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남북 전통의학 용어 표준화를 위한 국회 토론회’ 종합토론에서 전문가들은 남북이 교류하는데 장비 반입 등의 분야에서는 국제적 제약이 크지만 ‘용어’ 분야만큼은 제재가 없어 교류 활성화에 단초가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조민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남북교류협력팀장은 “남북 교류를 할 때는 국제 사회의 제재를 항상 염두해 두고 사업을 해야 하는데 일례로 과학기술정보통신 분야는 장비 반입이 문제가 돼 진도가 못 나가지만 용어 비교 연구는 제재가 없다”며 “현실적으로 무관하게 협력할 수 있는 분야인 만큼 의지만 있다면 진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용어 비교 연구를 한다고 하면 정부가 쓸데없는데 비용을 쓴다”고도 하지만 “기본적인 용어 비교 연구가 돼 있어야 다음 연구인 남북 공동 연구, 더 나아가 학계에서의 공동연구가 가능한 만큼 남북 상호 협력까지 이어지는 기반이 되는 사업이 바로 용어 비교 연구”라는 것이다.
조 팀장은 또 “우리나라에 기초 분야 정부 출연연 기관이 25개가 있는데 각 연구원들이 분야별로 연구를 진행해 왔기 때문에 체계가 다 다른 문제점이 있다”며 “한의학 분야에서 연구를 한다고 해서 반가운 마음인데 이번 연구 프로세스가 모범 사례로 자리 잡았으면 한다”고 전했다.
임보선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편찬부실장은 “겨레말 큰 사전을 만들 당시 북측 사람들을 실제 만나 확인해보니 사전에 있지만 안 쓰는 말들이 많고, 사전에 있어도 뜻이 실제와 다른 부분도 꽤 있었다”며 “좀 더 정밀한 작업을 위해 사전 전문가 외에 국어 전문가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예컨대 북한에서 아이스크림을 지칭하는 말로 ‘얼음보숭이’를 쓴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 북에서는 ‘에스키모’를 쓰는 것으로 확인됐다는 것. 일반 용어 사용에서도 차이가 있는 만큼 전문 용어에서도 이런 차이가 상당히 있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임 실장은 또 “우선 남측에 표준된 안이 있어야 한다”며 “북이 한자에 대한 거부감이 있어 한자가 들어간 말을 잘 안 쓴다는 사실도 고려해야 할 부분”이라고 부연했다.
정영훈 보건복지부 한의약정책과장은 용어 통일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남한 내에서의 의료통일, 더 나아가 이원화된 보건의료 분야에서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정 과장은 “우리나라 내에서도 양방은 영어, 한의는 한자를 주로 쓰는데 서로 용어를 섞어 쓰지 않으려는 부분들이 있는 것 같다”며 “이 조차도 또 하나의 칸막이”라고 밝혔다.
또 그는 “보건과 복지를 어떻게 연계하고 협력할 것인가가 오래된 숙제인데 용어와 관련된 부분도 분명 있다”며 “소모적인 부분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또 정 과장은 “보건복지부에서 추진하는 남북 협력 사업들은 남한이 가진 기술력과 자본, 북한의 한약 자원을 융합시켜 호혜적 이익을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특히 한약 자원과 관련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려면 자원에 대한 분류가 돼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명칭이 정리돼야 하는 만큼 남북 협력이 활성화되면 전통의학 분야에서는 용어 통일이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성수현 한국한의약진흥원 공공정책팀장은 “용어 표준화라는 게 단순히 경혈이나 용어를 대조해서 만드는 게 아닌 것 같다”며 “남한이 가진 용어는 물론, 용어에 따른 분류나 종류의 차이도 있는데 이를 통합하고 표준화한다는 것은 서로를 이해하는 차원을 넘어 서로의 보건의료 시스템을 이해하고 공통의 통계를 생산하는 근거가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예컨대 ‘한약 규격품’이라고 하면 식약처 약전이나 생약규격집에 수록된 기준에서 검사를 거친 것을 뜻하는데, 정책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단순히 용어를 합치긴 어려운 부분도 있다는 얘기다.
권오민 한국한의학연구원 글로벌전략부장은 “남북 교류가 다시 등장했는데 ‘지속성’과 ‘구체성’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해야 할 것 같다”며 “용어 관련해 사전 전문가들이 많은데 올해 중점적으로 해야 할 사항은 ‘상호 호혜성’이라는 원칙하에 용어와 관련한 큰 그림을 그리고, 사전을 만든다면 어느 수준의 용례까지 만들지 단계별로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고 제안했다.
최성열 대한한의학회 교육이사는 “통일 후 환경 변화를 고려해 전통의학 분야에서도 학술 차원의 대비가 필요한데 근간은 ‘용어 표준화’가 될 것”이라며 “42개의 회원학회를 거느린 한의계 최대 학술 단체 전문가 집단으로서 다방면에서 지원하고자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