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최초의 의국인 제민루에서 활동한 유의(儒醫) 이석간(李碩幹)선생의 저술서 ‘경험방(經驗方)’을 통해 식치(食治) 문화를 짚어보는 학술대회가 열렸다.
지난 26일 영주시와 최교일 자유한국당 의원이 주최해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영주 제민루 건립이념과 이석간 경험방의 가치를 찾는 2019 선비 식치 학술대회’는 영주의 선비 식치 문화를 고찰하고 역사적 가치를 조명하기 위해 마련됐다.
식치는 음식으로 질병의 치료를 돕는 식이요법으로, 음식의 특성에 따라 한의학적 원리를 적용해 치료 효과를 얻는 것을 의미한다.
조선 왕실의 식치는 이후 민간에도 보급됐다. 조선 최초의 의국인 제민루에서 활동했던 영주 출신의 유의 이석간 선생이 저술한 ‘이석간경험방’에서 민간 식치의 뿌리를 찾을 수 있다.
‘한의 고전문헌과 전통식치’에 대해 주제발표를 맡은 안상우 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장은 우리나라의 유구한 식치 전통을 소개하며 “고려 사람들은 병이 약간만 있어도 여러 약차를 이용해 예방했으며 가벼운 질환은 차로 조치를 취했다”며 “식치가 이석간 선생이 발명한 것처럼 착각할 수 있는데 삼국 시대부터 음식으로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은 아시아 지역에서 고민해 왔던 부분”이라고 운을 뗐다.
안 단장에 따르면 조선 세종 때 발간된 의학 백서인 의방유취와 사대부 문집 등에는 ‘모든 병에 있어 약이나 침, 수술 등의 치료를 하기 전에 먼저 음식으로 조율해보고 그래도 낫지 않으면 의사를 불러 치료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언급돼 있다. 치료의 대전제는 음식 조절이라는 생각이 조선에 지배적이었다는 것이다.
이후 식치 전통은 궁중에서 시작해 사대부로 내려오면서 사대부가 음식 먹는 것을 일반 상민들도 흉내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동의보감 내 ‘식약료병론’이라는 전문 챕터에는 ‘식사와 약으로 병을 치료하는 법: 근강의 근본은 올바른 식사에 있으며 병을 고치는 길은 약에 있다. 음식의 올바른 것을 모르면 우리의 생명을 온전하게 할 수 없고 약성을 분명히 모르고는 병을 고칠 수 없다’라고 기술돼 있다.
동의보감 이후 양생식치가 확산되면서 17세기 동의문견방에는 단방 위주의 구급요법이나 식치방이 소개됐고, 1799년 제중신편에는 동의보감에 없는 약선 처방 22종이 수록됐으며 1918년 구황벽곡비방에서 보듯 식치가 상용화됐다.
이석간 경험방의 위상과 관련해 안 단장은 “우리나라에 있는 전통의약문헌 가운데 제일 오래됐다고 알려진 게 김영석이 편찬하고 향약집성방에 수록된 고려 최초의 한의서인 제중입효방(濟衆立效方)인데 중풍 반신불수 치료와 관련해 솔잎찜질법을 활용한다고 돼 있다”며 “이석간 경험방에는 솔잎을 이용해 죽에 타먹는 방법으로 변형돼 나와 있는데 솔잎을 사용한 측면에서 향약 전통이 그대로 이어져 온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이석간 식치법의 특징으로는 △죽과 시즙의 사용 △밥을 이용한 치료법: 밥에 약재를 섞어 먹거나 잡곡의 약성을 응용한 정통 식치 △음식류: 26조 39종의 효능과 금기사항 △수양법 △기식법: 30조 금기음식, 배합금기 등이 소개됐다.
강구율 동양대 교수는 “이석간 선생은 애민정신을 바탕으로 의술을 펼친 유의였다”며 “식치는 결국 약을 구하기 어려운 백성이 음식을 통해 병을 치료하고 예방의학으로 면역력을 길러 병을 생기지 않게 하는 개념”이라고 전했다.
이어진 패널토론에서 강연석 원광대 한의대 교수는 “식치 방론은 상당히 난해한 면이 있는데 완치라는 개념보다 질병 치료가 어려운 상황해서 복용해도 되거나 상시 섭취 가능하며 병을 나빠지지 않게 하는 음식으로 해석하는 게 좋을 것”이라며 “영주시에서 추진하는 이 사업이 타지나 외국인 관광객에게 너무 초점을 맞추기보다 지역 사회의 국민들을 위해 잘 활용됐으면 좋겠다”고 언급했다.
또 “우리나라에서 그동안 중국산 약재를 많이 써왔는데 지역 사회의 재료를 특산화시켜 활용하는 부분에 대해 정책적 검토가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고 조언했다.
김동율 세명대 한의대 교수는 “학술적으로 조선시대의 지역사회 식치 문화, 선비정신과 식치의 연관성, 영주시의 발전을 위한 고견을 들을 수 있는 자리였다”며 “음식을 통한 치료에 가족, 내 주변 사람은 물론 나아가 지역 사회를 위한 마음이 담겨 있는데서 애민유의로서의 이석간을 다시 바라보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안상우 단장은 “식치 문화는 결코 한 두 사람 전문가 손에 의해 구현될 수 없으며 마찬가지로 영주 지역만의 고유한 콘텐츠라기보다 한민족에 있던 전통인데 잊혀져 있을 뿐”이라며 “특히 식치는 한의학의 원리와 전통 약재에 대한 선행 지식이 있어야 하는 만큼 기본적으로 한의계의 도움 없인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식치원에서 좋은 음식을 만들어도 환자 체질에 맞는 음식을 골라주려면 전문 한의사들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이어 “식치 연구도 식품연구원, 한의학연구원이 함께 현대 과학적으로 효능을 입증하고 안전성평가연구원까지 참여해 융합연구를 하고 있다”며 “식치원이라는 출발점은 잘 세워진 상태에서 시나 인근 한의대 등이 협력해 민족 자산으로 이끌어 나간다면 케이팝처럼 해외로 수출할 수도 있다. 이석간의 목표가 바로 이 지점이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