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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12일 (화)

김남일의 儒醫列傳 14

김남일의 儒醫列傳 14

질병 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의 의학관 펼쳐



조선시대는 학문을 한 학자들이 정치의 중심이었다는 점에 있어 문치시대라 할 것이다. 제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는 집안의 자식이라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출세가 보장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실력주의의 시대라 할 것이다. 학문적 논쟁이 정치적 붕당과 연결되어 부정적인 이미지도 존재하지만, 이러한 정치형태는 당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발견될 수 없는 좋은 정치행태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醫學史의 한 시기를 장식하고 있는 申曼은 본래 문신이었다. 그의 字는 曼情, 號가 舟村으로 平山申氏이다. 丙子胡亂이 굴욕적으로 끝나자 그는 비분강개하여 宋時烈을 찾아가 학업에 정진하였다. 1658년인 효종 9년에는 北伐을 논의할 때 송시열의 요청으로 조정에 들어가 의견을 내놓아 반영시키기도 하였지만, 다음해에 효종이 죽게 되어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게 되고, 후에 송시열이 右贊成에서 사직하여 낙향하였다.



그는 낙향한 후에도 자제의 교육에 힘썼으며, 후에 이조판서를 追贈받기도 하였다. 말년에는 濟民을 위하여 의학에 힘쓰게 되는데, 그의 저술 ‘舟村新方’(1687년 간행)은 바로 이러한 노력의 결실이다. ‘舟村新方’은 小兒, 婦人 및 大人의 세 개의 編으로 구성된 독특한 구성체계로 되어 있다. 먼저, 小兒編에서는 小兒病源總論, 小兒用藥法 등 소아의 질병과 약물요법에 대한 개괄적 지식을 앞에 소개하고, 初生預治法, 斷臍法, 洗兒法, 初生危證 등 출산에 관한 내용과 三關脈法, 觀形察色法, 聽聲法 등 소아진단에 관한 내용을 뒤에 나열하고 있다. 다음으로 急驚風, 慢驚風, 天弔, 中惡, 丹毒 등 소아들의 호발질환과 腹痛, 脫肛, 鼻淵 등 소아잡병을 나열설명하고 있다. 이 小兒編에서 다루고 있는 조항만해도 94조항에 달한다.



婦人編에서는 産前, 産後, 求嗣方의 세 가지로 나누어 논하고 있다. 大人編에서는 傷寒, 中暑 등 외감성질환과 中風, 內傷 등 내상성질환을 앞에 놓고 耳, 舌, 齒 등 부위별로 질환을 살핀 후 浮腫, 溫疫, 痰病, 淋疾 등 잡병에 대한 내용을 32항에 걸쳐서 논하고 있다. 아마도 小兒, 婦人, 大人의 세 가지 구분법을 사용한 醫書는 ‘舟村新方’이 최초일 것이다. 이를 통해 질병을 중심으로 보아서는 안 되고 인간을 중심으로 보아야 한다는 신만의 醫學觀의 일면을 엿볼 수 있게 된다.



후대에 미친 영향을 엿볼 수 있는 의서가 있다. 申曼의 경험방이 많이 수록된 의서인 고종 때 錦里散人이 지은 ‘宜彙’라는 서적과 1909년에 申曼, 丁若鏞이 공동 집필한 것으로 가탁한 ‘單方新編’이 그것이다. 申曼의 경험방을 다수 인용한 의서와 그의 이름을 가탁한 의서가 있다는 사실은 신만이 얼마나 조선민중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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