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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 18일 (목)

[시선나누기-18]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시선나누기-18]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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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저온 보리한의원장


 

[편집자 주] 

본란에서는 공연 현장에서 느낀 바를 에세이 형태로 쓴 ‘시선나누기’ 연재를 싣습니다. 문저온 보리한의원장은 자신의 시집 ‘치병소요록’ (治病逍遙錄)을 연극으로 표현한 ‘생존신고요’, ‘모든 사람은 아프다’ 등의 공연에서 한의사가 자침하는 역할로 무대에 올랐습니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첫날과 이튿날 공연은 저녁 7시30분이었다. ‘오후 1시 테크리허설, 2시 영상팀과 사진촬영팀 리허설 촬영, 3시 드레스 리허설, 6시30분 공연 준비 셋업, 7시20분 관객입장, 9시 이후 극장 정리’ 등으로 빡빡하게 짜여진 첫날을 보내고 둘째 날 아침이 밝았다. 

스태프들이 일찍 모여 공연장을 점검하고, 배우들이 테크리허설을 준비하기까지 제법 넉넉한 시간이 생긴다고 생각하니 그저 쉬고 있을 수는 없다는 마음이 요동쳤다.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싶다는 마음은 물론이고, 공연장에 서기까지 내 몸과 마음이 함부로 느슨해지지 않도록 붙들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미리 검색해 간 공연 전시 목록에서 안젤름 키퍼의 서울 전시를 골랐다. 공연장에서 제법 떨어진 곳에서 열리는 전시였으나 낯선 곳을 찾아다니는 긴장과 설렘도 나를 생기있게 만들 것이었다.


내가 이 전시에 마음이 끌린 이유는?


타데우스로팍이라는 어려운 이름의 전시관은 ‘아름다운 건축상’을 받은 멋진 빌딩에 자리잡고 있었다. 계단과 유리와 꺾어진 공간 배치와 통로로 연결된 내부와 외부의 동선이 감탄을 자아낼 만했다. 건물 안에 정원과 하늘을 들인 구조도 멋져서 거기 놓인 긴 의자에 앉아 한참을 쉬어도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내가 이 전시에 마음이 끌린 것은 무엇보다도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이라는 전시 제목 때문이었다. 릴케의 시를 현대회화로 번역했다는 설명이 적혀 있었다. 

전시 작품들의 제목은 거의가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이었고, 두껍게 물감을 쌓아 올린 거칠고 황량한 회화작품에는 낙서처럼 저 문구를 휘갈겨 써 놓기도 하였다. 

붉거나 노랗거나 회색빛 가을의 분위기가 화폭에 가득 담긴 대작들에는 구리로 만든 플라타너스 잎사귀들이 낙엽처럼 붙어 있기도 했는데, 그 입체감과 거친 표면과 놀랄만 한 물감의 두께에서 쌓고 썩고 재생되는 자연의 거대한 시간이 느껴졌다. 

삶과 죽음을 응시하는 작가의 시선이 거기 오롯이 담겨 있는 듯했다. 황폐함과 덧없음이 표면에 가득하나 대지는 그렇게 죽고 살아나며 순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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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화폭은 거칠고 무겁다


안젤름 키퍼는 2차 세계대전으로 혼란스럽던 독일에서 태어났고, 전쟁으로 그의 집도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그가 태어나던 날 공습이 있었고 병원에 갔던 가족들은 운 좋게 목숨을 구하게 되었다. 

그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 부서진 건물의 잔해를 갖고 놀며 자랐다. 

그의 초기 사진작업에는 히틀러의 인사 자세를 취한 모델이 등장하는데, 끔찍한 과거를 수면 위로 드러내 진정으로 대면하려 했다는 평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회화작품에 나뭇가지, 지푸라기, 깨진 유리조각, 콘크리트, 납, 철조망 같은 재료를 사용한다. 그래서 거대한 화폭은 거칠고 무겁다. 그는 ‘질료는 발견해야 할 영혼을 숨기고 있다.’라고 어느 전시에서 작가의 말에 썼다.

황량하지만 아름다운 작품들이 벽면을 채운 전시장 한가운데에 흙으로 만든 벽돌을 엉성하게 쌓아올린 구조물이 놓여 있었다. 

이것 또한 작가의 작품이라고 하는데, 처음에는 눈길을 끌만한 무엇이 못 되었다. 엉성할뿐더러 채 완성되지 못한 것처럼 한쪽이 무너져 있는 벽돌 담장이었으니까. 전시장을 한참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야 그 앞에 가만히 멈춰 설 수 있었다. 


완벽하게 나를 가려줄 수 없는 벽


지금 집이 없는 사람... 나는 허물어진 혹은 쌓다 만, 혹은 다시 쌓고 있는 이 벽돌작품 앞에서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라는 릴케의 시구절을 다시 읽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후에도 오래 고독하게 살면서/ 잠자지 않고, 읽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완벽하게 나를 가려줄 수 없는 벽, 안전하게 나를 숨겨 보호해 줄 수 없는 집, 이렇게나 나약하게 허물어지는 공간. 인간은 대지 위에 그렇게 살다 갈 것이다. 그러나 죽음 위에 다시 생성되는 생명처럼 자연은 거대한 바퀴를 굴리고, 인간은 다시 흙을 이겨 벽돌을 만들고 그 벽돌을 하나씩 쌓아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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