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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08일 (금)

채진호 의무이사

채진호 의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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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의사다



지금 대한민국은 진짜 가수들의 노래에 감동받느라 바쁘다. 아는 사람만 아는 실력파 중견가수 임재범은 11년 전 노래로 출연도 하지 않은 가요순위 프로그램에서 1위 후보에 올랐다. 그가 최근 출연했던 무대의 무편집 동영상은 한 포털사이트에서만 조회수 1천만 건을 돌파했다. 얼굴 없는 가수로 불리던 정엽은 최근, 데뷔 이후 그 어느 때보다 공중파에서 얼굴을 드러내고 노래할 기회를 많이 가지면서 8년만에 그야말로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격렬한 율동과 현란한 퍼포먼스로 중무장한 아이돌 대신에, 혼신을 다해 한곡 부르고 부축받으며 내려오는 중견 가수들이 무대에 서기 시작했다. 아이돌 가수를 향해 환호성을 질러대는 여고생 팬클럽 대신에, 가수의 노래에 감동한 나머지 두 손을 얼굴 앞에 모으고 눈물을 흘리는 중년 아주머니가 카메라에 잡힌다.



이 모두가 ‘나는 가수다’ 라는 예능 프로그램의 한 코너가 불러일으킨 변화이다. 놀라운 것은 이것이 일개 예능 프로그램의 성공으로 그치지 않고, 현 대중가요계의 판도를 바꾸어 놓았다는데 있다. 즉, 대형 연예기획사가 막대한 자본을 들여 스타가수를 만들어내고 가요계의 주류로 군림하던 구조에서, 그동안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지만 실력 있는 가수들을 대중이 직접 발굴하고 대중이 직접 주류로 대접하는 구조로까지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걸그룹의 노래가 아니면 공중파 프로그램에 한번 출연하기도 쉽지 않았던 몇 달 전에 비하면 실로 엄청난 변화다. 그리고, 변화는 그냥 일어나지 않는다.



한의사에게 ‘나는 가수다’와 같은 무대가 있다면



진정성 있는 음악에 대한 대중들의 갈증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왔고, 이 노래 잘 하는 가수들은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데뷔한 이래 한참동안이나 열심히 활동해 왔다. 중요한 것은 어떤 무대인가 하는 것이다. 원래 노래 잘하던 이 가수들이 대형기획사와 자본을 끼지 못해 설 자리를 못 찾고 있을 때, ‘나는 가수다’는 이들에게 노래와 음악으로 사람을 감동시키겠다는 진정성만 있으면 마음껏 노래할 수 있는 무대를 열어준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3~4분의 짧은 공연을 위해 병원신세를 질만큼 연습하고 노력했으며, 혼신을 다해 관객을 감동시킨 것이고, 대중들은 이들의 노력에 뜨겁게 환호해준 것이다.



실력있지만 알려지지 못한 가수와 진정한 음악에 목말라 있는 대중을 만나게 해주는 무대. ‘나는 가수다’를 보면서 한의사에게 바로 저런 무대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한의사’라고 떳떳이 외치면서 양의계와 불법의료 눈치 안보고, 한의원 경영에 쫓길 필요 없이, 오직 환자를 낫게 해주고 싶다는 진정성만으로 마음껏 진료할 수 있는 그런 무대 말이다. 여전히 대한민국 인기 직종이지만, 많은 한의사 선·후배들이 자존감에 상처를 입고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것이 바로 한의사에게는 저런 무대가 없기 때문은 아닐까?



우리가 직접 그 같은 무대를 만들어야 한다



그동안 한의계는 제도권에 진입한 이래 국민건강 증진에 주도적으로 기여할 기회를 한번도 갖지 못했고, 한의사들은 수천년간 축적되어온 어마어마한 양의 지식과 임상 노하우를 체계화하기는 커녕, 제대로 활용조차 해보지도 못한 채 개원 경쟁 속에서 생존에 급급한 것이 현실이다. 급성전염병의 유행이나 고령화와 같은 굵직굵직한 보건의료계의 현안들을 앞에 두고 작은 역할도 수행해보지 못한 의학과 의료인을 국민들이 인정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다.



신종플루가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었을 때, 모든 국민들이 예방을 위해 또, 백신을 처방받기 위해 가벼운 감기증상만 있어도 병의원으로 몰렸을 때, 개원 한의사들은 이때를 한의원 경영의 큰 고비로 기억한다. 65세 이상 인구의 만성질환 유병률 1위를 차지하는 관절염에 대해 실로 수많은 치료법을 보유하고 있는 한의학이지만 유병률 3위의 고혈압에 밀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만성질환 단골의사제도에 참여조차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수한 인재들이 방대한 임상경험자료와 훌륭한 실력을 갖추고도 정부와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것은 바로 제대로 된 무대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개원가에 발을 담그는 순간 살아남기 위해 돈되는 치료를 따라 다닐 수밖에 없으니 전국의 훌륭한 치료기술이 한데로 모여 쌓이지 못하고, 당장 한약재는 위험하고 한약은 비싸다고 하니 제대로 약을 써볼 기회를 갖지도 못한다. 얼마나 큰 감동을 줄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어도 마음껏 노래할 수 있는 무대가 없어 외면당해왔던 재야의 실력파 가수들처럼, 국민건강 증진에 기여하고 싶어도 마음껏 진료할 수 있는 기회가, ‘무대’가 없기에 오늘도 이 우수한 인재들이 당장 생존에 도움될 기술을 배우러 방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누가 무대를 세워주지 않는다면 우리가 직접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자본력과 정치력 모두에서 밀리는 우리 한의계가 실력을 발휘하기 가장 좋은 무대는 바로 정부 주도의 공공보건사업이다. 올해 정부가 저출산 대책 마련을 위해 쓰겠다고 한 예산이 7조2000억원에 육박하며, 보건복지부가 저출산과 보육 지원을 위해 세운 예산이 2조5000억원이다. 이 중 난임부부가 인공수정과 체외수정 시술을 받았을 때 지원해주도록 배정해놓은 예산이 301억원이다. 그러나, 온 나라가 저출산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떠들고 있는 이 와중에 난임부부가 임신을 위해 한의원을 방문했을 때 지원받을 수 있는 예산이나, 한의약을 활용한 난임개선사업에 배정된 예산은 전무하다. 한의약이 얼마나 해낼 수 있는지에 대한 공감대가 아직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저 스스로 무대를 만들고 보여줘야 한다. 경기도한의사회에서는 저출산특별위원회를 결성하고, 화성시와 김포시에서 보건소와 함께 난임부부를 대상으로 한의약 난임 치료사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보건소에서 대상자를 모아 기본적인 검사 및 교육을 진행하고 지역 분회에서 참여의사를 밝힌 한의원을 연계해주면, 난임부부들이 직접 한의원을 방문하여 표준화된 프로토콜에 따라 한약 복용과 침구 치료 등을 병행하는 방식이다. 보건소의 기존 보건사업 예산과 지자체 예산 등을 모아 치료에 발생하는 비용을 부담하므로 환자부담은 전혀 없고, 최종 사업결과는 통계처리해 한의약의 유효성과 경제성을 널리 알리는데 활용된다. 보건소는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서 보다 나은 성과를 낼 수 있게 되고, 한의계는 비로소 제대로 실력을 발휘해 볼 무대를 만나게 된 것이다.



이 사업은 이미 대구시한의사회에서도 두 차례 진행하여, ‘09년에는 체외수정에 실패한 환자 18명 중 5명이 임신에 성공하였고, ‘10년에는 32명 중 5명이 자연임신에 성공하는 등 뚜렷하게 임신성공률을 높혀 사업 범위를 확장하고 있는 중이다. 또한, 인천시에서는 2억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20~45세 여성 100명을 대상으로 한의약 난임치료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진정성은 가장 빨리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아직 대중을 감동시키고 눈물을 이끌어내기에는 부족하다. 어쩌면 예전에 하던 대로 재야의 고수로 남아있는 편이 속 편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전국에 용하다는 한의원이 수백개가 생기는 것보다, 정부와 국민이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보건의료 현안을 해결하는데 작은 역할이라도 해내는 것이 필수의료로서 주류 무대로 진출하는 보다 빠른 길이다. 지금 진행 중인 난임사업이 낸 작은 성과가 다른 지자체에 알려지면 또 더 큰 무대에서 더 많은 대중을 모아 실력을 발휘해 볼 기회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아직도 많은 보건소에서 지역주민을 위해 어떤 공공보건사업을 진행할지 방향을 잡는데 어려움을 느끼며, 한의약이 국민건강 증진을 위해 얼마나 큰 역할을 해낼 수 있는 지 잘 모르고 있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예산과 경영 걱정 없이 지역 한의사회가 활약할 수 있는 무대가 아직도 무궁무진하다는 말과 같다.



아이돌 음악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을 때, 아무도 퍼포먼스 하나 없는 중견가수가 실력만으로 무대에 설 수 있으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진정성은 가장 빨리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변화를 이끌어낸다. 난임으로 인해, 만성질환으로 인해, 현대사회가 불러일으킨 새로운 많은 질환과 현대의학이 한계에 부딪친 많은 질병으로 인해 여전히 국민들은 시름하고 있다. 이들을 돕는데 역할을 하겠다는 한의계의 진정성이 전해진다면 보다 더 넓은 무대가 펼쳐질 것이고, 보다 많은 대중이 환호할 것이다. 지역 한의사회와 한의사 선·후배님들의 뜨거운 참여로 ‘나는 한의사다’라고 당당하게 외치며 마음껏 진료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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