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26 (화)

고전에서 느껴보는 醫藥文化 -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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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에서 느껴보는 醫藥文化 - 29

안상우 박사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한의학, 전염병 극복의 역사


코로나 감염 상황이 한참 치성해져 3차 대유행으로 치닫고 있었을 때, 원격 화상회의 방식으로 진행된 제31회 한국의사학회 정기학술대회는 매우 엄중한 방역상황을 고려할 때 열의가 없었다면 불가능했기에 가까스로 치러진 대회였다. 더구나 동시기에 비해 상황이 한결 나았던 춘계대회조차도 열리지 못한 형편이었으니 말이다. 

시국이 시국이니 만큼 학술대회 주제도 시의적인 여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애초 학술대회 주제로 예정했던 것은 ‘한의학, 전염병을 마주하다’였다. 기조발표는 연세대 이현숙 교수의 ‘동아시아 전염병의 유행과 벽온방의 발달’로 문을 열었다. 이어 주제발표에서는 ‘한국 전염병 치료 인물사를 논함’(경희대 김남일 교수), 그리고 ‘사암침법의 전염병 치료’(사암침법학회 정유옹 원장)라는 주제로 특화된 발표를 이어 가기로 준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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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작 대회에 임박해 자료집을 만드느라 분주했던 즈음, 이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한 테마전 주제가 ‘조선, 역병에 맞서다’였음을 상기하였고, 다른 한편 전염병이든 역병이든 그와 맞서야할 의학의 역할이 길가다 우연히 마주친 것처럼 느슨한 표현을 써서는 긴박한 현실상황을 반영하기엔 미흡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서 한동안 머리를 부여잡은 끝에 오늘 이글의 주제로 삼은 것과 동일한 ‘한의학, 전염병 극복의 역사’로 바꾸게 되었다. 


세조, 조선시대 방역전문서 『창진집(瘡疹集)』 간행


이와 같이 대회 직전에 주제를 바꾼 것은 발표내용도 있지만, 평소 전통의학 문헌의 태반이 역병과 돌림병을 치료하느라 만든 방역전문서요, 가장 흔한 종류 역시, 마진이나 두창, 콜레라, 장티푸스, 학질, 폐결핵 같은 전염성 질환에 대한 치료방책을 논한 것이기 때문이다. 수적인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현존하는 『향약집성방』이나 『의방유취』 같은 거대방서나 의학전서류를 제외한다면, 단일 전문의학서로는 ‘구급방’, ‘태산집’과 더불어 ‘창진방’ 같은 방역의서를 가장 많이 간행하였고 비중 또한 높다.

현재 기록된 바로는 세종대에 이미 위에 기록한 ‘구급방’, ‘태산집’, ‘창진방’이 간행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세조대에 이르러 『의방유취』 교정 과정에서 도출된 것으로 보이는 『창진집(瘡疹集)』이 실물로 전존하고 있다. 필자는 오래 전 박사과정에서  『의방유취』를 주제로 연구를 진행하면서 당시 발견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 세조대 『창진집』을 정밀 분석하고, 『의방유취』 와 상세 대조 분석한 바가 있었다. 


구급방, 태산집, 창진방 등 의료구제책의 표상


 그 결과 놀랍게도 『의방유취』의 소아 진두문의 내용과 세조대 임원준이 펴낸 『창진집』의 내용이 체제만 달리했을 뿐 거의 모든 본문의 내용이 여기서 도출되었음을 발견하였다. 이 과정은 소략하게나마 당시 본인이 연재하던 칼럼(고의서산책 39회, 의방유취 편찬의 열쇠-『瘡疹集』, 2000.7.24.일자)에 소개한 바 있으나 정작 이 획기적인 발견은 타인의 논고에 편입되어 도용되는 바람에 뇌리 한 편에 상처로 남고 말았다. 

필자는 그 후로도 본문을 번역하는 한편 많은 시간을 들여 당시로선 아무 누구도 돌아보지 않았던 한국의 고대 전염병 치료에 대한 탐색을 거듭했었다. 하지만 오늘과 같이 역병이 온 세상을 덮치리라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래서 코로나 감염을 계기로 그때 흥분과 열정에 넘쳐 들여다보았던 『창진집』을 다시한번 살펴보기로 하였다.

이 조선시대 방역전문서를 간행한 세조는 드라마나 사극에서는 정치적 야심이 많아 조카를 폐위시켜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비정한 인물로 그려져 있다. 하지만 수양대군시절부터 세종임금 아래서 의서를 강독할 정도로 의약지식에 해박하였으며, 즉위 후 얼마 되지 않아 습독청에 의서습독관(醫書習讀官)을 두었고 부왕대에 이미 완성한 『의방유취』를 다시 꺼내 오류를 교정하는 작업을 지시하였으며, 당시 예문관지제교로 있던 임원준과 이조참의 이극감을 불러 바로 이 책 『창진집』을 펴내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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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손의 교정을 마치고 서문이 붙여진 것은 1457년 4월 하순이니 이 책은 거의 세조의 등극과 함께 개시한 대민구제책의 첫 성과라 할 수 있다. 뒤이어 세조 8년에는 의서습독관에 대한 권징(勸懲) 조건을 정할 때 아예 이 책을 습독의서의 하나로 정하였으니 세조가 얼마나 이 책에 관심을 기울였는지 짐작할 만하다.

그 후로도 1471년(성종2) 의원취재(醫員取才) 고강서(考講書) 가운데 하나로 이 책을 채택했으며, 중종조에 이르러서는 당대의 명신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 1478~1543)이 백성들의 풍속을 교화시키기 위한 교육서로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를 언해하여 펴낼 때, 그 전범으로서 세종대에 펴낸 구급방, 태산집, 창진방 간행을 사례로 들면서 한글로 이 책들을 다시 펴낸 사실을 서문에 남겼다. 

이 때 펴낸 책들은 아쉽게도 지금 전하지 않으나, 훗날 선조 말년에 이르러 허준에 의해 다시 언해본 구급방과 태산집요, 두창집요 등이 간행되는 것으로 보아 이 3가지 분야의 전문의서는 조선 초기로부터 역대 조정에서 대민 의료구제책의 표상처럼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의 구성에 대하여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상중하 3권으로 구성된 이 책은 서문에 이어 본문에는 상권에 두창과 마진에 대한 역대 의가들의 병인, 병기, 분류, 증상과 치법 등을 논한 제가론(諸家論)이 실려 있고 중권과 하권에 단계별 치법과 치료처방이 수록되어 있는데, 변이증상에 따라 차례대로 예방(豫防), 발출(發出), 화해(和解), 구함(救陷), 소독(消毒), 호안(護眼), 최건(催乾), 멸반(滅瘢), 그리고 통치지제(通治之劑)와 금기로 나뉘어져 있다. 


코로나 사태, 전통의학의 치료경험을 도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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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여기 실린 치료대책 안에는 고려시대 현존 최대 분량의 향약의서인 『비예백요방(備豫百要方)』에 수록된 소아 완두창 치료법과 부록으로 고려~조선초기로 이어지는 시기 ‘본조경험방(本朝經驗方)’이라는 이름의 창진 치료 의안(醫案) 17조목이 실려 있어 의학사적으로 엄청난 가치가 온존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누군가 요즘 전 세계에 유행한 코로나 펜데믹 사태를 두고 말한다. 왕정시대에도 예기치 않은 돌발 상황을 맞이해서는 항시 과거의 통치사적과 사례를 상고하여 의사결정을 했는데, 현 사태를 맞이해서 전통의학의 치료경험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백신이나 치료대책도 문제려니와 자가 격리와 오랫동안에 걸친 활동제한으로 갖가지 불안심리가 조장되고 공포감이 유발되고 있다. 직능에 따라 동참하여 함께 이기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어차피 이 전쟁 아닌 전쟁의 최종 승리자는 정부 당국이나 방역일선의 의료진만이 아니라 갖가지 피해와 제약을 감수하며, 묵묵히 참고 이겨낸 국민 모두의 몫으로 돌아갈 일이다.

안상우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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