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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9월 01일 (화)

신미숙 교수

신미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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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후에도 지속가능한 한의사질(?)을 위하여 上



장기하를 좋아한다. ‘장기수’라는 단어 혹은 장준하 선생님과 묘하게 중첩되는 이름이 주는 독특한 이미지 때문일까? 별 뜻 없어 보이는 가사를 읊조리는 그의 표정은 자못 심각하고 장엄해 보인다. 장기하의 공연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공연실황 동영상은 자주 챙겨보는 편인데, 언젠가 화려한 프리젠테이션에 <장기하와 얼굴들>이라는 그룹의 탄생비화를 소개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그 중 한 슬라이드의 제목이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을 위하여>였다. 그 제목은 ‘지속가능한 성장’ 혹은 ‘10년을 먹여살릴 성장동력’과도 같은 최근 많은 대기업과 국가정책 보고서에 자주 등장하는 관용구를 영리하게 빌려온 것으로 보인다. 장기하도 2010년의 장기하에서 그치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2020년, 2030년. 장기하는 어떤 모습으로 생존해 있을까? 그 때도 <싸구려 커피>처럼 신선한 노래를 부를 줄 아는 가수 장기하로 기억될 수 있을까?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이라는 문구를 듣는 순간 나는 갑자기 내가 업으로 삼고 있는 ‘한의사질(!)의 지속가능성 여부’가 궁금해졌다. 100년 후 한의사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아니, 한의사가 그 때까지 존재할 수 있을까? 그 전에 2010년 현재, 한국의 한의사는 뭐하는 사람들이며, 어떤 가치가 있으며, 일반 국민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는 직군인가에 대한 사태 파악과 그에 따른 반성이 선행되어야겠지. 오늘을 모르고 어찌 내일을 감히 이야기하리요. 또한 오늘을 모르고 어찌 10년, 100년 후를 준비하리요?!



때마침 부산대 한의전의 교육실을 맡고 계신 신상우 교수님(개인적으로 천페이지라는 별명을 갖고 계신다. 일단 어떤 자료를 요청하든 거의 모든 자료를 가지고 있고 또 이런 자료를 요청하면 기본적으로 A4용지로 거의 1000페이지에 달하는 정도의 자료를 이메일퀵으로 날려주신다. 임상-기초 전반에 걸친 거의 모든 자료의 보유자·정리자·전달자의 역할을 하고 계시는 한의계에 없어서는 안 될 걸어다니는 사전같은 분이다)께서 내게 “신 교수님, 미래의 한의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금 학생들에게 어떤 교육을 해야 가장 올바른 미래의 한의사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림을 한 번 그려봐주실 수 있겠습니까?” 라는 화두를 툭 던지셨다. 미래의 한의사들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많은 한의사들이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 “한의학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의사는 사라질지도 모른다. ” 왜 우리는 이런 불안하고 우울한 미래를 예견하게 된 것일까?



한의사로서 날마다 마주치는 한의학의 또는 한의사의 현실과 평가가 그리 낙관적이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겠고 한의사가 타 의료직능들처럼 배타적 독점권을 가지고 있는 의료행위가 거의 없는 사실을 직시할 때, 동네 아낙들을 포함한 일반인들도 쉽게 할 수 있는 치료라면 내가 왜 힘들게 면허증까지 따야 했던가 하면서 절망감을 느끼는 한의사들이 많은 것 같다.



진료실에서 환자분들을 진찰하다보면 “제가 침 좀 놓습니다” 라는 어르신들을 종종 뵙게 된다. 수지침 강좌를 들었다고 침통을 꺼내보이는 분들도 계신다. “제가 뜸으로 이런이런 병을 혼자 고쳤습지요…” 라는 아줌마들도 많다. 뜸사랑에 몇 년 다니셨다며 수료증을 학위기처럼 코팅해서 다니시는 분들도 계신다. 양산에도 오행쑥뜸방이 여러군데 생겼다. 학교 뒤편에 자리한 오봉산에 오르다보면 뜸방을 홍보하는 플래카드가 제법 보인다. 교회나 성당 앞, 각종 행사를 알리는 알림판에 <침술봉사>가 자주 보인다. 한약은 한의원보다도 늘 요릿집에서 흥행 중이다. 대추, 인삼, 당귀 몇 조각 넣었는데 VJ들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보약이 따로 없다는 멘트를 잊지 않는다. 어느 방송국을 가릴 것 없이 한약재를 넣은 요리를 소개할 때면 의례껏 “전 보약 안 먹어요, 보약이 왜 필요해요. 이런 게 보약이지…” 라고 말하는 아줌마나 아저씨들을 꼭 화면에 담는다.



우연히 내가 한의사라는 것을 알게 되면 늘 사람들의 반응은 손목을 내밀고 맥 좀 봐달라고 하거나, 내가 이것저것을 먹고 있는데 혈압약이랑 같이 먹어도 되느냐 마느냐를 물어오기 일쑤이고 한약을 좀 싸게 지어줄 수 있느냐고 흥정을 붙여오는 사람들도 많다. 또 근처 한의원에 다니는데 미처 못 물어보았다면서 시시콜콜 질문들은 또 왜 그리 많으신지…. 또 중간중간에 한의사들에 대한 험담도 종종 하신다.



부산대 한의전에서 근무를 시작할 무렵, 의학전문대학원의 교수님들 몇 분과 공개적으로 회의 형식의 모임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 때 회의 의장을 맡으셨던 교수님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던 게 생각이 난다. “제가 태어나서 한의사들을 이렇게 많이 본 건 처음입니다. 물론 환자들로는 몇 분, 한의사들이 오셨었지요. 한의사들은 우리랑 다르게 생겼나 했는데, 우리랑 비슷하게 사람같이 생기셨네요…” 하하하 ‘사람같이’라고 하셨다. 한의사들을 ‘사람같이’도 생각하지 않았다는 말씀이셨을까? 터진 입이라고 면전에 두고 저렇게 말씀하셔도 되는 것일까? 분노과 치욕이 얼굴로 후끈 달아올랐지만 그 자리에 있는 나를 포함한 많은 한의사 교수님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백발이 성성하신 고귀하고 무척 사람같으셨던 그 잘나신 의전원 교수님 앞에서 그 냉담한 분위기를 더 썰렁하게 만들 용기를 우리는 가지고 있지 못했었던 것 같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한 내과전문의 선생님께서 내게 이런 말씀을 건네신 적이 있었다. “신 선생, 한의사들 요즘 당뇨도 고친다고 난리치던데, 제발 당뇨는 좀 놔 두라고 해라. 이미 약 나와 있고 환자들 관리 잘 되고 있고 도대체 왜 그런다니? 나는 한의사들이 마사지나 좀 잘 했으면 좋겠어. 마사지, 얼마나 좋은 치료야. 어? 그런거나 잘 가져와서 민간에서 맘대로 못 하게 치료적 마사지라도 잘 해봐. 한의사들이 환자들 잘 만지잖아. 안 그런가?”



언젠가부터 한약이라는 단어는 농약 혹은 독약이라는 단어와 동의어가 되어버렸다. 그 자리에는 천지양, 한삼인, 한뿌리 등의 우후죽순 홍삼 제품들이 면역력 강화의 일등공신으로 전 국민의 필수품으로 자리잡아 버렸고 마늘즙으로 기본터를 잡으시고 요즘은 산수유로 히트를 하고 있는 건강기능식품 회사도 한몫 단단히 벌고들 계신다. 이런 홍삼이나 산수유에 대한 거의 맹신에 가까운 두터운 신뢰는 이제는 그냥 질투만 하고 있기에는 상당히 높은 차원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게다가 각종 온라인 쇼핑몰을 장악한 유명한 산 이름을 붙인 인터넷 한약방의 갖가지 한약차들은 한의원 한약과는 차원이 다른 저렴한 가격과 왠지 좋아보이는 포장과 품질 광고로 일반인들의 주문에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고 한다.



현실이 위와 같으니 100년 후가 아니라 당장 10년 후의 생존을 걱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의사들이 바라보고 있는 한의학과 일반 대중들에게 보여지고 있는 한의학. 이 두 개의 시선은 일치됨 없이 상당히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한의학은 한의원 안에서 한의사에 손에 의해서만 행해져야 하는 것이 아닐 지도 모른다.



그것은 우리들의 철저한 착각이자 고집이었을 지도 모르고 국민들이 절대로 원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문화와 의료의 애매모호한 경계 속에서 한의사들은 그야말로 최근까지도 애매모호한 존재감에 머물렀기에 민간에서 이미 비전문가들에 의해 상당히 행해지고 있는 전통민중의술의 일부인 침·뜸·한약에 대해서 “왜 한의사들은 저 치료들이 자기들만의 것이라고 떼만 쓰고 있을까?” 하는 이기적인 모습으로 국민들에게는 그렇게 비추어졌을 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과연 침의 전문가인가? 뜸의 전문가인가? 부항 치료의 전문가인가? 한약의 전문가인가? 추나의 전문가인가? 또는 어떤 질환의 전문가인가? 일반인들이 문화 혹은 자가치료적으로 접근하는 것과는 당연히 차원이 다르겠지만 한의사들의 치료에는 어떤 차별성·전문성·과학성이 있는 것일까? 바로 이 경지를 그리고 차이를 우리 스스로 그리고 국민들에게 보여주지 못한다면 ‘보여지는 한의학의 이미지’는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최근 헌재 판결에 맞서서 한의사협회에서 내어놓은 많은 문건의 제목들이 “침뜸, 한의학은 대체보완의학 아니다”, “침뜸은 대한민국에서 보험급여를 받는 정통의료이다” 등이 대부분이었는데 세계지도를 펼쳐보면 한국과 중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에서 침뜸은 대체보완의학 중 중국의학의 대표적 치료의 일부로 소개되고 있다. 물론 의료는 제도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개념과 정의를 외면할 수도 없다. 그리고 그 용어를 사용하는 사회적 정의(definition) 또한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면에서 한의사협회가 주장하는 <한의학은 대체보완의학이 아니다> 라는 주장은 위험할 수도 있다는 발언을 나는 감히 하고자 한다.



국내에서 각종 비전문가들에 의해서 이래저래 표류하고 있는 각종 대체보완의학을 의학적인 견지로 끌어올려 격조를 갖춰 진료에 활발하게 응용할 수 있는 직군이 바로 한의사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한의학을 과거의 그것에만 국한시키면 시킬수록 우리의 범주는 좁아진다. 고유한의학과 퓨전한의학의 공존을 통해 과거한의학이 미래한의학으로 나아갈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 한의사 후배들의 밝아야 하는 미래를 <침·뜸·한약만을 다루는 한의원>이라는 갇힌 담장 안에 가두어두지 말자.



100년 후에도 한의학이 한의사가 지속가능하려면 한의학·한의사에 대한 새로운 미래지향적인 정의가 필요하다. 바로 그 정의를 내려야할 때가 온 것이다. 바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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