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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숙
국회사무처 부속한의원 원장
(前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운전을 시작하면서 습관이 하나 생겼다. 나 혼자만의 공간이다 보니 혼자 무언가를 끊임없이 중얼거리고 있는 것이다. 어느 영화의 유명한 장면에서의 대사일 수도 있고(“내가 니 시다바리가?”, “내가 왕이 될 상인가?”, “뭣이 중헌디?!” 등을 큰 소리로 연습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에게 띄우는 편지일 수도 있으며 누군가를 위한 고백의 예행연습일 수도 있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갑자기 떠오르는 미운 사람들을 향한 욕설일 수도 있다. 나 혼자 내뱉는 말들이니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노래를 워낙 좋아하고 장르를 가리지 않는 나인지라 다양한 애창곡들을 부르며 운전 연습을 핑계삼아 여기저기를 탐험하듯 다니는 일이 요즘 참으로 꿀맛이다.
그러는 가운데에서도 역시 아직은, 어쩌면 당분간은 초보운전자 모드로 운전을 해야 하기에 당황스러운 가슴 철렁한 순간을 넘기고 나면 가슴을 쓸어 내리고 심호흡을 해대며 ‘제발!! 부디!! 당신도 나도 안전운전 하십시다. 당신은 귀합니다. 나도 귀합니다. 다치지 맙시다. 아프지 맙시다. 그저 안전운전 하십시다. 무사귀가 하십시다’ 많이 유치하지만 이런 주문을 속사포 랩처럼 읊조리고 만다. 초보운전자인 나로서는 모두의 안녕을 기원해야만 그 안녕에 기댈 수 있는 처지이기에 이런 간절함을 품을 수밖에 없다. “쓔웅” 굉음을 날리며 우측 빽미러 쪽을 스치듯 지나가는 배달 오토바이를 바라보면서도 원망스럽기보다는 “조심하시오, 제발”을 외치고 있고 초보운전 스티커를 붙인 내 차를 조롱하듯 “쌩쌩” 과속을 뽐내는 베테랑 차량들의 뒤통수에도 욕을 날리기보다는 “뭘 그리 서두르시오. 그래봤자 빨간불에서 다시 만나질텐데…”라며 저들처럼 운전이 자연스러워 지더라도 절대로 절대로 속도를 자랑하지는 않으리라라고 다짐해 본다. 운전은 잘 하는 게 아니라 안전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는 한 후배의 고언을 되새기며 말이다.
다중우주의 여운 남긴 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최근, 역주행이라는 단어와 함께 언급되는 노래가 있다면 단연코, 윤하의 『사건의 지평선』이다. 그렇다면 뒷심 발휘와 역주행 흥행의 역작으로 평가받는 그래서 가장 많은 평론이 쏟아지고 있는 영화는? 바로 『에에올』로 불리우는 양자경 주연의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이다. “메타버스의 끝판왕”, “이토록 기발한 각본이라니…”, “다중우주 휘저은 양자경의 다중연기” 등 여러 매체와 유투버들의 추천 영상 썸네일만 접했다 하더라도, 이 영화를 아니 보고 그냥 넘어가기란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지난주 일요일 밤 가장 늦은 시간의 영화를 예약했고 영화를 다보고 나와 시계를 들여다보니 자정이 코 앞이다.
내용은 복잡했으나 한 장면, 한 장면이 상당히 다채로웠으며 이 우주에서 다른 우주로 이동하는 방법들을 표현하는 많은 장치들은 B급 정서를 기본값으로 설정한 듯 보였으나 그러한 유치한 장면들 또한 기존에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창의적인 발랄함으로 바로바로 보완이 되곤 했다. 전체적으로는 산만할 정도로 정신없는 화면들이 몰아쳤으나 두 돌멩이가 등장하는 만화적 장면이나 가끔 삽입되는 인물들간의 느린 대사 덕분에 숨멎과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감상이 동시에 일어나는 기이한 감정의 요동침을 경험했다.
미국에서 빨래방을 운영하는 중국인 가족의 현실적인 어려움은 국세청 직원으로부터 경비처리 실수를 지적받는 장면에서의 주인공 에블린(양자경)의 고단한 표정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 표정이 너무도 리얼해서 다른 우주로의 탈출이 아니더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해방이나 회피, 도망이나 해소가 시급할 것 같은 안타까움으로 그 장면을 본 관객들을 쉼없이 불편하고 조급하게 만들었다. 영화 속에서 에블린이 처해 있는 고달픈 현실은 수없이 많은 다중 우주 중 하나였을 뿐이라는 설정은 우리가 지금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세계 또한 우리가 속해 있는 다양한 우주 속의 하나일 수도 있다는 영화적 상상을 자극했다. 영화가 끝이 났는데도 멀티버스에 대한 여운이 계속 남는다.
응급의학과 전문의서 동네의원 개원의로 옮긴 삶의 모습은?
우리가 보통 “000은 진짜 사차원이야”라고 이야기할 때 사차원 평가를 듣는 그 타자에 대해서는 긍정적이라기보다는 부정적인 감정을 더 많이 내포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해불가, 용납불가, 접근불가 등의 삼중으로 높다란 편견의 격벽을 미리 쳐놓고 그 사차원적 인물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한 본능을 발동시키곤 했었는데 이 영화를 보고 나니 사차원 소리 듣는 그들은 현 우주보다 다른 우주에 더 긴밀하게 몰입하고 있는 인물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그렇다면 나는? 나의 우주는? 나의 다른 우주로의 점핑은? 그리고 에블린처럼 나라는 존재는 현 우주에서의 존재에 만족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

10년간 응급의학과 전문의로 치열한 의료의 최전선에서 활약을 하다가 아버지처럼 모시던 선배 의사의 유지를 받들어 노인네들 가득한 동네의원 개원의로 자리를 옮긴 김 원장은 그의 저서 『괜찮아, 안 죽어』(김시영 저, 21세기 북스, 2019년 3월)에서 우주를 옮겨온 듯한 그가 겪고 있는 이 놀라운 변화를 환자로부터 얻은 많은 위로의 순간을 담담하게 기록하면서 스스로를 적응시켜가고 있는 듯하다. 그 누구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치열하고 냉혹할 정도의 칼날같은 판단으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오더와 액팅을 실행해야만 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잇장 앞뒷면 정도의 차이로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직시해야만 하는, 하루에도 수십번 그런 장면을 목도해야만 하는 가장 치열한 의사 중의 의사인 응급실 의사의 역할을 하다가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도 오늘 같을 노인들을 주로 상대하는 엘리베이터도 없는 2층에 위치한 소박한 의원의 원장으로서의 역할을 맡게된 저자의 이런저런 고백에 공감가는 대목이 많았다. 응급실의 치열함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한의사들이 주로 만나야 하는 대부분의 환자들은 저자인 김 원장의 일상을 함께하고 있는 환자들과 거의 겹치는 유사 그룹이기에 책에 등장하는 환자로부터 겪은 대부분의 일들(붕어빵을 사오시는 할매나 떡 한봉지를 쥐어주며 원장만 몰래 먹으라고 말하는 아줌마 등등)은 상당히 익숙했다.
- 의사의 질문에 환자가 다시 대답하는 이 반복 과정이 진료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인공지능 컴퓨터가 진단하고 로봇이 수술하는 시대라지만 진료의 기본인 문진은 여전히 꼭 필요하며 중요한 과정 중 하나이다.
- 응급실에서 동네의원의 진료실로 옮겨 오고 난 뒤 더는 내 눈 앞에서 죽고 사는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 만날 수도 없고 만나서도 안 되는 일이다. 어느새 내 진료의 우선순위는 백퍼센트 선착순이며, 증상의 경중을 따지는 일 역시 무의미해진 지 오래다. 경증이라고 말할 것도 없는 그저 내 눈엔 ‘괜찮아, 안 죽어’의 환자들만 있었으니까.
- 현대의학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처방도, 비타민이 가득한 수액도 착한 아들과의 수십년 추억이 주는 위로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치료’라고 부르는 나의 어줍잖은 개입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형식적인 일일지도 모른다.
- 나는 아직 나쁜 의사지만 그래도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덜 나쁜 의사가 되고 싶고, 또 그렇게 되려고 노력할 것이다. 평생이 걸리는 아주 긴 숙제일지라도 나는 그 숙제를 감사한 마음으로 해 볼 생각이다. 이게 나에게 주어진 행복한 미션이라 믿으면서 말이다.
- 뭐 이딴 걸로 병원에 올까 했던 ‘허접한 증상’을 마치 큰병이라도 걸린 것마냥 호들갑 떠는 환자들도 싫었고, 응급실에 가라고 소리를 질러도 말귀를 못 알아듣는 귀 어두운 노인네들도 싫었다.
- 마침내 나는 당뇨병 관련 연수강좌를 찾아다니기에 이르렀고, 덕분에 시시하고 지루한 일로만 생각했던 만성질환에 대해 조금이나마 관심을 갖게 되었다. 만날 죽고 사는 사람들만 보다가 혈당 측정을 위해 손가락 끝에서 피 한 방울 겨우 짜내고 앉아 있는 할매를 보니 딱히 할 말도 없다. 지금 당장 어디가 크게 아픈 것도 아니고.
- “아이고, 내가 이 병원 없으면 어뜨게 살어.” 심장이 멈추고 의식이 사라진 환자를 원래대로 돌리는 것만이 사람 살리는 일의 전부가 아님을, 그리고 너무나 재미없고 심심해서 속 쓰림과 불면증을 가져다 주었던 나의 일상이 결국 나를 지켜주고 있음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조금씩 깨달아 가고 있다.
부산대 시절 휠체어에 아내를 앉히고 뇌출혈 수술 후 한방병원에서의 입원치료 및 재활을 상담하러 보호자분이 방문했던 일이 갑자기 떠오른다. 휠체어에 똑바로 앉기도 힘들어 보이는 아내분의 발 한 쪽은 휠체어 발받침 아래로 떨구어져 있었고 날이 꽤 쌀쌀했는데 환자분 목이 휑해 보여서 진료실 수건을 하나 얼른 빼내 목에 감아드렸다. 뇌질환 환자분들은 면역력이 약해서 감기나 독감도 잘 낫질 않아서 폐렴이 되는 경우가 많으니 늘 보온에 신경 쓰시라고 보호자분께 당부를 드렸다. 병원 시설에 대한 질문을 하시길래 물리치료실로 안내를 하려던 찰라에 아내분이 갑자기 속이 불편하다며 화장실을 가고 싶다고 하셨다. 성격 급한 보호자분은 뒤도 안 돌아보고 진료실 문을 박차고 화장실을 향해 휠체어를 세게 밀더니 이미 저만치 달려가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지났는데도 진료실로 복귀를 안 하시길래 궁금해서 화장실 쪽으로 나가보니… “당신 내가 누군지 알아?” 방금 그 휠체어를 밀고 떠나신 보호자분의 샤우팅이 들렸다.
문뜩 떠오른 부산대한방병원 재직시절의 환자
더 가까이 가서 상황을 살펴보았다. 환자분이 남녀 화장실로 나누어지는 좁다른 골목 초입에 대규모의 vomiting을!! OMG!!! 이번에는 미화 여사님의 차례였다. “지가 저 토사물을 치울라캐도 보호자 냥반이 미안한 기색이라도 있어야제, 내는 뭐 여그서 걸레질 하니까네 사람으로도 안 보이는 갑제요?!” 이어서 보호자분이 또 나서서 뭐라고 말씀을 하시려길래 환자분이 속이 많이 안 좋으신 것 같으니 3층 야외 정원으로 모시고 나가서 바람 좀 쏘이고 다시 들어오시라고 내가 앞장서서 휠체어를 밀었다. 환자분과 보호자분을 밖으로 모신 후, 여사님께 상황을 여쭈어 보았다.
당신은 복도 반대편에서 대걸레질을 하고 있었는데 그 남편 보호자분이 손짓으로 아줌마를 부르며, “아줌마, 이리 와서 여기 먼저 치워!!”라고 명령을 했다고 한다. 가까이 와서 복도 상황을 보니 기가 막힌 데다가 미안한 기색도 없이 이래라 저래라 하니 너무 속이 상하셨다는 말씀. 더 이상의 예의범절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이는 보호자 때문에 더 이상 시간낭비를 할 수는 없었다. 어차피 내 진료실을 방문하신 환자분 문제이니 청소 반장님께 사태를 설명드렸고 복도 전체를 물청소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여사님께는 너무 죄송해서 커피값이라도 따로 챙겨 드리려고 진료실로 다시 복귀하려는데 잠시 정원으로 나갔던 환자분과 보호자분이 진료실 쪽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본인들의 뒷담화를 하는 것으로 오해라도 했는지 남편분이 여사님과 내 쪽을 향해서 다시 한 번 “당신들!! 내가 누군지 알아? 나, 경남생활체육지도자협의회배드민턴분과부회장이야!!!”
그 순간 보았다. 이마에 맺힌 두 방울의 초라한 땀을. 그 분의 놀라운 신분(!!)을 알게 된 후 가장 먼저 재빠르게 태세 전환을 한 건 나였다. 보호자분 대신 회장님이라는 호칭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본디 부(副)는 생략해서 부르는 것이 상호간의 예의이다. “회장님. 죄송해요. 제가 이 지역 사람이 아니라 경남에 좀 약합니다. 사모님 때문에 심려가 크셨겠어요. 저희 미화 여사님도 좀 놀래셔서 그러셨나봐요. 저희 병원 방문하신 환자분은 치료를 하시든 그렇지 않든 저희 병원의 귀한 손님이신데, 죄송합니다. 반장님 오셔서 다 수습했구요, 물리치료실 시설 먼저 보여드릴께요. 같이 이동하실까요?” “나, 기분 나빠요. 이 병원 마음에 안 들어. 건너편 재활병원으로 가볼 테니까 그리 아시고, 직원들 교육 잘 시키세요. 이런 병원 저런 미화원들이나 간호원들(?)이런 사람들 관리가 중요하다고… 시골에 있는 병원이라 어쩔 수가 없구만!!!” ‘졸지에 부산대학교 한방병원은 시골 병원으로 전락하였고 간호사로 명칭변경된 게 언제인데 간호원이라니!!!’
우리 모두가 여기저기 다중우주를 떠다니는 존재라고 가정하면 “내가 누군지 알아?”를 연발하는 사람들이 갑자기 이해가 된다. A라는 우주에서 왕으로 살던 사람인데 B라는 우주에서 왕취급을 받지 못하니 어떤 하나의 우주에서 개빡침을 경험할 때 갑자기 우주간 에너지 교란이 생겨나면서 현재는 B우주에 존재해야 하는 시간임에도 A우주에서의 왕으로 동시에 존재하려는 사건이 발생하는 것이다. 다중우주에서 다양한 캐릭으로 살아야 하는 다중인격이 인격간 혼동을 일으키면서 나타나는 현상이 “당신, 내가 누군지 알아?”인 것이다. 이런 인물들을 현실에서 가끔 마주칠 때면, 그들에게는 현실 자각 타임이 필요하다는 신호이니 잠시 “LET IT BE” “LET IT BE”
내년 대한민국의 핵심키워드 ‘평균실종’
오전 11시 30분경 진료실로 가끔 전화가 걸려 온다. “원장님, 점심시간에 점심 드시죠?” ‘이 질문의 저의는 무엇일까?’ 빨리 파악해야 한다. 점심을 사겠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간식을 사온다는 말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점심시간을 할애해서 치료를 해달라는 말은 아닐까?’ 살짝 떠보았더니 역시나다. “제가 시간이 없어서 혹은 우리 00님이 시간이 없으셔서 12시 반에 방문해도 될까 하고요…” “죄송해요. 비서관님. 제가 오늘은 다른 선약이 있어요. 1시 오후진료 시작 시간에 맞춰 오시면 기다리시지 않고 바로 치료받으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시간 못 내어 드려서..” “아닙니다. 원장님. 점심시간에는 쉬셔야죠…” 너도 귀하다. 그리고 나도 귀하다. 너의 점심시간도 귀하고 나의 점심시간도 귀하다. 너도 입이다. 나도 입이다. 너의 노동권도 중요하고 나의 휴식권도 중요하다. 오늘도 국회 진료실은 평화롭게 너무도 평화롭게….
매년 대한민국을 핵심 키워드 몇 개로 진단하시는 서울대학교 김난도 교수가 『트렌드 코리아 2023』에서 제시한 단어는 “평균실종”이다. 학력의 격차 만큼이나 경제적인 그리고 정치적인 양극화로 국적만 같을 뿐 점점 더 달라지고 멀어지고 있는 우리 사회. 거기에 개개인의 취향이 너무도 다양하고 확고해서 N명의 소비자에 N개의 취향이 존재하는 N극화에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예상. 특정 계층을 목표로 타겟 상품에 집중하자는 마케팅이 과연 먹힐 지도 미지수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이 많은 개원 지침서가 제시하는 방법들이 과연 효과가 있을까…하는 궁금증이 앞선다.
김 교수는 최근 방송에서 본인이 제시한 많은 키워드 중 “멀티 페르소나”가 가장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연예인들의 부캐 신드롬과 온라인에서 익명성에 기대에 키보드 워리어로 변신하는 악플러 중에는 사회적으로 멀쩡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도 많다는 것이 그 예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현 우주에서 한의사라는 주 캐릭터로 일상을 살아내고 있지만 누구나 가슴 한 켠에는 다른 우주와 다른 부캐를 꿈꾸고 있을 한의사 선후배 여러분, 멋진 연말을 기원합니다. 그러고보니, 크리스마스가 1개월 앞으로 다가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