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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ID-19 진료봉사가 일깨운 ‘사회적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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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ID-19 진료봉사가 일깨운 ‘사회적 가치’

“보너스로 받은 인생 더 감사하며 살겠다”는 파독광부 환자 말에 한의사로서 사회적 의무 더욱 충실히 수행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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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운 한의정보협동조합 부이사장


한의정보협동조합 부이사장 정다운입니다. 저는 현재 미국에서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자 워싱턴 DC로 이주하여 영어권에서 진료와 강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인생의 큰 방향을 전환한 셈인데 하필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뒤흔들어 놓는 바람에 아직도 미국에서의 삶이 안정되지 않고 있네요. 그럼에도 한의사인 저에게 주어진 사회적인 의무를 다하기로 마음먹고 미주한의사협회(AAKM, American Association of Korean Medicine) 소속 신분으로 코로나바이러스 환자들을 관리하는 의료봉사를 시작했습니다.

 

100여년 전 스페인 독감에 비견될 만큼 보기 드문 상황에서 제가 조금이나마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사실에 감사하며, 전화통화로나마 저와 인연을 맺었던 환자분들의 이야기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01. 이역만리서도 한의진료를 위한 노력  

현재 미주한의사협회 회원이 50명 남짓인 것 같습니다. 미주한의사협회와 인연의 끈이 닿지 않아 파악이 안 된 분들까지 포함하더라도 한의사 전체에서는 1%도 안 되는 소수 집단입니다. 

 

그래도 어느 집단이건 앞장서 일하는 핵심 인력이 존재하기에 바퀴는 계속 굴러갑니다. 이영빈·김홍순 공동 회장님, 진승희 부회장님, 나성수 학술위원장님의 열정으로 여러 가지 일들이 착착 진행되어 나갔는데 코로나에 대한 대응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대한한의사협회에서 ‘청폐배독탕(淸肺排毒湯)’을 공급하기로 한 기획 덕분에, 미국에서도 한국의 코로나19 한의진료센터를 모델 삼아 팀을 꾸릴 수 있었습니다. 봉사자를 모집하고, 화상회의 및 교육을 통해 코로나19 진료지침과 청폐배독탕 1, 2 및 청명(淸命) 처방에 대한 정보를 받았습니다. 구글 설문지, 구글 캘린더, 구글 스프레드시트를 통해 진행되는 실무적인 절차에 대해서도 꼼꼼하게 교육받았습니다. 

 

이제 실제 환자에게 도움을 드리는 일만 남았는데, 의외의 문제들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미국의 의료상황은 한국과 여러모로 다르기에 우선 혹시나 생길 수 있는 법적인 책임 문제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했거든요. 

 

‘진료’ 또는 ‘한약’이라는 용어 대신, ‘전화상담’, ‘건강기능보조제’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로 정했습니다. 또 마황(麻黃) 사용에 대한 문제를 고민해야 했습니다. FDA 규정상 미국에서는 기본적으로 마황(麻黃)이 들어간 약품 사용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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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확진자에게 배송될 청폐배독탕 포장 사진]

 

일리노이주와 같은 특정 주에서 마황을 사용할 경우에는 처벌을 받을 수도 있지요. 단 법령에 한의사가 치료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명시해 둔 캘리포니아주와 뉴욕주에서는 마황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도 한약이 주(state) 경계를 넘어 전달되어서는 안 되기에 동부에서는 결국 마황이 들어가지 않은 청폐(淸肺)2를 위주로 투약하는 것으로 지침을 결정했습니다. 

 

먼저 항공편을 통해 한국에서 약을 배송받았습니다. 미국 동부에도 워싱턴 DC 근처의 환자에게 사용할 목적으로 제 앞으로 한 상자가 분배되었죠. 기본적으로 환자와의 접촉을 피해야 했기에 정해진 주소 앞에 정해진 시간에 약을 두면, 환자가 와서 픽업해가거나 자원봉사자가 배송하는 방식으로 약이 환자에게 전달되었습니다. 

 

거리가 너무 먼 경우에는 택배를 이용하기로 하는 등 전반(全般)에 걸쳐서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죠. 회장단은 뉴스, 라디오 방송 출연 등 홍보활동으로 인해 분주했기에 말단 회원인 저와 같은 한의사들이 여러 환자분들과 인연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02. 전화상담 통해 만난 77세 파독광부 

사전설문을 통해서 기본 증상, 생체징후, 간단한 병력을 확인했던 대로, 환자는 세탁소에서 일하시는 77세 남성분이었습니다. 일주일 전부터 발열, 식욕부진, 무기력 등의 증세를 보이셨는데, 타이레놀을 복용해 열이 조금 내려간 상태에서 최대한 버텨보라는 말을 들었다 합니다. 환자들은 열이 안 내려가거나, 호흡 곤란이 오면 응급실로 오라는 지시사항을 따르고 있었지만 이미 뉴저지주의 병원들은 환자들이 넘쳐나서 감당이 안 되는 상태였죠. 

 

통화로 환자의 과거력, 현재 증상 등을 확인한 뒤, 청폐배독탕 2를 2일분 처방했습니다. 다행히 자원봉사로 약을 배송해주시는 봉사자께서 약을 댁까지 가져다드릴 수 있었기 때문에, 홀로 환자를 돌보아야 했던 보호자에게 한 번 더 큰 위안을 줄 수 있었습니다.

 

이틀 뒤인 4월 18일, 전화를 드려 보호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힘없는 목소리로 어제 할아버지에게 호흡곤란 증세가 나타나고, 산소포화도가 떨어져 주치의 의견을 받고 입원하게 되었다고 전합니다. 코로나 선별검사를 시행했고, 현재 병원에서 산소호흡기를 착용한 덕에 호흡곤란 증상은 다소 호전을 보인다고 합니다. 

 

위로의 말을 전한 뒤 일주일 후 경과 확인을 위해 다시 전화를 드리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전화를 끊고 나니 저절로 나오는 한숨이 제 방을 꽉 채웁니다. 재진 전화에서 상태가 괜찮으면 초록색, 상태가 안 좋으면 붉은색으로 표시하기로 미리 약속했었는데, 전화 상담일지에 붉은색으로 표시하면서, 혹시 내가 표시한 저 붉은색이 환자분의 미래에 복선(伏線)으로 작용하지는 않을까 괜히 마음이 무거웠기 때문입니다.

 

이제 연세가 다들 70대에 접어드신 고국의 부모님, 그리고 장인어른, 장모님 한 분 한 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더군요. 코로나바이러스는 아무래도 고령층을 크게 위협하니까요. 


부모님이 계시는 광주에서도 얼마 전 확진자 발생으로 인해 병원이나 마트가 폐쇄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메시지와 통화의 작별 인사로 답답해도 집에 붙어계시라는 말을 남기는 것이 저에게는 일상이 되었습니다. 

 

일주일이 지나 보호자와 다시 통화를 했습니다. 상태는 악화되었는데 병원에 가보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시는 상태였습니다. 병원에서 온 소식이라고는 호흡곤란 증세가 심해지고 컨디션이 안 좋다는 것뿐이어서 ‘어떡하죠, 선생님?’ 하고 걱정하는 보호자 분께 제가 드릴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의료진을 믿고, 기다려보자는 위로뿐이었습니다. 

 

그 뒤로 몇 번의 통화를 더 나누었는데 답답한 상황은 지속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증상이 호전되어 5월 초에 퇴원을 하실 수 있었고, 5월 13일 경부터는 청폐배독탕 2를 다시 복용하게 되었습니다. 집에서 산소 호흡기를 착용한 채 회복을 기다리고 있었죠.

 

5월 17일에는 3~4단어씩 끊어가면서라도 말씀을 하실 수 있는 상태가 되어 환자분과 직접 통화할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산소호흡기 사용 시간도 조금씩 줄여가고 있다고 합니다. 한 달 여 만에 다시 듣는 환자분 목소리에 그렇게 반갑고 고마울 수가 없었습니다.

 

5월 21일에는 상태가 많이 좋아져서, 산소호흡기도 하루에 한 번 사용할까 말까이고, 운전도 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전화통화로도 2~3문장을 연달아 말씀하실 정도가 되니 정말 놀라웠습니다. 그렇게 마음에 여유가 조금 생기자 환자분께서 본인 삶의 여정에 대해 말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파독(派獨) 광부로 일 하셨고, 월남전도 참전하셨고, 1970년대에는 아르헨티나 이민, 그리고 그 이후로는 미국으로의 이민…… 어찌 보면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직접 겪으셨던 분이 이번에 코로나까지 이렇게 몸소 겪으신 셈인데, 한 인생에 그 많은 역사가 고스란히 아로새겨질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이제 보너스로 받은 인생을 더 감사하며 의미 있게 살아가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환자분 덕분에, 저 역시 주어진 사회적 의무를 더 충실하게 수행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03. 투철한 직업정신의 히스패닉 간호사 

뉴욕의 한 병원, 코로나 환자들이 있던 병동에서 일하던 히스패닉 계열의 59세 간호사와 2020년 5월 6일에 초진 전화상담을 시작했습니다. 같은 병동에 일하던 한인 간호사의 소개로 접수해서 저와 인연이 닿게 되었죠. 

 

숨이 가쁘고, 기침이 연달아 나오는 바람에, 대화를 길게 이어나가기 어려웠습니다. 가슴도 답답하고, 두통이 있어서 병원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았으나 검사결과는 음성이었습니다. 처방받은 항생제와 말라리아 약 모두 효과가 없었으나, 1주일 병가 후에 다시 복귀해야 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주치의는 바이러스성 폐렴을 의심하지만 더 해줄 것이 없다고 했기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청폐배독탕 2를 2팩씩 하루 3번 드시도록 처방했습니다. 5월 11일 오후부터 약을 하루 3번 복용하기 시작한 이후로 증상이 크게 개선되어 문장 단위로 대화가 가능했으며 기침이 눈에 띄게 감소했습니다. 일주일 후에는 가래도 거의 사라지고, 기침이나 호흡곤란 등이 많이 좋아져서 약을 1팩씩 하루 3번으로 줄여가며 조리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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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매번 통화마다 감사하다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하면서 고마워했던 그녀는 이제 다시 뉴욕의 병원에서 코로나 환자들을 돌보는 일상에 복귀했습니다. 혹시나 병동에서도 한약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연락을 달라는 말도 덧붙였죠. 힘든 상황에서도 투철한 직업의식으로 환자를 돌보고 있는 간호사를 비롯한 의료진 모두에게 감사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04.한의사로서의 직업적 의무 다시 생각 

이미 코로나19가 전세계의 일상을 바꿔놓았지만 앞으로의 미래 또한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습니다. 언제 치료제나 백신이 개발될지, 백신에 의한 집단면역이 성공적일지, 변종이 출현하여 또 다른 유행을 만들지는 않을지 확실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또한 격리로 인해서 나타나는 경제적인 위협이 오히려 건강상의 위협보다 더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되기도 합니다.

 

일상의 파괴가 야기하는 심리적인 문제들 역시 심각합니다. 불안과 공포로 인해서 사회적인 갈등이 커지고, 인종간의 갈등, 빈부격차 등은 감정의 골을 깊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번 봉사를 통해서 미국 땅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는 분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습니다. 세탁소, 미용실, 건물 청소, 조경, 운전기사 등으로 고군분투하며 살아가시는 분들에게 코로나는 더 직접적으로, 잔인하게 영향을 주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일선의 의료인, 간호사, 응급구조대원들은 커다란 위험을 무릅쓰면서도 환자들을 돌보는 직업적 의무를 묵묵히 다하고 있었습니다. 한의사인 우리에게도 이러한 시기에 주어진 의무가 있음을 다시 떠올리게 됩니다. 

 

나는 한의사로서 지금 여기에서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가? 돈을 벌고, 차를 사고, 집을 사고,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가장으로서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한의학을 실현하고 인류에 기여하는 한 명의 직업인으로서 저는 또 하루를 살아갑니다. 그러한 삶의 발자취들이 모여서 제 삶의 한 페이지를 장식해나가겠죠. 

 

이번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어떻게 되든, 그리고 앞으로 또 다른 전염병이 유행하든, 기후변화로 인해 다른 형태의 재앙이 발생하든, 우리의 미래가 장밋빛이 아닌 것은 확실합니다. 그래도 가족들의 미소를 지키기 위해, 또 인류를 위해 스스로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꾸준히 행하며 우리의 하루하루를 채워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본 원고는 한의정보협동조합의 프리미엄 한의학 매거진 On Board(온보드) 15호에 기고하기 위해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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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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