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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07일 (목)

이수진 교수

이수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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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표준화의 과제



한의학이 현대보건의료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된 이후로 한의학은 끊임없는 부침을 겪어왔고 그 과정 속에서 시대에 따라 다양한 개혁의 슬로건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슬로건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을 꼽아보자면 바로 산업화, 과학화, 현대화, 국제화, 그리고 표준화가 아닐까 한다. 과학화나 현대화는 내부적으로 이견이 많았던 슬로건이면서 과학화에 거부감을 갖는 이들이 주창했던 것이 현대화였고, 산업화는 시대와 학문의 현대화에 뒤따라 오게 되는 응용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국제화나 표준화는 요 근래 특히 많은 관심이 집중되는 핫이슈인데 국제화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겠으나, 표준화는 한의계의 여러 슬로건 중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지지를 얻고 있는 개혁의 슬로건이 아닌가 한다. 지난 6월말에 열린 ICTM 공청회에서도 표준화에 대한 한의계 및 관련분야 종사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읽을 수 있었다.



표준화라는 슬로건이 광범위한 지지를 얻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 한의계에서만 나타나는 경향은 아니다. 중국, 일본, 인도 등 전통의학이 보건의료의 큰 축을 담당하는 아시아의 여러 국가 뿐 아니라 전통의학 및 소위 보완대체의학에 관심을 가진 국가들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고, 그 중에서도 특히 한국과 유사한 의학전통을 가지고 있는 중국이나 일본이 표준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가시적인 성과를 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며 그들의 성과가 많은 측면에서 우리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표준화에 대한 관심은 근래 다양한 국제적인 표준을 제정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이미 경혈의 명칭 및 위치에 대한 표준안, 전통의학 용어에 대한 표준안 등을 제정한 바 있으며 국제질병표준사인분류의 11번째 개정판에 전통의학의 진단명을 포함시키기 위한 프로젝트(ICTM; 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Traditional Medicine)가 현재 활발히 진행 중이다. 세계표준기구(ISO)에서도 TC249라는 전문위원회를 만들어 전통의학의 다양한 분야에 대한 표준을 준비하고 있으며 TC215에서도 전통의학에 관한 의료정보표준을 다루고 있다. 이러한 국제적인 표준 제정이 우리나라가 추구하는 바와 방향성이 일치하느냐 하지 않느냐를 떠나서 국제적으로 전통의학의 표준화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괄목한 만한 사실이다.



그러나 표준이라는 것이 합의에 의해 도출되는 삶의 편의를 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표준화 작업과 같이 오랜 기간에 걸친 깊이 있는 연구와 경험에 의해 도출된 것이 아니라 단기간 동안 이루어지는 관계자들의 합의에 의한 표준제정이 과연 적합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더구나 이 합의라는 것이 현재 국제표준 제정의 주체가 되는 한중일 동아시아 3국 중에서도 어느 나라의 정치력이나 외교력이 우세한가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그러다보니 표준제정 과정 속에서 처음 계획과는 달라지는 부분도 있고 우리나라가 이미 국내에 KCD나 교육제도 등과 같은 우수한 전통의학 표준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표준제정 과정에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부분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왜 표준화 작업을 계속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이에 대한 답은 간단히 하자면 ‘그래도 필요하기 때문이다’라고 할 수 있다. 표준이 있어야 현대사회의 다양한 요구에 맞추어 한의학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표준을 바탕으로 공동의 결과 도출이 가능하고 그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검증과 비판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까지 한의학의 표준화는 초기단계이다. 따라서 현재까지 이러한 발전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고 국제표준 제정의 과정 속에서 헤매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표준화의 흐름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어떻게 표준화할 것인가’와 함께 ‘표준화 이후에 어떻게 가야할 것인가’를 함께 생각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국제표준의 선점에서는 한국이 크게 앞서지 못했을지라도 이 표준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그를 통해 어떤 발전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역시 매우 중요한 부분이고 이를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질 수도 있다. 따라서 여기에서 표준화의 과정 및 표준화 이후의 준비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몇 가지 제시하고자 한다.



첫번째로 무엇보다도 제대로 된 표준을 만들어야 하며 그를 위한 적절한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어느 한 분야의 전통의학만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전통의학을 아우를 수 있는 국제표준의 제정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현재 ISO/TC249의 공식명칭이 중의학을 의미하는 TCM인데, 이러한 상황에서는 한국, 일본, 몽골 등 중국 이외의 국가들 및 그들의 의학을 사용하는 국가들은 국제표준을 제정하는 데 적절한 역할을 수행할 수가 없다. 특히 용어를 선점하는 것이 가장 우선한다고 생각하는 중국이 용어표준을 만드는데 역점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에서 중의학이라는 명칭 하에서 한국이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은 극히 제한적이다. 이는 개인적인 표준 전문가로서의 역량이나 회의에 참석해 논리적이고 적절한 발언을 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인데, 내년 3차 총회에서 TC 명칭 문제를 해결하기로 하였으므로 그 이전에 범한의계의 적절한 대응과 준비가 필요하다고 본다.



두번째로 합의에 의한 표준을 넘어선 경험적 표준, 논리적 표준이 필요하다. 한의학은 사실 여태까지 고전과 권위에 의한 ‘묻지마 규율’이었던 면이 많은데 어느 정도 존중해야 할 필요가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로부터 자유로워질 필요도 있다. 현재 KCD-6를 사용하면서 생기는 문제점이 있어 이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여 개정하게 된다면 이는 경험적이자 논리적인 표준이 된다. 국제표준이 우리나라의 의견과는 다르게 제정된다고 하더라도 한의계는 이러한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을 것이고 여기에는 KCD의 사용 등을 통해 축적된 그간의 경험이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이자 어떻게 보자면 가장 중요한 과제는 표준인력의 양성이다. 표준에 대해 이해하고, 표준의 제정절차도 잘 알고 있고, 또 제정하고자 하는 표준에 대한 전문가이기도 한 제대로 된 표준전문가가 필요하다. 이 표준이 미래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도 미리 생각하고 그 변화를 준비할 수 있는 전문가라면 더욱 좋겠다. 이번 ICTM 공청회를 통해서 젊은 한의사나 학생들의 표준에 대한 관심을 볼 수 있었는데 이것이 단순히 요새 표준화가 이슈이기 때문에 관심을 갖는 것인지, 표준에 대한 깊이있는 관심인지가 궁금하다. 표준에 대한 깊이있는 고민을 하는 한의사와 학생들의 동참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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