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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17일 (수)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11)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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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 南 一 / 慶熙大 韓醫大 醫史學敎室



구한말에서부터 일제시대까지 한의학은 공백과 단절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것은 이 시기 우리 민족의 암울했던 상황에 대한 선입견이 부지불식간에 모두의 인식 속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이 시기에 대한 본격적인 탐구가 이루어지지 못한 데에도 원인이 있다.



‘현대 한의학의 뿌리는 언제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선뜻 자신있게 대답하지 못하는 것은 그 대답이 답하는 사람의 韓醫學觀을 드러내는 것일 수도 있기에 주저하게 되는 것이다. 현대 한의학은 구한말에서 일제시기의 학술적 경향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역사학계에서 ‘근현대’라고 분류하는 시기 가운데 일부분으로 포함되어 있는 구한말에서 일제시대의 중요성에 주목해야 할 상황에 와 있다.



이 시기는 한의학에 있어서는 매우 힘든 시기였음에는 틀림없다. 서양의학의 도전과 한의학의 주류의학으로서의 위치 상실, 일제의 서양의학 위주의 의료정책, 의생제도의 성립과 한의사의 사회적 지위 격하, 한의학 교육기관 설립 불허에 따른 후진 양성 기회의 박탈, 한의학의 치료의학으로서의 위치 손상, 日本式 傷寒論의 수입과 범람 등 갖은 부정적 상황이 초래되었던 이 시기에 한의학을 한다는 것은 그다지 사회적 존경을 받는 보람된 일을 하는 것으로 여겨지기 어려웠던 시기였던 것이다.



어려움들 속에서 이 시기 한의계는 시대적 필요성과 국민적 요청에 부응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였다. 이것은 醫書의 측면에 국한하여 살펴보아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먼저 고종에 의해 간행된 官撰醫書이다. 1906년 고종의 명령에 따라 御醫 李峻奎는 ‘醫方撮要’라는 관찬의서를 출간하는데, 이것은 조선 최후의 관찬의서로서 가치가 있다. ‘醫方類聚’, ‘鄕藥集成方’, ‘東醫寶鑑’, ‘濟衆新編’과 같이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출판한 의서임에도 조선이 멸망하기 직전에 출간되어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둘째, 古醫書의 新刊과 再刊이다. 李以斗(1807~1873)가 지은 ‘醫鑑刪定要訣’을 후손이 1930년에 간행하였고, 본래 1724년에 완성되었던 周命新의 ‘醫門寶鑑’을 1928년에 간행한 것 등이 그러한 예이다. 일제시대 古典醫書의 再刊을 주도한 인물은 杏林書院의 李泰浩이다. 그의 노력으로 ‘鄕藥集成方’(1942년), ‘金궤秘方’(1940년), ‘小兒醫方’(1943년), ‘鍼灸經驗方’(1945년) 등이 널리 보급되게 된 것이다.



셋째, 교육용 의서의 간행이다. 일제시대 전시기를 통틀어 한의사들의 중요 이슈는 한의학교육이었다. 1935년에 成周鳳이 지은 ‘漢方醫學講習書’는 구한말에서 일제시대까지 한의학 교육을 실시했던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순수 교육용 교재이다.



넷째, 儒醫의 전통을 잇는 醫書들의 연속적 간행이다. 儒醫는 韓國醫學史의 중심에 활동해온 중심세력이다. 조선 후기에 무르익은 儒醫의 전통은 구한말과 일제시대에 접어들어 활발히 만개하게 되었다. 1894년 李濟馬의 ‘東醫壽世保元’, 1906년 李奎晙의 ‘素問大要’, 1914년 金宇善의 ‘儒醫笑變術’, 1933년 文基洪의 ‘濟世寶鑑’, 1928년 元持常의 ‘東醫四象新編’, 1936년 李敏鳳의 ‘四象金櫃秘方’ 등은 儒醫의 전통의 맥을 잇는 의서들이다. 그러나 黃度淵, 黃泌秀 부자에 의해 1884년 만들어진 ‘方藥合編’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儒醫의 전통을 잇는 醫書이다.



다섯째, 東西醫學折衷을 위한 노력이 반영되어 있는 醫書이다. 東西醫學을 折衷하고자 하는 경향은 病名對照, 解剖學의 수용, 약물 비교 등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南采祐(1872~?)는 1924년에 ‘靑囊訣’을 지었는데, 그곳에서 서양 약물명, 전염병 예방법, 종두 시술법, 인체해부도, 병명대조표 등을 나열하여 東西醫學의 折衷을 시도하였다. 양의사 都鎭羽는 1924년에 국한문 혼용으로 ‘東西醫學要義’를 저술하여 病證別로 구분하여 各病證마다 東西醫學을 비교하는 형식으로 서술하였다. 洪鍾哲(1852~1919)은 醫生들을 교육하기 위해 經穴과 解剖를 결합한 한의학의 신교재 ‘經絡學總論’을 지어 한의학에서 서양의학을 절충하고자 하였다. 약물의 혼용을 통해 동서의학의 절충을 위해 1928년 朴容南은 ‘家庭救急方’을 지어 한약과 양약 처방 중에서 구급에 필요한 처방을 엄선하여 동서의학의 절충을 시도하였다.



이렇듯 구한말에서부터 일제시대를 醫書中心으로 살펴보면 한의학을 시대적 조류에 맞추어 발전시키려는 노력으로 점철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현대의 한의학은 이 시기의 노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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