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17 (토)

우리의 한의학 ⑫ 어느 누구를 전략적 동반자로 선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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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한의학 ⑫ 어느 누구를 전략적 동반자로 선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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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규 박사

(한국한의학연구원 책임연구원)

 

누구나 앞만 보고 살아오다가 어느 순간 뒤를 돌아다보는 시점이 중년일 것이다. 중년의 삶을 행복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챙겨야 할 여러 가지 중에 하나가 ‘친구’ 이다. 인생 여정에서 중요한 요건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한의대 학창 시절을 회상하면서 후회하는 것 중 하나가 친구이다. 6년을 한 교실에서 40명이 동고동락하였지만 밥도 한번 먹어보지 않은 동기가 대부분이고, 딱 두 명뿐인 여학생하고 이야기한 시간이 십분도 안 될 것이다. 

물론 동기가 다 친구일수는 없지만 친구로 만들 기회를 잃은 것이다. 나이가 더 들어 혼자 등산가고, 취미 생활한다고 여기 저기 기웃거리겠지만, 여기 한 개인이 아니라 한 집단이 홀로인 경우도 있다.

정부 부처가 주관하는 회의에 참석한다. 정부 회의의 특이점은 다양한 의견 수렴을 위하여 관련 직능단체 외에 소비자단체, 산업체, 학계, 언론계, 공공기관 등 각계각층의 위원들로 구성된다. 어떤 경우는 참석자의 남녀 성비, 수도권 및 지방 비율까지 확인한다. 

이제 곧 공무원 인사를 서두로 하여 두 시간 동안 총성 없는 전투가 펼쳐진다. 각 직능대표들은 100m 달리기 출발선에서 잔뜩 긴장한 얼굴로 서 있다가, 출발 신호와 함께 발언들을 쏟아낸다. 몇 십 년 전 사태부터 타 단체의 공정치 못한 행위와 자기 단체의 권리 침해 내용을 설명한다. 발언 제지가 없으면 하루 종일할 기세이다. 곧 상대 단체는 여러 대응 논리를 가지고 조목조목 반박하고 정부의 책임 소재도 성토한다. 

각 직능단체 임원들을 어떻게 선정하는지 모르지만, 해박한 지식에 달변, 순발력, 인내와 끈기, 포커페이스와 저돌적 태도 등 어느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는 불굴의 용사들이다. 

이 회의에서 환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소비자 위원들이 오히려 의약직능 위원들의 화병을 치료하는 역할을 한다. 시시비비와 옥신각신으로 회의 열기도 뜨거운데 뜨거운 아메리카노가 책상에 놓여 있다. 


같은 한의사지만 각 기관의 정체성 따라 역할 수행


민주적 토론을 거쳐 합리적인 결론을 내기위한 회의가 아니다. 참석자들은 이런 회의를 수 십 차례 하여도 합의를 도출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조금이라도 자기 회원들에게 이익이 되는 전리품을 챙기기 전에는 어느 누구도 결정권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각자의 진지에 돌아가면 논의된 과정에 대해 협회 임원진들, 대의원들, 수많은 회원들이 두 눈 부릅뜨고 다시 검토한다. 

교과서에 나오는 협상의 기술, 상호 호혜의 원칙, give and take, 역지사지, 교감과 소통, 배려와 관용 따위는 교육용일 뿐 실전용이 아니다. 논쟁의 열기는 가열되고 냉정을 찾을 수 없는 가운데, 약속된 회의 종료 시각이 모두를 살린다.

정부와 관련된 일을 하면 모두 공직 한의사로 보지만, 엄격히 공직은 보건복지부나 식품의약품안전청에 근무하는 한의사이고, 나머지는 정부가 자본을 출연하여 설립한 공공기관(한의학연구원, 한의약진흥원, 보건산업진흥원)에 출근하는 회사원이다. 

이런 회의에서 공직 한의사는 정부 대표로, 공공기관 한의사는 공익 대표, 직능단체 한의사는 한의사협회 대표로 만난다. 서로 같은 한의사 면허증을 가지고 있지만 소속기관의 정체성에 따라 각자의 역할과 소임을 다한다. 이 치열한 두 시간 동안 정부 측 위원들은 절제된 이야기만 하고, 공익위원들은 발언할 기회도 없고, 어떤 논리나 원리 원칙, 법적 해석을 이야기하여도 해결의 실마리가 되지 않는다. 가장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위원들은 직능단체 대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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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계 대표는 대부분이 혈혈단신, 고립무원


많은 회의에 참석해 보면 항상 건너편에 한의계 직능 이익을 대변하는 임원이 앉아있다. 특히 한의계 임원은 타 직능단체보다 맷집이 더 좋고 산전수전 다 겪은 분으로 임명해야할 것 같다. 대부분 회의에서 일당백, 일대다의 전투력을 발휘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속으로 질문을 해본다. “한의계 대표는 이 회의에 참석한 여러 단체들 중에서 동맹은 고사하고 이익이 공유된 묵시적 관계이거나 아니면 마음으로 기댈만한 우군은 있는가?” 늘 느끼지만 한의계 대표는 대부분이 혈혈단신, 고립무원이다. 보건복지부에 등록된 많은 보건의료 단체들 중에서, 한의계 발언을 이해하고 동조하는 단체는 매우 드물다. 

전생에 서로 어떤 업보를 지었는지 모르지만 의사, 약사와는 이미 견원지간이다. 그러면 음양오행 철학을 공유하고 있는 한약업사·한약사·한약조제약사·침사·구사 단체들과는 정서적·학문적 동지 관계인가? 이미 이곳도 수화상극이다. 

이런 회의석상에서 한의계의 우군을 만들기 위한 묘책으로 새로운 직능인 한방치과의사, 한방간호사, 한방임상병리사, 한방응급구조사, 한방방사선사, 한방물리치료사 등 한의학적 원리로 검사 판독 간호 치료하는 단체 설립이 필요하다고 각계 요로에 청원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보건의료계에서 그래도 타 단체들은 서로가 동맹은 아니지만 싫든 좋든 파트너 관계는 유지하고 있다. 반면 한의계는 대부분 견원지간이거나 수화상극 관계다.


한의학, 온갖 풍상 다 겪고 스스로의 힘으로 생존


두 시간 회의 후 모든 위원들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해가 갈수록 한의계를 둘러싼 갈등 요소는 늘어나고, 국민 건강과 질병을 치료하는 단체들이 치킨 게임하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세상에는 누구나 다 아는 현실을 어느 누구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인 경우가 허다하다. 

이 회의의 전체 그림 역시 이와 똑 같다. 이 상황에는 많은 곁가지 같은 쟁점들이 있지만 결국 큰 줄기의 핵심은 ‘의료일원화’와 ‘의약분업’이다. 현재 이 두 개의 개념과 가치를 어떤 각도와 얼마만큼의 비율로 할 것인가의 충돌 지점에 서 있는 것이다. 제 삼자들은 이런 상황을 단순히 ‘밥그릇 싸움’이라고 하지만, 이 속에는 역사, 정치, 경제, 문화, 철학 등 복잡한 요소들이 뒤엉켜있어, 솔로몬의 지혜도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다. 

한의학, 유구한 세월 동안 온갖 풍상 다 겪고도 오늘날 스스로의 힘으로 훌륭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 동안 여러 직능단체들과의 도전과 응전의 역사에서, 냉철하게 지난 발자취를 되돌아보고 복기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중년 이후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친구가 필요하듯, 미래 한의학을 위해, 후손을 위해, 大醫를 위해 어느 누군가를 전략적 동반자로 선택해야 할 시점이 올 것으로 생각한다. 


(본 글은 저자의 소속기관이나 한의신문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신현규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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