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름많음속초16.7℃
  • 맑음15.4℃
  • 구름많음철원16.3℃
  • 구름많음동두천18.9℃
  • 맑음파주17.2℃
  • 맑음대관령18.8℃
  • 맑음춘천15.9℃
  • 구름많음백령도14.4℃
  • 맑음북강릉22.4℃
  • 맑음강릉23.5℃
  • 맑음동해18.9℃
  • 맑음서울19.2℃
  • 맑음인천19.4℃
  • 맑음원주18.1℃
  • 맑음울릉도18.7℃
  • 맑음수원18.5℃
  • 맑음영월20.0℃
  • 맑음충주19.1℃
  • 맑음서산18.9℃
  • 맑음울진19.9℃
  • 맑음청주19.7℃
  • 맑음대전19.9℃
  • 맑음추풍령18.9℃
  • 맑음안동18.6℃
  • 맑음상주17.9℃
  • 맑음포항21.9℃
  • 맑음군산19.3℃
  • 맑음대구19.8℃
  • 맑음전주21.4℃
  • 맑음울산21.3℃
  • 맑음창원21.0℃
  • 맑음광주19.7℃
  • 맑음부산19.2℃
  • 맑음통영18.4℃
  • 맑음목포19.1℃
  • 맑음여수18.4℃
  • 맑음흑산도19.5℃
  • 맑음완도21.7℃
  • 맑음고창20.4℃
  • 맑음순천19.3℃
  • 맑음홍성(예)19.5℃
  • 맑음18.3℃
  • 맑음제주19.5℃
  • 맑음고산19.0℃
  • 맑음성산19.5℃
  • 맑음서귀포20.6℃
  • 맑음진주18.7℃
  • 맑음강화18.7℃
  • 맑음양평17.3℃
  • 맑음이천18.2℃
  • 맑음인제16.5℃
  • 맑음홍천16.2℃
  • 맑음태백20.9℃
  • 맑음정선군18.0℃
  • 맑음제천17.5℃
  • 맑음보은18.1℃
  • 맑음천안18.7℃
  • 맑음보령20.5℃
  • 맑음부여18.3℃
  • 맑음금산19.0℃
  • 맑음18.7℃
  • 맑음부안19.3℃
  • 맑음임실19.2℃
  • 맑음정읍20.7℃
  • 맑음남원19.2℃
  • 맑음장수20.5℃
  • 맑음고창군20.3℃
  • 맑음영광군20.3℃
  • 맑음김해시21.3℃
  • 맑음순창군18.1℃
  • 맑음북창원22.0℃
  • 맑음양산시23.0℃
  • 맑음보성군19.0℃
  • 맑음강진군18.5℃
  • 맑음장흥19.7℃
  • 맑음해남20.1℃
  • 맑음고흥20.5℃
  • 맑음의령군19.9℃
  • 맑음함양군19.3℃
  • 맑음광양시20.7℃
  • 맑음진도군18.3℃
  • 맑음봉화18.4℃
  • 맑음영주17.7℃
  • 맑음문경18.3℃
  • 맑음청송군20.6℃
  • 맑음영덕23.3℃
  • 맑음의성20.7℃
  • 맑음구미20.7℃
  • 맑음영천19.4℃
  • 맑음경주시22.9℃
  • 맑음거창19.1℃
  • 맑음합천20.0℃
  • 맑음밀양20.0℃
  • 맑음산청18.7℃
  • 맑음거제20.1℃
  • 맑음남해18.2℃
  • 맑음21.2℃
기상청 제공

2026년 05월 10일 (일)

김남일의 儒醫列傳 77

김남일의 儒醫列傳 77

B0112007091440822-1.jpg

의서 편찬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 儒醫



우리나라 의학의 황금기는 아마도 조선 초기 세종년간이 아닐까 생각된다.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의서의 편찬에 적극적이었고, 이러한 지원에 힘입어 당시 세계 최고의 의서인 ‘醫方類聚’의 편찬이 가능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기는 모든 이들에게 기회의 시기였다.



태종 때부터 醫官으로 근무하면서 학적 능력을 쌓아나간 朴允德은 당대에 입지전적 인물이었다. 1417년 태종 17년에 전의감주부를 지낸 후에 1424년 세종 6년에 명나라 사신인 李郎中의 병을 치료하더니 이듬해에는 두 차례에 걸쳐서 왕의 병을 치료해 내어 두터운 신임을 쌓아갔다.



그는 임상적 능력뿐 아니라 학술적 능력에서도 뛰어나 의서 편찬에 적극 관여하게 되었다. 1431년에 典醫監副正으로서 盧重禮·兪孝通과 ‘鄕藥採取月令’을 편찬한 것과 1433년에 기존의 ‘鄕藥濟生集成方’을 바탕으로 ‘鄕藥集成方’을 편찬한 것이 그것이다. 1438년에는 노중례·유효통·權採와 함께 ‘新增鄕藥集成方’을 편찬하게 된다.



鄕藥은 이 시기 의학계의 중요한 화두였기에 이의 국가적 육성은 의학계의 열망이었다. 세종이 중심이 되어 향약의학의 체계화를 시작한 것이다. 고려시대 후기부터 발달하게 된 鄕藥醫術을 체계화하여 이를 조선의 중심 의학으로 자리잡게 하고자 하는 노력이 이 시기에 결실맺게 되는 것이다.



박윤덕은 의학에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인물로 학술적 역량으로도 인정받아 의서 편찬에 큰 역할을 하여 후대에까지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관련기사

가장 많이 본 뉴스

더보기

최신뉴스

더보기

뉴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