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마의 치료법이 적힌 희귀한 의료서적이 발굴돼 관심을 끌고 있다.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조현재)은 지난달 30일 안동 금포고택으로부터 기탁받은 543점의 한국학 자료 가운데 다량의 의료 전문서적 중 ‘보적신방’(保赤神方)을 발굴했다고 밝혔다.
‘보적신방’은 유년기에 걸리는 마마에 관한 전문 의료서적으로, 마마에 대한 원인과 예방법, 해독법 등이 명료하게 설명돼 있다. 천연두, 두창 등으로 불리는 마마는 발열, 수포, 농포가 수반되는 급성 질환으로 조선시대에 사망률이 매우 높았던 악성 전염병이다.
서명의 ‘보적’(保赤)은 ‘서경’의 ‘갓난아이를 보호하듯’이란 구절을 인용해 제목으로 삼은 것으로, 자기자식을 키울 때 정성을 다하듯 의술을 베풀 때에도 마음을 다 기울여야 한다는 ‘존애’(存愛)의 의미가 담겨 있다. 또한 ‘신방’(神方)은 ‘신비한 처방’ 또는 ‘신기한 방법’이란 뜻으로, 의료서적의 제목에 자주 사용된다.
책의 크기는 가로 7cm×세로 19cm이며 60쪽 분량의 전후 양면에 붓으로 단정하게 필사돼 있다. 체재는 △서문 △권1 △권2 △필사 기록 순으로 구성됐고, 장정 형태는 한지를 이어 붙여 똑같은 크기로 접고 좌우면에 표지를 붙인 이른바 ‘절첩장’의 형식이다. 이러한 제책 방식은 고려시대 사경에서 흔히 보이며, 특히 조선시대 수진본의 사본 제작에도 많이 이용됐다.
국학진흥원에 따르면 ‘보적신방’의 첫머리에는 1806년에 퇴계학파의 관료학자 권방(1740∼1808)이 지은 서문이 붙어 있는데, 이 서문은 그의 ‘학림문집’에는 실려 있지 않아 자료적 가치가 더욱 높다는 설명이다.
특히 권방은 서문에서 ‘갓난아이를 돌보듯 하면 병은 자연히 치료될 것이다’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마마에 관한 치료도 의원의 성심성력에 달려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또한 그는 마마의 치료에서 열병과 종창의 두 분야에 모두 유의해야 함을 지적하고, 마마의 치료에서 오장 가운데 비장의 기능을 든든하게 하고 생기를 충족한다면 고치지 못할 걱정이 없다고 제시했다.
또한 권방은 옛날의 치료법에 구애될 필요가 없음을 제시했는데, 그 이유는 사람의 타고난 기운이 시대에 따라 허실이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으로, 체질과 생리에 맞게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처방해야 좋은 효험을 낼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또 “이 책의 처방대로 따르면 마마가 완쾌가 될 것”이라고 명시해 이 책의 가치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보적신방’의 저자는 변광원으로 본관은 밀양, 자는 여정, 호는 요산으로, 대대로 의업을 가업으로 하는 세의(世醫)다.
변광원은 한의학 이론에 정통해 자신의 호를 딴 ‘요산신방’(樂山神方)을 지어 만병을 치료하는 바탕으로 삼았으며, 또한 마마 치료에 관한 중국 및 조선 학자의 제설을 집성하고 자신의 견해를 덧붙여 ‘보적신방’을 편찬했다.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권1은 두진의 근원, 예방법, 증세, 전염, 약물 치료, 멸반 등에 대해 서술하면서 방제의 여러 효능, 약물이 작용하는 원리, 구성 약물의 성분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의학 이론과 진단 및 치료 경험에 입각해 마마에 대한 임상적 견해가 실용적인 관점에서 정리하는 한편 발병 전의 예방을 중시하면서 마마의 색깔, 금기사항, 식이요법, 약물 복용시에 준수할 사항도 함께 제시하고 있다.
또한 권2에서는 발열, 발진, 수포, 해수, 중풍, 불면증, 구토, 설사, 변비, 딱지 등의 원인과 증상, 그리고 약방, 음식 등 치료에 대해 간략하지만 명료하게 제시하는 한편 두창이 나은 뒤에도 남아 있는 독의 증상에 관해 약재를 다룬 탕액 등의 치료방법을 증상에 따라 설명하고 있으며, 홍역이라 불리는 마진에 대해서도 근원과 형상, 증세, 치료법 등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한편 국학진흥원에서는 ‘보적신방’의 가치로 우선 마마의 치료에 대한 이론적 연구 및 일상에 직접 활용된 처방이 조화를 이루며 합리적으로 제시된 점을 들었다. 즉 마마의 예방법 및 치료, 그리고 마마를 앓고 난 뒤 주의할 사항이 보완적 관계를 이루며 설명됐다는 것이다.
또한 생명을 중시하는 ‘활인’(活人)의 정신과 사물을 구제하려는 ‘존애’(存愛)의 인식이 책의 곳곳에 묻어난다는 점에서도 커다란 가치를 부여했다. 단적으로 책의 제목에서도 이러한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실제 조선시대에는 전쟁으로 죽은 사람보다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이 많다는 연구결과도 있는 등 환자의 고통을 안타깝게 여기는 저자의 측은한 마음이 성심을 다해 의술을 베풀겠다는 다짐으로 표현됐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책 서두에 실린 권방의 서문 자체가 한의학적으로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다. 권방은 당시 퇴계학파의 중진학자로 관직에서 물러난 뒤 자연을 사랑하며 학문과 덕행 수양에 전념했던 인물이다. 그는 그리 길지 않은 서문에서 마마의 치료 역사를 명료하게 정리해 두었는데, 그도 유학자로서 상당한 의학지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와 관련 국학진흥원은 “마마에 시달리며 죽어가는 민초들의 비참한 삶을 목격한 변광원은 ‘활인’과 ‘존애’의 정신으로 마마 치료법을 ‘보적신방’에 담았으며, 그는 병이 들기 전에 미리 예방할 것을 강조하면서 심신의 조화를 치료의 기본으로 삼았다”며 “그의 예방 중심의 의학정신은 그가 체질과 건강의 상관관계를 중시한 데서 찾아지는데, 책자의 처방 가운데는 그의 독자적인 견해가 담긴 경험적 비방이 다소 포함돼 있다. 그러한 설명은 비교적 구급방에서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데, 특히 마진에 절실하게 필요한 치료 처방이 상세하게 열거돼 의학사적 가치가 높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