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음속초19.5℃
  • 맑음23.6℃
  • 맑음철원21.4℃
  • 맑음동두천21.6℃
  • 맑음파주20.4℃
  • 맑음대관령18.4℃
  • 맑음춘천23.0℃
  • 맑음백령도18.1℃
  • 맑음북강릉20.0℃
  • 맑음강릉21.3℃
  • 맑음동해19.4℃
  • 맑음서울20.4℃
  • 맑음인천19.8℃
  • 맑음원주22.6℃
  • 맑음울릉도18.5℃
  • 맑음수원21.0℃
  • 맑음영월22.8℃
  • 맑음충주23.0℃
  • 맑음서산20.8℃
  • 맑음울진17.7℃
  • 맑음청주23.8℃
  • 맑음대전23.9℃
  • 맑음추풍령21.9℃
  • 맑음안동23.6℃
  • 맑음상주24.3℃
  • 맑음포항19.9℃
  • 맑음군산19.2℃
  • 맑음대구24.7℃
  • 맑음전주23.2℃
  • 맑음울산20.4℃
  • 맑음창원21.6℃
  • 맑음광주24.1℃
  • 맑음부산19.5℃
  • 맑음통영20.7℃
  • 맑음목포20.4℃
  • 맑음여수19.7℃
  • 맑음흑산도19.4℃
  • 맑음완도22.2℃
  • 맑음고창21.1℃
  • 맑음순천21.4℃
  • 맑음홍성(예)21.3℃
  • 맑음22.8℃
  • 맑음제주19.7℃
  • 맑음고산18.3℃
  • 맑음성산18.8℃
  • 맑음서귀포20.7℃
  • 맑음진주22.1℃
  • 맑음강화18.5℃
  • 맑음양평22.8℃
  • 맑음이천23.4℃
  • 맑음인제22.2℃
  • 맑음홍천23.0℃
  • 맑음태백20.3℃
  • 맑음정선군22.8℃
  • 맑음제천22.1℃
  • 맑음보은22.9℃
  • 맑음천안22.2℃
  • 맑음보령19.4℃
  • 맑음부여22.2℃
  • 맑음금산22.6℃
  • 맑음23.5℃
  • 맑음부안20.4℃
  • 맑음임실22.5℃
  • 맑음정읍23.7℃
  • 맑음남원23.5℃
  • 맑음장수21.3℃
  • 맑음고창군21.3℃
  • 맑음영광군20.7℃
  • 맑음김해시21.8℃
  • 맑음순창군23.3℃
  • 맑음북창원22.8℃
  • 맑음양산시22.5℃
  • 맑음보성군21.8℃
  • 맑음강진군22.0℃
  • 맑음장흥21.4℃
  • 맑음해남21.3℃
  • 맑음고흥21.2℃
  • 맑음의령군24.1℃
  • 맑음함양군24.4℃
  • 맑음광양시22.4℃
  • 맑음진도군20.0℃
  • 맑음봉화22.0℃
  • 맑음영주22.5℃
  • 맑음문경23.5℃
  • 맑음청송군23.0℃
  • 맑음영덕18.8℃
  • 맑음의성23.6℃
  • 맑음구미25.2℃
  • 맑음영천23.3℃
  • 맑음경주시22.1℃
  • 맑음거창24.1℃
  • 맑음합천24.2℃
  • 맑음밀양24.4℃
  • 맑음산청24.4℃
  • 맑음거제19.3℃
  • 맑음남해20.2℃
  • 맑음21.0℃
기상청 제공

2026년 05월 09일 (토)

김남일의 儒醫列傳 116

김남일의 儒醫列傳 116

B0112008121745193-1.jpg

博覽强記의 醫書硏究者



李肯翊(173 6~1806)의 『練藜室記述』에는 한명의 학자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공이 젊었을 때 매양 남에게 책을 빌려 와서 성균관에 왕래하면서 날마다 한 장씩 찢어서 소매 속에 넣고 오되 만일 잊어버린 곳이 있으면 곧 꺼내 보고 다 외면 곧 내버리니 한 질을 외고 나면 한 질이 다 없어졌다.



신숙주가 임금에게서 하사받은 『古文選』을 갖고 있었는데 사랑해서 손에서 놓지 않았는데, 공이 간절히 빌려달라고 청하여 빌려 주었다. 그런 지 한 달이 넘어서 그의 집에 가보니 그 책이 쪽마다 찢겨서 벽에 발려 있고 더러워져서 글씨를 분간하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그 연유를 물었더니 답하기를, ‘내가 누워서 외노라고 그렇게 되었다오’ 하였다.”



여기에 나오는 주인공 인물은 金守溫이라는 인물이다. 金守溫은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서 아버지는 영의정이었던 金訓이었다. 세종 때 문과에 급제한 후 특명으로 집현전학사가 되었고, 훈련주부, 승문원교리, 병조정랑 등을 역임하였다. 특히 諸子百家, 六經에 해박하여 세조의 총애를 받았다.



金守溫은 평소에 가지고 있는 好學을 의학에 발휘하여 『醫方類聚』의 편찬에도 참여하였다. 그가 醫書의 편찬에 참여하게 된 데에는 당시 의학부흥책에 힘입어 의학연구를 투철하게 한 결과로서 의학에 조예가 깊은 인물로 평가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 이름 있었던 成三問, 申叔舟, 李石亨 등은 최고의 학자들이었는데, 金守溫은 이들과 함께 학문적으로 활발하게 교유하였다.
 

관련기사

가장 많이 본 뉴스

더보기

최신뉴스

더보기

뉴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