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7년 창간된 서울시한의사회의 회보‘한의사회보’의 창간호
며칠 전 강원도한의사회 명예회장이신 임일규 회장님께서 사과상자 한 박스 분량의 한의학 근현대 역사 관련 자료를 보내오셨다. 대부분의 자료가 필자가 전혀 접해보지 못한 생소한 자료였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임일규 회장님의 한의학 역사 정리에 대한 열정이 느껴졌다. 그의 열정은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자료들을 열람하다가 『漢醫師會報』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1967년 10월1일자로 서울시한의사회에서 간행한 『漢醫師會報』 창간호였다. 아마도 서울시한의사회 기관지의 창간호인듯 했다. 본 창간호 첫면에는 당시 서울시한의사회 회장이었던 崔奎晩의 ‘創刊에 즈음하여’라는 제목의 글이 실려 있다.
“우리 會員도 月報를 갖고 싶어한 지 이미 오래였으나 기간 諸般事情이 이를 許諾하지 않았고 한편 中央會에서 每月 學會報를 發刊해 왔기 때문에 서울시회로서는 구태여 無理를 할 必要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中央會에서 發刊되는 學會報가 中斷되고 보니 一千 서울시회원은 갑자기 耳目이 어두워졌고 다만 市中에서 出刊되는 수개의 한약주간지에 依存하는 外에는 한의계의 動向을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한방전문지가 出刊되는 것도 아니며 몇몇 週刊紙가 한방계 記事를 揭載해준다 하니 어찌 會報에 비길 수 있겠습니까. 서울시회의 살림살이가 그리 넉넉한 편은 못되고 금년도 豫算에 餘裕가 있는 것도 아니나 月報 刊行의 必要性을 다수회원으로부터 示達받은 市會執行陣은 會員諸位의 뜻을 尊重하여 이제 萬難을 艾除하고 月報刊行을 斷行하게 된 것입니다. 月報란 性格上 公知, 弘報 등을 주로 하고 있음으로 會員諸位의 耳目의 役割에 充實하도록 努力하겠으며 따라서 會員間의 親睦과 나아가서 醫權守護에도 도움이 되리라 믿는 바 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月報刊行事業이 本軌道에 오르고 內容이 充實해질 수 있는 길은 오직 會員諸位의 끊임없는 聲援과 鞭撻에 있다고 봄으로 會員諸位께서는 이 點을 特別 留念해주시기 부탁드리며 以上 月報刊行의 經緯와 創刊人事를 代하는 바입니다.”
당시 崔奎晩 서울시한의사회 회장은 본 學報의 간행의 의의를 위와 같이 정리하고 있다. 崔奎晩의 창간사 이외에도 당시 대한한의사회 명예회장 朴性洙, 서울특별시 시장 金玄玉의 축사가 뒤를 잇는다. 게다가 첫면 중심에 명예회장 金永勳 선생의 揮毫가 게재되어 있다. 그 내용은 “至精至微蒙先聖之敎誨, 其得其失由自己之惰勤”이다.
2면, 3면은 각종 기사들로 채워져 있다. ‘의료업자에게 영업세 부과는 부당’, ‘한약이라 칭하는 신약 출현’ 등 제목의 글들은 당시 한의계의 당면 문제를 드러내는 시사적 기사들이다. 權英植의 ‘禿頭生髮例’는 저자 자신이 창안한 대머리 치료법을 소개한 것이다. 權英植은 이 글에서 剛子油와 呂宋果油를 머리에 15여 차례 도말하여 치료하여 효과를 보았다고 한다. 4면에는 한의사 朴性洙가 회장으로 있는 조선무약합자회사에서 만들어낸 통쾌, 흥양자춘원, 호생단, 세일영신환, 사향소합원, 우황포룡환, 우황청심환, 안심원, 모다나, 알타나 등 약물 선전이 적응증 설명과 함께 게재되어 있다.
4면에는 1967년 당시 서울시한의사회 임원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고문 박성수·이종해·김명회. 회장 최규만. 부회장 박승구·황종안. 평의원 김장범·설태훈·이종태·남완수·이영한·이진숙·이회무·이용성·김의호. 종로구 분회장 진강, 중구 분회장 강원영. 동대문구 분회장 박승환. 성동구 분회장 이영찬, 성동구 부회장 임일규. 서대문구 분회장 유장환. 마포구 분회장 오응탁. 용산구 분회장 김형전. 영등포구 분회장 장주형.
<-1967년 서울시한의사회에서 창간한 ‘한의사회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