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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4월 30일 (목)

김호철 교수

김호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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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류한약, 탕제와는 완전히 다른 약이다”

꼭 알아야 할 한약이야기-15



증류한약은 한약을 전탕할 때 발생되는 수증기를 액화시켜 만든다. 식물성 한약재들은 대부분 휘발성분들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전탕할 때 휘발되는 성분들을 액화시키면 쉽게 증류한약을 만들 수 있다. 중국에서는 이슬이 생기는 원리와 같다고 ‘로제(露劑)’라고 한다. 그리 널리 쓰여지는 제형은 아니지만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한약을 복용하기 싫어하는 소아환자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 같다.



증류한약을 사용할 때 반드시 알아야 할 사실은 아무리 같은 처방이라고 하더라도 증류한약은 탕제와는 전혀 다른 한약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십전대보탕 탕제와 십전대보탕 증류한약은 완전히 다른 약이다. 탕제는 한약을 추출된 탕액에 남아있는 성분들을 함유하지만 증류한약은 섭씨 100도에서 추출되어 휘발되는 성분들을 함유한다. 그래서 이론적으로는 탕제와 증류한약은 공통되는 성분이 하나도 없다.



그런데도 증류한약을 전통처방의 탕제와 같은 치료용도로 사용한다면 이는 매우 잘못된 일이다. 왜냐하면 휘발되는 성분들은 우리가 전통적으로 치료에 응용하였던 성분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증류한약을 사용하는 한의사들은 한약처방에 기록된 효능이 증류한약에서도 나타날 것이라고 믿고 사용할지도 모르지만 탕제에 남아있는 성분과는 다르기 때문에 탕제가 가진 효과를 그대로 나타낼 수는 없다.



중국에서 사용되는 대표적인 로제인 ‘금은화로(金銀花露)’는 금은화가 청열해독이나 발산풍열하는 효과로 쓰이는 것과는 달리 여름철 갈증이 날 때 이를 마심으로써 갈증을 없애는데 쓰인다. 금은화 탕제와 금은화 로제의 용도를 다르게 쓰는 것이다.



증류한약이 모든 경우에 탕제의 효능과 완전히 다른 것은 아니다. 한약 중에는 휘발성분들이 주 효능성분인 경우에는 전탕할 때 이 성분들이 휘발되지 않도록 짧은 시간만 추출하는 후하(後下) 방법을 사용한다. 예를 들면 발산약이나 방향화습약 등 방향성이 높은 한약들이다. 이 경우에는 휘발되는 유효성분들이 증류한약에 함유되어 있을 확률이 높아서 탕제의 효능과 증류한약의 효능이 비슷할 수 있다.



그래서 발산약이나 방향화습약에서는 증류한약과 탕제의 효능이 같을 수 있다. 열과 함께 오한이 나며 두통이나 전신통 등이 나타나는 외감풍한증이나 두통과 함께 발열, 인후통, 안충혈, 피부발적 등이 나타나는 외감풍열증에 효과가 있을 수 있으며, 비위에 습이 많아서 발생하는 식욕 부진이나 복통, 설사 등을 치료하는 증상들에도 증류한약의 효과가 탕제와 동일하게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설령 이 경우라고 할지라도 탕제가 훨씬 많은 성분들을 함유하므로 증류한약보다 낫다. 증류한약이 효과가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전통적인 처방이 나타내는 효능과 같지 않다는 것이다.



증류한약을 사용할 때는 또한 제조과정과 품질을 표준화하여야 한다. 많은 한의원에서 증류한약을 제조하기 위하여 감압농축기를 사용한다. 감압농축기는 압력을 낮추면서 전탕하면 100도보다 낮은 온도인 70도, 80도 등에서 증발이 일어나게 하는 기기이다. 감압농축으로 증류한약을 만들 때는 감압하는 정도에 따라 끓는 점이 달라서 증류되는 한약성분들이 다르게 된다. 정상 기압 하에서는 휘발되지 않는 성분들도 쉽게 휘발되어 전통탕제에서 추출되는 성분들이 일부 추출될 수 있다. 그러므로 감압 정도를 표준화하여 항상 일정한 압력으로 감압시켜야 동일한 품질의 증류한약을 얻을 수 있다.



증류한약은 최근에 개발된 제형이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사용한 근거가 없다. 증류한약이 복용에 간편하다고 하여 많은 한의원에서 이용하고 있으나 증류조건과 증류물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동의보감에 나온 탕제의 효능을 증류한약에 그대로 응용한다면 원하는 효과를 얻을 수 없게 된다. 증류과정에서 한약의 기미가 전달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그러므로 증류한약을 임상에 사용하기 위해서는 휘발성분들의 효능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어 그 근거가 확보되어 있어야 한다. 함유된 모든 성분들에 대한 연구가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증류추출물에 대한 효능 연구결과라도 확보되어 있어야 한다. 근거가 부족한 제형 개발로 과학적인 한의학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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