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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10일 (일)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4)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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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 南 一 / 慶熙大 韓醫大 醫史學敎室



‘近代化’라는 용어를 사용하다 보면 이 단어의 多意的 含意로 인해 여러 가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근대화라는 단어를 진보, 발전, 자본주의화, 탈봉건, 민주화 등 개념들과 접속시켜서 고찰할 때 그러한 점들이 발견된다.



기존 우리나라의 근대화에 대한 주장들을 크게 갈래지어 본다면, 우리나라의 근대화가 외부적 자극-특히, 일제의 침략 등-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他律性論과 외세의 침략이 없었다면 자주적 근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었을 것이라는 內在的 發展論으로 갈린다.



우리는 근대화에 대한 논의에서 한의학도 피해가기 어려운 논의의 중심에 서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서양의학이 들어오면서 한의학은 중심의학의 위치를 점차 상실해가는 과정을 걷게 되었고 이러한 과정은 한국의 근대화 과정의 일환으로 오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오해는 일본으로부터 서양의학이 들어와 한국의 의료체계가 변화하는 과정이 그대로 근대화 과정이라는 단선적 논리로 이어질 수 있다.



근대화라는 단어에 대한 어떤 입장에 있던지간에, 개항기의 전후로 형성되어 현재까지의 변화과정을 겪고 있는 ‘方藥合編’이라는 책은 개항 이전부터 현재까지 한국 한의학의 변화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에 시대의 산증인이라 할 것이다. 특별히 ‘方藥合編’은 조선 후기부터 현대까지 한국 한의학의 내재적 발전을 담지하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1885년 ‘附方便覽’, 1868년 ‘醫宗損益’과 ‘醫宗損益附餘’, 그 다음해에 ‘醫方活套’를 간행한 黃度淵(1807~1884)은 77세가 된 1884년에 그의 아들 黃泌秀에게 명하여 汪암庵의 ‘本草備要’, ‘醫方集解’를 合編한 法을 모방하여 ‘醫方活套’와 ‘損益本草’를 합하고 다시 여기에 ‘用藥綱領’과 ‘救急’, ‘禁忌’ 등 10여종을 보충하여 ‘方藥合編’이라는 서적을 편술하도록 한다.



이와 같은 과정은 黃度淵 집안 차원의 개별적 작업으로만 여길 수도 있겠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한국한의학에 대한 정리과정이었으며, 한의학에 대한 인식의 혁신적 변화를 제공하는 과정이기도 하였다. 개항 이전에 나온 ‘醫宗損益’과 ‘醫宗損益附餘’는 그 구성의 형식상 1799년 나온 康命吉의 ‘濟衆新編’의 체계와 목차와 내용상 유사한 점이 많은데, 이것은 조선 후기 한의학의 내적 발전과정에 다름 아니었다. 그러던 것이 ‘醫方活套’에 이르러 “宜於時, 適於用”라는 시대의 필요성에 부응하여 새로운 색깔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제반 서적들을 엮어서 1884년 ‘方藥合編’이 만들어진 시기는 서양식 의료기관이 증설되기 시작하고 우두법이 점차 널리 활용되기 시작하고 콜레라 같은 전염병이 널리 유행하게 되는 시점과 일치한다. 효과가 뛰어난 처방들을 접근성이 높게 구성한 것이나 돌림병인 輪症, 콜레라인 란亂에 대한 經驗方을 싣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時宜合當한 것이었다.



김형태의 연구에 의하면 ‘方藥合編’은 판본만 하여도 13가지가 넘는다(김형태 「‘方藥合編’에 대한 연구」참조). 이들 판본은 이후 수많은 醫家들의 加筆과 각색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것이다. 證脈要訣이 첨가된 玄公廉의 ‘重訂方藥合編’(1885년), 活套針線이 첨가된 ‘證脈方藥合編’(1918년 관東書館), 臟腑總說이 첨가된 ‘新訂大方藥合編’(1939년), 각종 醫論들이 첨가된 ‘辨證方藥合編’(1936년) 등은 ‘方藥合編’의 진화과정을 보여주는 것들이다. 여기에다가 해방 후에 나온 廉泰煥의 ‘增註國譯方藥合編’(1975년)과 申載鏞의 ‘方藥合編解說’(1988년)까지 덧붙인다면 그야말로 ‘方藥合編’은 근현대 한의학 발전의 산증인으로 대우받을만한 자격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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