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창호 교수
동국대학교 한의과대학
지난 20년을 돌아보면서 잊을 수 없는 몇 분의 이름을 떠올려본다.
어찌할까 고민에 빠져서 헤어나오기 힘든 때 영감을 주거나, 본인이 의도하든 아니든 내가 늪에서 벗어나올 수 있도록 온정을 주었던 이름들이다.
故지제근 교수, “질병사인분류는 한의사·의사가 하나의 도구로 사용해야 한다” 강조
먼저 故지제근 교수님이 생각난다. 오랜 경륜과 높은 학식에도 항상 솔선하시어 질문하고 답을 찾아오시던 분이다. 삶이 다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의학용어나 질병사인분류 관련 논의나 회의에서 의견을 내시고 조언해주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앞으로도 이런 깊은 감동을 주는 어른을 다시 만나게 될 것 같지도 않다.
고인은 용어나 개념 그리고 분류체계 등에서 기본을 잘 지킬 수 있도록 조언을 아끼지 않으시고, 항시 필요한 공간에서 적절하게 도움이 되는 말씀을 주셨다. KCD 5차 개정 연구의 책임자이셨고, 결정적으로 현재 한의가 사용하는 분류체계의 근간인 한의분류 제3차 개정안을 심의하던 국가통계위원회 정책분과위원회 회의장에서 전문위원으로 참여해주셨을 때 7~8명의 국가통계위원인 통계학과 교수님들 앞에서 “한의분류도 국제분류를 따라야 하고, 질병사인분류는 의사나 한의사나 하나의 도구로 사용해야 국가통계 작성에 도움이 된다”고 일갈해주셨던 2008년 11월27일 오후가 지금 이 순간에도 눈에 선하다.
또 한분 국내 질병분류 분야의 전문가이고, 지난 십수년 동안 KCD 개정 분야 연구를 수행해 오셨던 충북대 의료관리학교실의 강길원 교수를 기억한다. 질병이나 의료 및 건강 분류에 대한 학습이 부족했던 초창기, 과제를 수행하거나 연구를 위한 학습을 진행할 때 탁월한 식견과 핵심이 되는 개념을 잡아가는데 큰 도움을 주셨고, 언제나 어느 장소에서 만나든 냉철하게 핵심을 짚어내는 전문가로서의 태도와 자질을 배우는데 큰 멘토였다.
KCD 6차와 7차 개정연구의 책임을 맡아 실제 개정안을 작성해오셨고, 질병분류 본 분류는 물론 색인, 사용자를 위한 지침서 연구 등에서 함께 연구에 참여할 기회를 가졌었다. 특히 편견없는 연구자로 KCD 6차 개정시 한의분류(KCDOM3)를 개정안의 국내세분화코드
로 표기하여 2011년부터 실질적으로 한의분류가 국내 KCD분류와 통합돼 활용되게 하는데 기여했다. 용기있고 옳은 결정이었다. 최근에는 함께 하는 연구와 일이 거의 없어 왕래하고 있지는 않지만 항상 모르면 물어볼 수 있는 든든한 동료이자 지원군 같다.
보건의료용어와 의료행위 분류 분야 전문가로 가톨릭대 김석일 교수도 생각이 난다. 15년 전 연대 보건대학원 수업시간에서 처음 만났을 때의 그 강렬함을 잊을 수 없다. 뛰어난 학식과 설명력에 감탄을 했었다. 적어도 당시 의료정보학 분야에 대한 교수님의 식견은 남달랐다. 질병분류나 행위분류 등 분야에 연구를 진행할 때 때로는 따갑게 콕콕 짚어서 문제점을 찾아내시고 지적해주시어 당황스러울 때가 있기도 했다. 또한 최근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관련 연구나 일 때문에 서로 같은 방향을 잡고 일을 하지는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긴 하지만, 나에게는 스승이기도 하고 좋은 선배이기도 하며, 항시 모르면 여쭈어 볼 수 있는 든든한 한편이기도 하다.
한의분류에 대해서는 의견이 상당히 다른 면도 있고, 최근에는 필자가 책임을 맡아 진행했던 연구들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는 연구결과를 제출해오고 계시지만 그건 조금도 마음이 상하지 않는다. ICD-11이나 ICHI 혹은 분류학이나 의료정보학 분야의 전문가이고 선배시며, 기본적으로 배우고 연구해보고자 할 때 항시 바른 조언을 해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언제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면서 일을 같이 해보고 싶은 좋은 분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임준규 사무관, 한의분류에 관심을 두었던 담당자
지난달 수년만에 오래된 지인으로부터 휴대폰으로 전화가 와서 반갑게 받았다. 경제사회통계연구실 통계사무관으로 국가 안전통계를 개발하는 일을 하시는 분인데 대뜸 ‘한의의료기관에서도 외상환자가 많더군요. 질병분류에서 손상 중독 외인은 S코드 T코드를 쓰고, 질병이환이나 사망의 외인, 중독이나 외상의 의도 등 원인은 V코드 Y코드를 사용하는데요. 한의원이나 한방병원에서 이것을 의무적으로 코딩하도록 하면 어떻겠습니까? 가능하겠습니까? 많이 어려우실까요?’하는 질문이었다. 임준규 사무관. 이분은 원래 이랬다. 20년전에도.
필자가 대한한의학회 학술이사로 질병분류 관련 일 등에 관여하고 있을 때였던 2000년경부터 당시 통계청 질병분류 담당 주무관이었는데, 한의분류에 관심을 가지고 보다가 모르는 것이 있다 싶으면 수시로 전화를 주었다. 당시에는 한의계나 필자가 한의분류 개정에 많은 공력을 쏟고 있던 터라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고 알려드리고자 노력했다.
손은락 과장, 제3차 한의분류 개정 연구 도움
손은락 과장은 2007년 당시 질병분류 담당 사무관으로 예산작업을 진행해 두어서 이듬해 KCD5 개정 연구와 같은 시기 제3차 한의분류 개정 연구가 가능하도록 해주었다. 과제 발주 당시에는 다른 부서로 이동해서 실제로는 다른 분이 관리했지만 시의성 있게 과제가 나올 수 있도록 준비를 해주었기 때문에 지금의 한의사들이 사용하는 ICD-10 기반의 KCD를 우리가 사용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2007년으로 기억하는데 일본 쯔쿠바에서 열린 WHO WPRO회의에 일본 출장길을 같이 한 적이 있었다. 조용하고 부드러운 성품에 말수가 적어 거의 돌아오는 일정이 돼서야 같은 대학을 나온 동문임을 알게 됐다. 물론 나보다는 몇 살 위였으니 선배님이셨다.
돌아오기 전날 어느 찻집에서 “한의쪽은 어떤 일이 필요합니까? 가장 시급한거 한 개만 말씀해주세요”라고 말을 건네셨다. 그때 “매년 질병분류 개정에 개정안 개발, 코딩지침서 개발, 코딩사례집 개발 등이 있는데, 한의분류 개정에는 통계청이 한번도 연구과제를 주지 않았다. 한의분류도 연구개발이 필요하다”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드렸다.
물론 이 말 때문에 연구비 5000만원 예산이 잡힌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실제 그로부터 10년 후에 다시 통계기준과 과장으로 와 당시 이야기에 대해 얘기를 나눴었는데, 그런 사실을 기억도 못하는 것이었다. 아무튼 필자는 감사한 마음이 크다.
성연국 사무관, 공무원으로서의 책임감에 ‘깊은 감명’
2008년 초반 어느날 오후. 당시 한의협 의무이사였던 정채빈 선배와 함께 찾아와 처음 뵙는 통계청 사무관이 있었다. 성연국. 이제 갓 마흔에 접어든 조교수에게 이런 방문이 처음이라 난 당시 좀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연구과제 계획을 하는 일 때문에 중앙부처 사무관이 대전에서 일산까지 방문할 거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그저 전임 담당 주무관과 전임 사무관에게 각각 따로 받은 명함 1장씩이 같은 사람이어서 누구인가 궁금해서 직접 보고 싶었다는 말 한마디로 이해하기에는 당황스러웠다.
이렇게 처음 보게 된 인연이 이어져 결국 몇 달 후부터는 과제 수행과정에서 수시로 점검받고, 때로는 연구진행 고민에 대한 답을 찾는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인간적으로 삶이나 생활 태도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는 만남의 시작이었다.
2008년 제3차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한의) 개정과제를 숙제로 받았을 때 성 사무관의 태도는 남달랐다. 연구 계획이나 진행 일정 등에 조금의 변경이 있거나 지체되는 것 같으면 전화가 걸려왔다. 다짜고짜 “이 일은 민간기업 일이랑 다릅니다. 국가 일을 하는 것입니다. 민간기업에서 하는 방식으로 요령을 부리면 안되는 일이란 말입니다”라고 사정없이 쏘아붙이곤 했다. 당시 필자는 좀 억울하기도 하고 할 말이 많았지만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연구결과가 반영돼 국가표준분류로 결정되는 과정과 개정안 작성 및 관보 고시 등이 가능하도록 성심으로 도와주었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국가공무원으로서 그가 보여준 당당하고 책임감 있고 성실한 자세, 자녀에 대한 생각이나 노모를 봉양하는 모습 등에서 인간적으로 존경스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