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늬만 승격' 논란을 빚은 질병관리본부(이하 질본)의 질병관리청(이하 질병청) 승격에 대해 보건의료 전문가들이 여전히 쓴소리를 내놨다. 전문가들은 질병관리청의 독립성이 확대돼야 하며 나아가 ‘청’이 아닌 ‘처’로의 승격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왔다.
9일 국회도서관에서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로 열린 ‘질병관리청, 바람직한 개편방안은?’ 토론회에서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개편안에 대해 “보건기능을 관리할 제2차관의 신설이 보건기능을 강화시킬 수도 있으나 차관급인 질병청장과의 갈등요소가 될 수 있다”며 “예산권과 인사권에 독립성을 보장한다고 하지만 감염병, 만성병 정책과 관련해 질병관리청으로의 이관과 관련한 언급이 없어 현재의 질본과 보건복지부의 관계와 차이가 없다”고 꼬집었다.
지난 3일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정부조직 개편안은 보건복지부에 2차관을 신설하고 질병관리본부를 질병관리청으로 승격하되, 질본 내 핵심 연구기관인 국립보건연구원을 복지부로 이관하고 국립보건연구원 내 조직 가운데 감염병연구센터를 '국립감염병연구소'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질본 산하의 국립보건연구원을 복지부로 이관하는 것이 사실상 질본의 연구기능을 빼앗고 오히려 조직을 악화시킨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 교수는 특히 질병청의 연구조직 확대가 필수적이라고 했다. “신설되는 국립감염병연구소마저 복지부 산하로 가게 되면 질본 내 새로운 연구조직을 구성해야 하는데 중복의 소지가 생길 수도 있고 질본의 연구기능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며 “국립감염병연구소는 반드시 질병청 산하에 둬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재의 국립보건연구원이 질병청의 역할 수행을 위한 기초 R&D의 산실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며 “국립감염병연구소를 통한 감염병 연구의 통합 진행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국립보건연구원이 장기적으로 보건의료 R&D의 거점으로 성장하게 되면 독립까지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또 “역학조사원의 신설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역학조사의 시행, 역학조사관의 교육, 역학조사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는 조직을 통해 고도화된 역학조사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윤 서울대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 역시 연구기능 없는 질병청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놨다.
김 교수는 "한국의 국세청, 관세청 등 대부분의 기관이 연구기관이나 교육기관을 갖고 있다"며 "질병청에 연구기관을 두자는 건 단순한 형평성 논리가 아닌 필수적 요구 사안"이라고 말했다.
인력과 관련해서도 “미국과 우리나라를 비교해보면 2018년 기준 GDP가 13배 차이가 나고 우리나라의 질병청에 해당하는 미국 CDC를 비교해도 예산이 13배 차이나지만 질병청의 인력만큼은 미국이 우리나라보다 23배나 많다”고 지적했다.
전 질병관리본부장을 역임한 정기석 한림대 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아예 질병청에서 나아가 ‘처’로의 승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복지부 복수차관제가 시행될 경우 결국 2차관인 보건담당 차관이 질병청에 여러 가지 영향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어 소신 있게 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그럴 바엔 차라리 현 질본 체제가 낫다"며 “신설 기관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확보하려면 보건복지부 산하의 질병청이 아니라 국무총리실 산하의 '질병관리처'로 승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행안부가 내놓은 국립보건연구원 이관(안)에 대해 “인원과 예산을 줄이려는 해괴망측한 시도”라며 “감염병이 자주 오고, 빨리 오고 급속도로 확산되는 시대에 질본의 격상과 확대는 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