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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09일 (토)

정우열의 노자이야기 27

정우열의 노자이야기 27

視之不見, 名曰夷. 聽之不聞, 名曰希.

搏之不得, 名曰微. 此三者, 不可致詰. 故混而爲一.



‘시지(視之)’, ‘청지(聽之)’, ‘박지(搏之)’의 ‘지(之)’는 도(道)를 가리킨다. 도는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으므로 이것을 ‘이(夷)’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 ‘이(夷)’는 역자에 따라 그 해석이 구구하다. 『열자(列子)』에서는 형기(形氣) 따위가 아직 나타나지 않은 최초의 것을 ‘이(易)’라 하였는데 이 ‘이(易)’가 ‘이(夷)’와 같다 하였고, 『노자익(老子翼)』에서는 ‘이(夷)’를 너무 평이해서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어 말하기가 막막한 상태를 가리킨다고 하였다.



또 도는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으니 이를 ‘희(希)’라 하고,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으니 이를 ‘미(微)’라 하였다. 여기서 ‘희(希)’는 매우 작거나 ‘없음(無)’에 가까운 상태를 일컬으며, ‘미(微)’는 개념적으로 포착이 안 되는 미세하고 오묘한 신비의 경지를 나타낸다고 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가운데 어느 하나로도 도의 본질을 분명하게 밝혀낼 수는 없다. 이것이 차삼자불가치힐(此三者不可致詰)이다. ‘불가치힐(不可致詰)’은 의식과 지성으로 따지거나 분별하기 불가능한 차원을 말한다.



김형효는 이를 불교적 개념을 도입해 ‘사량(思量)할 수 없다’고 해석했고, 무위당은 ‘힐(詰)’을 ‘다스릴 힐’로 보아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라 했다. 따라서 도는 이 세 가지를 한꺼번에 다 포함한 것 또는 그 이상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혼이위일(混而爲一)’이다.



도의 근본적 차원은 일상적인 감각으로 감지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모양도 없고 소리도 없고 형체도 없는 것. 결국 도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는 것이다.



노자나 다른 도가들뿐만 아니라 세계 많은 종교에서는 궁극 실재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것이 ‘무엇이다’하는 궁극적 표현보다는 ‘무엇일 수 없다’는 부정적인 표현을 더 많이 썼다.



예를 들면 힌두교에서 궁극 실재인 브라만(Brahman)을 ‘이것일수도 저것일수도 없는 것(neti-neti)’이 라고 표현했다든지,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가 “신에 대하여 알 수 있는 유일한 사실은 우리가 신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것뿐”이라고 한 것 따위이다. 이렇게 궁극적 실재를 부정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부정의 길(Via negative)’이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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