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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 18일 (목)

[시선나누기-17] 가자미 선생

[시선나누기-17] 가자미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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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저온 보리한의원장


 

[편집자 주] 

본란에서는 공연 현장에서 느낀 바를 에세이 형태로 쓴 ‘시선나누기’ 연재를 싣습니다. 문저온 보리한의원장은 자신의 시집 ‘치병소요록’ (治病逍遙錄)을 연극으로 표현한 ‘생존신고요’, ‘모든 사람은 아프다’ 등의 공연에서 한의사가 자침하는 역할로 무대에 올랐습니다.


공연장 바닥에 선생은 누워 있다. 바닥이 찬데 웃통을 벗은 맨살이 바닥의 냉기에 상하지나 않을까 보는 사람은 걱정이 되는데 그는 아무렇지 않아 한다. 

객석을 향해 모로 누운 그의 몸에 조명이 떨어진다. 가까운 곳 바닥에는 작은 손전등이 켜진 채 놓여 있어서 그의 얼굴을 집중해서 비춘다. 눈이 부시지 않을까? 그러나 그는 무심히 앞을 보는 것처럼 그저 눈을 뜨고 있다. 

어깨가 눌린 채로 왼팔을 힘없이 늘어뜨려 얼굴 앞에 놓고 그는 숨을 쉬는 것 같기도, 쉬지 않는 것 같기도 한 자세로 누워 있다. 저 자리에서는 무엇이 보일까? 뺨을 바닥에 대고 그는 누워 있다. 내가 거기 다가가 머리를 바닥에 내려놓고 그와 나란히 눕지 않는 이상 나는 지금 그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오히려 눈이 부셔서 그는 아무것도 못 보고 있는 것일까? 

객석 끝자리에 관객처럼 앉아서 나는 공연의 시작을 기다린다. 나는 마치 객석에 앉은 관객처럼 무대 바닥의 그를 본다. 휑한 무대에 야윈 육체가 널브러지듯 놓여 있다. 꼭 아름답다고만은 할 수 없는 장면이다. 더군다나 그는 움직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객석에서 무대를 바라보지 않으면 어쩔 것인가. 고요한 정지 상태를 지켜보아야 하는 오 분 십 분이 지난다. 나는 출연자의 시선과 관객의 시선을 뒤섞어 그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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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어떤 날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까?


관객들이 들어선다. 팸플릿을 든 관객들이 출입문으로 들어와 무대 바닥을 딛고 지나 자리에 앉는다. 극장의 구조가 객석 계단이 안쪽에 있는 모양새여서 뒷자리로 가서 앉으려는 사람들도 무대를 걸어 지나가야 하는 구조다. 그 걸어 지나가는 자리에 선생은 누워 있다. 

들어오는 사람들은 들어서자마자 대면하는 무대의 배우 때문에 흠칫 놀란다. 어떤 이들은 눈을 떼지 않고 무대를 지켜보며 몇 걸음을 걷는다. 어떤 사람들은 못 본 척 자리를 찾아 빠르게 들어간다. 어떤 이들은 이런 상황이 자연스럽다는 듯 여유롭게 움직인다. 

그들은 이런 생각을 할까? ‘뭐야? 벌써 시작한 거야? 저 사람이 배우인가?’, ‘어색하네. 뭘 하려는 거지? 뭘 하고는 있는 건가?’, ‘저이가 배우인가 봐. 이런 게 연극이지.’

객석에 자리를 잡고 앉고, 무대의 불이 꺼지고, 정적이 찾아들고, 몸과 마음이 준비된 다음에, 무대에 조명과 함께 나타나는 배우. 이런 전형적인 예비도 없이 들어서자마자 맞닥뜨리는 어떤 날것을 선생은 보여주고 싶었을까? 그는 저기 누워서 들어서는 사람들을 보고 있을까? 그들의 표정이나 걸음걸이가 선생에게는 보일까? 


사람들은 무슨 말을 들었을까?


이제 내가 바라는 것은 관객 입장이 빨리 마무리되는 것이다. 같은 자세로 누워 있는 것도 몸이 뻣뻣해지는 일일 텐데, 눈에 손전등 불빛을 쬐고 찬 바닥에 누운 배우의 나이 든 몸이 점점 더 걱정된다.

출입구 쪽에서 스태프가 양해를 구한다는 말을 큰 소리로 전한다. “비가 와서 예약하신 분들 도착이 좀 늦어지는 것 같습니다. 죄송하지만 10분만 더 기다렸다가 공연을 시작해도 될까요?” 관객들은 착하기도 하지. 다들 낮은 소리로 그러자고 답을 해준다.

마침내 10분이 지나고, 서둘러 들어온 관객 몇이 무대 앞을 지나고, 불이 꺼진다. 선생의 몸을 비추던 조명과 얼굴을 환히 밝히던 손전등도 꺼진다. 선생은 단 한 번의 움직임도 대사도 없이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극은 이제 시작이지만, 극은 이미 거기 시작되어 있었다. 선생은 마치 아무렇지 않게 놓여 있는 물건처럼 자기 자신을 전시했다. 그러나 우리 주변의 사물들이 그러하듯이 선생은 선생의 말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혼잣말처럼, 객석을 향해. 

10분, 20분의 시간을 무대를 보며 앉아있던 사람들은 무슨 말을 들었을까? 낯설고 어색한 시공간을 이렇게 무심히 던져주는 것도 연극이 하는 일 중의 하나일 것 같았다. 


아프다는 건 이런 거구나!


전체 일정이 모두 끝난 뒤 나는 선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그 장면에 대해서 여쭈었다. 

“언젠가 길을 가는데 말이야, 여기 근처 천변을 걸었던 날이야. 밤늦게 숙소로 가던 길이었는데, 그때가 자정이 넘었지, 아마. 그날따라 공연 준비가 안 풀려서 무지 힘든 날이었어. 연출이랑 스태프들... 우리끼리 연습하면서 이리저리 부딪히는 게 많거든요. 그게 다 잘해 보려고 그러는 거지만. 횟집 앞을 지나는데, 영업을 마치고 불이 다 꺼졌어. 거기 수족관이 있잖아. 파란색 형광 불빛이 환히 비치는 수족관인데, 그 안에 가자미 한 마리가 엎드려 있는 거야. 가자민지 넙친지 아무튼. 딱 한 마리가 있었어. 이놈이 죽었나? 하고 보니까 아가미를 아주 조금 움직여. 음, 살았구나. 내가 저를 가만히 보고 있으니까 저도 나를 가만히 보는 거야. 둘이 눈이 마주쳤으니 뗄 수가 없잖아.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내가 일부러 이쪽으로 한 걸음을 움직였어. 그랬더니 걔도 눈동자를 탁, 움직이는 거야. 아, 너 살아 있구나! 죽기 직전이 아니고, 살아 있구나! 아프다는 건 이런 거구나!”

 

선생은 풀리지 않던 무언가를 그렇게 풀었나 보다. ‘모든 사람은 아프다’의 ‘아프다’를 그렇게 몸에 받아들였나 보다. 상심하고 아픈 날의 선생을 스스로 그렇게 해석했나 보다. 그 장면을 꼭 넣어야겠느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선생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배우는 그 장면을 ‘가자미 퍼포먼스’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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