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은혜 가천대 한의과대학 조교수
<선생님, 이제 그만 저 좀 포기해 주세요> 저자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한의사로서의 직분 수행과 더불어 한의약의 선한 영향력을 넓히고자 꾸준히 저술 활동을 하고 있는 김은혜 교수의 글을 소개한다.
현 의료체계가 말기 암 환자의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기사에도 공공연하게 보도되고 있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호스피스·완화의료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는 단 2개의 의료 직군 중에 한의사가 포함돼 있으나 한의사들을 대상으로 맞춤형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은 부재하다.
그렇기에 한의계 내부에서도 수요에 대한 인지가 부족하고, 말한다 한들 막연한 두려움을 먼저 앞세우게 될 뿐이며, 설사 임상 현장에 일단 뛰어든다 한들 한의치료를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제대로 활용하는 방법은 개인의 역량에 달려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방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 수가 신설
‘우리라서 이런 건가? 한의사만이 홀로 감당해야 하는 과제인가?’라는 의문을 붙들고 있던 순간, 교육을 진행하시던 의과대학 교수님께서 연자 소개를 위해 마이크를 잡으셨다.
“어때요? 원래 하시던 일과는 좀 다르죠. 다학제 팀 회의도 그렇고, 치료 과정도 그렇고…”. 잠시 말을 멈춘 교수님은 쉽게 읽히지 않는 복잡한 감정이 담긴 눈빛으로 우리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차분히 말씀을 이어갔다. “제가 같은 의사들한테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 뭔지 알아요? 너 네가 하고 있는 게 ‘치료’ 맞냐, 사람을 살리는 게 치료지. 그건 돌봄일 뿐이라고. 심지어 옛날에는 이 돌봄이라는 행위들을 봉사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봉사하면서 왜 돈을 받으려고 하냐고 공격도 많이 받았고요. 하지만 이 돌봄이야말로 분명한 치료 행위이고, 여기에 대한 수가가 만들어진 것도 사실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 수가 신설하려고 고생하던 시절 생각하면 지금도 아득합니다.”
지난 5월, 동국대 분당한방병원이 입원형 호스피스 전문기관으로 신규 지정됐다. 모든 한방병원 중에서 최초로 보건복지부의 승인을 받은 사례이며, 한·양방을 통틀어 총 103곳의 입원형 호스피스 전문기관 중 단 1개의, 최초의 한의의료기관이 마침내 나온 것이기도 했다.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두 달 뒤, 한방병원의 호스피스·완화의료 수가 체계가 신설됐다.
호스피스 전문기관은 포괄수가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수가의 유무와 수준은 곧 기관의 존속과 직결된다. 더욱 의미 있는 점은 이 수가가 의과 병원급과 동일한 수준으로 책정되었다는 사실이다.
‘당연히 이렇게 되어야지’라고 생각하기에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너무 많았으며, 이 과정에서 고군분투하셨던 교수님들의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많이 들어 참으로 감개무량했던 소식이었다.

살 수 있다는 확신만이 희망일까?
그러던 중, 그 수가를 최초로 만드셨다는 분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순간 더 깊이 이입될 수밖에 없었다. 이어진 교수님의 말씀 자체 또한 말기 암 환자를 한 번이라도 본 적 있는 의료인이라면 가슴이 뭉클해질 수밖에 없는 내용이기도 했다.
“그때부터, 지금도 여전히 저한테 ‘살리는 치료를 하러 와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 제가 질문을 하나 드려볼게요. 호스피스는 희망이 없는 곳인가요? 호스피스에 오신 분들은 희망을 버려야만 하나요? 희망이 뭘까요? 반드시 살 수 있다는 확신만이 희망일까요?”
이어진 말들은 환자들의 이야기였다. 3개월 선고는 받았지만, 아들의 결혼식은 꼭 참석하고 싶어 하는 환자의 소원을 끝내 들어주고, 몇몇 의료진들은 결혼식에까지 참석해서 다 같이 눈물을 흘렸던 일. 10대 여자아이가 말기 선고를 받고 왔기에 소원이 뭐냐고 물었더니(미성년자가 호스피스로 오게 되면 소원을 들어주는 작은 이벤트를 꾸준히 이어오고 있었다고 한다) “교황님과 함께 세상이 사랑으로 충만해지길 함께 기도하고 생을 마무리하는 것”이라고 하기에 모두가 합심하여 소원을 들어줬던 일.
죽음만큼은 외롭지 않게 맞고 싶다는 환자의 부탁에, 오랫동안 끊겼던 가족과의 연을 어렵사리 다시 이어주어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임종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한 일. 임종의 끝에 의료진들을 바라보며 ‘그간 고마웠다’라고 인사하고 웃으며 눈을 감으신 많은 분들의 이야기.
의학적으로는 모두 같은 ‘종결’ 상태에 이르렀지만, 그 과정은 결코 사소하거나 의미 없다고 치부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살리는 치료’가 무슨 의미인지는 저도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분들의 치료 과정이나 남은 생의 시간에 희망이 없었다고, 저는 감히 그렇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꼭 한 번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호스피스에서의 희망’을 무엇이라고 생각할 것인지.”
“한의계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분명히 존재”
교육이 끝난 뒤, 한 교수님이 조용히 나를 따로 부르셨다. “곧 소식 들릴 거로 알고 있습니다(당시는 동국대 기사가 공식적으로 나기 전이었다). 한의사분이 교육에 와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강의에 참여하는 걸 처음 보는데, 본인도 어떤 뜻이 있어서 그렇게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한의계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대신에, 잘~~해주세요. 잘 해봅시다.”
호스피스·완화의료에서 한의계가 맡을 몫은 이제 시작 단계에 있다. 제도적, 임상적, 이론적, 체계적 모든 면모에서 이제 겨우 걸음을 뗀 수준이다. 그러나 분명히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으며, 반드시 해야만 하는 과제가 있고, 무엇보다도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이 있다. 그 길 위에서, 우리가 우리만의 희망의 정의를 새롭게 써 내려갈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