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말 중국 우한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중국 뿐 아니라 전 세계가 비상이다.
보건당국에서도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현재까지 열다섯 번째 확진 환자가 확인되었다. 확산과 피해를 막기 위해 범의료계가 관심을 가지고 힘을 합해야 할 시점이다.
보건 방역체계에서 한의계에 주어진 역할이 거의 전무하다 싶은 상황에 한의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해봤으면 한다.
논의의 출발점으로 중의계 소식을 참고하고자 한다.
중국의 경우 감염병 치료 경험이 있는 중의학 전문가들을 현지에 파견해 중환자실 입원 환자 포함 60여 명의 환자를 진찰하여 증상·설진·맥진 정보를 수집했다.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전문가 논의를 거쳐 중의진료지침 초안을 작성했고 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폐렴 진료방안 제3판’을 통해 배포되었다.
그 후 파견된 중의학 전문가들이 100건 이상의 케이스를 관찰하며 중의진료지침을 개정했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폐렴 진료방안 제4판’에 포함시켜 배포했다.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내용은 중의학 전문가들이 수집한 정보이다.
기존에 알려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폐렴의 증상으로는 발열, 마른기침, 무력감 등이었다.
반면 중의학 전문가들은 권태(倦怠), 핍력(乏力), 소화부진 등의 증상을 관찰했고 심할 경우 오심(惡心), 흉민(胸悶), 완비(脘痞), 변당(便溏) 등의 증상도 보인다고 했다.
그리고 특징적으로 후니태(厚膩苔;두텁고 끈적끈적한 설태)를 관찰했다고 한다.
또한 흐리고 비가 와서 습하고 추운 우한시의 기후를 참고하여 일련의 정보를 바탕으로 초안에서는 습독(濕毒)이 병인인 역병(疫病)이라 설명했다.
물론 추후에 수정을 거쳐 한습(寒濕)을 병인으로 보긴 했지만 병기를 비(脾), 폐(肺)로 연결 짓는 것은 유사했다.
당연히 수집 정보를 바탕으로 추론된 중의진료지침이 무조건적인 정답일 수는 없으며 추후에 시행착오를 거쳐 수정될 여지도 있다.
다만 여기서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같은 환자를 놓고서도 전문가의 관점에 따라 수집하는 정보의 질이나 형태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역학 전문가, 현대의학 전문가들이 주목하지 않은 정보를 바탕으로 새로이 제시한 솔루션을 국가 차원에서 수용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우한시에 파견된 통샤오린(仝小林) 원사(院士)는 인터뷰를 통해 파견된 중의학 전문가들의 임무는 세 가지라고 했다.
첫째는 중의 진료 지침을 최적화하는 것이고 둘째는 실제 의료 현장을 방문해 중의학적 치료관점에서 문제점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임무는 진료지침 초안을 만들고 추적 관찰을 통해 수정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수행됐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임무는 중의학과 현대의학의 결합을 통해 위급한 환자를 구제하는 것이라 한다.
새로운 질병 앞에서 어느 분야가 효과적인가를 따지는 것은 불필요한 논쟁일 뿐, 각자의 영역에서 환자의 생명을 구제하는 데 최선을 다하는 것이 의료인의 임무라는 것이다.
이상의 내용은 한의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존의 보건 방역체계에 깊이 개입해 본 적 없는 한의계로서 당장 중국의 사례를 따라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첫 발을 내딛지 못하면 평생 나아가갈 수 없으며 어떤 형태로든 도전을 시작 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시작은 확진환자에 대한 한의학 전문가의 진찰이 되어야 할 것이다.
부디 한의계가 첫 발을 내딛어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