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그 아부지 어디 갔노
에피소드가 있는 한의원 (2)
어느덧 20년이 훌쩍 흘러갔습니다.
동안의 애송이 한의사. 선배님이 개설하신 남도 기찻길 옆 한의원. 장날이면 웅성이고, 평일이면 아스팔트 위로 경운기가 뿌리고 간 흙더미가 정겨운 그곳…. 처음으로 부모님 곁을 떠나 혼자 자취하며 외로움을 즐기던 총각시절이었습니다.
“오늘 장침 한번 써봐야겠구먼”
당시 시골선 보기 드문 알루미늄 방화 유리문이 삐거덕 거리면서 머리가 시원하고, 얼굴은 대낮임에도 곡주로 불쾌해진 중년의 아저씨가 들어옵니다.
천성이 내 일에는 게으르지만 고용인의 신분일 때에는 유달리 열심히 하는지라, 대기실에서 얼굴 마주쳐 상냥하게 “안녕하세요”하고 인사. 곧 이어지는 아저씨의 언사에 애송이는 깜짝 놀랍니다. “너그 아부지 어디 갔노. 퍼뜩 오라 캐라.” 지금 들으면 기분 좋을 법도 한.
요각통(허리에서 하지까지 방산되는 동통, 그리고 견인감, 종아리에서 발가락까지의 감각 이상), 임상적인 소견으로 요즘 흔히들 말하는 디스크였습니다. 소가지 좁은 애송이는 아저씨의 반토막 말씨에 삐질 대로 삐져 얼굴에 싫은 내색을 잔뜩 비친 채 “아하! 오늘 장침 한번 써봐야겠구먼.” 옆에서 도와주는 선임 선생님이 없는 상태에서는 불안한 마음에 잘 들지 못했던 장침(환도침이라고도 부릅니다. 요통의 주요 치료혈인 환도혈을 제대로 자침하기 위해서는 장침이 필요하기에 이렇게도 부릅니다).
“김 간호사! 장침.” 그 분도 나중에 저에게 한 언사가 쑥스러웠던지 그날 이후론 뵙지 못했습니다. 한방에 다 나았으리라 어설프게 추정해 봅니다.
매일 밤이면 혼자 자취하는지라 놀 곳도 없고 친구도 없는 지역. 그저 만화방에서 시간 때우기로 긴긴 겨울밤 바람을 책 속에 쑤셔 넣고 살았습니다. 만화가게 아지매는 단골이라고 컵라면도 서비스로 끓여주고, 그때 이현세님의 ‘남벌’이 한창 인기일 때인 어느날 중학생 신환이 보약 지으러 왔답니다. 엄마하고 함께 한의원에 들어왔는데 마침 대기실에서 한의원 잔무를 처리하던 중에 마주쳤습니다.
저는 물론 환자의 보호자는 놀란 눈으로 서로를 응시했습니다. 만화방 사장님입니다. 아지매 놀라 묻더군요 “니 학교 안가고 여서 뭐하노.” 그날 저도 서비스로 파스 한 봉지 드렸습니다. 그 후로 만화방을 출입하면 냄비라면이 따라 오더군요.
후배들의 진취적인 학구열에 고개 숙여져
요즘, 거울을 보면 아버지가 거기에 있습니다. 한의원이 이제 우리 사회에 제법 친숙해져가고 있습니다. 6년제 한의대 교육이 뿌리내리고 젊은 한의사가 주류가 되고 있는 요즈음입니다. 제가 처음 의업에 발을 디딜 때만 해도 일반인들은 동안의 한의사에 익숙하지가 못했던 게 사실이고요. 하지만 요즈음 새로이 발을 딛는 후배들을 보면 진취적인 학구열에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전통적인 한의학적 관을 가지고서 새로운 도구들을 접목해가는 그들을 볼 때 언젠가는 우리나라의 젊은 한의학도가 세계의학의 주류가 될 날이 오리라 기대해 봅니다.
적극적으로 환자들의 고통을 덜어주자
한의원에 오시는 환자들에게서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한의원마다 침 놓는 방식이 다르다는 말입니다. 이로 인해 한의학이 과학적이지 못하다, 주관적이다 등의 오해를 불러 오고 있습니다. 허나 개개의 한의사가 여러 침법 중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방식을 선호할 뿐입니다.
흔히 접할 수 있는 것이 아시혈을 위주로 한 침법 즉 근위취혈법으로, 이는 동통 부위의 압통점을 혈위로 선정하는 것으로 임상적으로 많은 한의사들이 선호하는 방법입니다.
이와 대별되는 것이 원위취혈법이라 하여 동통과 관련된 경락을 선정하고 주로 손·발 주위의 경혈을 치료혈로 선정하는 것입니다. 두 가지 방법 모두 임상적으로 유의하며 대부분의 한의사들은 두 가지 방법 모두 익숙하며 병증에 따라 치료의 방법을 결정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참으로 다이나믹한 시절이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공격적인 치료를 꺼리게 되니 한편으론 씁쓸합니다. 보다 적극적으로 환자들의 고통을 들어주리라 마음 먹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