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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2월 17일 (화)

우리가 알고 있는 日本 모르고 있는 日本人(6)

우리가 알고 있는 日本 모르고 있는 日本人(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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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와 칼, 우리는 그들을 잘 알고 있는가?



“국화와 칼로 대변되는 일본인 특유의 혼네(ほんね,속마음)와 다테마에(立て前, 겉치레)를

우리 식으로 단순하게 이해하여 더 중요한 것을 얻을 기회를 놓치는 愚는 더 이상 범하지 말아야”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해다. 36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지배국과 피지배국으로 살아온 우리. 억압과 착취와 수치는 모두 다함께 겪었음에도 일본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개인마다 엇갈림이 있다. 어떤 이는 ‘국화’ 이야기만 주로 하고, 또 어떤 이는 ‘칼’ 이야기만 주로 한다. 그러다보니 『일본은 없다』, 『일본은 있다』라는 상반된 제목의 책들이 서점에 널려 있다.

저가 항공 등장으로 일본 본토에서 라멘과 사케를 마시고 와도 제주 여행비보다 싸다하여 이웃집 마실가듯 일본 여행을 즐기는 젊은이들도 급격하게 늘었다. 이렇게 경제적으로 문턱이 낮아진 일본이지만 우리는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피상적인 관념만 있을 뿐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어떤 문화와 관습을 가지고 현재와 미래를 보고 행동하는지 정확하게 알지도 못한 체, 알려고도 안한 체, 단지 역사 시간에 배운 일제 36년의 만행과 잊힐만하면 주기적으로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일본 관료들의 ‘독도(일본은 다케시마라고 함)는 일본 땅’이라는 망언에 순간적인 열(?)만 받을 뿐이다.

역사적으로 되돌아보자. 임진왜란 직전에 일본의 정세를 살피러 간 조선의 사신 보고에도 ‘국화와 칼’이 공존했고, 1876년 강화도조약과 1884년 갑신정변은 물론이고 대한제국 창건 시기에도 역시나 그러했었다. 오랜 세월, 일본을 겪어왔던 우리도 이러할진대 1944년 2차 대전 막바지의 미국은 일본을 어떻게 바라봤을까?



국화와 칼, 일본인의 이중성을 정확하게 내포

당시 미국의 적인 독일, 이탈리아, 일본 중 독일과 이탈리아는 같은 서구권인지라 미국과 어느 정도 문화가 비슷했지만 유일한 동양권인 일본은 달라도 너무나 달랐기에 미국의 입장에서는 일본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승산이 없는 전투에서는 항복이 당연했던 서구권 병사에 비해 천황의 이름을 부르며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한 나라. 부상으로 인해 상대국에 포로가 된 것을 수치로 여겨 자살하는 사람들. 돌아갈 연료도 없이 비행기에 폭탄을 싣고 항공모함으로 돌진하는 어린 조종사들.

전세는 미국에게 유리하게 기울었지만 미국 정부는 일본인, 일본 문화에 대해 너무나도 무지한 상태였다. 죽기를 각오하며 본토사수를 외치는 일본. 이를 무력으로 점령하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군인들이 희생을 치를 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미 국무부는 일본인과 일본 문화에 대한 정보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했고, 그래서 당대 최고의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Ruth Benedict)에게 이러한 일본인의 속성에 대한 연구를 의뢰했다. 그렇게 나온 책이 일본인의 이중성을 상징하는 불후의 고전 《국화와 칼:Patterns of Japanese Culture》이다.

루스 베네딕트는 전쟁 당사국인 일본에 직접 갈 수가 없었기에 미국에 거주 중이던 일본인 이민자와의 인터뷰 그리고 영화, 도서 등을 통해 일본과 일본인에 대해 연구했다고 한다. 국화는 일본인의 예술성, 예의, 충, 효 등 아름다움을 의미하며 그와 대조되는 이미지의 칼은 사무라이라고 불리우는 일본인의 무(武)에 대한 숭상을 나타낸다고 한다.

저자는 “앞에 내보이는 한 손에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국화를 들고 있으나 감춰진 다른 한 손에는 칼을 쥐고 있다”는 뜻으로 책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국화는 어떤 꽃인가? 모든 꽃들이 진 차가운 가을에 홀로 피는 깨끗하고 고귀한 국화의 꽃말은 평화와 지혜, 절개 등으로 알려져 있지 않은가?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유럽을 배우고 발전했음에도 神의 종류가 가장 많고 심지어는 인간도 신으로 신봉하는, 도대체 알 수 없는 극단적 이중성. 이웃 나라 왕비인 명성황후를 시해했던 사무라이의 칼과 국화를 사랑하는 탐미적 심성, 1945년 8월 일본 국민에게 최후의 한사람까지 적에게 항전할 것을 요구하던 천황이 일본의 항복을 고하는 그 순간부터는 바로 맥아더에게 순종태세로 전환하던 천황과 동일인임에 점령군으로 진주한 미군들도 적잖이 의아스러워 했다고 한다.

국화와 칼!!! 우리는 어느 나라, 어느 민족보다 이 제목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 책이 나온 지 73년이 되었다. 강산이 일곱 번 이상 변했을 세월인지라 일본도 많이 변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한다면 너무 순진한 기대인 듯 하다.

일본과 비즈니스를 하는 한국의 기업인들이 고급 음식점에서 일본의 기업인이나 공무원들에게 극진한 대접을 하고 다소간 친해진 이후 시간이 지나 뒷통수를 맞았다는 하소연을 적잖이 듣는다. 특히나 일본 시장 진출을 염원하는 기업인의 입장에서는 하릴없이 흐르는 시간에 애간장이 녹는다.

한국의 기업인들은 일본의 관계자들에게 “최선을 다 하겠다” 내지는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 기대에 부풀어 다음을 기대해보지만 결과는 최선을 다하지도, 긍정적이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일본인들이 거짓말을 한 것일까?



긴 호흡으로 본질 바라보는 내공있는 지혜 필요

차분히 따져보면 일본인들은 그 어느 것도 약속한 것이 없이 그저 최선을 다 하겠다고만 말했을 뿐이다. “최선을 다 하겠다”는 말은 곤란한 상황을 모면하는 일본인 특유의 말버릇일 뿐이나 한국의 기업인은 좋은 의미의 한국 스타일로 해석했던 것이다. 대단히 미안한 이야기지만 일본인의 애매모호한 긍정적 표현에 하릴없이 기다리다 시간만 버리고 사업기회를 잃은 기업이 어찌 한둘일까? 일본인에게서 “생각해 보겠다”는 대답은 거절의 의미라는 것을 아는 한국인은 얼마나 될까?

한일문화 비교학자인 츠쿠바대학의 이데 리사코 교수는 한국어는 직설적이고 솔직하고 분명하다는 면에서 ‘투명한 언어’라고 하고, 일본어는 소극적이고 애매하여 ‘불투명한 언어’라 했다. ‘도-조(どうぞ)’와 ‘도-모(どうも)’를 우리말로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어서(드세요)’‘정말(감사해요)’와 같이 그때 그때의 상황에 따라 의역할 수밖에 없는데 ‘도-조(どうぞ)’와‘도-모(どうも)’ 두 단어만 잘 사용해도 일본어의 50%는 아는 것이라지 않는가?

한국과 일본이라는 나라는 멀리 있으면 그나마 부딪힐 일이 없었을 텐데 어쩔 수 없이 지리학적으로 이웃하다 보니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 받아왔고 견제와 비교의 대상이 되어 왔다.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또한 그럴 것이다.

필자가 도쿄의 와세다대학에서 생활을 시작하던 2010년경에는 일본에서 한류가 최고조로 높았을 즈음이었으나 최근에는 여러 분야에서 한일간 감정의 골이 더욱 깊어져 가고 있다.

일본과 일본인의 이러한 속성들에 대해 더 깊은 이해로 과거사 반성, 위안부 문제, 강제징용, 독도 문제 등이 불거질 때마다 단지 ‘욱!’하는 말초적 반응이 아니라 긴 호흡으로 본질을 바라보는 내공있는 지혜가 필요할 때다. 국화와 칼로 대변되는 일본인 특유의 혼네(本音:ほんね,속마음)와 다테마에(立て前, 겉치레)를 우리 식으로 단순하게 이해하여 더 중요한 것을 얻을 기회를 놓치는 愚는 더 이상 범하지 말아야겠다.

지혜로운 자는 역사를 통해 배우고 무지한 자는 경험을 통해 배운다고 하지 않던가? 겸손한 국화 속에 날카로운 칼을 품고 있는 이중적인 민족성, 자유자재로 얼굴을 바꿀 줄 아는 태도가 어쩌면 일본이 현대사회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이 된 건 아닐까? 그들이 이중적이라고 비난만 할 것인가? 아님 그들의 이중적 속성을 우리가 이용할 것인가? 그건 우리의 몫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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