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신문] 제78차 세계보건총회(WHA78)에서 『WHO 전통의학 전략: 2025~2034』 (전통의학에 전통보완통합의학, traditional, complementary and integrative medicine 개념 포괄, 이하 TCIM)가 회원국들의 지지 속에 최종 채택되었습니다.
이 전략의 채택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가 절차적으로 기여한 내용과, 한의약의 입장에서 바라본 주요 의의를 한의신문 지면을 통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한국의 절차적 기여
우선, 전략 수립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수행한 절차적 기여를 살펴보겠습니다. 2014년 제67차 세계보건총회(WHA67.18)에서 채택된 『WHO 전통의학 전략 2014~2023』의 종료를 앞두고, 2022년 11월 우리나라를 포함한 13개 WHO 회원국은 신규 전통의학 전략 개발의 필요성을 공식적으로 제기하였습니다(EB152/CONF./9). 이 과정은 보건복지부 한의약정책관과 주제네바 대한민국 대표부의 조정을 통해 이뤄졌습니다.
2023년 2월, WHO 제152차 집행이사회에서는 기존 전략을 2025년까지 연장하고, 그 기간 내에 신규 전략을 개발할 것을 요청하는 안건이 상정되었습니다(EB152(18)). 같은 해 5월 열린 제76차 세계보건총회에서는 해당 안건이 최종 채택되었으며(WHA76(20)), 이에 따라 WHO 본부 전통보완통합의학과(필자가 현재 파견 근무 중인 부서)에서는 본격적인 전략 개발에 착수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국제적 흐름을 예의주시하던 보건복지부 한의약정책관은, 2023년 하반기 WHO 서태평양지역사무처 회원국 회의를 우리나라에서 개최하기로 내부적으로 결정하였고, 이에 따라 2024년 8월 28일 서울에서 WHO 서태평양지역사무처와 한국한의약진흥원이 공동 주최한 회의가 열렸습니다. 이 회의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회원국들의 의견을 전략 초안에 반영하는 데 역할을 했습니다.
앞서 2023년 11월28~30일에 WHO 본부 주최 전문가 회의에는 김용석 교수가 우리나라 대표로 참석하였으며, 그에 앞서 11월9일 한국한의약진흥원은 ‘WHO 전통의학 신규 전략 수립 관련 유관 기관 전문가 회의’를 열어 준비 작업을 지원했습니다.
2024년 4~5월에는 온라인 공개 검토 과정을 한의계에 공유하고 참여를 독려했으며, 7월10일에는 한국한의약진흥원 주관으로 전략 중간본 검토를 위한 국내 전문가 회의도 다시 개최되었습니다.
이후 WHO 본부는 6~8월 사이 여섯 개 지역사무처와 지역 회원국 회의를 잇달아 개최했으며, 우리나라는 그중 하나의 주요 회의를 성공적으로 주최하게 되었습니다.

2025년 2월, WHO 제156차 집행이사회에서 신규 전략이 공식 제출되었습니다. 유럽, 특히 EU 회원국들은 전략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였지만, WHO 집행이사국인 우리나라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회원국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추가 검토 회의’를 전제로 전략 채택이 결정되었습니다(EB156(28)).
이후 2025년 2월부터 4월 초까지 유럽 회원국과의 별도 회의 및 두 차례의 WHO 전체 회원국 회의를 통해 전략 최종본이 마련되었으며, 제78차 세계보건총회에 상정되어 최종적으로 채택되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주도적으로 파악한 보건복지부 한의약정책관은 대한한의사협회와 한국한의약진흥원으로 대표단을 구성하여 세계보건총회에 참석하는 것을 지원하였고, 마침내 『WHO 전통의약 전략: 2025~2034』가 공식 채택되는 성과를 이루었습니다(WHA78(14)).
이러한 결과는 보건복지부 한의약정책관, 국제협력관, 주제네바 대한민국 대표부, 한국한의약진흥원, 한국한의학연구원, 경희대학교, 대한한의사협회 등 한의약계의 긴밀한 협력과 지지 속에서 가능했습니다.

한의약의 입장에서 본 전략의 주요 의의
이번 전략은 한의약계에도 실질적인 의미를 지니며, 그중 특히 주목할 만한 세 가지 내용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첫째, 전략목표 1(근거 중심 강화)의 두 번째 방향은 “관련 연구 방법을 탐색하고 기술 발전의 활용을 최적화한다”는 것입니다. 전략 문서에서는 “첨단 기술의 합리적인 활용을 극대화하는 것은 TCIM 연구에 적절하고 혁신적인 접근을 개발하는 데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의계가 보유한 실사용 데이터(real-world data), 빅데이터, 인공지능(AI) 기술 역량의 확산은 물론 과학의 발전에 따른 첨단 기술을 한의약에 접목하고 응용할 수 있는 기회를 의미합니다.
둘째, 전략목표 3(보건체계 내 통합 활용)의 두 번째 방향은 “전 생애 주기와 돌봄 연속선 전반에 걸쳐 TCIM 서비스의 통합을 촉진한다”입니다. 구체적으로는 “특정 건강 상태와 생애 주기를 고려한 TCIM 임상진료지침과 돌봄 경로를 개발한다”고 명시되어 있으며, 이는 한의계가 지난 10여 년간 축적해온 표준임상진료지침 개발 노하우가 국제 보건 향상에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셋째, 다소 생소했던 개념인 ‘원헬스(One Health)’가 전략목표 4에 포함되었다는 점입니다. 전략 초안에 사용되었던 ‘Planetary Health’라는 용어는 필자가 여러 문서를 검토한 끝에 ‘원헬스’로 변경하였습니다. 원헬스는 인간, 동물, 환경을 아우르는 다분야 간 협력을 의미합니다. 전략에서는 원헬스가 전략 목표에 포함되었으며, 구체적으로 “TCIM과 관련 이해관계자 간 시너지를 통해 원헬스에 기여하고, 원헬스 공동 실행계획 이행 과정에서 전통의학 지식 관점을 제공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전통의학, 팬데믹 조약에도 명시
이번 제78차 총회의 또 다른 주요 성과는, 팬데믹 대응을 위한 역사적인 조약이 미국을 제외한 모든 WHO 회원국 간에 체결되었다는 점입니다(WHA78.1). 해당 조약에는 전통의학과 관련된 다음과 같은 문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범정부적 접근과 범사회적 접근이 국가 및 지역사회 수준에서 광범위한 사회 참여를 통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인식하며, 전통의학을 포함한 원주민과 지역사회의 문화 및 전통 지식의 가치와 다양성이 팬데믹 예방, 대비, 대응 및 보건의료체계 회복을 강화하는 데 기여함을 추가로 인식한다.”
또한 ‘원헬스’는 조약 제1조 2항, 제5조 등에 명시되어 있으며, 이는 국제 보건 위기에서 전통의학과 활용될 기반을 제공합니다. 질병관리청장께서도 “조류인플루엔자의 종간 전파와 인체 감염 위험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인수공통감염병 대응은 사람-동물-환경을 함께 고려한 원헬스 접근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한의신문, 2025년 6월 5일자 보도).
향후 10년, 한의약의 국제적 기여 기대
정부와 한의계는 지난 2년여에 걸쳐 WHO 전통의학 전략의 개발과 채택 과정에서 실질적이고 의미 있는 기여를 해왔습니다. 이 전략은 아홉 가지 기본 원칙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전통보완통합의학 (TCIM)의 제품과 서비스는 전체론적 관점을 수용하면서도 근거 기반이어야 하며, 가능한 최고의 건강과 웰빙 수준에 기여해야 합니다.

<안상영 박사>
TCIM은 원주민의 권리를 존중하고, 생물다양성을 고려한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문화적으로 적절하고 사람 중심적인 의료를 촉진해야 합니다. 이러한 의료서비스는 보건의료체계 내에 통합되어야 하며, 차별 없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제공되어야 한다는 점도 함께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 전략의 이행을 통해, 기술 기반의 혁신과 국제 협력을 바탕으로 한의약이 글로벌 보건에 실질적 기여가 확대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