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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 20일 (토)

[시선나누기-4] 사람의 없음, 유골단지의 있음

[시선나누기-4] 사람의 없음, 유골단지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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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저온 보리한의원장


[편집자 주] 

본란에서는 공연 현장에서 느낀 바를 에세이 형태로 쓴 ‘시선나누기’ 연재를 싣습니다. 

저자인 문저온 보리한의원장은 최근 자신의 시집 ‘치병소요록’(治病逍遙錄)을 연극으로 표현한 ‘생존신고요’,  ‘모든 사람은 아프다’ 등의 공연에서 한의사가 자침하는 역할로 무대에 올랐습니다.


◇정적

1. 말이 부서질 때 비로소 우리는 정적을 듣는다. 

2. 오직 문학만이 저 소리 없는 정적을, 소리 내는 말을 통해 소리 없이 모습을 드러내는 저 ‘노래할 수 있는 잔여’를 들을 수 있다.

1과 2는 같은 말이다. 

같은 말인가?

3. 문학은 읽을 수 있는 것을 그것의 출처인 읽을 수 없는 것에게 되돌려준다.

1, 2, 3은 연결된 문장이다.

한병철은 파울 첼란을 인용해 이렇게 쓰고, 근원과 고통에 대해서 논한다. 

4. 고통은 정적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외부가 사유 안으로 침투하는 균열이다. ‘노래할 수 있는 잔여’는 고통을 이해하게 해주는 운(韻)이다.

1, 2, 3, 4를 차례로 읽고 나면 다시 1로 돌아가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읽을 수 없는 것. 정적. 그리고 우리는 정적을 듣는다.

내가 정적이라는 말에 머문 것은 마임이라는 형태의 연극 때문이다. 

말의 부서짐. 말 없음. 말을 부서뜨리고 말하기. 

혹은 말이 생성되기 이전의 상태에서 말하기. 

우리는 마임을 보면서, 듣는다. 


◇유골단지

선생은 유골단지를 트렁크에서 꺼냈다. 그 조용한 백자를 눈앞에서 마치 쓰다듬듯이 본 건 처음이었는데, 손을 뻗어 만져보게 되지는 않았다. 그것은 유골단지였다. 꺼려진다기보다 함부로 해서는 안 될 것 같은 조심스러움. 텅 빈 것이었지만 그것은 무대용 소품이 아니라 진짜 유골단지였다.

유골단지라는 말은 어쩌면 애매한 것이다. 단지에는 유골이 들어있지 않았지만, 그것은 유골을 담아두는 용도로만 쓰이는 물건이다. 선생은 트렁크에서 빈 유골단지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시멘트 포대를 뒤집어 시멘트 가루를 쏟고, 개어놓은 시멘트 반죽에 하듯이 흙손으로 가루를 평평히 고르고, 선생은 그 위에 새하얀 유골단지를 반듯이 앉혔다. 단지 앞에 향을 꽂아 세우고 향을 피우면, 무대에 객석에 향이 연기를 타고 조용히 퍼져나갈 것이다.  

유골단지에는 유골이 없어도, 죽음은 이렇게 구체적이다.

‘인부는 땅을 고르고, 시멘트 가루를 붓고, 물을 붓고, 그 위에 빗돌을 놓았어. 수평을 맞추고, 두드리고, 수평을 맞추고, 두드리고, 다시 돌을 들어 물을 붓고, 수평을 맞추고, 자를 푹 꽂아 높이를 맞추고, 이만하면 되었지요? 물었어. 빗돌 아래는 시멘트, 시멘트 아래는 붉은 흙. 붉은 흙 아래는 유골함.’ 

선생은 내가 쓴 문장들을 무대에 이렇게 옮겨다 놓았다. 

저 단지 위로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람, 겨울은 아직 멀리 있는데......’ 패티김의 노래가 울려 퍼질 것이다. 

 

문저온2.jpg


◇불 아니면 물 

무대에서는 어떠한 화기도 취급할 수 없음. 공연장 내 화기 반입금지. 

주최측에서 공연 중 일부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연락을 해왔다.   

촛불을 켤 수 없으며, 향을 피울 수 없다……. 네 개의 막 중에서 두 개의 주요 장면이 사라질 판이다.

나는 촛불을 사이에 두고 선생과 마주 앉는다. 문진이 낭송된다. 침을 시술하고, 뜸을 뜬다. 촛불을 켤 수 없으므로……. 바짝 깎은 머리에 상체를 드러낸 선생의 꿇어앉은 육신을 타고 오르는 흰 연기의 숙연한 장면을 만들 수 없다.

공연을 본 뒤 등신불이 연상된다고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쑥뜸 냄새가 객석까지 퍼져서 앞서 피운 향냄새와 더불어 관람자들에게 ‘마치 치유되는 듯한’ 느낌을 남겼던 장면이다.

화가 나고 애가 탔을 선생은 결국 이렇게 뱉으셨다. 

“불 아니면 물이지.”

연륜이 묻은 주름진 웃음이 함께했다.

선생은 촛불을 놓던 자리에 맑고 커다란 물그릇을 놓고, 조명에 반사되는 물의 어룽짐을 무대에 커다랗게 옮겨놓았다. 

발가락 사이사이에 향불을 꽂고 두 손에 향불을 들고 암흑 속에서 온몸으로 춤을 추던 대신, 붉은 알전구를 입에 물거나 들고 퍼포먼스를 했다. 

하기 전에, 선생은 유골단지 안에 불 켜진 알전구 두 개를 미리 넣어두었는데, 무대의 불이 꺼지고 막이 오르자 유골단지는 마치 그 안에 생명을 담은 듯이 은은한 빛을 냈다.

선생은 단지에서 두 개의 빛을 꺼내면서, 꺼내서 온몸으로 향불 춤을 추면서 얼마나 기뻤을까.

“고통은 정적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외부가 사유 안으로 침투하는 균열이다.”

생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외부로서의 정적으로 우리를 감싸고, 말이 부서지는 자리, 마임이스트의 몸부림에서 우리는 한 갈래의 정적을 보고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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