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5년 ‘醫林’ 제2권 제9호를 보니
1955년 9월 간행된 『醫林』 제2권 제9호에 ‘전진하는 한의학을 그 누가 막으리?’라는 제목의 社說이 나온다. 글의 옆에 ‘溫故知新’이라는 큰 글씨가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글의 성격을 알 수 있다. 이 글은 한의사제도가 창립된 후 수년이 지난 시점에서 커져가는 한의학의 미래에 대한 자신감과 희망이 엿보인다. 아래에 내용의 일부를 적어 본다.
“해방 전은 고사하고라도, 해방 10년인 오늘날의 근황을 보기로 하자. 의학의 궁극적 목적이 인간 보호에 있다하거늘 그 방법은 여하간에 한의학이 우세를 점하고 있다. 그 증거는 과거 국회에서 의료법이 통과할 무렵에 보았다. 또 이에 연달아 한방단과대학이 생겼고 수처의 강습소, 그에 속한 간행물도 나오고 있다. 또 그런가 하면 고등대학 졸업자, 공무원, 교사, 교수 제위들도 한의학에 많은 관심을 갖고 熱工하고 있다. 더욱이 서의학자들 중에서도 한의학 진수를 파악하려는 경향이 날로 漸加하고 있는가 하면, 벌써 李根英 박사와 朴盛洙 醫師는 한의학의 진수를 破得하고 그에 대한 능한 논문을 한의 雜誌에 쓰고 있다. 이에 수반하여 우리 학계에서는 신진 한의사가 속출하여 옛 문헌을 현대화로 해명하고 있으며 여러 가지 연구한 신학설도 連出되고 있다. 또 한편에서는 학술강연회 등을 개최하여 한의학에 대한 일반 인식을 한층 더 새롭게 하고 있다.…(중략)…여러 가지 조건으로 피곤하여 잠시 휴양하여 점차 완전 회복되어가는 실정도 알리고 싶다. 古語에 객지에서 어떤 병이 향토의 흙냄새만 맡아도 곧 낫는다는 말이 있다하거늘 우리 조상이 체험 산출한 오천년의 긴 역사를 가진 한의학은 알아보겠다는 추호의 念도 보이지 않고 외래의 서의학에만 급급몰도하는 그 심정은 무슨 까닭일까 한다. 우리의 이웃 나라인 대만·일본, 먼 거리인 독일·프랑스 등 각국에서는 서의학 대가들이 한의학 연구에 몰두하는 인사가 날로 漸加함이 또한 무슨 까닭일까 한다.”
『醫林』 제2권 제9호에는 이어서 裵元植의 ‘한방의학개론(2)’, 朴尙僖의 ‘내가 본 한방의학-비방은 비방대로 사장해 둘 것인가’, 金在誠의 ‘中風의 病理學的 考察(1)’, 鄭鉉坤의 ‘鍼灸의 醫學的 原理’, 李元式의 ‘한방의학의 科學的 考察’, 金在煥의 ‘전염병과 한의학. 防疫醫學界로 進向하면서’, 許松菴의 ‘高麗醫藥史料(3). 인삼과 만다라’, 石蕉의 ‘姜氏 辯駁에 寄함’, 沈相龍의 ‘鍼灸醫學의 基礎(5). 특히 經絡과 經穴에 대하여’, 朴季祚의 ‘한의약의 제반문제를 제의한다’, 松山樵夫의 ‘한방의학과 陰陽의 槪要’, 편집부에서 적은 ‘醫學的으로 알아둘 常識’, 李龜夏의 ‘한의학의 현재와 장래(2)’, 咸珍求의 ‘東西醫學對論’, 朴在奭의 ‘權評받은 醫林誌’, 杏初의 ‘한의학의 現代解論’, 柳大馨의 ‘진단학 연구의 신방향’, 裵元植의 ‘內科(雜病)新講義’, 朴海山의 ‘臨床 婦人科學新講(8)’, 鄭興謨의 ‘한의 實用藥物學新講’, 廉泰煥의 ‘성경으로 본 한방의학’ 등의 논문이 이어진다.
또한 6쪽에는 ‘한의학계 국내 소식’란에서 당시 한의계의 핫이슈들을 소개하고 있다. ‘한방, 양방의학의 상호적 반박문 거래’에서 당시 여름철 뇌염에 대해서 한의계와 양의계간의 신문을 통해 이루어진 논쟁을 적고 있다. ‘신진 한의학자 한의학 발전의견 교환 간담회’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시내 모처에서 이루어진 신진 한의학자들의 한의학 발전을 위한 간담회를 소개하고 있다. ‘대전한의사회 총회를 개최’에서는 1955년 7월21일 오후 1시에 있었던 대전시한의사회 제2회 정기총회를 스케치하고 있다. 이 정기총회에서 회장 조충희, 부회장 오재순·이병행, 업무이사에 서재식이 선출되었다.
<- 1955년에 나온 ‘의림’ 제2권 제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