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음속초16.6℃
  • 맑음14.7℃
  • 맑음철원13.6℃
  • 맑음동두천15.4℃
  • 맑음파주15.1℃
  • 맑음대관령9.6℃
  • 맑음춘천15.5℃
  • 맑음백령도12.8℃
  • 맑음북강릉16.2℃
  • 맑음강릉18.0℃
  • 맑음동해17.7℃
  • 맑음서울14.1℃
  • 맑음인천14.9℃
  • 맑음원주14.2℃
  • 맑음울릉도15.8℃
  • 맑음수원15.6℃
  • 맑음영월14.2℃
  • 맑음충주14.8℃
  • 맑음서산15.7℃
  • 맑음울진19.3℃
  • 맑음청주15.6℃
  • 맑음대전15.9℃
  • 맑음추풍령14.2℃
  • 맑음안동16.3℃
  • 맑음상주16.5℃
  • 맑음포항17.9℃
  • 맑음군산14.9℃
  • 맑음대구16.7℃
  • 맑음전주15.2℃
  • 맑음울산16.9℃
  • 맑음창원17.9℃
  • 맑음광주15.9℃
  • 맑음부산18.0℃
  • 맑음통영18.3℃
  • 맑음목포15.6℃
  • 맑음여수16.5℃
  • 맑음흑산도15.4℃
  • 맑음완도18.2℃
  • 맑음고창15.2℃
  • 맑음순천15.0℃
  • 맑음홍성(예)16.8℃
  • 맑음15.1℃
  • 구름많음제주17.1℃
  • 구름많음고산14.0℃
  • 맑음성산16.8℃
  • 구름많음서귀포18.6℃
  • 구름많음진주17.5℃
  • 맑음강화15.2℃
  • 맑음양평15.4℃
  • 맑음이천16.1℃
  • 맑음인제13.4℃
  • 맑음홍천14.9℃
  • 맑음태백12.0℃
  • 맑음정선군13.3℃
  • 맑음제천13.7℃
  • 맑음보은14.5℃
  • 맑음천안15.5℃
  • 맑음보령16.2℃
  • 맑음부여15.2℃
  • 맑음금산15.3℃
  • 맑음15.0℃
  • 맑음부안15.7℃
  • 맑음임실15.0℃
  • 맑음정읍15.5℃
  • 맑음남원15.3℃
  • 맑음장수13.3℃
  • 맑음고창군16.2℃
  • 맑음영광군16.0℃
  • 맑음김해시17.7℃
  • 맑음순창군15.4℃
  • 맑음북창원18.2℃
  • 맑음양산시19.2℃
  • 맑음보성군17.5℃
  • 맑음강진군16.6℃
  • 맑음장흥16.3℃
  • 맑음해남16.7℃
  • 맑음고흥17.8℃
  • 맑음의령군17.9℃
  • 맑음함양군16.8℃
  • 맑음광양시16.8℃
  • 맑음진도군15.9℃
  • 맑음봉화14.5℃
  • 맑음영주14.3℃
  • 맑음문경15.4℃
  • 맑음청송군15.8℃
  • 맑음영덕16.7℃
  • 맑음의성16.8℃
  • 맑음구미17.4℃
  • 맑음영천16.8℃
  • 맑음경주시17.7℃
  • 맑음거창16.1℃
  • 맑음합천18.2℃
  • 맑음밀양18.2℃
  • 맑음산청17.1℃
  • 맑음거제17.5℃
  • 맑음남해18.3℃
  • 맑음18.3℃
기상청 제공

2026년 05월 08일 (금)

서관석 이사장

서관석 이사장

B0022011040836902-2.jpg

B0022011040836902-1.jpg

노 배우의 熱演, 그것은 곧 한의학의 역사요, 미래의 길



많은 사람들이 한의사의 길을 통해 주위의 아픈 사람들을 돌봐준다. 그것은 누가 뭐래도 의사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여기에 ‘최선’을 넘어 오직 한의학만을 위해 ‘사력’을 다한 이가 있다. 최고의 찬사를 들어도 결코 부끄러울 것 없는 이, 그가 바로 서관석 원장(동제한의원)이다.



대한한의사협회장(1997~1998)직을 수행하며 한방정책관실 존치 등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그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것은 역시 한의사회관 건립이었다. 회관건립추진위원장을 맡아 한의사협회의 가양동 시대를 연 ‘한의사회관’의 완공을 이끌어냈다. 물론 초기 회관건립 부지였던 마포구 상수동에서 강서구 가양동으로 이전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논란도 있었지만, 궁극적으로는 숱한 어려움을 이겨내고 한의사의 전당을 완성한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



“가양동 한의사회관 건립은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다.” 하지만 얼마 후면 다시한번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맞는다. 오는 5월1일 파주시 소재 의성 허준 묘소에서 ‘허준중건비’ 건립 제막식이 있다. 허준중건비 건립의 중심에 서 있는 서관석 이사장(의성허준기념사업회·2007~현재).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사업이었어. 비문에 틀린 글씨, 잘못된 내용을 그대로 놔둔다는 것은 한의사들 전체의 수치가 아닐 수 없어. 그렇기 때문에 이 일은 누가 해도 꼭 했어야만 했던 일이야.”



현재 허준 묘소 왼편에는 가락김씨종친회에서 건립한 허준중건비가 서있다. 그러나 내용이 잘못됐거나 틀린 글씨들이 곳곳에 있어 허준기념사업회가 적극 나서 새로운 중건비를 만들게 됐고, 그 마침표가 드디어 오는 5월1일 제막식으로 방점을 찍게 된 것이다.



새 허준중건비는 거북이 모양의 하대와 용의 문양을 한 상대를 합쳐 3m에 이르는 높이와 80cm 폭으로 건립된다. 전면은 ‘贈 輔國崇祿大夫 領議政/醫聖 陽平君 許浚 重建碑’라는 글이 한문으로 새겨지며, 후면에는 한글과 한문 혼용으로 허준의 출생 및 사망연도, 내의원 등 공직생활, 동의보감 등 한의서 저술 활동, 동의보감의 의의 등이 기록된다.



이같은 일이 얼핏보면 쉬울 것 같지만 그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는 서관석 이사장. “중건비문을 최종 작성하기까지는 워낙 이론이 많아 2, 3년간의 조정 작업을 거쳐 완성할 수 있었어. 여기에 더해 현존 중건비를 철거하기 위해 가락김씨종친회 임원들을 한명한명 찾아 다니며 설득과 이해를 구하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어.”



산 넘어 산이라는 말이 있다. 중건비문의 내용을 힘들게 완성하고, 가락김씨종친회를 설득하여 중건비를 새로 건립할 수 있는 토대는 만들었으나 새 중건비를 세우는 일은 허준 묘소 부지의 소유권자인 국방부와 문화재의 이전 철거권을 갖고 있는 경기도청 문화재관리위원회 관계자들을 이해시키는 것이 관건이었다.



“아마 몇 달은 수원(경기도청 소재지)에서 살았지 싶어. 문화재관리위원들을 만나고 또 만났어. 어떤 분은 오전에도 찾아 뵙고, 그날 저녁에 또 찾아 뵙고…. 하여간 허락할 때까지 끈질기게 따라 다녔어. 그 분들이 워낙 학자적인 신념이 있어서인지 기존의 것을 철거하고, 새로 만들어 옮겨야 하는 것에 대해 쉽게 용인하지 않았어. 그 때마다 정말 몇 번이나 당장 때려치우고 싶었어.”



그러나 그는 한의사회관 완공이 그렇듯 허준중건비 건립을 또 하나의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왠지모를 사명감 같은 것을 느꼈어. 그러나 내가 아무리 사명감이 있다해도 나 혼자는 결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지. 많은 분들이 도와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 국방부, 경기도청 관계자분들, 가락김씨종친회 임원분들, 그리고 건립 후원비를 흔쾌히 기탁하여 주신 많은 분들의 도움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해.”



하지만 주변의 흔쾌한 도움도 아마 서 이사장의 열정과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중건비 건립을 위한 이사회만도 8회에 걸쳐 개최됐고, 중건비건립소위원회 11회, 간담회 숫자는 셀 수 없을 정도다.

서 이사장은 지난 한의사회관 건립 당시에도 1억5000만원의 기금을 쾌척했듯이 이번에도 중건비 건립 기금으로 2000만원을 먼저 내놓았다. 그 스스로 남보다 앞서 솔선하고 희생하는 모습을 보였다.



“요즘처럼 어려운 때 남의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는 것이 쉽지 않어. 그럼에도 나 개인이 아닌 우리 한의학을 위해 일을 한다고들 생각해주신 덕에 많은 분들이 도움을 줘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됐어.”





허준중건비 건립을 위해 100여명의 회원들이 십시일반으로 도움을 줘 1억여원에 달하는 성금을 모금했다. 100만원 이상 납부자의 명단은 공적비를 만들어 그 이름을 별도로 새길 방침이다. 그럼에도 성금은 앞으로도 계속 모금한다는 계획이다. 중건비 건립비용도 문제지만 허준추모탑 건립, 허준묘역 성역화, 허준묘소의 국가 문화재 지정 승격, 한의학 역사 탐방 코스 마련 등 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 이사장은 5월1일 제막식 이후 열리는 허준기념사업회 총회에서 이사장직을 후임에게 넘겨줄 계획이다.



“요즘 중건비 문제로 이것저것 신경쓰다 보니 혈압이 200이상 쑥쑥 올라가고, 건강도 많이 좋지 않아. 이제는 훌륭한 분이 바통을 잘 이어받아 더욱더 많은 일들을 하길 바래. 좋아하는 골프 횟수도 줄이고, 한의원 운영도 슬슬 정리하고, 시골에 내려가서 살 생각이야.”



한의사라는 배역을 맡아 ‘대한민국 한의학’을 위해 자신의 모든 열정을 불살렀던 이. 그가 이제 무대의 중심에서 서서히 내려서고 있다. 혼을 다해 열연했던 무대의 커튼이 닫히려 한다. 그러나 노 배우의 열연은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오랫동안 자리할 것이다. 노 배우의 몸짓 하나 하나가 곧 한의학의 역사요, 미래를 여는 길이었기 때문에.
 

관련기사

가장 많이 본 뉴스

더보기
  • 오늘 인기기사
  • 주간 인기기사

최신뉴스

더보기

뉴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