험론’이라는 이름으로 과소평가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인공지능(AI)이라는 새로운 등불을 들고 이 깊은 醫案의 숲을 다시 들여다보니, 그 속에 숨겨진 정교한 알고리즘이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역대 명의들의 의안을 AI 연구에 활용하며 느낀 소회는 한마디로 ‘溫故知新의 경이로움’이다. 명의들의 의안은 서술형 문장으로 이루어진 ‘비정형 데이터’의 극치다. 이를 자연어 처리(NLP) 기술로 분석해 보면 단순한 처방 목록이 아니라 특정 병증(證)에서 약재로 이어지는 논리적 연결망이 지식 그래프(Knowledge Graph) 형태로 선명하게 도출된다. 과거의 직관이 현대의 논리로 치환되는 순간이다. AI는 인간의 힘으로는 계산하기 힘든 기후 데이터, 환자의 체질, 그리고 처방 사이의 다차원적 상관관계를 찾아낸다. 이는 우리가 막연히 느끼던 ‘氣의 흐름’이나 ‘장부의 조화’를 데이터 기반의 예측 모델로 전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또한 의안 속에서 명의들이 약재 더하고 빼는 ‘加減’의 행위는 인공지능의 ‘가중치 조절(Weight Tuning)’과 맞닿아 있다. AI는 수백 년 전 명의가 왜 그 시점에서 처방을 바꾸었는지 그 패턴을 학습하여, 현대의 난치병 치료를 위한 최적의 처방 조합을 제안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한약 처방은 君臣佐使의 체계를 따른다. 이는 현대 AI 연구의 다중 표적 치료 모델(Multi-target Strategy)에 중요한 영감을 제공한다. 침구학 역시 경혈이라는 ‘스위치’를 통해 인체의 에너지 흐름을 조절하는 시스템 가이드로서, AI를 통한 생체 제어 알고리즘으로 재해석될 수 있다. 물론 기술적 진보가 만능은 아니다. 필자가 의안을 정리하며 가장 경계했던 것은, 의안 속에 담긴 ‘醫者의 本心’, 즉 환자를 향한 긍휼의 마음이 데이터의 파편 속에 매몰되는 것이었다. AI는 처방의 확률을 계산할 수는 있지만, 환자의 손을 맞잡았을 때 느껴지는 생명의 무게까지 계산할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가 추진하는 AI 연구는 단순히 과거의 처방을 복제하는 도구가 아니라, 명의들의 사유 구조를 복원하여 현대 한의사가 더 정교하고 따뜻한 진료를 할 수 있게 돕는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 『역대명의의안』의 원고 뭉치 속에 잠들어 있던 지혜가 디지털의 파도를 타고 미래로 나아가 현대인의 질병을 치유하는 생명수로 다시 태어나기를 소망한다. 역대 명의들의 醫案은 단순한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생명력을 기다려온 미래의 씨앗이다. 기술의 끝은 사람을 향해야 한다. AI가 도출한 수많은 데이터 속에서 환자의 고통을 살피는 ‘醫者의 本心’의 가치를 잃지 않는다면, 한국 한의학은 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전 세계 인류의 건강을 지키는 가장 따뜻하고도 날카로운 지혜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
과학으로 보는 한약 이야기 14김호철 교수 경희대 한의대 본초학교실 교수 (주)뉴메드 대표이사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김호철 교수(경희대 한의대 본초학교실)의 ‘과학으로 보는 한약 이야기’를 통해 임상 현장에서 자주 제기되는 한약의 궁금증과 문제들을 하나씩 짚어가며, 최신 연구 결과와 한의학적 해석을 결합해 쉽게 설명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독자들이 기존의 한약 지식을 새롭게 바라보고, 실제 진료 현장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섯 맛은 한 곳에서 나오지 않는다 오미자(五味子)는 이름 그대로 다섯 가지 맛을 가진 약재이다. 그런데 그 다섯 맛이 한 곳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과육(果肉)은 달고 시다. 씨앗(種子)은 맵고 짜고 쓰다. 맛의 출처가 다르다는 것은 성분의 출처도 다르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오미자의 약효 핵심은 씨앗에 있다. 문제는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씨앗의 주성분이 물에 녹지 않는다. 오미자차를 마셔본 사람이라면 그 선명한 붉은빛과 새콤한 맛을 기억할 것이다. 정성껏 우려낸 오미자차 한 잔을 손에 들고 있을 때, 정작 약이 되는 성분은 그 잔 안에 없을 수 있다. 이것이 오늘 이야기의 출발점이다. 씨앗의 성분 — 리그난은 무엇이고 어떻게 작용하는가 오미자의 약리 활성이 집중된 성분은 리그난(lignan) 계열이다. 스키잔드린(schisandrin), 고미신(gomisin), 스키잔드롤(schisandrol) 등이 대표적이며, 이 성분들은 씨앗에 집중적으로 분포한다. 리그난의 핵심 작용은 세 가지이다. 첫째는 간 보호이다. 스키잔드린은 간세포의 미토콘드리아 기능을 보호하고 Nrf2 경로를 활성화하여 세포 내 항산화 방어 시스템을 강화한다. 간 효소(ALT, AST) 수치를 낮추는 효과가 임상에서 반복 확인됐으며, 중국에서는 이미 오미자 리그난 추출물이 만성 간질환 치료 보조제로 활용되고 있다. 둘째는 항피로이다. 스키잔드린은 부신피질 반응성을 조절하여 스트레스 호르몬을 안정화하는 어댑토젠(adaptogen) 효과를 나타낸다. 신체적·정신적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력을 높이고 피로 회복을 촉진한다. 한의학에서 오미자를 기허(氣虛)·신허(腎虛)에 쓰는 것이 이 기전과 연결된다. 셋째는 신경계 보호이다. 고미신(gomisin) 계열 성분은 신경세포를 보호하고 인지 기능 개선, 항우울 효과와 관련된 데이터가 축적되고 있다. 한의학의 안신(安神) 효능 — 불면, 심계(心悸), 심신불안(心神不安) — 이 이 기전과 맞닿아 있다. 그런데 이 리그난 성분들에는 결정적인 특성이 있다. 지용성(脂溶性)이 강하다는 것이다. 물보다 기름이나 알코올에 훨씬 잘 녹는다. 오미자의 수추출물과 에탄올 추출물의 리그난 함량을 비교한 연구들을 보면, 에탄올 추출 시 리그난 함량이 수추출 대비 수 배에서 수십 배까지 높게 나온다. 물로 아무리 오래 끓여도 씨앗 속 리그난은 거의 우러나오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오미자를 물에 우릴 때 실제로 나오는 것은 무엇인가. 과육의 성분들이다. 사과산(malic acid), 구연산(citric acid) 등의 유기산이 물에 잘 녹아 나온다. 오미자차의 그 선명한 신맛이 바로 이 유기산의 맛이다. 붉은 색소인 안토시아닌(anthocyanin)도 수용성이라 차의 색깔에 기여한다. 유기산과 안토시아닌도 항산화, 수렴(收斂) 작용이 있어 전혀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과육의 작용이지 씨앗의 작용이 아니다. 리그난이 주도하는 간 보호, 신경계 보호, 항피로 작용과는 다른 영역이다. 다섯 맛 중 달고 신 과육의 성분만 찻잔에 담기고, 맵고 짜고 쓴 씨앗의 성분은 우려낸 건더기와 함께 버려지는 것이다. 갈아서 끓이면 이쯤에서 자연스럽게 드는 질문이 있다. 오미자를 갈아서 물에 끓이면 어떤가. 씨앗을 갈면 세포벽이 파괴되어 리그난이 외부로 노출되고 표면적이 넓어지므로, 통째로 우리는 것보다는 그나마 낫다. 임상에서 알코올 추출 제품이나 환산제를 활용하기 어려운 경우라면 현실적인 차선책이 될 수 있다. 다만 리그난이 물에 안 나오는 근본 이유는 세포벽 때문이 아니라 지용성이라는 용해도(溶解度) 자체의 문제이다. 갈아서 끓여도 알코올 추출이나 환산제 복용에 비하면 리그난 함량은 여전히 현저히 낮다. 차선은 차선일 뿐이다. 전통 의가들은 제형으로 이 문제를 풀었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이 드러난다. 전통 방제에서 오미자가 어떤 제형으로 쓰였는지를 살펴보면, 치료 목적에 따라 제형을 분명하게 달리 선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미자가 들어가는 대표적 방제인 생맥산(生脈散)은 방약합편(方藥合編)에 가루로 복용하는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 인삼, 맥문동(麥門冬), 오미자를 갈아서 복용하는 것이 원래 복용법이었다. 현대 임상에서 탕제로 달여 쓰는 것이 관행이 되었지만, 원래 제형은 산제였다. 기(氣)와 진액(津液)을 회복시키는 이 방제에서 오미자를 가루로 복용한 것은, 유기산의 수렴(收斂)·생진(生津) 작용뿐 아니라 씨앗의 리그난까지 함께 취하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보신(補腎)과 안신(安神)을 목적으로 하는 방제에서도 오미자는 어김없이 환(丸)이나 산(散)의 형태로 등장한다. 육미지황원(六味地黃元)에 오미자를 더한 도기환(都氣丸)은 신허(腎虛)로 인한 해수와 요슬산연(腰膝酸軟)을 다스리는 환제이다. 불면, 심계, 건망(健忘)을 다스리는 천왕보심단(天王補心丹) 역시 환제로 복용하며, 오미자의 신경계 보호 리그난이 핵심적 역할을 한다. 신기(腎氣)를 보하는 팔미지황환(八味地黃丸)에도 오미자가 환제로 배합된다. 이와 같이 보신·안신을 목적으로 하는 방제들은 공통적으로 환제나 산제를 선택한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환제와 산제는 약재를 분말로 만들어 그대로 복용한다. 물에 녹이는 과정이 없다. 위장 내에서 소화 과정을 거치면서 지용성 성분이 담즙(膽汁)과 같은 내인성 유화제의 도움을 받아 흡수된다. 수추출과는 비교할 수 없이 많은 리그난이 체내로 전달된다. 옛 의가들은 현대 분석화학의 언어는 몰랐다. 그러나 경험을 통해 오미자의 어떤 효능을 원할 때 어떤 제형을 써야 하는지를 이미 체득하고 있었다. 보신과 안신이 목적이면 환산제로 — 이 선택이 현대 약리학의 지용성·수용성 개념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제형이 효능을 결정한다 이 전통적 지혜는 현대 연구에서 그대로 확인된다. 오미자 리그난의 알코올 추출물을 이용한 연구들에서 간 보호, 항피로, 인지 기능 개선, 항산화 효과가 일관되게 보고된다. 반면 수추출물을 이용한 연구에서는 같은 수준의 효과를 얻기 위해 현저히 높은 농도가 필요하거나 효과 자체가 관찰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에탄올 농도별 추출 효율 연구에서는 70% 에탄올 전후에서 리그난 추출 효율이 가장 높다는 것이 확인된다. 알코올이 씨앗의 세포벽을 통과하여 지용성 리그난을 효과적으로 끌어내기 때문이다. 물은 이 장벽을 넘지 못한다. 현대 한의 임상에서 오미자를 처방할 때 습관적으로 탕제에 포함시키는 것이 관행이라면, 한 번쯤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간을 보호하고 피로를 회복시키며 신을 보하려는 목적이라면, 탕제의 오미자는 기대하는 효능의 상당 부분을 전달하지 못할 수 있다. 제형의 선택이 곧 효능의 선택이다. 오미자를 제대로 쓴다는 것 오미자차를 즐기는 것에 아무 문제가 없다. 과육의 유기산과 안토시아닌은 양생(養生)의 관점에서 충분히 의미 있다. 그러나 오미자를 치료 목적으로 쓰려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씨앗째 갈아 분말로 복용하거나, 알코올 추출 제품을 선택하거나, 환산제 형태로 처방하는 것이 리그난을 체내로 전달하는 현실적 방법이다. 전통 의가들이 제형을 달리하여 오미자를 썼던 그 경험적 지혜를 과학의 언어로 다시 읽는 것 — 이것이 본초학이 지금도 해야 할 일이다. 오미자는 과육이 아니라 씨앗이 약이다. 그 씨앗의 성분은 물로는 꺼낼 수 없다. 이 단순한 사실을 알고 쓰는 오미자와 모르고 쓰는 오미자는, 이름은 같지만 약이 다르다. -
현대 진단기기를 사용하는 진짜 이유김은혜 가천대 한의과대학 조교수 <선생님, 이제 그만 저 좀 포기해 주세요> 저자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한의사로서의 직분 수행과 더불어 한의약의 선한 영향력을 넓히고자 꾸준히 저술 활동을 하고 있는 김은혜 교수의 글을 소개한다. 주말을 맞아 KIMES(국제의료기기·병원설비전시회)에 다녀왔다. 작년 이맘때쯤에도 이 행사를 방문해 한의계의 변화를 체감하며 꽤 벅찬 소회를 남겼던 기억이 선명한데, 올해 역시 활기 넘치는 현장의 열기는 여전했다. 아마도 작년 칼럼에는, 몇 년 전만 해도 한의사인 우리는 관심도 없었을, 혹은 피차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는 존재였다면 2025년에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는 내용을 담았던 것 같다. 당시 혈액검사 기기를 파는 업체에 가서 ‘뭐가 궁금하냐’는 질문에 쭈뼛쭈뼛, “사실은 제가 한의사인데요...”라고 말하면 “아, 요즘은 한의사 선생님들도 많이 찾으세요! 아무래도 수가에 제한이 있으니까 최대한 간단하게 채혈할 수 있는 기계를 많이 찾으시더라구요. 간수치 위주로!”라는 대답과 함께 나보다도 더 잘 아는 한의계의 니즈(needs)를 줄줄 읊어주는 담당자분들의 상담이 꽤 인상 깊었던 기억이 있다. 근거 있는 한의 치료의 지표로 사용 그로부터 다시 1년이 흘렀다. 이제 내 주변 원장님들의 90% 이상이 원내에 혈액검사 기기를 두는 게 당연해졌고, 초음파는 기본에 큼지막한 뇌파·맥파 검사기기들까지 들여놓기 시작했다. 1년 전만 해도 “간 수치 50인데 한약 먹여도 될까? 추천 처방 있어?” 같은 질문이 많았다면, 요즘은 혈액검사 결과지나 타 병원 기록지를 주루룩 보여주며 “이 환자 왜 이런 거야? 이 질환 때문인 거 맞아? 이걸 목표로 치료 잡아도 될까?”라는 질문의 비중이 훨씬 커졌다. 단순히 ‘수치’를 확인하는 단계를 넘어, 종합적으로 결과를 해석하고 환자를 스크리닝하며 이를 ‘근거 있는 한의 치료’의 지표로 사용하는 현장으로 바뀌기까지 1년이 채 걸리지 않은 셈이다. 나 또한 그 변화를 몸소 느꼈고, 그와 동시에 학생들을 올바르게 가르쳐야만 하는 책임감을 가져야 되는 자리에 있게 됐다. 생각보다 빠르게 바뀌는 현대 한의학의 진료 현장에서 우리 학생들이 나갔을 때 너무 큰 ‘성장통’을 겪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검사 결과를 넓게 해석하고 이를 ‘환자 중심 치료’로 이을 수 있는 내용들을 가르치는 데 참 많은 시간을 할애해왔다. “아, 한의사분이세요? 그럼 굳이…” 사실 이번에 KIMES를 갈 때는 바쁜 일정 탓에 지난번 같은 설렘은 잠시 잊고, 별 생각 없이 터덜터덜 들렀던 것 같다. 지난 1년간 이런 풍경이 익숙해져서일까. 1년 전엔 ‘내가 이런 곳에 들어가도 되나?’ 싶은 소심한 마음이었다면, 이번에는 ‘그냥 지나가다 들러보지 뭐’ 하는, 벌써 무언가에 적응해버린 무덤덤한 마음가짐이었다. 전시장 안에는 한의사 맞춤형 강의를 해주는 업체들이 꽤 많아져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나름대로 몇 가지 기기를 마음에 두고 있었기에, 소비자 입장에서 각 업체의 장단점을 비교하며 자연스럽게 설명을 들었다. 부스마다 돌아다니며 기기들을 직접 만져보기도 했다. 그러다 예전부터 눈독들이던 기기가 눈에 띄어 반가운 마음에 달려갔다. 사람이 많았지만 내가 꽤 눈을 반짝였는지, ‘대표’ 명찰을 단 분이 다가와 상세히 설명을 해주었다. 적은 양의 피로도 검사가 가능하고, 과정도 쉽고 결과지도 깔끔했다. 흥미진진하게 듣다가 “오, 들었던 것보다 훨씬 좋은데요?”라고 한마디 던졌다. 나는 ‘성능이 정말 좋다’는 의미로 말한 건데, 상대방은 ‘들었던 것보다’라는 말에 꽂혔는지 갑자기 진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아, 아무래도 저희 기기가 수가 대비 원가가 높다 보니, 검사할수록 손해라고 생각하시는 원장님들이 많긴 하죠.” 아차 싶어 내 명찰을 보니 앞뒤가 뒤집혀 있어 나의 직책과 직종이 보이지 않고 있었다. 쓴 물을 삼키며 “아. 저는 한의사라서 수가는 일단 신경 안 써도 되는 부분이긴 해요.”라고 말하자, 상대방은 의의로 더 반가워하며 “아, 한의사분이세요? 그럼 굳이 이렇게 할수록 손해인 기계까지 생각하실 필요 없어요. 간수치만 확인하셔도 충분하니까, 최대한 카트리지 싸고 가성비 좋게 사용할 수 있는 이 기기를 더 추천드려요.”라 말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직전까지 가지고 있던 소비자로써의 마음이 싹 가시며, 1년 전 KIMES에 처음 방문한 한의사로서의 그것이 스윽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아마 평소의 나였다면 별 타격이 없었겠으나, 왠지 모르게 ‘방금 이 말을 내 학생들이 들었다면, 저 소리를 듣고 있는 애들을 보는 게 좀 속상했겠는데?’라는 생각이 먼저 들며 더 감정이 올라왔던 것 같기도 하다. 한의사니까 이 정도면 충분하다? 혈액검사든, 초음파든, 어떤 의료기기든 이것을 단순히 최대한 간단하고 쉽게 배제하는 용도로만 사용할 것인지, 혹은 본래의 목적에 맞게 정확한 한의치료를 제공하기 위한 감별 진단 용도로 활용해 볼 것인지는 개인적인 진료의 권한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또한 지켜본 바, 설사 요즘의 시류와 여론이 어떻다 한들, 지나치게 한 쪽으로 몰리면 생각보다 균형을 잃고 무너지는 경우도 많이 보아왔다. 하지만 “한의사니까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말 속에 숨은 타인의 낮은 기대치가 우리의 한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손에 쥔 도구들이 단순한 ‘면피용’이 아니라, 환자의 몸 상태를 더 깊게 파고들어 최적의 한의치료를 찾아내는 ‘정밀한 지도’가 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현대 진단기기를 사용하는 진짜 이유이자, 다음 세대 한의사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당당한 전문성일 것이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이렇게 훌륭한 한의치료 도구들을 현대적으로 잘 써먹기 위해, 혹은 정말로 환자 중심의 윤리적 의료를 제공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밤낮없이 연구하는 분들이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의진료의 질적·양적 영역 확대를 위해 손에 쥐어진 도구들을 어떻게 하면 더 가치 있게 활용할지 고민하는 그 치열한 마음들이 모여, 결국은 우리 한의학의 더 넓은 미래를 만들어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문신사법 제정 이후 한의사의 역할 정립이 더욱 중요”[편집자주] 본란에서는 최근 대한한의학회 예비회원학회로 등록된 대한문신학회 이승철 회장으로부터 등록된 소감 및 학회의 창립 계기 및 향후 활동계획, 문신사법 제정 이후 한의사의 역할 등에 대해 들어봤다. Q. 대한한의학회 예비회원학회로 등록된 소감은? “문신 영역에서 한의사의 학술적 역할을 공식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 그동안 문신은 주로 미용이나 예술의 관점에서만 논의돼 왔고, 의학적·학술적 접근은 상대적으로 부족했었다. 이번 예비회원학회 등록으로 대한한의학회라는 학술적 울타리 안에서 문신과 관련된 안전성, 부작용 관리, 문신사 교육과정 등의 주제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발표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앞으로 예비회원학회에서 회원학회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학술적 성과를 꾸준히 축적해 나가겠다.” Q. 대한문신학회 창립 계기는? “대한문신학회의 전신인 ‘대한한의문신학회’는 한의사에 의해 시행되는 문신 시술 및 제거에 관한 학술적 연구를 위해 만들어졌다. 한의사는 피부 침습 행위에 대한 오랜 임상 경험과 이론적 기반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문신사법이 통과돼 합법적으로 문신 시술이 가능한 직역이 신설된 만큼, 더욱 활발한 학술 연구와 상호 교류를 위해 직역의 제한을 풀고자 ‘대한문신학회’를 창립하게 됐다. 문신사법의 시행과 함께 문신 시술의 위생·안전 관리 기준, 문신사의 교육, 부작용 발생 시 대처 방법 등에 대한 학술적 근거가 필요해진 만큼 앞으로의 이러한 시대적 필요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해 나갈 계획이다.” Q. 문신학회에서 진행했던 주요 활동은? “먼저 지난해와 올해 반영구문신 제거에 관한 논문과 문신 연구 동향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고, 지난해 문신사법 국회 본회의 통과에 앞서 한의사의 문신시술 사례나 문신의 역사적 근거가 담긴 기고문을 발표한 바 있다. 또한 현재 문신 시술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의 유형, 원인, 예방 및 대처에 관한 체계적인 내용을 담은 교육 교재를 준비 중에 있으며, 여기에는 문신 잉크의 안전성, 감염 관리, 알레르기 반응, 피부 손상 및 반흔 형성 등을 포괄하고 있는 것은 물론 향후 문신사 교육과정에 활용될 수 있도록 근거 기반의 내용으로 구성하고 있다. 이와 함께 한의사 회원을 대상으로 온·오프라인 임상특강, 웨비나 등을 개최해 문신 관련 임상사례 발표, 레이저를 활용한 문신 제거 기술, 두피 문신(SMP) 등 세부 분야의 학술적 논의를 진행하는 한편 문신사법 시행령·시행규칙 제정 과정에서 정책 의견을 개진하고, 문신 시술의 안전 관리 체계 구축에 한의사가 기여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Q. 문신 영역에서 한의사의 역할 정립 및 이를 위한 사업 계획은? “문신사법이 오는 2027년 10월 시행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앞으로 남아있는 기간은 법 제도의 완성도를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시기이며, 한의사의 역할 정립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할 때다. 먼저 문신사법에 따라 문신사는 매년 위생·안전 교육을 이수해야 하는데, 한의사는 피부 해부학을 바탕으로 한 시술 부위 이해, 침습 시술 시 감염 예방과 상황 발생시 대처, 시술 후 회복 과정에서의 나타나는 다양한 피부 반응의 이해와 올바른 관리 방법 등의 교육을 담당할 수 있는 만큼 반드시 교육과정에 참여해야 한다. 또한 문신 부작용 관리·치료 체계 구축을 위해 문신 시술 후 발생할 수 있는 알레르기 반응, 육아종, 켈로이드 등의 부작용에 대한 예방과 표준 치료 프로토콜을 개발하고 임상 근거를 축적해 나가는 한편 문신 제거 영역에서의 한의사 역할도 강화돼야 한다. 문신사법에선 문신사의 문신 제거 행위를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는데, 이는 문신 제거가 의료행위로서 의료인의 영역에 해당함을 법적으로 확인한 것이다. 이에 한의사가 실시하는 레이저 및 다양한 방식의 문신 제거 방법과 제거 시술 이후의 회복 프로토콜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대한문신학회에서는 현재 편찬 중인 문신 안전성 교재를 문신사 국가시험 대비 표준 교과서 수준으로 발전시켜, 문신 시술의 위생·안전·부작용 관리에 관한 공인된 학술 교재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또한 문신사 국가시험의 출제 영역에는 피부 해부학, 감염 관리, 시술 부작용 대처 등 의학적 전문지식이 필수적으로 포함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러한 영역에서 오랜 임상 경험과 학술적 역량을 갖춘 한의사가 국가고시 출제위원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관계 기관과 적극적으로 협의해 나가려고 한다. 이는 곧 문신사 제도의 전문성·신뢰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Q. 문신 시술, 문신사 교육 등에 있어 한의학의 장점은? “한의사는 모든 의료 직역 중에서 피부 침습 시술에 가장 많은 임상경험을 축적하고 있는 직군이다. 즉 한의사는 매일 진료 현장에서 환자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직접 피부를 촉진하고, 다양한 부위에 침을 놓으며, 시술 전후의 피부 반응을 관찰하고 관리하고 있다. 이는 교과서적 지식이 아니라 수십만 회에 달하는 실제 침습 시술 경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피부의 두께와 저항감, 부위별 출혈 경향, 개인별 통증 반응과 회복 속도 등 시술자만이 체득할 수 있는 감각적·임상적 역량을 포함하고 있다. 문신 시술은 본질적으로 피부 표층에 대한 반복적 침습 행위이며, 이 과정에서 요구되는 위생 관리, 적절한 시술 깊이 판단, 부작용 발생 시 즉각적 대처 능력은 한의사가 일상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업무와 직결된다. 즉 문신의 안전한 시술과 교육에 필요한 학술적 기반과 임상 현장 경험을 동시에 갖춘 의료 직군이 바로 한의사라 할 수 있다.” Q. 그 외 하고 싶은 말은? “문신사법 제정은 오랜 기간 법의 사각지대에 있던 문신 산업이 제도권으로 들어오는 역사적 전환점이다다. 그러나 법의 제정은 시작일 뿐, 진정한 과제는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세부 제도를 얼마나 잘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 문신사법 국회 통과 당시 의사단체에서는 법안 반대 의견을 피력했지만, 외부의 시선에서는 문신을 다루는 의료기관이 거의 없는 현실에서 무조건적인 법안 반대가 대안 없는 반대로 비쳐 설득력을 얻기 어려웠던 측면이 있었다. 이처럼 세부 제도의 설계에서 여러 단체들의 치열한 힘겨루기가 벌어질 수도 있겠지만, 대한문신학회는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실질적으로 보호하는 제도가 정착되도록 학술적 전문성을 바탕으로 문신 시술의 안전성 향상과 부작용 관리 체계 구축에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
“한의진료가 장애인 동반자 되도록 실천모델 되고파”[편집자주]경희태창한의원 김영선 원장(전 대한여한의사회 회장)이 지난 2월2일 서울시립영등포장애인복지관과 ‘찾아가는 한의진료’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본격적인 봉사진료에 나섰다. 지역사회의 일원이자 한의사로서 김 원장이 되새기는 마음가짐과 봉사진료를 통해 체감한 진료 철학을 들어봤다. Q. 영등포장애인복지관과 한의 진료봉사 협약을 맺게 된 계기는? 영등포구 지역에서 30년 넘게 환자들을 마주하며 지역사회의 따뜻한 배려 속에 성장해 왔다. 그동안 대한여한의사회 활동을 통해 꾸준히 의료봉사를 실천해 왔지만, 여한의사회 회무를 마무리한 뒤, 오래 몸담고 도움 받아온 우리 지역사회에 나눔을 실천하고 보답하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다. 그러던 중 영등포구 내 등급판정위원장 활동을 하며 영등포장애인복지관 관장님과 장애인을 위한 한의치료의 접근성과 만성질환 관리의 장점에 대해 공감했고, 이를 계기로 복지관 측의 요청을 받아 공식적인 협약을 맺게 됐다. 30년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이웃들의 건강한 일상을 돕는 것이 내 소명이자 지역사회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 남은 나의 진료시간 동안 보람 있는 일을 하게 돼 매우 기쁘게 생각하고 있다. Q. 어떤 한의진료 서비스가 제공되는지?의료상담, 침치료, 한약치료, 약침치료 등을 한 달에 한 번 제공한다. 오랫동안 불편함을 이기며 관리해온 분들인 만큼, 개개인의 신체적 특성과 만성질환의 진행 정도, 그리고 생활환경을 고려해 가능한 모든 치료를 하려 한다. 장애인분들은 주 질환 외에 활동량 저하로 인한 순환장애나 소화기 문제 등 2차 질환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한의학의 특성인 전체적인 관점에서 질병을 바라보고 통합적으로 관리해 불편함을 도와드리려 한다. 무엇보다 그분들에게 익숙한 복지관이라는 공간에서 전문적인 의료 서비스 제공을 통해 지속적인 치료와 관리가 가능하다는 점은 환자들에게 큰 장점이 돼 좋아하시는 것 같다. 이는 일상과 의료를 통합해 살던 곳에서 치료받고 생을 영위하는 통합돌봄의 의미를 실천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또 보호자들도 긴 간병에 힘들어 하시는데 상담과 대화로 심리적 안정감을 드리고, 꾸준한 치료 의지를 북돋우는 '마음 치유'도 진료의 중요한 일부인 것 같다. Q. 장애인 대상 치료 시 더 신경을 쓰게되는 부분은?일반 진료는 질병의 소실인 반면,장애인 진료는 ‘기능의 보존’과 ‘삶의 질 유지’라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다. 임상적으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크게 세 가지다.첫째, 신체적 비대칭으로 인한 2차적 보상작용을 관리하는 것이다. 장애 유형에 따라 특정 근육군을 과사용하거나 반대로 위축되는 경우가 많아 단순히 통증 부위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근골격계의 균형을 맞추는 데 주력한다. 둘째, 정서적 교감을 통한 신뢰 형성이다. 오랜 투병과 장애로 심리적 위축을 겪는 분들이 많기에 한의학의 심신일여(心身一如) 원칙에 입각해 환자의 마음을 살피고 그분들의 생애를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진료를 하려한다. 셋째, 시술의 안전성이다. 불수의적인 움직임이나 감각 저하가 동반된 경우가 많아, 유침(留針) 시간이나 안전한 자침기법 선택에 일반 환자보다 더 세밀한 주의를 기울인다.결국 장애인 진료는 질병 그 자체보다 장애로 인한 환자의 전체적인 삶의 궤적을 통찰하고 결여를 읽어내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보완해줘야 하는 고도의 맞춤진료라 생각한다. Q. 한의진료가 장애인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장애인 치료의 핵심은 ‘신체 자생력 확보’와 ‘이차적 합병증 예방’에 있다고 생각한다. 한의약은 다각적인 기전을 통해 이를 뒷받침한다. 첫째, 만성통증의 악순환을 끊는 신경학적 조절이다. 침치료는 하행성 통증 조절계(Descending Pain Modulatory System)를 활성화하고 엔도르핀 등 내성 마약성 물질 분비를 촉진해 통증을 경감시킨다. 이러한 침치료의 통증 제어 기전은 이미 세계 석학들의 연구를 통해 과학적으로 규명됐다. 그러므로 침치료는 장기적 약물 복용으로 내성이 생기거나 소화기 부작용을 겪는 장애인 환자들에게 매우 안전하고 효과적인 통증 관리 수단이다. 둘째, 근육의 경직 이완과 관절 가동범위의 확보다. 마비나 비정상적인 근긴장으로 인해 발생하는 관절 구축은 장애인의 일상을 가장 위협하는 요소다. 침과 약침요법은 해당 부위의 염증을 제어함하고 경결된 근육을 물리적으로 해소해 신체의 유연성을 높이고 추가적인 골격 변형을 예방하는 데 탁월한 효능을 보인다. 셋째, 전신 대사 및 기혈 순환의 정상화다. 활동량이 극히 제한적인 장애인분들은 만성적인 순환 장애와 소화기계의 기능 저하를 겪기 쉽다. 한약 처방은 기혈(氣血)을 보하고 순환을 도와 전신 컨디션을 끌어올림으로써, 환자가 재활 훈련에 참여할 수 있는 기본적인 ‘체력적 토대’를 마련해 준다. 이는 한의학적 치료만의 큰 특장점이다. 결국 한의진료는 단순히 특정 부위의 통증을 지우는 데 그치지 않고, 환자가 자신의 몸을 다시 통제할 수 있는 힘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통합적 재활의학으로서 큰 가치를 지닌다. Q. 진료현장에서 장애인들이 가장 많이 호소하는 건강 문제는?발달 장애 아동 진료와 장애인성폭력센터의 피해자를 돌본 경험이 있다. 먼저 이러한 경우 일상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 ‘호소’라는 말은 사치다. 주로 보호자를 통해 병증을 파악하는데 이럴 때 한의학적 불문 진단은 큰 장점이 된다고 생각한다. 환자를 대하고 보고 듣고 맥을 살피는 망문문절(望聞問切)은 그 과정을 통해 환자와의 교감도 밀접하게 형성되고 심신의 질병을 파악하게 한다. 이해받지 못하고 자신의 뜻을 충분히 피력하지 못한 장애인 환자들의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억눌리고 피폐돼 있다. 때문에 그들을 어루만지며 치료하는 침치료는 상상 이상으로 큰 힘이 되고 효과를 나타낸다. 이곳 복지관에서 접한 환자들은 거의 10년 이상 편마비로 살아왔다. 언어중추까지 손상돼 표현을 못하거나 오랜 마비와 구축으로 인해 보행부터 모든 일상에 도움이 필요하고 거기에 노화로 인한 퇴행과 보호자들의 노화도 두려움으로 엄습하고 있다. 통합돌봄이 잘 자리 잡아 사회적 커뮤니티로서 삶의 불안을 완충해주는 좋은 제도로 완성되길 간절히 바란다. Q. 봉사진료 중 보람을 느꼈던 경험이 있다면?작은 손길은 소외된 이웃들의 삶에 생각보다 크게 반향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주민 여성 진료 시 가족 내 학대로 힘들어 한 여성이 있었다. 그녀에게 심신 치료와 함께 꿈을 물은 적이 있다. 그때 생기있게 반짝이는 눈을 봤다. 치유는 결국 그들의 자존감의 회복으로 연결되고, 장애인 진료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또 성폭력 트라우마로 힘들어하는 여학생이 한의 침과 한약 치료를 받고 정신과 치료를 받을 때보다 힘이 빠지지 않아 신기하다며 몸으로 느낀 정확한 부분을 묘사한 말에 무척 기뻤던 기억이 난다. 한의사로서 자존감이 회복되며 나도 치료가 됐다. 내가 받은 것이 더 많다. Q. 이번 봉사 활동을 통해 이루고 싶은 목표는?이번 봉사활동의 목표는 내 삶의 마무리다. 봉사를 시작하며 복지관장님께 웃으며 “일단 10년 목표입니다”라고 했는데, 이제 나도 삶의 후반기로 접어들며 내 진료의 마지막 모습을 생각하게 된다. 미드 ‘그레이 아나토미’의 한 장면이 기억에 있다. 오랫동안 근무한 수간호사가 그곳 병실에서 삶을 마무리하고 가족 같은 동료들이 그녀를 보내주는 장면이었다. 그 장면을 보며 나도 저렇게 삶을 마무리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장애인 환자분들을 위한 의료 접근성 확보’, ‘보건 환경의 개선’ 등 그런 큰 뜻도 중요하지만, 사실 환자분들과 가족같이 삶을 나누며 같이 고민하고 돌봄을 주고받는 그런 모습을 만들며 내 삶의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하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부분을 나누는 과정 또한 나를 치유해준다. 가능하면 이 길의 끝에서 환자분들과 웃으며 손잡을 수 있는 '동행'의 시간을 오래도록 이어가고 싶다. Q. 향후 장애인 한의진료가 어떻게 이어져야 할지?“장애인 건강권 보장을 위해 ‘장애인 한의 주치의 제도’의 전면 시행과 정착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며, 세 가지 방향으로 확대와 지속이 필요하다. 첫째, 의료 접근성의 물리적·경제적 문턱을 낮춰야 한다. 장애인분들은 이동의 제약으로 인해 정기적 내원이 어렵다. 현재 시범사업 단계의 주치의 제도를 통해 ‘찾아가는 방문진료’를 활성화하고, 수가체계를 현실화해 더 많은 한의사가 기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둘째, 한의약의 ‘예방의학적 관리’가 제도에 녹아들어야 한다. 장애인은 상대적으로 만성질환 유병률이 높고 합병증에 취약하다. 단순한 일회성 통증치료를 넘어, 한의약의 강점인 미병(未病) 관리와 전신적 기혈 순환 개선을 주치의 제도의 핵심 관리 항목으로 설정해 삶의 질을 근본적으로 높여야 한다. 셋째, 지역사회 중심의 민관 협력 거버넌스 구축이다. 내가 이번에 영등포장애인복지관과 협약을 맺은 것처럼, 개별 의료기관의 봉사를 넘어 복지관·보건소·한의원이 연계한 촘촘한 의료 안전망이 필요하다. 의료는 진료실 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생활 터전인 지역사회와 맞닿아 있을 때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30년 전 처음 진료를 시작할 때나 지금이나, 의료인의 사명은 소외된 이 없이 모두가 건강한 일상을 누리게 하는 데 있다. 한의 주치의제가 장애인분들에게 든든한 건강 동반자가 될 수 있도록, 나 또한 현장에서 실천적 모델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태겠다. -
세계 수기의학 발전에 일조하는 것이 추나학회에 주어진 시대적 사명<미시간주립대학교의 명예교수인 Lisa DeStefano 교수님과> 척추신경추나의학회(이하 추나학회)에서는 매년 세계 수기의학의 최신 지견을 접할 수 있는 미국오스테오패시의학회(American Academy of Osteopathy, AAO) 학술대회에 일정 인원을 파견해 참석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다양한 최신 지견에 대한 지식의 습득을 통한 학회의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본 행사에 해당하는 ‘2026 AAO Convocation’은 3월 19일부터 22일까지 콜로라도 주의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개최됐다. 필자는 2023년부터 4년 연속 참가를 하고 있는데, 올해는 사전 행사인 Pre-convocation에 듣고 싶은 강의가 있어 나머지 참가자들보다 조금 빠르게 참가를 하게 됐다. 3월 14일 진료를 마치고 공항에서 김원식 원장(추나학회 교육위원, 국제분과위원)을 만나 같이 출국하게 됐다. 사전행사인 ‘Pre-convocation’에 참석 긴 여정 끝에 본 행사장인 Broadmoor Hotel에 도착하니 어느덧 밤이 됐고, 다음 날부터 시작되는 강의 및 워크숍을 위해 일찍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아침에 ‘Silent Waves’의 저자인 프랑스 의사(MD)이면서 오스테오패시의사(DO)인 Bruno Chikly의 ‘Paradigm Shifts in Embryology’ 강의가 3일 동안 진행됐다. 필자는 미국 Maine주에서 임상을 하고 있는 부드러운 인상의 Gage라는 DO와 파트너가 되어 3일 동안 실습을 같이 진행했다. <팔찌 색깔에 따른 접촉의 편함 정도를 알려주는 표지판> 올해부터는 지난해와 다르게 강의 전에 초록색, 노란색, 빨간색의 팔목에 착용하는 밴드를 나누어줬는데 각각의 색깔에 따라서 접촉 정도에 따른 개인적 허용도를 누구나 직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실제로 얼마 전에 세계수기근골의학연합회(FIMM)에서도 수기의학과 관련해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는데 이전과 다르게 의료인의 윤리적인 부분들이 별도의 챕터로 추가됐다. 수기의학이라는 특성상 부득이하게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접촉과 관련해서 항상 환자에게 사전 고지를 하거나 필요한 경우에는 충분히 설명하는 부분을 수기의학을 하는 의료인이라면 항상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이다. 추나학회는 실제로 이러한 세계적인 변화 이전부터 정규워크숍에서 의료인의 윤리적인 부분과 관련해 선도적으로 교육을 하고 있었다. “Mastering Technique Precision & Perception”주제 본 행사 시작 정신 없었던 사전 워크숍의 3일이 지나고, 어느덧 본 행사 참가자들을 맞으러 콜로라도 스프링스 공항으로 마중을 나가서 픽업을 하고 호텔로 복귀했다. 19일부터는 “Mastering Technique Precision & Perception”이라는 주제로 올해의 본 행사가 시작됐다. 올해 행사는 이전부터 광범위하게 행해졌던 각종 오스테오패시수기요법(OMT)에 대해서 조금 더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다양한 최신 지견들과 함께 기존의 기법들이 발전했던 역사를 살펴보는 시간들이 많았다. 일례로 이전부터 광범위하게 행해지던 OA decompression 기법과 관련해서 이것이 현대의학적으로 가지는 의미에 대해 해부학적 실체를 토대로 최신 지견들을 소개하는 이론강의를 오전에 하고, 오후에는 심박변이도 등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측정 기구와 함께 결과를 직접 실습을 하면서 살펴보는 워크숍이 개최되기도 했다. <Bruno Chikly 와 그가 사인해준 그의 저서 사진> 수기의학 발전 위한 AAO학회 구성원의 문제의식 느껴 이러한 의학적인 지식과 관련된 강연도 많았지만, 한편으로는 DO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안겨주는 강의들도 있었다. 실제로 DO의 발전역사를 살펴보면 의료 낙후 지역 등에서 1차 의료를 주로 담당하면서 그 안에서 수기요법을 다양한 환자 군에게 적용하며 발전 시켜왔다. 최근에 미국에서는 오스테오패시대학이 점차적으로 늘어나면서 현재는 배출되는 DO의 수가 1년에 8000여명에 육박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점차적으로 수기의학을 하는 DO의 수는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수기의학의 특성상 환자와 함께하는 시간이 길 수밖에 없는데, 최근의 흐름은 시간 대비 돈을 더 빠르게 벌 수 있는 다른 의료분야로의 진출이 공공연하게 늘어나면서 수기의학을 하는 DO의 수는 점차적으로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이에 본인들의 정체성에 대해서 선배 세대 등의 기존의 DO들처럼 수기의학을 발전시키려는 AAO학회 구성원이 가지는 문제의식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흐름은 세계수기근골의학연합회(FIMM) 모임에 가더라도 비슷한 부분이 있다. 국가보험 체계 내에 제도화된 부분이 있는 독일을 제외하고는 상당수의 나라가 세대교체에 실패한 모습을 볼 수 있다. 2019년도부터 대한민국 건강보험체계에 추나요법이 편입되면서 대한민국의 한의사들의 많은 수가 현재 추나요법을 시행하고 있고 다른 나라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젊은 세대의 유입이 잘 이루어지고 있으며, 실제로 외국의 다른 나라에서는 추나학회의 이러한 역동적인 모습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환자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극대화해 치료에 도움을 주는 수기의학의 근본적인 환자 중심의 세계관이 훼손되지 않고 잘 발전할 수 있도록, 나아가서는 수기의학을 조금 더 효율적으로 치료하는데 도움이 되는 한의학의 침치료, 약침치료와 같은 치료법을 통합해서 발전시킬 수 있도록, 세계 다른 단체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해 세계 수기의학의 발전에 일조하는 것이 추나학회에 주어진 시대적 사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MSU 동문행사에서의 반가운 소식 추나학회에서 매년 교류를 이어가고 있는 미시간주립대학교(Michigan State University, MSU)의 동문행사에 참여했더니 반가운 소식을 맞이할 수 있었다. 학회를 위해서 항상 애정어린 강의를 해주는 Lisa DeStefano 교수님이 AAO의 President-elect로 당선이 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축하의 인사를 나누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또한 이날 MSU의 여러 학생들이 한국에 가서 추나의학도 배우고 한국의 문화를 체험하고 싶다는 인사와 함께 추나학회 구성원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려는 모습을 보면서 세계에서 달라진 한국의 위상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길었던 여정을 마무리하고 올해도 무탈하게 별도의 낙오자 없이 귀국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필자는 귀국 전 마지막 워크숍에서 콜로라도 DO 2인들에게 받았던 2인 기법 덕분인지 귀국길 비행기에서 편안히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지면을 빌어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마무리하고자 한다. 항상 넓은 통찰력으로 학회를 잘 이끌어 주시는 양회천 회장님,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항상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남항우 부회장님, 적재적소에서 올바른 결단력으로 이번 여정도 잘 이끌어 주신 송경송 부회장님, 박학다식한 지식으로 새로운 세대의 주역으로 거듭나고 있는 기성훈 이사님,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의 운전 파트너 김원식 위원님 덕분에 힘든 일정 속에서도 올해의 AAO 참가도 잘 마무리 됐다고 생각한다. 한의계, 나아가 대한민국, 그리고 더 나아가 세계 속에서 발전하는 추나학회가 될 수 있도록 올해 얻은 성과들도 잘 이어나가도록 하겠다. -
“76년 전 숭고한 희생을 한의학으로 보답하다”한국전쟁 당시 아프리카 국가 중 유일한 지상군 파병 국가, 에티오피아 지난 2월15일, 머나먼 대륙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에 열린의사회 소속으로 의료봉사를 다녀왔다. 왜 하필 에티오피아였을까. 최근에도 국세 정세는 조용하지 않지만, 우리의 역사에 잊을 수 없는 연도를 정하자면 1950년 한국전쟁을 빼놓을 수 없다. 당시 에티오피아는 인연이 깊지 않았어도 대한민국에 지상군을 파병해 줬고, 황실 근위대 소속 강뉴부대는 250여 회의 크고 작은 전투에서 모두 승리하며 포로가 1명도 없었을 정도로 용맹한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전쟁 이후의 삶은 정치적 상황에 의해 명예롭지 못했고 참전 용사들은 오히려 사회 최빈곤층의 삶을 살게 되었다. 이번 의료봉사는 남은 60여 명의 참전용사들과 그의 가족들을 위해 진행됐고, 우리는 아디스아바바의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 보건소’로 향했다. 76년을 거슬러 돌려드린 온기, 한의학 진료 시작 전, 제복을 차려입고 우리를 맞아주신 참전용사께서는 90세가 넘는 연세임에도 불구하고 당당하며 정정하셨기에 전쟁 당시의 기개를 상상해 볼 수 있었다. 나의 앞에 서 계신 참전용사 할아버지와 그의 전우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떠올리며, 내가 살아온 대한민국의 자유가 우리 국민을 포함해 셀 수 없는 이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겨우 얻어낸 것임을 상기하며 진료에 감사한 마음을 꼭 담겠노라고 다짐했다. 구비된 물품은 한의학 치료를 위해 부족함이 없었으며, 특히 개인적으로 구비하기 어려웠던 상황에 필자의 다소 무리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의료기기 제공 등 직접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은 부산 동의의료원의 결정에 감사를 전하고 싶다. 총 7개의 진료과에서 매일 350명 가량의 환자를 보았고, 내가 단독으로 맡아 운영한 한의과도 하루마다 50~60명 정도의 초진 진료를 보았다. 문화적인 차이에 의해 침, 주사와 같은 치료에 대해 두려움을 갖는 환자분들도 다수 계셨지만, 최대한 안심하실 수 있게 다방면으로 설명해 드렸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입소문이 났는지 점차 거리낌 없이 침을 포함한 한의학적 치료에 아프신 몸을 맡겨주셨다. 환자의 상황에 맞게 다양한 방식으로 치료를 도와드렸고, 현지 보건소에서 근무하시는 에티오피아 의료진들도 호기심이 생기셨는지 삼삼오오 모여 진료 과정을 참관하며 관련 내용들을 질문하시곤 했다. 당연히 쉴 틈 없이 바쁘게 진행된 진료 속에서도, 환자를 처음에 모시고 또 마지막으로 배웅해 드릴 때 가능한 눈을 맞추며 감사함을 표하려 애썼다. 그들에게서 내가 받은 원대한 것들에 비해 사소한 인사일지 몰라도 진심이 전해졌기를 바란다. 아프리카 사람으로서 76년 전 낯선 땅 강원도에서 처음 겪으신 추위와 공포에 대해 나는 이제라도 따뜻함을 전하고 싶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진료 마지막 날은 질서 유지를 위해 현지 경찰 10명도 출동했으니 대단히 많은 인파로 붐볐던 당시 현장을 다시 떠올릴 수 있다. 마감이 다가오는 만큼 봉사단원 모두가 진심을 다해 진료에 임했고 최종적으로 구호품까지 전달하며 공식적인 진료 일정은 끝이 났다. 이후 시간을 내어 우리는 에티오피아 한국전 참전 용사회에 방문해 기념 공원에 높게 세워진 참전용사 기념탑 앞에서 과거의 헌신에 대해 묵념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곳에서 뵐 수 있었던 94세, 96세 참전용사 어르신의 총명한 눈빛을 잊을 수 있을까. 이후 일정을 마치고 22일 귀국했으며, 3월 중순에는 강원도 춘천에 방문했다. 에티오피아의 참전용사 기념탑과 같은 모양을 한 쌍둥이 탑이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서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채 방문한 춘천의 에티오피아 한국전 참전기념관을 끝으로 이번 의료봉사는 매듭을 지었다. 에티오피아에서 두 눈으로 마주할 수 있었던 참전용사를 포함한 그의 가족들, 그리고 또 현지 주민들. 그들의 삶과 나의 삶이 짧게나마 접속했지만 다시 만나기 쉽지 않음을 안다. 이어지는 삶 속에서 우리가 전한 감사의 향이 은은하게 맺혀있기를 바란다. 또한 나 개인으로서도 본업에 집중해 앞으로 나와 접속하는 수많은 이들의 삶에 도움을 드릴 수 있길 소망한다. 나아가며 에티오피아에서의 의료봉사에 그치지 않고, 나아가 개인적으로 나의 열린의사회 활동은 3월 전북 진안, 4월 경남 의령, 경북 울진 등 국내의료 봉사에 참가할 예정이며 4월의 라오스 의료봉사에도 참가하기에 각지의 환자분들에게 도움을 드릴 수 있길 바라고 있다. -
미세먼지는 어떻게 질병을 악화시키는가?[한의신문] 평소 자전거로 출퇴근을 한다. 오늘은 초미세먼지 농도가 매우 나쁨이라서 마스크를 써야 했다. 오랜만에 마스크를 쓰고 급하게 페달을 밟으니 말 그대로 숨막히는 출근길이었다. 최근 대기질 전망에 따르면, 3월 서울 초미세먼지 농도가 ‘나쁨’ 이상인 날이 절반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3년간 국내 보도에서 고농도 초미세먼지는 봄철마다 수도권과 충청·호남을 중심으로 반복적으로 발생했으며, 일부 시기에는 ‘매우 나쁨’ 수준이 수일 이상 이어지기도 했다. 2025년 1월에는 수도권과 충남을 중심으로 비상저감조치가 시행됐고, 2023년 4월에는 잠실구장 프로야구 경기가 미세먼지로 취소됐는데, 당시 경기장 농도는 300㎍/㎥를 훌쩍 넘었다. 학교에서는 고농도 미세먼지 시 실외수업과 체육활동이 제한되고, 지하철역과 공항, 학교 교실 등 다중이용시설의 공기질 관리 기준도 강화되고 있다. 이처럼 미세먼지는 출퇴근 방식과 학교생활, 여가와 생활 리듬까지 바꾸고 있다. 미세먼지는 기후위기와 맞물려 반복적으로 일상을 교란하는 환경재난으로 인식되고 있다. 미세먼지, 전신 염증을 유발하는 ‘보이지 않는 위험’ 미세먼지는 단순한 호흡기만 자극하지 않는다. 초미세먼지(PM2.5)는 기도 깊숙이 침투하고, 일부 성분 및 그에 의해 유발된 산화스트레스와 면역·염증 반응이 전신에 영향을 미친다. 초미세먼지에 포함된 다양한 성분은 활성산소 생성을 증가시키고 면역세포를 자극해 염증성 사이토카인 분비를 촉진한다. 이 과정은 기관지와 폐 조직 손상뿐 아니라 혈관 내피 기능 이상과 자율신경계 불균형으로 이어진다. 그 결과 호흡기 질환뿐 아니라 심혈관계에서 고혈압, 심근경색, 뇌졸중, 심부전 악화 위험이 증가한다. 또한 최근 연구에서 미세먼지가 간기능 이상, 지방간, 만성 신장질환, 골대사 이상 등 다양한 장기로 확장된다는 점이 보고되고 있다. 최근 대규모 코호트 연구에서 대기오염 노출이 중·고령 성인에서 만성 통증의 발생 및 지속과 유의한 연관성을 보였다(Zeng et al., 2025). 특히 장기간 노출에서는 만성 염증 상태가 지속되면서 기존 만성질환을 악화시키고, 취약집단에서 그 악영향이 더 크게 나타난다. 이처럼 미세먼지는 여러 질환의 발생과 악화 위험을 높이는 전신적 위험 요인이다. 정신건강까지 위협…우울·인지기능 저하와 연관 미세먼지는 신체 건강뿐 아니라 정신건강 및 인지기능에도 영향을 미친다. 최근 메타분석에서 초미세먼지 노출이 증가할수록 우울 증상과 불안의 발생 위험이 높아지는 경향이 보고됐다(Borroni et al., 2022). 미세먼지 노출은 전신 염증 반응을 유발하고, 뇌에서는 신경염증을 촉진한다. 이는 정서 조절과 관련된 신경계 기능 변화로 이어진다. 대기오염은 인지기능 저하와도 연관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Chandra et al., 2022). 또한 고농도 미세먼지 시기에는 외출 감소와 활동 제한, 사회적 고립이 동반되면서 심리적 부담이 더욱 커진다. 특히 고령자, 기존 정신질환 환자, 만성질환으로 활동이 제한된 집단에서는 이러한 영향이 더 크게 나타난다. 즉 미세먼지는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정신건강과 인지기능까지 영향을 미치는 복합적 위험 요인이다. 한의임상, 환경까지 고려하는 ‘확장된 진료’ 필요 미세먼지로 인한 건강 영향을 줄이기 위해서는 한의임상 현장의 접근도 달라져야 한다. 먼저 노인, 임산부, 소아와 같이 생리적 취약성이 높은 집단뿐 아니라, 기존의 내과적·정신과적 질환을 가진 환자를 진료할 때에는 미세먼지의 영향까지 포괄적으로 고려하는 평가가 필요하다. 앞으로는 기존 질환의 전형적인 양상에서 벗어난 비특이적 증상이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환경적 요인을 포함한 보다 포괄적이고 스펙트럼적인 평가가 필요하다. 또한 고농도 미세먼지 시기에는 환자의 외출 자체가 제한되면서 대면 진료에 제약이 발생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한의계에서도 비대면 진료나 방문 진료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에 대한 제도적·임상적 준비가 필요하다. 취약계층 환자를 진료할 때에는 기존 질환의 악화와 미세먼지 노출 간의 연관성을 충분히 설명하고, 마스크 착용과 외출 관리에 대한 구체적인 교육을 병행해야 한다. 특히 독거노인이나 1인 가구처럼 사회적 고립을 경험할 수 있는 환자들은 미세먼지 시기에 신체적·정신적 부담이 동시에 증가할 수 있으므로, 지속적인 관심과 관리가 필요하다. 기후위기 시대의 한의임상은 질병 자체를 넘어, 환자가 놓여 있는 환경과 생활 조건까지 함께 평가하고 개입하는 방향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
“권익·학술·복지 강화로 한의과 공보의 유입 확대…지역의료 해법”[편집자 주] 제40대 대한공중보건한의사협의회(이하 대공한협) 유지환 회장이 3월부터 본격적인 임기에 돌입했다. 유지환 회장은 회원의 권익·학술·복지 강화를 핵심 기조로 내세우는 한편 지역 공공의료의 심각한 현실을 짚으며 공중보건한의사의 역할 확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본란에서는 유지환 회장으로부터 대공한협 운영계획과 지역의료 공백 해법에 대해 들어봤다. Q. 제40대 회장에 당선됐다. 처음에는 실감나지 않았지만 임기를 시작하고 나서야 비로소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대공한협 이사로 합류하고자 마음먹었던 그 초심을 간직한 채 앞으로 회원을 향해 어떤 메시지를 제시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고 있다. 무엇보다 공중보건한의사로서의 3년이 단순한 시간이 아니라 ‘무엇이든 얻어가는 시간’으로 회고될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 현재 일차 공공보건의료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정부 방침을 준수하고 국민에게 봉사하는 공중보건한의사로서의 역할을 지켜나가겠다. 회원의 목소리에는 항상 귀를 열고, 관계부처 및 기관과는 적극 협조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고자 한다. Q. 비전 및 중점 추진 계획은? 회원 권익·학술·복지 역량 강화라는 3대 비전을 추진해 나가고자 한다. 권익 측면에서는 단순히 무엇인가를 더 누리겠다는 차원을 넘어 최소한의 생활조건조차 갖추지 못한 회원들을 찾아내고, 명시된 권익을 실질적으로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이러한 여건이 개선된다면 공중보건한의사 지원 인원이 늘어나고, 지역 공공의료 공백 해소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두 번째는 학술이다. 공보의 3년이 단순히 타지에서 시간을 보내는 기간이 아닌 한의사로서 한 단계 더 성장하는 시간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여러 학회와 협력해 회원들이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복지다. 공중보건의 생활 속에서도 일상의 만족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기존에 호응이 높았던 프로그램은 횟수와 규모를 확대하고, 의무를 마친 이후의 미래까지 함께 그려볼 수 있는 정보 교류의 장도 넓혀가고자 한다. Q. 특히 교육 분야와 관련해 차별성이나 세부적인 계획안은? 회원의 수요를 반영한 교육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전 회원을 대상으로 수요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또한 여러 학회와 협력해 공중보건한의사로 근무하면서도 관심 분야에 대한 학습을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자 한다. 학술 협약에 관심 있는 학회가 있다면 언제든지 함께하고 싶다. Q. 공중보건한의사가 본 전국 지역의료현장의 실태는? 매우 심각하다. 특히 군 단위 지역에서는 읍내를 제외하면 의료기관이 보건지소뿐인 경우가 많고, 그마저도 폐소 예정인 곳이 적지 않다. 소외된 지역에 남겨진 국민을 누가 돌볼 수 있을지 고민이 깊어진다. 방문진료가 시행되고 있으나 공중보건한의사에 대한 수가 문제 등 제도적 한계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중보건한의사들은 국가와 국민의 요청에 따라 현장을 지키고 있다. 실제 현장에서 만나는 환자들 중에는 방치에 가까운 상황에 놓인 분들도 많다. 보건진료소를 확대한다고 해도 접근성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교통이 불편한 지역에서는 의료기관이 어디에 있든 환자가 이동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단순한 시설 확대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Q. 지역의료 공백 및 의과 공보의 공백 대응을 위한 해법이 있다면? 지역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한 공중보건한의사 활용 방안 여론 확대와 논의가 이뤄졌으나 정부는 이를 부인했고, 관계부처 역시 ‘면허 범위 문제’라는 입장만 반복했다. 현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의료법’ 개정이 아닌 예외 적용을 위한 ‘농어촌 의료법’이다. 제19조에 명시된 ‘보건진료 전담공무원’은 ‘의료법’ 제27조에도 불구하고 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이는 의료취약지의 공백 해소를 위해 가능한 인력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취지다. 그럼에도 환자에 대한 독자적 판단이 가능한 한의사를 배제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보건진료소 확대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의 요구는 ‘농어촌 의료법’과 같은 예외 조항을 공중보건한의사에 한정해 적용하자는 것이다. 이는 직역 갈등이 아닌 장기화된 의료 공백 속에서 국민에게 봉사하고자 하는 대공한협의 결의다. 변화에 대한 부담이 있음에도 국민의 생명과 안녕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유지환 회장은 최근 열린 국회 토론회에 참석해 복무 현장 고충을 토로했다. Q. 제도적으로 개선이 필요한 점은? 우선 공중보건한의사의 기본적인 생활 여건이 최소한은 보장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난방비 지원이 없어 적은 급여로 이를 감당하지 못해 텐트를 치고 생활하는 사례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또한 함께 근무하는 공무원들의 공보의에 대한 인식 개선도 필요하다. 대부분은 소통으로 해결되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견디기 어려운 수준의 강압적인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에 대비한 최소한의 제도적 보호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교통비 지원 역시 중요한 문제다. 대부분의 공보의가 연고 없는 지역에서 근무하며, 휴일 이동에 드는 비용이 급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공중보건한의사는 국가의 명령으로 장기간 의료취약지에 배치되는 만큼, 최소한의 생활 기반은 보장돼야 한다고 본다. 일부 지역에서는 가장 가까운 상점에 가기 위해서도 차량으로 수십 분을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왼쪽부터) 유지환 회장·권혁진 부회장 Q. 대공한협 회원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말은? 우리는 정부의 방침을 준수하고 국민에게 봉사하는 공중보건한의사다. 협의회는 이 두 가지 가치를 지켜나갈 수 있도록 회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관계부처와의 협력을 통해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고자 한다. 최근 공중보건의사를 둘러싼 여러 이슈가 발생하고 있는 만큼, 협의회는 회원 보호를 위해 대응하고 있다. 어려운 상황이 있다면 언제든지 도움을 요청해주기 바란다. 권익 침해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제보해주기를 바라며, 갈등 조정을 원칙으로 하되 필요 시 추가 대응도 이어갈 계획이다. 또한 회원들의 참여를 필요로 한다. 공지사항이나 건의사항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보내주기 바란다. 지금 비록 어려운 환경 속에 있지만 지역주민들에게 우리의 존재는 누군가에게는 희망이자 일상의 안녕이다. 회원들 덕분에 안심하고, 내일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가슴에 새기며, 늘 그래왔듯 그들의 일상을 지켜나가자. -
“통합의료 해법은 병원 임상 현장에”…대만서 본 중의·양의 협진 모델[한의신문] 상지대 한의대는 최근 대만 화련 자제대학병원(Taipei Tzu Chi Hospital)에서 글로벌 인턴십을 진행, 학생들이 통합의학 환경 속에서 전통의학의 임상과 교육을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자제대학병원은 자제공덕회 산하의 대표적 통합의학 병원으로, 전통의학과 현대의학을 아우르는 진료·교육 체계를 갖추고 있다. 학생들은 진료 참관, TCM Gynecology 강의, 전통 침술 교육, 입원환자 증례 토의 등에 참여하며 실제 임상 과정을 폭넓게 경험했다. ■ 이론→임상으로…현장서 확인한 한의학의 실제-송우혁 학생(본과 2학년) 이번 프로그램은 학교에서 배운 이론이 실제 의료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경험이었다. 외래 진료와 병동, 의료 시스템 전반을 보며 대만 중의학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진료 현장에서는 환자의 과거 양방 처방 이력을 확인한 뒤 중의학 처방을 결정하는 과정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는 환자의 전체 치료 이력을 고려하는 통합적 진료 방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또한 침 치료 시 사용한 침의 개수까지 기록으로 남긴다는 점도 주목할 만했다. 이러한 기록은 진료의 객관성과 재현성을 높이려는 시도로 볼 수 있었다. 환자와의 소통을 중시하는 진료 태도 역시 인상 깊었다. 외래 진료 특성상 시간이 제한적임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이야기를 최대한 경청하고 치료 방향을 충분히 설명하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단순히 증상을 빠르게 파악하고 처방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자신의 상태를 이해하고 치료에 대한 신뢰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게 다가왔다. 이론적인 측면에서는 대만 중의학이 한국 한의학과 매우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 이해하기가 비교적 수월했다. 장부 이론이나 변증 체계, 치료 원칙 등 기본적인 틀은 학교에서 배운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아, 진료를 따라가며 자연스럽게 기존 지식을 복습하는 느낌도 들었다. 이러한 공통점 덕분에 대만 중의학이 낯설게 느껴지기보다는 같은 뿌리를 가진 의학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다만 경외기혈에 대한 관점에서는 한국과 차이가 있어 특히 인상 깊었다. 동일한 혈자리를 사용하더라도 해석하거나 활용하는 방식에서 차이가 있었으며, 이러한 차이는 각 나라의 임상 전통과 경험이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했다. 이를 통해 한의학이 단일한 정답을 가진 학문이 아니라, 임상 경험과 문화적 배경에 따라 다양하게 발전해 온 의학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이러한 차이는 앞으로 한의학을 공부하고 임상에 적용하는 데 있어 보다 유연한 사고를 갖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장기 입원 병동의 운영 방식은 한국의 한방병원과 비교했을 때 전반적으로 유사한 점이 많았다. 장기 입원 환자들을 중심으로 생활 관리와 재활, 지속적인 치료가 함께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병동의 분위기 역시 크게 낯설지 않았다. 이번 참관에서 특히 흥미로웠던 점 중 하나는 병원이 불교 관련 재단에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로 인해 한약 처방 시 동물성 약재가 포함된 경우 이를 배제한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평소 약재를 공부할 때는 주로 효능과 이론에만 집중해 왔는데, 종교적 가치관과 윤리적 기준이 실제 임상 처방에까지 반영된다는 점은 한의학의 또 다른 측면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느껴졌다. 이는 한의학이 단순한 치료 기술을 넘어 철학과 가치관을 함께 담고 있는 의학이라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한의학이 단순한 이론에 머무르는 학문이 아니라, 실제 의료 환경과 제도, 그리고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 구현되는 학문이라는 점을 체감할 수 있었다. 한국 한의학과 대만 중의학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동시에 경험하면서, 앞으로 한의사로서 임상을 바라볼 때 보다 넓은 시각을 가져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번 경험은 향후 임상 실습과 진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기준점으로 남을 것이라 생각한다. ■ 현장에서 현대 한의학 임상 모델을 마주하다-이동규 학생(본과 1학년) 이번 실습은 한의학의 현대적 임상 모델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던 경험이었다. 2주 동안 다양한 분과의 외래와 병동 회진을 참관하며 대만 중의학의 체계적인 시스템을 접할 수 있었다. 대만 의료 현장에서 중의학은 일상 질환 치료에서도 높은 활용도를 보였으며, 한약 제제에 건강보험이 적용돼 환자 접근성이 높았다. 특히 대형 병원 내에서 서양의학과 협진이 이루어지는 구조가 인상적이었다. 학업적인 측면에서도 자극을 받았다. 현지 중의대생들과 함께 자침 원리와 진단 근거를 토론하는 과정에서, 한국과 대만의 혈자리 명칭과 위치가 동일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자를 통해 임상 지식을 공유할 수 있었다는 점도 의미 있었다. 또한 침 치료에 공포를 느끼는 환자들에게 레이저 침과 같은 현대적 기기를 활용하는 모습은 전통의 현대적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다가왔다. 이번 경험은 예비 한의사로서 나의 학습 방향에 대한 확신을 더욱 공고히 해주었다. 특히 한국과 대만, 중국 등 동양의학을 공유하는 국가 간 지속적인 교류의 필요성을 깊이 느끼게 되었다. 각국의 풍부한 임상 데이터와 술기를 공유하고 공동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언어적 장벽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에 기존의 한자 실력을 바탕으로 중국어 학습을 더욱 심화하고, 영어 능력 또한 강화하여 우리 한의학의 우수성을 세계 학계에 객관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자 한다. 나아가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가진 인재들이 다시 중의학을 배우는 대만의 교육 제도를 보며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는 학제 간 융합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구조로 이해되었으며, 필자 역시 한의학을 폐쇄적인 학문으로 한정하지 않고 현대 과학의 언어로 재해석하려는 노력을 지속해야겠다고 느꼈다. 한의학의 치료 효과를 객관적으로 수치화하고 체계적인 근거를 구축하는 ‘한의학의 현대화’는 더 많은 환자에게 신뢰를 제공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라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이번 실습은 한의학이 단순한 전통 의학을 넘어 현대 의료 체계 속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음을 확인시켜 준 경험이었다. 앞으로 동양의학 국가 간 교류의 가교 역할을 수행하고, 지속적인 연구와 학습을 통해 더 많은 환자들이 한의학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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