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의 일이다. 머리를 양 갈래로 예쁘게 묶은 3세 여아가 엄마를 따라 진료실에 들어왔다. 대개 이 나이의 아이들은 낯선 환경을 접하면 호기심을 가지고 여기저기 기웃거리기 마련인데, 아이는 눈을 마주치지도 않고 무표정으로 의자에 얌전히 앉아있기만 했다. 아동의 어머니는 아이가 말을 잘 못해서 한의원에 왔다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보다 심각한 다른 무언가가 있어 보였다.
상담 중 아이의 어머니는 딸이 말을 잘 못하기 때문에 남들 보기에 창피하고, 자기가 왜 이런 벌을 받아야 하느냐며 속상해 했다. 아뿔싸! 그래서 나는 그 아이가 wanted baby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물어봤다. 대답은 역시나 아니었다. 종교인으로서의 양심 때문에 낙태를 하지 못했을 뿐 수많은 갈등을 했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어린 딸에게 정신적인 학대를 하는 일상이었다. 아이를 미워하며 악담을 퍼붓다가, 다음 순간 불쌍하다는 생각에 자책하며 울기를 반복한다고 했다. 엄마의 들쭉날쭉한 감정기복은 아이에게 毒이 되었다.
아이는 엄마의 눈치만 살피거나 엄마가 시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자발적으로 해보려는 게 없었다. 말도 아빠를 부를 때를 제외하고는 엄마가 하는 말을 메아리처럼 반복할 뿐 자발어가 나오지 않았다. 매를 들고 때리지 않았을 뿐이지 거의 학대수준에 가까운 양육(진단명이 반응성 애착장애였음)이었다. 내가 진맥을 하려고 하자 그 어머니는 “인사해야지!”하며 아이를 다그쳤는데, 그 순간 아이는 가면을 쓴 듯한 인형의 모습으로 내게 인사를 했다.
흔히 한약 복용 이후에 아이가 말을 잘하게 되면 어두웠던 가정 분위기가 다시 밝아지고 여유가 생긴다. 그러나 이 사례는 부모의 태도가 바뀌지 않으면 아이 언어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을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가족의 삶이 평온을 되찾기 어려웠다.
또 정신적으로 안정되지 않는 부모들 상당수가 자녀의 치료를 진득하게 지속하지 못하는 경향을 보이므로 아이의 치료를 위해서라도 부모에게 단호히 정신과 상담을 권했다. 그 뒤로 아동의 어머니는 항우울제를 복용하며 상담치료를 병행했고, 그 덕분인지 아이의 언어는 매달 늘어 1년도 안되어 거의 평균 수준에 도달했다.
권위만 내세우는 부모유형
“이렇게 하지 말라고 엄마(아빠)가 말했지!”, “부모한테 감히 말대꾸를 해?”, “너 저리 가!”. 한마디로 엄격한 규율과 질서만 격려하고, 자유를 억압하는 태도를 취하는 부모가 있다. 진료실에서 혹은 침구치료실에서 아주 간혹은 아이를 때리고 욕지거리를 하는 부모를 본다.
이런 상황에 놓인 아이들은 어렸을 때는 부모의 완력이 두려워 할 수 없이 복종을 하지만, 좀 더 자라서는 오히려 냉담하거나 심하게 부모에게 대항하기도 하고, 마땅히 권위를 인정해야할 다른 어른에 대해서까지 무례한 행동을 하며 혹은 뿌리 깊은 열등감을 갖고 살아가게 된다.
애정만 넘쳐나는 부모유형
침치료가 통증을 수반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적응을 잘한다. 그런데 옆에서 울고 서 있는 부모가 있다. 이렇게 되면 아이는 부모의 우는 얼굴을 보고 침치료를 거부하거나 심지어 나를 발로 차기도 한다.
부모 중에 “당신이 뭔데 우리 애 기(氣)를 죽여욧!”, “아이구! 내 새끼”, 아드~을!”하며 콧소리를 반쯤 섞어서 부르는 게 일상사인 부모가 있다. 이런 부모는 아이에게 끌려 다니며 분별력 없는 처신을 하기 쉽다. 3~5세 아이들이야 자기 맘대로 하지 못할 때 당연히 소리를 지르거나 머리를 박거나 남을 꼬집고 무는 등의 행동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때 애정만 넘쳐나는 부모는 살을 기꺼이 꼬집혀 주며 아이가 원하는 것을 사줘서 달랜다. 아이의 행동은 점점 제멋대로다. 그런데도 부모는 혹시나 자녀가 싫어할까봐 감히(?) 타이르질 못한다. 이렇게 자란 아이는 결국 충동조절을 못하고, 책임감과 독립심이 부족해지기 쉽다.
무관심한 부모유형
아이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지, 알림장은 잘 써오는지 도대체 관심이 없는 부모가 있다. 부모 자신이 일중독이나 게임중독이 되어 아이가 하는 말에 건성으로 대답을 하며, 자녀 양육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또 자녀가 불평을 하거나 징징거리면 왜 그런지 원인을 살펴보기는커녕 시끄러우니까 돈을 줘서 달래고, 아이스크림 사주면서 그저 잠잠해지기만 기대한다.
자녀가 부모에게 다가가면 귀찮아하며 심지어 신경질을 부린다. 누가 애를 데려다가 길러준 후 성인이 된 후에 부모에게 돌려주기를 원하는 듯하다. 이렇게 방치되어 자란 아이는 관심이나 격려받을 기회가 거의 없어 위축되고 불안정해지기 마련이다. 말썽을 일으켜서라도 관심을 받으려하지만 부모는 여전히 무관심하며, 결국 아이의 문제행동만 심해진다.
진짜 권위가 있는 부모유형
참 멋진 부모들도 있다. 공통된 특징은 균형감각이 있다는 점이다. 가족의 삶에서 부모자식 관계만 중요한 것은 아니며 그보다 우선해서 부부 관계가 중요하다. 권위가 있는 부모는 그들 자신의 행복을 포기하지 않는 동시에 자녀의 행복과 양육에 민감하다. 그리고 현실에 대해 합리적인 이해를 갖고 있다. IQ 80인 아들에게 서울대 가기를 강요하지 않는다.
또 미술에 재능이 있는 자녀에게 체육을 왜 못했냐며 혼내지 않는다. 진짜 권위가 있는 부모는 민주적인 양육을 한다. 자녀의 욕구에 민감하고, 자녀를 위해 ‘좋은 부모 역할’을 공부한다. 또 자녀의 질문에 귀를 기울이면서, 옳고 그름을 일관되게 가르친다. 맹목적인 권위를 내세우진 않지만 나름의 엄격함이 있다.
한편 부모와 자녀 모두 완벽함을 추구하지 않다보니 스트레스가 적고, 가족간의 이해와 협력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있다. 진짜 권위가 있는 부모에게서 자라는 자녀들은 자율적이고 행복한 인격체로 성숙해 간다.
장애자녀를 둔 부모의 정서 이해
장애자녀를 둔 부모는 일반 부모에 비해 더 깊은 수준의 성숙을 경험한다고 알려져 있다. 슬픔, 무력감, 노여움, 죄의식, 나약함, 당황스러움을 겪어가는 과정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자녀의 장애를 확인하는 순간부터 평범한 가정의 행복이 상실되고, 이 슬픔은 거의 ‘죽음’만큼이나 심각한 정도이다. 또 ‘전문가도 아닌 내가’ 장애자녀를 감당해야 하는 사실 앞에서 불안하고 무력해지며 당황스럽다. 그리고 ‘나만큼 성실히 산 사람도 드문데, 왜 내게 장애를 가진 아이가 태어났단 말인가’ 억울하고 화가 난다.
특히 아버지들의 노여움은 깊고 강해서 인생이 죄다 실패한 것처럼 낙담한다. 말을 아끼는 아버지들의 좌절이 나중에 장애자녀의 동생(정상아)를 기르면서 회복되는 것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어머니들은 자녀의 장애가 선천적이거나 유전질환일수록 죄의식이 강하다. 그런데 부모가 죄의식을 가지면 자녀에 대해 과잉보호를 하기 쉽고, 부모자신은 스스로 혹사당하기 쉽다. 장애자녀를 기르면서도 활기를 잃지 않는 삶을 산다는 것이 그리 수월한 일은 아니다.
진료실에서 만나는 부모 중엔 성숙의 과정을 어느 단계까지 거쳐 온 사람들도 있고, 아직 어두운 터널 속을 지나고 있는 부모도 있다. 그래서 가끔은 하루 진료를 시작하기 전 한의원에 오는 장애아동의 부모들이 행복한 부부로, 따뜻함과 엄격함이 조화로운 양육자로 살아가기를 조용히 기도한다. 나는 어떤 부모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