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의신문=최성훈 기자] 동의보감과 한의약의 세계화를 위해 국내외 연구자들은 한의약의 과학화와 함께 전통지식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수 천 년 간 경험으로 증명된 한의약에 현대과학적인 가치를 부여하되 문화, 지식, 삶, 민족 등의 이름으로 함께 이어져 온 역사적 가치 또한 지켜나가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26일 한국한의학연구원(원장 김종열)이 주최하고 동의보감사업단이 주관한 ‘2020 동의보감 국제컨퍼런스’가 ‘대한민국 UNESCO 가입 70주년 평화를 심다, 세계를 품다 –동의보감 새로운 100년을 향하여’를 주제로 경남 산청 동의보감촌에서 화상 회의 방식으로 개최됐다.
안상우 한의학연 동의보감사업단장은 인사말에서 “올해는 동의보감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지 11돌이 되는 해로 지난 동의보감 역사에서 허준 선생은 유배지에서도 집필을 계속해왔다”며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가 위기에 봉착한 만큼 동의보감 등에 담겨진 전통의학의 지혜를 빌려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전통지식에 과학적 가치 부여해야”
먼저 ‘전통지식의 과학화와 세계화’를 주제로 기조강연을 맡은 한국식품연구원 권대영 박사(현 한국과학기술한림원 농수산학부장)는 “전통지식이 과학적으로 포현될 때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제시했다.
권대영 박사는 전통지식의 정의에 대해 “우리 민족 고유의 지식으로 3000년, 4000년간 축적된 역사”라며 “만약 이것이 비과학적이었다면 현대에 이르기 까지 전통지식으로 살아남을 수 없었다”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전통지식이 많은 사람들에게 외면 받은 이유에 대해 그는 “충분히 과학적임에도 불구하고, 전통지식에 관심을 안 가졌거나 비과학적이라 폄하했기 때문”이라며 “대표적으로 한의학이 그렇다. 동의보감은 전통지식을 집대성했음에도 그러한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전통지식에 과학적 가치를 부여하고 사람들과의 반복적인 교류에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권 박사는 그 교류의 키워드로 ‘과학’을 꼽았으며, 이를 통해 신뢰관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권 박사는 “서양은 이미 2000년, 3000년 전부터 과학을 서로 신뢰를 쌓아가는 수단으로 삼았다”면서 “우리도 분석적인 사고를 통해 전통지식을 소통의 수단으로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지 고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전통지식이 관심 밖으로 밀려난 것도 이를 쉽게 과학적 용어로 이야기를 못하기 때문에 발생했다”며 “그래서 가설을 해석하려는 시도조차도 인문학적인 설을 붙여 이야길 할 수밖에 없었다. 자칫 비과학적으로 비칠 수밖에 없었던 이유”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권 박사는 동서양 사상에서 오는 차이를 극복하는 노력이 필요함과 동시에 이 두 학문 사이의 다름도 서로가 인정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의학에 있어 사람들이 주목하는 건 서양의학과 어떠한 다른 점”이라면서 “그렇기 때문에 먼저 다양성을 인정해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사적 맥락에서 문화, 지식, 삶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데 이 세 가지 부분에 대한 이해 없이는 동서양 학문간 서로 소통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본초경집주 등재 약재 730여종 웹DB 구축
싱가로프 난양공과대학교 마이클 스탠리 베커 교수는 ‘본초경집주의 전산화 및 활용 연구’ 주제강연을 통해 “한의문헌을 컴퓨터가 이해하고 그 지식을 해석할 수 있다면 한의연구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다”며 컴퓨터 전산화를 통한 세계화 방안을 제시했다.
마이클 베커 교수는 싱가포르 난양공과대에서 LKC 의과대학 의료인문학 조교수에 재직 중이며, 국제아시아전통의학회(IASTAM) 부회장 직을 수행하고 있다.

그는 현재 도홍경이 집필한 5세기 책 ‘본초경집주’에 나와 있는 약재 목록을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전산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가 전산화한 소프트웨어를 살펴보면 약 730종에 달하는 본초정보를 산지, 채집시기, 효능별로 소개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정보를 지도화해서 전체적인 흐름을 거시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 점도 특징이다.
베커 교수는 “전통의학이 가지고 있는 경험의학을 현대화함으로써 더욱 풍부한 생약물질에 대한 활용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디지털화를 통한 동아시아 고대 약물 지식이 더 세계화되고 상용화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더욱 발전되길 희망한다”고 설명했다.
국외 서적 발굴도 세계화 방안 밑거름
이와 함께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김현구 연구원(박사과정)과 미국 캘리포니아 다솜한국학교 최미영 교장은 해외에 나가 있는 “한의고문헌 발굴과 재외교민 역사 교육 역시도 동의보감과 한의약의 세계화 방안에 큰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김현구 연구원은 한국한의학연구원 문헌연구센터 연구원으로 재직한 후 현재 영국국립도서관, 케임브리지대 도서관 및 니덤연구소 도서관, 런던 동양·아프리카대학 도서관, 웰컴도서관 등에서 소장 중인 한의고문헌을 찾는 연구를 하고 있다.

그가 낯선 영국땅에서 찾아낸 한의고문헌만 해도 19세기 간행된 ‘동의보감’, ‘신편의학정전’, ‘경사증류대전본초’, ‘의림촬요’, ‘제중신편’ 등이다.
김현구 연구원은 “주로 중의고문헌 목록에서 한의서를 발굴할 수 있었는데 해외 도서관이 소장 중인 한의고문서의 발굴을 통해 웹 데이터베이스 제작 및 전시회 기획도 세계화와 한의약 정체성 확립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미영 교장은 미 캘리포니아 거주 한국계 미국인에게 한국 역사문화 교육을 위해 지난 15년 동안 헌신한 교육자로, 동의보감을 통해 민족의 뿌리와 정체성을 알리고 있다.
그는 “동의보감과 관련한 체험 활동 부스와 역할극 등을 통해 동포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 동의보감과 한국 문화유산 알리기에 주력하고 있다”며 “전 세계에 한국의 자랑스러운 세계기록유산을 널리 알리고 동포 학생들에게도 자긍심을 심어줄 수 있는 작은 도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