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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으로 풀어보는 한국 한의학 (138)金永錫의 濟衆立效方論 “민중과 함께하는 의학을 만들어보자” 金永錫(1079〜1166)은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儒醫의 한 사람이다. 그의 생애를 기술하고 있는 그의 묘지명에 다음과 같이 기술돼 있다. “김영석(金永錫: 1079〜1166)의 본관은 명주(溟洲: 지금의 강원도 강릉시)이다. 아버지는 배향공신(配饗功臣)이자 수대부 문하시중 판상서이형부사(守大傅 門下侍中 判尙書吏刑部事)인 인존(仁存)이고, 조부는 수대위 문하시랑평장사 판예병부사(守大尉 門下侍郞平章事 判禮兵部事)인 상기(上琦)이다. 어머니는 경원군부인 이씨(慶原郡夫人 李氏)이고, 외조는 수사공 경원군개국백(守司空 慶源郡開國伯)인 이호(李顥)이니 이자겸의 삼촌이다. 처음 할아버지의 음서(蔭敍)로 양온승동정(良醞丞同正)이 되었다가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이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 판병부사(判兵部事)와 특진 수태위위(特進 守太衛尉)에 이르렀다. 네 차례 지방관직을 맡았고, 세 차례 동로병마사(東路兵馬使)가 되었으며, 한 차례 북로원수(北路元師)가 되었고, 한 차례 지공거(知貢擧)가 되었다. 1154년(의종 8)에 특진 수대위(特進 守大尉)에 임명되고 치사(致仕)하였으며, 집에서 있은지 13년이 지난 1166년(의종 20)에 향년 78세로 졸하였다. 어려서부터 글을 잘 지었으며, 일찍 송(宋)과 신라(新羅)의 의서(醫書)를 열람하여 기요(奇要)한 것을 모아 『제중입효방(濟衆立效方)』이란 책을 만들어 세상에 유포하였다. 문하시중(門下侍中) 이공수(李公壽)의 딸과 결혼하여 4남 2녀를 두었다. 묘지는 내시 대부소경 태자문학(內侍 大府少卿 太子文學) 김거실(金居實)이 지었다.” (‘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에서 재인용. 朝鮮總督府 編, 1976, 『朝鮮金石總覽』上, 亞細亞文化社) 유학자로서 백성들을 잘 살게 해줄 방법을 강구하는 것은 학문적 목적을 실현시키는 방법론을 강구하는 것이 된다. 유학은 정치를 위한 학문이라고 하며, 정치의 목적은 세상을 바로잡아 모든 백성들이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유학자들이 이용후생을 실현시키기 위해 고심한 것은 직접적으로는 대민의료였고 간접적으로는 생활 속에서 활용될 수 있는 의학 지식의 보급이었다. 고려시대 유학적 利用厚生의 원리를 실현하기 위해서 『濟衆立效方』을 저술한 김영석이 바로 여기에 해당하는 인물일 것이다. 김영석은 『濟衆立效方』이라는 醫書를 편찬하여 임상에 힘을 기울였는데, 이 책은 新羅와 宋나라의 醫書들을 참조하여 만든 것이다. 『鄕藥集成方』에 남아 있는 한 개의 조문으로 그 전모를 다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그 내용이 고려의 독자적 내용을 담아내고 있다. 그 내용은 “偏風手足不遂, 疼痛을 치료한다. 松葉 다섯말 정도에다가 소금 두되를 쪄서 뜨겁게 하여 푸댓자루에 담아 다림질해준다. 차가워지면 다시 쪄주어 병이 나을 때까지 한다”(『鄕藥集成方』風門, 中風半身不遂)이다. 이러한 치료법이 唐代 王燾의 『外臺秘要』에도 비슷한 내용이 보이기는 하지만 『外臺秘要』의 경우에는 內服하는 것으로 되어 있고 『濟衆立效方』에서는 外用하는 것이기에 그 중국적 맥락이 아니라 한국적 맥락에서 치료법을 정리한 것이다. 『濟衆立效方』의 ‘濟衆’은 ‘衆’ 즉 ‘민중’들을 ‘구제’(‘濟’)하기 위해 사용했을 때 곧바로 효과 나타나는(‘立效’) 처방(‘方’)들을 모은 책이라는 의미이다. 동로병마사를 세번 역임하고 북로원수를 한번 역임하면서 백성들의 신망이 두터웠던 것은 이러한 그의 의학적 능력과도 관련이 깊다. 김남일 교수·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
"한의사 의료기기 해결 잠정 중단 맞냐"고 국감서 물은 국회[한의신문=민보영 기자] "(한의사 의료기기 해결은) 근본적으로 국민 건강과 생명을 어떻게 지킬거냐의 문제다.", "정부는 (한의사 의료기기 해결에 대해) '검토하겠다'는 답변만 반복하고 있다.", "갈등을 방치하지 말고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주체가 정부와 국회다. 정부에서 최선을 다 해달라." 지난 달 2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보건복지부 국정감사 현장에선 한의사 의료기기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연이어 나왔다. 발단은 의료인간 면허 범위 논의를 위해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한한의사협회와 의사협회 증인으로 내세우면서였다. 문제해결을 요구하고 나선 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이었다. 한두 명 의원의 발언에서 그치지 않았다.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윤소하 민주당 의원에 이어 보건복지위원장인 양승조 더불어민주당 의원까지 거들었다. 그만큼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 문제 해결이 지지부진 했단 얘기다. 의원들의 성토는 이상할 게 없었다. 19대 국회는 한의사 의료기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청회를 열었다. 보건복지부는 공청회 결과를 6월까지 보고하겠다고 했지만, 지금까지 진전된 논의는 없었다. 논의가 "잠정 중단된 것"이란 권덕철 복지부 보건의료실장정책의 대답에 대해 "지금이 2016년 9월인데 잠정적인 것 맞냐"고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반문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정부에 대한 국회의 상식적인 의문이었다. 정진엽 복지부 장관은 "내가 장관될 때, 동료들에게 나는 의사가 아니라 장관이라고 했다. 중립적인 입장에서 처신해야 한다"고 했다. 한의사 의료기기 문제 해결에 시한을 요구하는 양 의원장의 질문에 답하면서다. 정부는 그 입장을 잊지 말아야 한다. 중단됐던 협의체를 재개해 국민 건강을 위한 결정을 내릴 때다. "(보건의료인 간) 문제가 생기면 국회가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지 말해달라. 사법부가 보건의료 전문가는 아니지 않느냐." 보건의료인이 한의사 의료기기 등 문제를 두고 사법부 판결에 기대는 모습을 보며 인재근 의원이 언급한 말이다. 국회가 할 일은 오는 14일 종합감사로 어느정도 끝난다. 그 이후엔 정부가 나서는 일만 남았다. -
論으로 풀어보는 한국 한의학 (65)1725년 日本人 山川淳菴은 許任이 1644년 간행한 『鍼灸經驗方』에 ‘朝鮮國鍼灸經驗方序’라는 제목의 서문을 쓴다. 이 때 간행된 版本이 大阪刊本이다. 이 책은 大阪의 吳服町書林에서 网田三郞右衛門이 간행하였다. 『鍼灸經驗方』은 조선 중기 許任(1570〜1647)이 지은 침구학 전문서적이다. 우리는 日本人 山川淳菴이 이 책의 일본판을 만들면서 쓴 ‘朝鮮國鍼灸經驗方序’를 통해 이 책이 일본에서 간행된 전말을 파악할 수 있다. 아래에 그 번역문을 적어본다. “『鍼灸經驗方』은 朝鮮國의 名醫인 許任이 저술한 책인데, 그 나라의 首相인 金氏가 인쇄를 명령하여 四方으로 퍼뜨려 나라 사람들로 하여금 鍼灸의 요체를 알게 하고자 한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어진 덕으로 백성을 구제하는 道를 도와주는 책이다. 내가 어린 시절에 일찍이 조선에 유학을 가서 익히는 여분의 시간에 간간이 醫師들과 접촉하여 자주 鍼灸가 醫家들의 요체가 됨을 말하는 것을 들었다. 또한 鍼灸로 병자를 치료하여 그 효과가 빠른 것을 보았는데, 나아가서 그 사용하는 방법을 문의하여 보면 한결같이 許任의 『鍼灸經驗方』을 공부해서 그러한 것이었다. 그 저술을 보니 요점이 있어서 번잡하지 않았고 간결하여 남음이 없었으니 이른바 百家들의 모아서 千古의 비밀을 열어준 것이라고 한 것이 마땅한 것이로다. 무릇 이것을 공부하는 자라면 각각 그 의술에 통달하여 능히 그 교묘함에 이를 것이다. 유독 조선이 鍼刺에 있어서 최고라고 평소에 中華에까지 일컬어진 것이 진실로 거짓이 아니로다. 무릇 나라에 선비가 있는 것이 마치 山에 官木이 있는 것과 같으니 나라는 선비로 빛이 나고 山은 材木으로 이름이 난다. 아름답도다! 金許의 二氏가 良相, 良醫로서 救濟를 빠트리지 않았다. 옛사람이 良相이 되지 못한다면 良醫이 되기를 원한다고 하였다. 이제 그들이 한 바를 돌아보면 각각 한결같이 옛사람들이 하고자 하는 바에서 나와서 사람을 어질게 하고 나라를 치료하는 거울을 늘인 것이라. 그 구제하여 살려낸 것이 거의 억조에 이르는 것인져. 오호라! 덕을 여기에 무엇을 더 덧붙이겠는가! 이제 내가 가지고 있었던 許氏의 經驗方을 인쇄업자에게 던져주어서 사방으로 퍼져서 생명을 좋아하는 모든 군자들과 같이 하고자 한다. 가히 金과 許 두 현자의 아름다움이 멀리 異域에까지 넘치고 令名이 하나의 木朽와 더불지 않아 남긴 은택이 天地와 같이 오래 갈 것을 봄이라. 處術이 가히 다할 것인가? 이것을 보는 사람이라면 날과 달로 나아가 능히 그 요체에 달하고 능히 그 교묘한 이치를 다하여 자랑함에 급급하지 않고 구제함에 자자하면 거의 뜻있는 선비의 사람을 어질게 여기는 마음 씀이라고 말할 따름이라.”(저자의 번역) 이 서문을 통해 몇 가지 사실이 발견된다. 첫째, 서문의 저자 日本人 山川淳菴이 조선에 학문 연구를 위해 유학을 왔었다는 점이다. 山川은 조선에 의학을 공부하러 온 것이 아니었는데, 침구학을 활용하는 조선의 의사들을 통해 정보를 전해듣고 그 깊은 이치에 매료된 것으로 보인다. 둘째, 조선 침구의학계에서 『鍼灸經驗方』을 크게 활용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원인을 뛰어난 효과에서 찾고 있다. 셋째, 당시 동아시아 전통의학계에서의 조선 침구술의 위상이 높았음을 증언하고 있다. 이것은 “유독 조선이 鍼刺에 있어서 최고라고 평소에 中華에까지 일컬어진 것이 진실로 거짓이 아니로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다. -
백유상, 정혁상근세 이전 한의학 속의 해부학(Ⅱ) - 본격적인 해부의 시행 동양에서 시행된 해부 프로세스 분석 결과, 의사 및 화공을 동원해 그 결과를 기록함으로써 해부 지식 습득을 중요하게 여겨 한의학의 해부 프로세스- 측량, 묘사, 명칭 등의 해부 지식들이 외과, 법의학 분야에서 폭넓게 활용되었고, 일부 수술 시행에서도 중요한 학술적 기반 마련 인체 구조에 대한 해부 지식은 분명히 임상에서의 활용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한의학에서도 전통적으로 외상을 치료하는 외과 부문이나 일부 복강 내 수술을 시행하였던 경우에 기본적인 해부 지식이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반면 해부라는 행위 자체는 해부 지식을 습득하기 위한 순수 학문적 목적으로 인체를 해체하고 관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동양에서는 이러한 공식적인 해부의 시행과 기록이 많지는 않다. 현재까지 문헌적으로 알려진 것으로는 「漢書」「王莽傳」의 기사와 북송 范鎭의 「東齋記事」에 보이는 歐希範의 해부기록, 晁公武의 「郡齋讀書志」 後志에 나오는 「存眞圖」의 해제에 보이는 崇寧 연간의 해부기록 등이 대표적이다. 일본에서 蘭學이 들어오는 과정에서 해부가 유행하기 시작하여 야마와키 도요(山脇東洋)가 「藏志」(1759년)를 지은 것 등은 역사적 배경이 조금 다르다. 「王莽傳」에서는 太醫와 尙方, 백정을 시켜 죄인을 해부한 후 五臟을 측량하고 혈맥의 노선을 확인한 기록이 나오며, 歐希範의 해부 기록에서는 도적인 歐希範 일당을 붙잡아 배를 가르고 역시 의사와 畵人으로 하여금 그림을 그리게 하였는데 오장의 실제 위치, 모양 등을 상세하게 기록하였고 특히 嗽 등 특정 질병이 있던 사람의 장부가 병리적으로 변화된 양상을 확인하기도 하였다. 이 그림은 현재 「歐希範五臟圖」로 전해진다. 崇寧 연간의 해부기록도 역시 泗州 郡守인 李夷行이 도적을 저자에서 형을 집행할 때에 의사와 畵工을 파견하여 격막을 열어 그림을 그리게 한 것이다. 동양에서 역사적으로 시행되었던 해부의 과정을 현대 해부 프로세스에 비교하여 보면, 우선 현대의학의 해부 프로세스는 표준화된 분류는 없으나 크게 규정, 습득 및 관련규정, 준비, 목표, 기록, 처리, 활용 등 7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규정은 해부 관련 규정이나 법규를 말하며, 습득 및 관련규정은 cadaver의 습득, 허가 긍에 대한 규정이나 법규를 말하며, 준비는 실제 cadaver의 준비 과정으로 제례 등까지 포함하고, 목표는 해부를 시행하는 목적과 순서, 선행지식 등을 말하고, 기록은 해부 과정에서 관찰된 정보들을 어떻게 기록하였는가에 대한 것이며, 처리는 해부 이후 cadaver의 처리와 학습 내용에 대한 평가를 포함하고, 활용은 해부를 통해 얻은 지식을 어떻게 활용해 나가는지에 대한 것을 말한다. 위에서 말한 본격적인 해부 기록 이외에 해부 프로세스를 유추할 수 있는 기타 문헌자료들을 함께 검토하여 동양에서 이루어졌던 해부의 프로세스 복원을 시도해 보았다. 7가지의 분류를 다시 규정, 해부, 목적, 의례의 4 분류로 간략화 하여 살펴본 결과 우선 규정에 대해서는, 적군의 포로나 극형을 받은 죄수, 또는 전쟁에서 연고가 없는 시신 등을 대상으로 해부를 시행하는 것이 당시 cadaver를 습득하는 가장 합법적인 절차였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한대에 당시 권력을 잡은 王莽이 太醫와 尙方을 시킨 것,「歐希範五臟圖」의 경우 吳簡이 宜洲의 관직에 있으면서 의사와 畵工을 동원한 것, 楊介가 「存眞圖」를 편찬할 때 군수가 의사와 畵工을 파견한 것 모두 공식적인 행정 집행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공식적인 절차를 밟게 되면 해부를 일반에서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리는 효과가 있고 참여한 의관도 해부 지식을 습득하여 의학적 권위를 가질 수 있다. 그밖에 법의학에서는 당연히 관직에 있는 검시관이 공식적으로 이를 진행하였다. 해부 과정에 있어서는, 우선 의사는 기존 지식을 바탕으로 관찰 내용을 검증하고 의사의 지도에 따라 화공이 그렸을 것으로 추측된다. 해부가 시작되면 가장 먼저 칼로 절개를 하는데, 「扁鵲列傳」에 나오는 兪跗의 기록처럼 체표부터 가장 깊숙한 곳까지 해부를 진행하며, 이 과정에서 割, 解, 訣, 結, 搦, 揲 爪 등 동작을 설명하는 표현이 나온다. 해부가 아닌 수술의 경우에는 처음에 마취약을 쓰고, 이후에는 해부 작업과 비슷하며 다음으로 병리적 산물을 절제하고 내부와 외부로 봉합을 하는 과정들이 추가된다. 봉합 후에는 잘 아물게 하는 약을 바르고 상처가 아무는 예후도 제시하고 있다. 해부를 통하여 얻어낸 지식들은, 내부 장기와 구조를 측량한 것, 혈맥의 노선을 확인한 것, 장기와 구조의 모양을 확인한 것, 문자 기록이 아니라 그림으로 그린 것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인체에 대한 기본 지식 중에서 부위 명칭과 관련된 용어는 「內經」에 이미 많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후 의서를 통하여 계승된 것과 법의학 분야에서 표준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나눌 수 있다. 또한 의서에 기재된 것은 주로 경락, 경혈의 위치를 설명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인 것과 외과 치료 및 수술을 목적으로 쓰인 것으로 나눌 수 있다. 「列子」에 나오는 개흉술은 흉부 구조에 대한 사전 지식을 필요로 하며, 「資治通監」에 나오는 뼈를 뚫거나 벌리는 외과술들도 역시 뼈에 대한 기본 지식 없이는 불가능한 시술이다. 해부의 목적은 기본적으로 순수하게 인체의 내부를 알고 싶은 의학적 호기심에 있었을 것이다. 또한 「王莽傳」의 기록에서 太醫가 해부에 참여한 것으로 보아 해부 지식은 당시에 매우 고급에 속했음을 알 수 있으며, 이와 같이 다수의 의사를 참여시킨 것은 지식을 공개하여 공유하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또한 해부를 마치고 이로써 병을 치료할 수 있겠다고 말한 것은 해부 지식이 직접적으로 치료에 사용되었음을 의미하는데 아마도 수술과 외과치료에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법의학의 부검은 오래전부터 시행되어 왔는데 그 목적은 해부와 달리 사인을 규명하는 데에 있었다. 관련 의례에 대해서는 「洗冤集錄」과 「新註無冤錄」 중에 관련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나 법의학의 통상적인 처리 과정이며, 「藏志」에 일부 제문이 포함되어 있으나 일정한 제례가 정해져 있지 않아 그 기록이 드물다. 동양에서 시행된 해부의 프로세스를 분석해 본 결과, 해부의 빈도가 많지는 않았으나 관료에 의하여 공식적인 절차를 바탕으로 의사 및 화공을 동원하여 해부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기록함으로써 해부 지식 습득을 중요하게 여겼음을 알 수 있으며, 그러한 측량, 묘사, 명칭 등의 해부 지식들이 외과, 법의학 분야에서 폭넓게 활용되었고, 일부 수술 시행에서도 중요한 학술적 기반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
한의약 치료 노인에게 인지기능, 운동기능 개선 및 낙상예방 효과 있어제주에서 펼쳐진 전세계 석학들의 보완의학에 대한 열정, 내년을 기약하다 ICCMR 2015 폐막…전세계 석학들의 국제보완의학 연구성과 발표 이어져 13일부터 15일까지 열렸던 ‘제10회 국제보완의학연구학술대회’(ICCMR 2015)가 화려했던 막을 내렸다. 대회 마지막날인 15일은 도쿄 아리아케대 키이치로 쯔타니(Kiichiro TSUTANI) 교수와 하버드 의대 피터웨인(Peter M. Wayne) 교수의 기조연설로 시작되었다. 먼저, 도쿄 아리아케대 키이치로 쯔타니(Kiichiro TSUTANI) 교수는 ‘캄포의학의 근거와 일본 정부의 통합의학의 시작(Evidence of Kampo medicine and government initiative on Integrative Medicine in Japan)’라는 주제로 기조연설에 나섰다. 그는 일본정부의 통합의학에 대한 정책과 현황을 소개하는 한편, 일본 FOSHU/FFC와 미국 기관의 건강기능식품과 식품보조제에 관한 체계를 비교분석하고 표준지표를 통한 통합의학의 공공보건분야에서의 효과적인 응용 등도 발표했다. 이어서 하버드 의대 피터웨인(Peter M. Wayne) 교수는 ‘균형에 관하여 : 태극권연구의 인지기능과 운동기능 독립성 소개(Minding our balance : How taichi research is informing the independence of cognitive and motor skills)‘라는 주제로 기조연설을 하였다. 그는 태극권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다음과 같은 4가지의 결론에 이르렀다고 발표하였다. △첫번째, 태극권은 노인에게 있어 인지기능 및 운동기능을 개선시키고 낙상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두번째, 태극권의 다중구성 심신훈련(Multi component mind body training)은 단봉형 치료에 특별한 장점을 제공할 수 있다. △세번째, Neuro imaging과 Neuro stimulation을 통합하는 이중작업틀로써 노화에 대한 심신연구의 귀중한 연구틀로 응용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태극권은 긍정적이고 목표지향적인 intervention으로써 사용될 수 있으며, 현대의학의 재활전략으로 응용될 수 있다. 이후 진행된 폐회식에서 한의학연구원 이혜정 원장은 폐회사를 통해 이번 학술대회가 국내외적으로 학술성과는 물론 한의학과 제주도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고 밝히며, 지금까지는 과학적인 연구를 모토로 노력을 기울였다면 이번 학술대회가 연구의 수준을 높이는 계기가 되어 한의학이 한 단계 도약하는 성과를 가졌다고 발표하였다. 이어서 훌륭한 연구주제를 가지고 발표한 학생들에 대한 시상식이 진행되었다. ‘Poster Abstract Presentation’ 부문에서는 Xiuyu Zhang, Jin-Seok Lee, Seulgi Eun, Wang Congcong, Robin Ho가, ‘Oral Abstract Presentation’ 부문에서는 Lily Lai, Chun-Xiang Su, Qianyun Chai, Tianwei Guo, Mike Armour, Meena M. Makary가 각각 수상하는 쾌거를 누렸다. 한편, 이번 제10회 국제보완의학연구학술대회(ICCMR 2015)를 주최한 국제보완의학연구회(ISCMR)는 보스톤 대학 로버트 세이퍼(Robert Saper) 교수를 신임회장으로 선출하고, 제11회 국제보완의학연구학술대회(ICCMR 2016)를 내년 2016년 5월 17일에서 20일까지 라스베거스에서 개최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完) -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308)1991년 9월은 ‘허준의 달’… 허준 관련 다채로운 문화행사 개최 문화부 제정… 한의사협회 후원 및 경희한의대 동문회 주관으로 실시 [한의신문] 문화부에서는 1991년 9월을 ‘허준의 달’로 제정해 다채로운 문화행사를 주최한다. 이 행사는 대한한의사협회 후원 및 경희대 한의과대학 동문회 주관으로 9월 1일부터 30일까지 한달 동안 진행된다. 여기에는 △허준의학상 제정 △허준에 관한 학술세미나 개최 △허준 탄생지 탐방 △허준 일대기 ‘집념’ 비디오 상영 △허준 관련 초·중·고생 글짓기 대회 △전국적인 무료진료 실시 등이 포함되었다. 대한한의사협회가 후원하고 경희대 한의대 동문회(회장 문종화)가 1991년 9월 14일 오후 2시 경희대 간호원 기숙사 강당에서 ‘제1회 허준의학상 시상식’을 가졌다. 수상은 공로 부문에 ‘5人同志會’인 이우룡·권의수·우길룡·윤무상·정원희 등 5인의 한의사를, 학술 부문에는 朴鎬豊 前 서울한의과대학 학장(경희대 한의대의 전신)를, 봉사 부문에는 전라남도 완도군의 한약업사인 우재선 선생을 각각 선정했다. 허준 관련 학술세미나는 9월14일 오후 2시30분부터 경희대 간호원 기숙사 강당에서 실시되었다. 발표자는 다음과 같다. △강정수 동국대 한의대 교수의 ‘실학적 의미에서 본 구암 허준의 업적’ △박찬국 경희대 한의대 교수의 ‘동의학의 성립에 대한 연구-허준의 동의보감을 통하여’ △손홍렬 청주대 사범대 역사교육과 교수의 ‘동의보감 편찬의 역사적 배경’ △안춘근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객원교수의 ‘동의보감의 서지학적 고찰-동양의학의 經典’ △이이화 역사문제연구소 소장의 ‘조선시대 의원의 지위-구암 허준의 경우와 관련하여’ △이종형 동국대 한의대 교수의 ‘허준 선생과 동의보감’ △정우열 원광대 한의대 교수의 ‘동의보감과 허준의 의학사상’ △한대희 경희대 한의대 동문회 학술이사의 ‘허준의 생애에 대한 고찰-출생과 가계를 중심으로’ 등이었다. 특히 안춘근 교수는 발표를 통해 “(동의보감을)동양의학의 경전이라고 지적하고, 비단 우리나라만을 위한 의서가 아니고 한·중·일 동양 3국을 비롯한 세계적인 의서가 된 만큼 동의보감이 아닌 동양보감 또는 한의보감, 한의성서로써 국보로 지정되어야 한다”고 주장, 『동의보감』의 국보 지정을 예견하기도 하였다. 허준 탄생지 탐방은 9월 7일 오후 4시에 서울 강서구 가양동 일대에서 이루어졌다. 이 행사에는 안학수 한의사협회장, 문종화 경희대 한의대 동문회장, 배원식·한요욱·오승환 전임 한의협회장 등 다수가 참석했다. 안학수 회장은 “오늘 민족의학의 거성이신 허준 선현의 탄생지에 찾아와 한의계 인사들과 함께 선현의 생애와 업적을 뒤돌아보게 된 것은 역사적인 일”이라고 치사하였다. 또한 전국 한의과대학 학생들은 12일부터 14일까지 제15회 행림제를 경희대 캠퍼스에서 열었다. 이 축제에서는 9월 문화의 달 인물로 선정된 허준을 추모하는 제사를 지냈다. 강서교육청 주관으로 허준의 달 기념 문화행사의 하나로 경희대 한의대와 양천문화연구원의 후원으로 허준 선현 기리기 글짓기 대회가 18일 양천초등학교에서 열렸다. 여기에 관내 초·중생 213명이 참여해 양천초등 4년 지구, 서정초등 5년 하수경, 신강초등 6년 김덕기, 백석중 1년 김비, 양동중 2년 옥지윤, 신서중 3년 김혜진 등이 최우수상에 수상하였다. 4차에 걸친 현지답사 끝에 9월 30일에는 경기도 파주군 진동면 하포리에서 허준 묘소를 찾아내었다. 군사분계선 안쪽에 위치한 관계로 軍당국의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하였고, KBS 문화부팀과 양천허씨대종회의 협조도 크게 도움이 되었다. 김남일 교수·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
백유상, 정혁상근세 이전 한의학 속의 해부학(Ⅰ) - 측량 기록을 중심으로 한의학 醫書에 나타난 五臟六腑의 측량 기록과 형태 등은 현대 해부학의 내용과 비교할때, 실제 해부 과정을 통해서 인식한 결과 經絡論과 臟腑論 등 한의학의 핵심적인 이론들과 연결하여 설명하고자 한 구조-기능 결합의 인체관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 특징 - 한의학 醫書 지난 기고문까지 근현대 한의학 속에서 해부학이 어떻게 교육되고 연구되어 왔는가를 간략하게 살펴보았는데, 이때의 해부학은 서양에서 도입된 Anatomy를 의미한다. 근세 이전의 한의학 역사를 살펴보면 이러한 Anatomy의 범위를 넘어선 광의의 해부학 기록들을 발견할 수 있다. 광의의 해부학이란 개념적으로는 인체의 구조를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관찰을 통하여 인식하려고 한 모든 노력의 결과물이라 정의할 수 있으며, 이러한 결과물들은 인체의 여러 생명 현상과 기능들을 설명하는 근거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근세 이전 한의학 역사 속의 해부학은 내용 상 크게 3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주요 한의학 문헌 기록에서 실제 인체 구조를 설명하거나 골격, 오장육부 등을 측량한 내용이며, 둘째는 본격적인 해부 시행을 통하여 관련 기록들을 남긴 경우이며, 셋째는 특수 분야의 기록들로 외과 분야에서 처치를 목적으로 시술한 내용들과 법의학 분야에서 검시를 한 기록들을 들 수 있다. 이러한 3부류의 기록들은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데, 예를 들어 ‘靈樞’의 「骨度」나 「平人絶穀」에 나오는 인체 각 부분의 길이, 위장관 계통의 길이, 직경, 용량 등은 실제 해부를 거치지 않고서는 알 수 없을 정도로 실제 측량 결과와 매우 유사하며, 외과와 법의학 분야도 결국 이러한 인체 구조 관련 지식들을 응용하여 발전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본격적인 해부’란 공식적으로 허가를 받거나 혹은 개인적인 목적에 의하여 인체 구조를 확인하기 위하여 사체를 대상으로 해부를 시행하고 그 결과물로서 臟腑圖 또는 설명을 남긴 경우를 말한다. 기록이 많지는 않으나 고대부터 이미 이러한 해부가 시행되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漢書」 「王莽傳」의 기사와 이후 북송 시대 범진(范鎭, 1007-1087)의 「東齋記事」에 보이는 歐希範의 해부기록, 조공무(晁公武, 1140 전후)의 「郡齋讀書志」 後志에 나오는 「存眞圖 一卷」의 해제에 보이는 崇寧(1102-1106)연간의 해부기록 등이 있다. 본 기고에서는 우선 「黃帝內經」과 「難經」 등 주요 초기 의서들에 나오는 해부학 관련 내용들을 살펴보고 다음으로 주요 해부 기록 및 관련 자료들을 바탕으로 동양의 해부 프로세스를 복원해 보며, 끝으로 외과 및 법의학 등의 특수 분야의 인체구조 지식들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靈樞」 「骨度」편에서는 사람의 신장을 7척 5촌으로 정하고 머리, 흉곽, 허리 등의 둘레와 인체 각 부분의 골격 길이 등을 상세히 기재하고 있다. 이 편에 나오는 顱, 頤, 缺盆, 𩩲骬, 橫骨, 輔骨, 膝, 膕, 跗屬, 柱骨, 季脇, 髀樞, 京骨, 完骨, 指本節, 膂骨, 尾骶 등은 측정을 위한 특정 지점의 명칭들인데, 인체 내부의 분절된 단위의 구조라기보다는 주로 체표에서 인지되는 것들이며 실제 고증을 거친 결과 12經絡의 길이를 설명하기 위하여 「骨度」편의 수치들이 측량되었다는 것이 확인되어 經絡의 기능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참고로 한의학에서 骨의 명칭들은 낱개로 분리된 내부 구조의 단위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외부의 촉지나 운동의 기능적 단위로 묶어져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靈樞」 「平人絶穀」과 「營衛生會」에는 胃, 小腸, 廻腸, 廣腸 등 소화기관 각각의 둘레, 직경, 길이, 용량, 형태, 위치 등이 기재되어 있는데, 고증을 해본 결과 현재 해부학적 지식에 매우 근접하였다. 단, 일반적으로 大腸으로 알려진 廻腸, 廣腸과 小腸과의 관계가 아직 명확하지 않으며 길이와 형태 등에 따라서 小腸과 大腸의 경계를 확정해야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또한 이러한 小腸과 大腸의 해부학적 관계는 기능적 측면에서 大小便의 생성 및 膀胱, 腎, 胞, 脬 등의 역할을 규정하는 데에 중요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상 「內經」의 해부학적 지식들이 주로 伯高와의 대화에서 많이 등장하며, 해당 편에서 大腸이라는 일반적인 명칭보다는 廻腸, 廣腸이라는 좀 더 분화된 개념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흥미롭다. 또한 「平人絶穀」편의 내용은 어느 정도 분량의 水穀이 인체로 들어와 얼마의 시간이 경과하여 소화되는가의 생리적 변화를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당시 해부지식 습득의 목적을 짐작해 볼 수 있다. 「內經」 중에는 五臟에 대하여 「平人絶穀」편과 같이 구체적인 해부학적 기록은 보이지 않는데, 이후 「難經」 42難에서 처음으로 五臟의 형태, 무게, 길이 등을 기술하였다. 「難經」 이후로는 「十四經發揮」, 「醫學入門」 등의 의서에서 이를 더욱 자세하게 설명을 더하였는데, 예를 들어 「難經」에서 肺에 대하여 “肺重三斤三兩, 六葉兩耳, 凡八葉, 主藏魄.”이라 한 것에 대하여 「十四經發揮」에서는 “六葉兩耳,四垂如蓋,附著於脊之第三椎中,有二十四空”이라고 하여 제3척추 높이에 붙어있으며 24개의 구멍이 있다고 설명하였고, 「醫學入門」에서는 여기에 “下無竅”라는 설명을 추가하여 해부학적인 형태를 더욱 명확하게 기술한 것이다. 이와 같이 한의학 醫書에 나타난 五臟六腑의 측량 기록과 형태 등은 현대 해부학의 내용과 비교하여 보았을 때, 분명히 실제 해부 과정을 통하여 인식한 결과임을 알 수 있으며, 또한 단순한 관찰 결과가 아니라 經絡論과 臟腑論 등 한의학의 핵심적인 이론들과 연결하여 설명하고자 한 구조-기능 결합의 인체관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
論으로 풀어보는 한국 한의학 (64)韓寬淑의 關格論 - “關格은 腸閉鎖症이다” 關格에 대한 기존 주장 비판… 임상경험 및 서양의학설 고려해 재해석 [한의신문] 韓寬淑 先生(1910∼?)은 함경남도 삼수군 출신으로서 일제 강점기에 해당하는 25세부터 활동을 했던 인물로 常春한의원 원장이었다. 1977년 11월에 그의 저작『相對性鍼灸法』이 나오는데, 이 책은 그가 평생 동안 침구학을 연구하여 만들어낸 역작이었다. 그는 1983년 3월 『醫林』제154호에 ‘關格이란 어떤 病症일까?’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는데, 이 논문에서 關格에 대한 기존의 주장을 비판하면서 그 본래의 의미를 임상적 경험과 서양의학설 등을 같이 고려하여 논의하고 있다. 아래에 그 내용을 韓寬淑 先生의 목소리로 정리해 본다. 關格은 일반인뿐 아니라 醫者들도 많이 오해하는 질병이다. 음식을 먹고 체한 듯하여 뱃속이 갑갑하고 아프고 트림을 하면 특히 함경도 지방에서 많이 ‘關格病’이라고 호칭한다. 그리고 이 병이 발생하고 나서 몇 일 내로 急死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음식에 체한 정도의 병으로 그렇게 쉽게 사람이 죽게 되는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醫學入門』에서는 “關不小便格吐逆, 上寒下熱中焦窒”이라고 하고 있으니, 이것은 上焦는 寒하고 下焦는 熱한데 寒은 下降치 못하고 熱은 上升치 못하여 寒熱이 旣濟되지 못하고 中焦가 窒塞되었다는 말이다. 이를 종합하면 서양의학에서 말하는 腸閉鎖症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腸閉鎖症은 심한 腹痛과 嘔吐로 시작하여 大便不通, 小便減少, 鼓脹, 심한 虛脫症 등이 나타나며 치료를 못하면 수일 내로 사망하는 병증이다. 腸의 어느 부분이 폐쇄가 되었음으로 극심한 복통이 일어나고 腸이 막힌 부분 이상의 腸內容物은 입으로 嘔吐하게 되는데 腸內容物이 나오게 되므로 黃色과 糞臭를 띤 嘔吐를 하게 되고 腸이 막힌 부분 이하의 腸內容物은 初一日에 다 大便으로 나가게 되므로 그 후에는 大便이 全然不通하게 된다. 水分이 大腸으로 내려가지 못하게 되므로 처음에는 小便이 減少되다가 차차로 거의 不通하게 되고 渴症도 일어나게 되고 眼窩陷沒하면서 虛脫에 빠지게 되고 鼓脹도 되면서 급히 死亡하는 병증이다. 그런데 ‘關不小便’이라고 하기보다는 ‘關不大便’이라고 하는 것이 더 좋은 診斷法이 될 것임에도 ‘關不小便’이라고 한 것은 환자가 십여일 이상 대변불통이 있는 경우는 자주 있지만 하루만이라도 소변을 못 보아도 급한 병증으로 알았기 때문이기 때문이리라. 嘔吐하다가 급히 사망하는 병증은 急性汎發性 腹膜炎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 증상은 小便이 감소될 수는 있어도 不通이라고 까지는 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膽石疝痛, 腎石疝痛, 神經性 腸疝痛 등의 증상은 고통과 구토 등이 수반되어 關格과 유사한 점이 있지만 小便不通이 없고 급히 사망한 경우도 없어서 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 치료 처방은 中虛에는 補中益氣湯加檳囊 으로 升降시키며, 中虛痰盛에는 六君子湯加栢子仁, 麝香少許, 去白朮을 사용한다. 吐利俱不得에는 旣濟丸, 胃中覺氣有碍, 欲升不升, 欲降不降, 飮食不食에는 二陳湯加木通을 사용하는데, 이 약을 끓여서 먹이고 목구멍을 비녀 등으로 자극하여 探吐하여 그 가로막힌 기운을 토하게 할 것이니 痰을 반드시 토해내는 것은 아니다. 40년 전 함경도에 살고 있을 때 어떤 한의사 선생이 『辨證奇聞』關格門에 있는 和中啓關散이라는 약 2첩을 써서 사경을 헤매던 關格病 환자를 치료해내었다는 경험담을 해주셨다. 그 처방은 다음과 같다. 麥門冬, 白芍藥 各五錢, 栢子仁 三錢, 天花粉 一錢半, 黃連, 滑石 各 一錢, 人蔘, 甘草 各 五分, 桂枝 三分. 김남일 교수·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
조문자 한의사세계 속의 전통의학-10 우나니 의학의 현황과 교육체계 -
백은경 원장의 진료실 이야기 - 001[PDFVIEW1]_userpdf/2008_01_24.pdf[/PDFVIEW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