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신문=김대영 기자] 『광무(光武) 2년(1898년) 4월 29일, 대한제국군 친위대 소속 군의관 곽종구(郭鍾龜)는 제2대대 병든 군사들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던 중 오한과 함께 배가 끓듯 아프다고 호소하는 박성근 병사를 검진하게 된다. 배에 한기가 들어 생긴 병으로 판단한 그는 한약 ‘화기음’ 2첩을 처방했다.』(‘대한제국군 친위대문서 : 제2대대병병검사기’를 토대로 재구성)
전쟁기념관에 소장돼 있는 ‘대한제국군 친위대문서 : 제2대대 병병검사기’에는 대한제국군 친위대 군의관이 병든 병사들을 한약으로 치료한 내용이 담겨 있다. 조선은 1895년(고종 32) 칙령(勅令) 170호로 훈련대를 폐지하고 육군편제강령(陸軍編制綱領)을 발표해 중앙의 육군을 친위대로, 지방군을 진위대(鎭衛隊)로 편성했다.
친위대는 수도를 방위하는 임무를 담당해 처음에는 대대로 편성했다가 1896년 4월 22일자의 칙령 21호로 연대로 편성해 연대본부와 휘하에 3개 대대를 뒀다. 대한제국군 친위대의 곽종구 군의관과 같이 현재도 매년 평균 22명 정도가 임관해 한의학으로 장병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한의군의관’이 있다.
하지만 정식으로 ‘한의군의관 제도’가 생긴 지는 불과 30년 전에 불과하다. 일제치하에서 민족문화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1913년 기존의 의사인 한의사를 몰아내고자 ‘의생규칙’을 제정해 한의사를 의생으로 격하시키는 등 한의학 탄압이 자행됐으나 해방 이후 바로 복권되지 못하고 1951년에서야 ‘국민의료법’이 제정되면서 한의사 면허가 회복됐다. 이후 1954년에 국방부와 협의해 소수의 한의사를 의정장교로 임용, 의무병과
에서 근무할 수 있었으나 불과 2년만인 1956년에 이 제도가 폐지되고 말았다.
한의계는 1970년 10월6일 한의사의 군의관 임용을 위한 첫 번째 공식회합을 갖고 1971년 8월12일 한의학에 대한 몰이해와 양의학 일변도의 정책적 배려로 인해 한의학 발전이 지장을 받고 있음을 지적하며 한의사의 군의관 임용을 촉구하는 건의서를 국방부 장관에게 제출했다. 그러나 이후로도 오랫동안 한의군의관 제도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부는 1982년 기술의정장교 교육과 정에 한방의료요원 정원을 배정해 그해 9
월18일 처음으로 한의과대학 졸업생을 기술의정장교로 임관시켰으나 정식으로 한의군의관제도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던 한의계의 노력은 지속됐다.
마침내 1987년 11월 국방부는 1988년 부터 ‘한방의정장교제도’를 ‘한방군의제도’로 개선해 운영할 것을 발표하고 육군본부는 같은해 10월5일 1989년도 군의사관후보생 모집계획에 한의대 졸업자 및 졸업 예정자를 대상으로 한의군의후보생 모집사항을 포함시켜 공고했다. 이에 따라 1998년 4월15일까지 국군군의학교에서 교육을 마친 17명의 한의군의관 후보생이 처음으로 한의군의관으로 정식 임관됐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30년 전에야 비로소 정식 ‘한의군의관제도’를 통해 한의군의관이 배출되기 시작한 것이니 오랜 시간에 걸친 노력의 결실이었던 셈이다.
국가통계포털 KOSIS와 대한한의사협회사(1898~2011)의 한의군의관 임관계획에 따른 배출 현황을 살펴보면 1989년 17명, 1990년 15명, 1991년 16명, 1992년 15명 등을 모집하다 점차 그 규모가 늘어 지난 4월 의무사관 후보생 24명이 한의군의관으로 임관했다. 2018년까지 654명의 한의군의관이 배출돼 지난 30년간 매년 22명의 한의군의관이 새로 임관한 것이다. 그러나 의과나 치과에 비해 한의군의관의 수는 월등히 적다. 그만큼 우리나라 군진의학에서 한의학 의 역할과 비중은 여전히 낮은 셈이다.
반면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하는 미국의 사례는 군진의학에서의 한의학 역할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한다. 미국은 2011년 미육군군사기지에 과학통증치료센터를 건립하고 군인들에게 침구, 척추교정, 추나안마 및 물리치료 등을 활용한 종합치료를 시행하고 있다. 2012년에는 침구를 육군의 과학통증연구 범주에 포함시켰으며 2013년에는 걸프전 증후군(피로, 근육골격통증, 두통, 두훈, 기억이상, 소화불량, 피부트러블, 급박한 호흡, 정서장애 등 광범위하고 다양한 증상이 동시에 나타나며 걸프전 퇴역군인 70만명 중 10만명이 걸프전 증후군 증상을 보임)에 대한 침구치료 유효성 연구를 실시했다.
2014년에는 침구가 진통제의 사용을 줄인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확인하고 2016년부터 전쟁 환경에서 침구를 사용한 통증 치료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미군에서 시술되고 있는 야전침술요법은 만성통증을 완화시키고 아편류 약물사용을 줄일 뿐 아니라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군 통계에 따르면 만성질병관리에 야전침술을 보조치료로 사용, 74%에서 증상이 호전됐으며 72%의 환자는 건강
회복이 촉진되는 등 임상유효성이 66%인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Military Times에서도 야전침술에 대해 상세히 소개한 바 있다.
이 보도에 따르면 2001년 ‘야전침술 (battlefield acupuncture)’을 개발한 리챠트 니엠트조우 박사는 야전침술이 관리가 쉽고 일상생활을 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어 미군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시술 중 하나로 꼽았다. 그는 첫 시술로 통증이 성공적으로 치료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 80%의 임상효과가 있으며 기존의 서양의학 치료로 호전되지 않았던 대부분의 환자들이 야전침술요법을 받은 후 즉시 안도감을 느끼
기 시작할 뿐 아니라 다른 약물 복용과 달리 약물 의존성이 생기지 않아 수시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카타르에 배치돼 야전침술을 시술한 린다 부 미공군 대령 역시 야전침술은 약물 효과를 발휘할 때까지 긴 시간을 기다릴 필요가 없고 아편류 진통제를 사용한 환자와 달리 과민반응 등 부작용도 없어 임무수행 능력의 저하 없이 작전을 수행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를 보면 우리나라가 우수한 한의 인력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군진의학에 한의학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군사력 향상을 위해 군진의학에서 한의학의 활용을 높이고 더 많은 역할을 수행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Copyright @2025 한의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