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상세페이지

신미숙 여의도책방-28

기사입력 2022.05.26 15:07

SNS 공유하기

fa tw gp
  • ba
  • ka ks url
    BEING 그리고 DOING

    1(신미숙).jpg

    신미숙 

    국회사무처 부속한의원 원장

    (前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어린이날–어버이날–스승의 날까지 행사만 한가득인 오월이 끝을 향해가니 마음이 후련하다. 

     

    “실외 마스크도 해제되었으니 그래도 오월에는 한 잔 해야지?” 밀린 약속들을 서둘러 잡으며 달력을 들여다본다. 뭐 대단하고 꼼꼼하게 주변인들을 잘 챙기지도 못했으면서 ‘가정의 달’에 걸맞는 몇 개의 행사들을 마무리하고 나니 갑작스런 여유로움이 훅하고 몰려온다. 결국 올해도 연초에 세웠던 간헐적 단식에 기반한 다이어트가 실패로 끝난 듯하다. 모임이 있는 날 전후로는 최대한 저녁을 건너뛰려고 노력 중이나 귀가해서 집에 도착해보면 어김없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오이장아찌나 미역국을 해놓으신 친정어머니의 성의에 감복하여 한술두술 뜨다 보면 낮에 아버지가 다 못 드신 지평생막걸리 반 병이 눈에 밟힌다. 

     

    한 아파트 아래위층으로 사는 친정부모님 덕분에 올해 어버이날에도 어머니의 해장국으로 아침을 시작했으니, 낼 모레 쉰이 되는 딸 입장에서 이렇게까지 오래오래 어린이날을 즐겨도 되나… 죄송스러운 마음이 든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내게 “부모 마음 편하게 해주는 게 효도다. 효도 별 거 없다. 

     

    하루 일 잘 마치고 무사히 귀가해서 내 밥상 잘 받아먹어주는 게 그게 효도다”라고 하신다. 오늘도 나는 어머니의 사랑으로 무럭무럭 성장 중이다. 내일 모레 팔순이신 그러나 여전히 쌩쌩하신 어머니께서 차려주신 건강한 밥상. 98세 살아 내신 외할머니처럼 나의 어머니도 그러하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방선거일 앞두고 또 다시 북적거리는 거리 

    지방선거일이 다가올수록 빨-파-노-초 원색의 옷과 모자와 팻말을 들고 구의원, 시의원, 구청장, 시장, 도지사, 교육감 혹은 국회의원(재보궐) 등등 뭐든 일단은 되어보겠다는 사람들로 또 다시 거리는 북적거린다. 모두들 자신만이 ‘준비된’ 인재라며 남다른 ‘유능함’을 과시 중이지만 각 당의 상징색 말고는 차이가 거의 없어보인다. 공통적인 슬로건이 지향하는 방향대로 그들이 공약을 제대로 실천만 한다면 대한민국은 방방곡곡 농촌대도시 할 것 없이 정말 살기좋은 곳으로 거듭날 것이다. 그러나 이 많은 공약들은 당선과 함께 한동안 수면 아래에 숨어있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4년이 지난 후라야 ‘아 맞다. 2022년 6월 1일 지방선거가 있었드랬지…’라고 회상할 게 뻔하다. 저 사람이 4년 전에 당선이 되었던 사람인가 낙선이 된 사람이 또 나왔는가는 검색을 해야 알 수 있는 여전히 무명일 이름들도 많을 것이다. 지방선거든 총선이든 정치에 입문해서 일반 국민들의 기억에 남기가 이렇게도 힘든 일이니, 정치판에서는 유명이든 악명이든 일단 얼굴과 이름 석자가 알려진 유명세가 그래서 그 값이 높은 것이다. 

     

    얼굴값, 이름값이 보장받는 게 책시장도 예외가 아닌지라 어느 분야에서든 빵 뜨고 나면 책 한 권 내지 않고 그냥 지나가기가 어려운지 신간코너를 돌다보면 ‘저런 사람도 책을 낸 거야?’라는 생각과 함께 그런 책 한 권도 아직 내어보지 못한 주제면서 ‘정말 개나 소나 다 책을 내는구나…’라는 유치한 질투심을 외면하려고 애를 쓴다. 


    30년 전 과거 중의학과 닮아있는 한국 한의학의 현실

    책을 고르는 어이없는 그러나 지갑을 열게 만드는 부정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가 제목일 것이다. 『동양의학은 서양과학을 뒤엎을 것인가』라는 책을 발견한 한의사 혹 한의대생들이라면 제목 때문에라도 서가에 한 권 정도는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다. 대표역자의 글에 원저 번역을 1993년에 시작했다고 했고 1996년 8월에 저자가 한국판 서문을 미리 작성해 두었는데 2008년이 되어서야 초판이 출간되었으니 꽤 긴 시간이 소요된 셈이다. 

     

    책제목.jpg

     

    임상한의사 두 분을 포함한 여러 분이 역자로 참여하셔서 아무래도 일정 조율이나 번역 후 정리작업이 오래 걸린 게 아닌가 짐작해본다. 저자인 하야시 하지메는 1933년생으로 대만에서 태어났고 물리학, 과학사를 전공한 분이다. 책에 기술되어 있는 중국의학의 다양한 상황들이 1990년 전임을 감안한다면 지금으로부터 30년도 더 된 과거의 이야기인데 그 시절의 중의학이나 2022년의 국내 한의학이 처한 현실은 데칼코마니처럼 닮아 있다. 

     

    - 중서의결합이 중의에 대해 서의로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은 과학이고 서의로 해석이 될 수 없는 것은 비과학이라고 하는 태도를 취해왔다. 

    - 건국 이래 30년 동안 당과 정부는 중의사업을 충분히 중시하여 일련의 중의 보호정책과 방침을 취하고 있다. 

    - 중앙부터 지방에 이르기까지 위생관리 업무는 서의의 관리방식을 중의에 적용시키고 있다. 중서의학 체계가 다른 점을 무시하고, 서의를 중시하고 중의를 경시하는 불균형한 국면이 발생하고 있다. 국가의 중점적인 과학연구 기지와 고급 교육기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서의의 시설과 인력배치는 중의에 비해 양호하다. 종합병원에서 중의는 중시되지 않고 중의의 외래 환자 처리방식은 시종 혼란되어 있어 수선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방치되고 있다. 중의의 병상수도 현재까지 훨씬 적었고, 몇 가지 병에 대해서 중의는 순전히 중의적인 치료를 베풀 뿐, 과학적인 연구를 진행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

    - 당중앙의 정책이 충분히 옳고 중의를 진흥하자고 아무리 선전해도 중의연구비의 부족과 중의사에 대한 지위의 저하, 대우의 격차 등 구체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중의의 뒤를 계승할 사람이 부족하고, 기술이 부족한 상황이 심해질 따름으로 중의의 발전에 불리할 것이다.

    - 중의의 발전은 꾸준히 스스로를 강화하는 자강불식의 방법 이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



    중의의 발전을 방해하는 원인 중 세대 갈등도 언급되어 있는데 일단, 보수적인 노년층의 중의들은 구사회의 낮은 지위 아래에서 뒤틀린 자존심을 키워왔기 때문에 현대의학의 신속한 발전에 의해 중의의 진지가 날로 잠식되는 것을 보고 현대의학을 질투하는 비뚤어진 마음을 품고 있다고 한다. 이어서 중년의 중의들은 타성에 젖어 완전히 의욕을 상실하였으면서도 그런대로 배불리 지내고 있고 약간의 고생으로 커다란 성공을 얻으려고 잡지에 광고인지 뭔지도 모를 치료 효과에 대한 보도(한 편의 원고를 두 곳에 중복 투고 혹은 연구 성과의 수치 조작 등)를 하는 악질적인 행태를 보이는 자들도 많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중의약을 공부하는 청년층은 심각한 신념의 위기를 겪으면서 의식이 견실하지 못한 상황으로 그 요인으로는 역사적, 사회적인 문제들 이외에도 교사들의 질적, 양적 빈약함과 주입식 수업방법, 쓸모없는 커리큘럼, 이론과 실천의 분리 즉 중의약 교육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수십년 전의 중의들의 세대별 문제와 세대간 갈등이 위와 같다면 오늘날 한의사의 세대간 갈등에는 어떤 문제들이 있을까? 


    오늘날 한의계 세대간에는 어떤 갈등들이 있을까?

    임상교수로 근무 중인 동기들에 의하면 ‘금쪽같은 내 인턴’처럼 수련의들을 사랑과 애정으로 배려하지 않으면 병원을 바로 그만둘 태세인 자들도 부지기수이고 박봉과 수련기간을 견디며 전문의를 취득하고 싶은 절실한 동기의식을 가진 후배들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냉정한 현실이라고 한다. 이러한 현상이 젊은 한의사들만의 문제겠는가?! 40-50-60대 선배 한의사들이 겪었으면서도 한의계 대내외에 풀지 않고 혹은 풀지 못한 그 많은 숙원사업과 과제들, 세월과 상황에 떠밀려 무의미하게 지나보낸 날들을 고려하면 한국한의계 역시 중의학계의 수십년 전 상황과 별반 다를 것도 없으며 앞으로도 긍정적인 장면들을 보기는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러한 세대간 갈등에 관한 생각을 하다보니 부산대 한의전 교수 시절, 면접고사에 참석했었던 일이 떠오른다. 질문의 형태와 내용은 조금씩 달랐으나 결국 단 하나의 질문으로 요약이 가능하다. 그것은 바로 ”한의사가 되믄(being) 뭐 할라꼬(doing)?”이다. 

     

    대부분 장황하고 가끔 명확했다. 합격이 간절한 수험생들의 입장이니 예상문제로 시나리오를 짜고 그룹스터디와 리허설을 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금이 저려오는 그 긴장감은 수험생이 되어본 사람이라면 상상이 가능할 것이다. 대부분은 본인이 기존에 공부했었던 학부 때의 전공을 토대삼아 한의학을 보다 새롭게 융합할 것이라고 했고 한의학 기초 연구의 활성화라는 부산대 한의전의 설립취지에 발맞추어 임상으로 바로 진출하는 대신 기초 연구에 매진하고 싶다고 했다. 

     

    신미숙_01.jpg

     

    한의학은 미래의학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한데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국민들에게 효과적으로 다가가지 못하는 부분이 있으므로 본인이야말로 차원이 다른 홍보에 뛰어들겠다고 했고 그러기 위해서 한의전에 합격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많은 학생들이 의료봉사에 매진하는 한의사가 될 거라고 했으며 가업을 이어나갈 예정이라며 눈깜짝할 사이에 집안내력을 어필하는 자들도 있었다. 

     

    본인이 얼마나 한의사가 되기를 갈망하고 있는지 온몸과 두 눈으로 간절함을 전달하고 있었다. 정치인들의 공약이 그렇듯 수험생들의 결심 또한 비슷한 결과를 맞이한다. 공약은 당선되려고 내세우는 것이고 면접시의 결심들도 일단 합격을 위해 잘 보이려는 노력으로 해석된다. 알고 속고 모르고도 속고 그렇게 합격의 한 페이지를 수험생의 일부는 스르륵 맞이하는 것이다. 

     

    호연지기가 느껴지는 책 제목 『동양의학은 서양과학을 뒤엎을 것인가』과는 달리 서양과학이 동양의학을 뒤엎은 지는 꽤 오래되었다. 물론 한의학은 여전히 부분적으로 강점을 발휘하고 있고 한의사들은 합법적인 면허권자로서 한의학이라는 명목을 유지하고 있다. 여전히 끊이지 않고 내원하는 많은 환자들이 바로 한의학의 살아있는 증인들이 되어 주고 있지만 이들만이 한의학의 존재(being)와 기능(doing)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닐 것이다. 


    한의학의 존재와 기능의 필요충분조건은 과연 무엇일까?

    “한국에서는 아직도 제도권 의학에서 한의학이란 믿음에 기반한 유사 의학에 의료인으로서 한의사면허를 부여하고, 세금으로 유지를 하고 있으며, 최근 10년간에는 한의학의 현대화 연구에 1조가 넘는 혈세를 투여해왔다. 귀신이 들려서 주의력결핍이 생기는 것이라며 빙의치료를 하는 한의원, 드래곤볼에나 나올 법한 기공치료를 하는 한의원, 현대적인 치료 근거를 확립하지 않고 확률적으로 생길 수 있는 자연 암치료 환자를 선전에 이용한 항암한약 판매 한의원을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정부에서는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논할 것이 아니라, 한의사 제도 존폐를 논의하여야 할 시점이다. 

     

    한의사들의 생존이 어려운 현실의 타개는 국민의 혈세로 지원할 것이 아니라 한의대 정원의 축소부터 해야 할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도 겉보기에만 선진국이고 OECD 가입국이 아니라 과학과 의학, 상식에서도 전근대적인 국가의 행태에서 벗어나야 할 때이다.” <『한의사 제도 존폐를 논할 시점이다』(메디게이트, 한정호교수, 2015.03.05.)>라는 기사나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임신부 복용 금기로 규정한 한약재(목단피)가 포함된 한약으로 한방난임치료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는가 하면, 한의원에서 봉침시술 후 환자가 쇼크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의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약재나 시술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 

     

    신미숙_02.jpg

     

    특히 유명 한의원이 지하철역에 설치한 ‘비염엔 00탕’이라는 광고도 의학적 근거가 충분하지 않은 내용을 포함해 소비자를 현혹할 수 있다는 지적까지 받고 있다. <『비의학적인 것들의 공습...국민 피해 어쩌나』(의협신문, 이정환기자, 2018.08.29.)> 같은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를 접할 때면 한까이즘에 몰입한 소수의견일 뿐이라고 무심하게 지나치고 싶지만 그냥 외면만 해서는 안 될 문제이다. “비의학적인” 이유로 “폐지되어야” 한다는 저런 지적에 어떤 반격과 어떤 대답을 내어놓을 수 있을까? 학회나 협회의 점잖은 논평 말고 진짜 정답 같은 정답이 뭘까?    

     

    몇 달 전 칼럼에서 소개했던 친구 조카가 한의대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다시 반수를 계획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다시 수능을 치룬다면 삼수생이 되는 셈이다. 아무래도 건너편 교실에서 수업을 듣고 있는 의대 친구들이 부러웠나 보다. 코로나로 정상적인 수업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데다가 부모님 품을 떠나 갑자기 지역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다 보니 외로움도 한 몫 했을 것이다. 한의대에서 의대로의 전학(!)을 꿈꾸며 방황하는 그 친구에게 이번에도 응원의 멘트를 보내야 할 것 같다. “한의사가 되든 의사가 되든, being도 중요하지만 그 이후의 doing이 훨씬 더 중요하다네. 먼 훗날 깨닫게 되겠지만 일단은, 건강관리 잘 하시어 내년에는 꼭 뜻하는 바를 이루도록 하시게. ” 

    backward top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