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한의학회(회장 최도영, 이하 한의학회)가 학회, 협회 임원 등 의료자문 전문가와 일반회원을 대상으로 ‘2021 의료자문 전문가 역량 강화 워크숍’을 개최하고 감정의 정의, 한의 의료행위의 특성과 의료자문의 노하우 등을 공유했다.
지난 20일 대한한의사협회 대강당에서 열린 이번 워크숍은 △민원 및 의료자문 분석 통계(남동우 한의학회 기획총무이사) △감정의 법적 의미와 감정인의 책임(이필관 자문변호사) △의료분쟁시 자문 요령(전선우 전 자문위원) △의료분쟁의 대처와 진행(한수호 세종손해사정 부장)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먼저 남동우 이사에 따르면 2020년 1월~12월 기준 민원, 의료분쟁 자문 요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영향으로 전년대비 98건 감소한 121건이다. 자문 내용을 보면 ‘배상책임보험 관련 의료자문(심사) 협조 요청’이 38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감정촉탁서에 대한 자문 의뢰’가 32건, ‘사실조회서에 대한 자문 의뢰’가 21건, ‘수사 협조 의뢰에 대한 자문 요청’이 15건으로 그 뒤를 이었다. 회신 학회는 대한침구의학회, 척추신경추나의학회, 대한한방안이비인후피부과학회 등 15개다.
남동우 이사는 “한의원에서 주로 사용하는 침, 약침, 침도요법에 대한 자문 요청이 가장 많았으며, 추나요법에 대한 학술자문도 늘어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두 번째 강연에서 이필관 변호사는 학회에서 하는 감정회신의 특징과 사례, 감정 절차와 감정인의 법적 책임을 소개했다.
이 변호사에 따르면 감정은 특수한 지식이나 경험이 있는 제3자가 그 지식이나 경험을 기초로 알 수 있는 법칙을 적용해 얻은 판단을 법원에 보고하는 행위를 말한다. 현행 민·형사소송법은 감정과 달리 선서나 진술 의무가 면제되는 ‘감정 촉탁’ 제도를 두고 있으며 촉탁을 받은 기관은 특정인을 지정해 감정서를 설명하게 할 수 있다.
이 변호사는 “학회에 요청되는 감정은 주로 치료 기간의 적정성과 처치가 적절했는지의 여부가 대부분”이라며 “자동차보험의 치료 기간이나 과잉진료가 문제되는 경우 처치의 적절성을 문의하기도 하는데, 이때 지나치게 편파적인 의견을 제시하면 학회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라고 귀띔했다.
이어 “민사소송에선 부당이득 반환이, 형사소송에선 보험사기가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라며 “개인적으로 화상 치료에 필요한 비용, 처치에 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한의서 내용에 접근 어려워…진료기록 작성이 관건
세 번째 강연에서 전선우 전 자문위원은 한의 의료과실의 종류와 감정의 어려움에 관해 설명하고 의료과실 판단 기준과 진료기록 작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의 의료과실 중 한약 처방 영역의 과실로는 한의사가 진단을 내린 후 내과 치료를 위해 한약을 처방, 조제해 환자를 복용하게 했다가 환자가 한의사의 한약 처방, 조제 행위를 문제 삼은 경우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때 치료를 목적으로 처방한 한약에 약효가 강한 한약재가 있거나 질병이 환자의 신체 상태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면 복약지도가 중요하고, 한약 복용 중 한의사가 수시로 환자와 소통해 환자의 경과를 관찰해야 한다.
침·부항 시술의 과실은 잘못된 방법으로 시술했거나 감염 예방조치를 하지 않는 등 시술 시행 전후 환자의 상태를 살피고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보호 의무’ 위반이 가장 문제가 많았다.
추나요법의 과실은 시행 방법이나 환자의 증상 악화 여부 등 적절한 시기의 문제가 관건이다.
전선우 전 위원은 “한의 의료행위의 적정성을 판단할 때 한의학적 지식에 대한 파악과 이해가 선행돼야 하지만, 한의사나 그에 준하는 한의학적 전문지식을 갖춘 사람이 아닌 재판 관계자들은 서양의학 교과서보다 전문 한의서의 내용에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라며 “한의학은 개인의 주관적이고 경험적인 특성을 강조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한의의료과실을 평가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을 제시하기 쉽지 않은데, 이는 그만큼 재량이 폭이 넓다는 의미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전문가인 한의사들의 단체나 한의과대학에 속한 교수진의 감정 결과나 사실조회 결과를 통해 수집된 지식으로 판단기준을 정립한다고도 했다.
의료과실의 판단에 한·양방의 구분은 없으며 ‘진료 당시 임상의학의 의료수준에서 일반적인 의료인이라면 해당 조치를 했을 것’이라는 추상적인 기준에 따라 결정된다. 의료 기술·지식이 의사들에게 일반적으로 보급된 상태에도 불구하고 지식 부족으로 의료사고가 일어났다면 의료인의 주의의무 위반이 인정된다.
이에 그는 “진료기록에 대한 감정이 매우 중요한 만큼 의료행위에 잘못이 없음을 입증해줄 진료기록을 구체적으로 작성해야 한다”라며 “진료기록이 없으면 어떤 증상에 대한 적절한 처치가 이뤄졌느냐는 질문에 답할 수 없으므로 유리하다고 볼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의료인 손해배상책임, 환자 손해와 의사 과실 인과관계 입증해야
마지막으로 한수호 부장은 의료인의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의 특징을 소개하고 분쟁의 발생 및 진행, 손해평가, 손해액평가 항목 등을 소개했다.
한수호 부장은 의료인의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에 대해 “의료상의 과실뿐만 아니라 의사의 과실과 환자의 생명, 신체 손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을 지게 된다”라며 “환자의 주장을 입증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의료의 특수성을 감안해 환자 측의 입장을 완화하는 특징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의료분쟁은 환자가 유선이나 방문, 내용증명 등의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하면서 시작된다. 의료인은 여기에 유선, 방문, 내용증명 등 대처 방식을 정하고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진행 여부를 결정하거나 전문가에게 관련 내용을 위임하는 등의 방법을 택할 수 있다. 의료인과 환자의 자료 수집, 검토가 끝나면 협회, 전문의 의료자문과 배상 책임의 검토를 거쳐 조정이나 합의, 판결 등의 결과를 얻게 된다.
의료감정은 △최초 진료시 검사, 진단의 적정성 △치료 후 발생한 환자의 이상 증상과 의료인의 의료행위와 인과관계 △발생원인 △이상 증상에 대한 의료인의 조치상의 적절성 △타 의료기관에서 치료내용의 인과관계 △주의·설명 등 의무의 과실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이뤄진다. 답변은 전문성과 특수성, 보편성에 따른 의학적 근거에 바탕을 둔 채 객관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원칙이다.
손해평가는 통상의 손해와 특별 손해, 위자료 등 재산적 손해, 과실상계·손익상계 등의 여부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이뤄진다.
이재동 한의학회 의료자문심의위원장은 개회사에서 “최근 국민의 권리 의식이 높아지면서 의료분쟁도 증가하고 있으며 학술 자문을 요청하는 사안 또한 늘어나고 있다”며 “이에 한의학회는 의료사고와 학술자문 요청에 보다 효율적으로 자문을 제공할 수 있도록 회원학회 전문가분들을 모시고 관련 법률 지식을 안내하고, 의료분쟁 시 자문요령과 의료분쟁의 대처와 진행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자 한다”라고 밝혔다.
최도영 회장은 “이 자리를 통해 참석해 주신 모든 분이 의료분쟁, 의료자문의 특징과 정의 등에 대해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라며 “한의학회 역시 전문가들과 함께 사명감과 책임감을 갖고 자문 전문가들이 적극적인 자세로 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최혁용 대한한의사협회 회장은 영상축사를 통해 “우리 협회는 예측 불가능한 의료분쟁으로부터 회원들을 보호하고, 오로지 진료와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매년 공식배상책임보험 협력사를 정해 회원 여러분께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물심양면으로 힘쓰고 있다”라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