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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숙 여의도책방-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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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숙 여의도책방-5

슬기로운 한의사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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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숙

국회사무처 부속한의원 원장

(前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저는 ISTJ인데, 님은 어느 유형이세요?”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 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 캐서린 쿡 브릭스와 그의 딸 이사벨 브릭스 마이어스가 카를 융의 성격 유형 이론을 근거로 개발한 16가지 성격유형)로 자기소개 정도는 해줘야 요즘 20∼30대 사이에서는 ‘인싸’소리 좀 듣는 모양이다. 외국인 어머니들(필리핀, 중국, 베트남 출신이 다수)에게 적절한 언어자극을 받지 못해 후천적으로 언어장애를 가진 소아들과 ADHD 초등학생들 그리고 스트레스로 인해 선택적 함묵증(selective mutism; 어떤 상황에서는 말을 잘하는데도 특정한 장소 또는 상황에서는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 발생한 고등학생들을 주로 상담하는 언어치료사 친구가 있다. 

자칭타칭 ‘야매 MBTI 전문가’이기도 한 이 친구가 최근 언어치료사들의 나와바리(!)에 스르륵 진입 중인 한의사들을 MBTI의 한 유형에 대입해가며 강도 높은 비판을 가끔 하길래 그녀의 깊은 빡침(!)의 이유를 진지하게 물으니 다음과 같은 스토리를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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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는 ‘INFJ 예언자형’ 인가?

언어치료라는 것이 본디 수년간 지속적인 상담과 평가, 치료와 재평가를 기본으로 하는 지루한 마라톤 같은 과정인데 상담을 잘 진행하고 있는 환자가 갑자기 예약을 취소하겠다는 일방적인 통보를 해오는 경우가 적잖게 있는데 그 타이밍이 어디선가 누구에겐가 추천받아 그 해당 분야의 용하다는(!) 한의원에 다녀온 이후라는 것이다. 

보호자들에게 간접적으로 듣게된 한의사에 대한 뒷담화인지라 과장이나 왜곡된 부분도 꽤 많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그 친구의 묘사는 다음과 같았다. 

원장실에 입장하는 환자와 보호자를 보자마자 “그동안 실력없는 의사들, 돈만 밝히는 치료사들 만나게 해서 미안하다. 한의학을 제대로 아는 사람들이 실제로 별로 없다. 이제부터 나만 믿고 따라오면 된다. 다 나 만나려고 그 고생 한 거니까 좋게만 받아들이고…(중략)… 본인은 특별한 선생님을 만나 기수련도 따로 했고 그래서 일반 침치료랑 차원이 다르다. 약재도 내가 직접 재배하고 관리도 유별나게 하는 터라 약값도 비싸다. 그러나 그만큼 반드시 효과를 낸다. 다른 치료랑 병행하면 효과가 반감될 수 있으니 그저 나만 믿고 따라오라”라고 했다고 한다. 

물론 건너건너 전해들은 이야기라 실제와의 싱크로율이 얼마나 될런지는 가늠하기 어렵지만 그 ‘야매 MBTI 전문가’는 환자의 기존 치료를 모두 중단시키고 나만 믿으면 된다고 강조하는 교주 스타일의 한의사를 ‘내향적 직관형’으로 불리우는 ‘INFJ 예언자형’으로 진단하였다. 이 타입들은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뛰어난 영감으로 말없이 타인에게 영향력을 가지려 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따르게 만드는 지도력이 있으며 사람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옳다고 확신이 생긴 신념은 끝까지 밀고 나간다고 알려져 있으며 부가적으로 기도나 기수련에도 관심이 많다고 한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 “한의사들이 이런 분야에 얼마나 전문적으로 치료를 잘 해내는 줄은 잘 모르겠어. 한의사라면 응당 대한민국에서 침치료를 제일 잘해야 하는 사람들 아니냐? 뜸사랑에서 배웠다며 의료봉사 운운하는 불법 침구사들이나 침놓는 목사, 스님들이 전국지천에 깔려 있어도 합법적으로 침치료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면허권자들이 한의사라면 그 본질에 집중해야지 언어치료사들 밥그릇까지 발로 차며 본인 치료만 받으라는 건 너무 비상식적이지 않냐?” 그녀는 무매너 한의사의 인터셉트에 분노하고 있었다. 

 

 

침 치료…최소한의 개입을 통한 놀라운 효과

 

“설마 그 한의사가 본인만 옳고 다른 사람들은 다 틀렸다고 말했겠느냐. 치료 초기에 제어가능한 외부 요인들을 최소화하고 환자들을 관찰해야 하는 일정 기간이 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었을 거다. 그 선생님이 환자관리에 대해 욕심이 좀 과하셨나 보다. 그리고 언어장애를 포함한 소아들의 성장지연은 오지오연(五遲五軟)이라는 병명으로 한의사들이 오래전부터 치료해오던 영역이다. 어느 질환을 두고 본인만의 영역이라는 건 이젠 더 이상 의미없다. 요즘 사람들은 온갖 정보를 검색해보고 어떤 식으로든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면 일단 움직인다. 그리고 한의사는 침이나 잘 놓으라는 말은 모욕이다. 그건 기본이기 때문이다”라고 친구에게 일정 부분 오해를 풀어주고 내 의견을 전달하려고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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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한의사들에게 있어서 침은 “一鍼二灸三藥”의 “一鍼”일 정도로 “the most basic”이다. 2017년 8월 초 건축서적 코너에서 제목만 보고 바로 구입했던 책이 있었는데 브라질의 쿠리치바(Curitiba)라는 도시의 시장을 세 번이나 역임한 세계적 명성을 지닌 도시계획가이자 건축가인 자이미 레르네르의 <도시침술>이라는 책이었다. “침은 재빨리 놓아야 한다.” “천천히, 아프게 놓는 침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침의 생명은 속도와 정확성이다.” 자이미 시장의 ‘침’에 대한 짧은 기술이다. 쿠리치바가 1970년대부터 효율적인 교통 시스템과 친환경적 도시 정책을 성공적으로 정착시켜 ‘꿈의 생태도시’라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던 데에는 자이미 시장의 도시에 대한 아이디어가 결정적이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침치료가 몸에 최소한의 자극을 주어 건강을 회복시키듯 도시에도 최소한의 개입으로 놀라운 효과를 만들어 내는 도시재생의 핵심 개념이 바로 ‘urban acupuncture’인 것이다. ‘최소한의 개입을 통한 놀라운 효과’라는 표현은 침치료를 주업으로 해오고 있는 내게 꽤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도시침술’, 침 치료의 본질 일깨워주는 표현들 ‘눈길’

 

“나는 항상 도시의 아픈 부위에 침을 한 대 놓아 낫게 하겠다는 꿈과 희망을 키워왔다. 치료 결과가 좋으려면 훌륭한 의술뿐 아니라 의사와 환자 사이의 상호작용이 필요하듯, 도시계획이 성공하려면 구성원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야 한다.” “거의 언제나 작게 피어오른 불씨 하나가 널리 퍼져나가 변화를 가져온다. 바로 이것이 좋은 침술, 진정한 도시침술이다.” “현대건축의 거장들처럼 천재의 솜씨가 명의의 침 한 대와 같은 효과를 내기도 한다.” “훌륭한 도시침술은 세계 곳곳의 교통 시스템 개선에도 영향을 미쳤다. 100년도 더 된 파리 지하철역의 아름다운 입구, 영국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설계한 스페인 빌바오 지하철역, 쿠리치바의 튜브형 급행버스 정류장이 대표적이다.”

눈에 보이는 거대한 공간의 변화는 정치인이나 행정가들이 집중하고 있는 가시적인 성과를 위한 영역인 데 반하여 그 안을 채우고 생활하는 사람들을 진정으로 위하는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미시적인 영역은 ‘도시침술’보다 더 효과적일 수는 없다는 것이 자이미 시장의 확고한 생각이다. 

거대 자본이 투입된 수천병상의 대학병원과 첨단, 정밀 의료장비 앞에서 늘 “음메, 기죽어”를 외치지 않을 수 없었던 일개한의사인 나에게 자이미 시장의 ‘도시침술’에 대한 찬양에 가까운 코멘트들은 이른 아침, 깊은 숲속에서 느껴지는 솔향처럼 머리와 가슴을 뻥 뚫리게 해 주었다. ‘좋은 침술’, ‘명의의 침 한 대’, ‘의사와 환자 사이의 상호작용’, ‘실질적인 변화’ 등의 표현들은 그동안 잊고 있었던 한의사로서의 우리의 본질을 상기시켜주는 얼마나 아름답고 든든한 단어들의 조합인가!!! 

양의를 고용해서 온갖 검사실을 돌려서 칼라풀, 파워풀, 원더풀한 자료화면들을 환자 눈앞에 좌라락 펼쳐놓은 후 “한양방 협진치료 시스템”이라는 이름 아래 모든 치료방법들이 짬뽕+종합+통합+망라시킨 ‘combination therapy combo’를 쏟아붓는 물량공세를 펼쳐야 입원환자들을 대상으로 실비보험을 풀청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요즈음의 소위 ‘잘나가는‘ 한방병원들의 현실이다. 

나쁘다는 게 아니다. 나도 대학병원이라는 간판은 붙어있었지만 현실은 실비보험금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려는 입원환자분들 밤낮으로 봉양하며 2000년 인턴 시절부터 부산대학교 교수시절까지 14년을 버텨냈다. 그러나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진 상황, 아니 그보다는 뭔가 핵심과 본질을 망각한 채 시간에 쫒겨 하루살이처럼 당일 내 책상에 쌓인 일들만 쓱싹 헤치우며 살아오진 않았는가 하는 반성이 든다는 이야기다. 

 

‘Small is beautiful’, ‘Simple is the best’, ‘Less is more’, ‘Back to the basics’임을 우리도 알지만 돈도 되지 않고 환자들도 시시해한다는 이유로 가장 중요한 ‘침치료’는 소홀히 하면서 온갖 학위와 학회활동 증명서들로 대기실을 도배하고 똥폼과 구라로 오바액션까지 취하면서 홍보에 열을 올리지 않으면 초진을 넘어 재진, 삼진의 귀한 발걸음으로 환자분들을 유지하는 것이 너무도 어려운 초초경쟁시대에 살고 있다니 갑자기 자괴감이 몰려온다(물론 개원가의 첫발자국도 딛지 않은 나는 이런 말을 할 자격도 없다. 개원소식을 전해오신 많은 제자님들, 무조건 존경합니다).

최근 “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기획된 <코로나 19, 신인류 시대>라는 각 분야 전문가들과의 인터뷰 시리즈를 보게 되었는데 그 중 가장 재미있었던 편은 아주대 심리학과 김경일 교수의 방송이었다. “대박시대 가고 완판의 시대로”편에서는 대량생산-대량판매-대박시대로 이어지는 무시무시한 규모깡패 중시사회에서 개성시대-취향존중-소량생산-완판시대라는 탈규모로의 트렌드 스위치는 노브랜드에 소규모가 대부분인 개원가의 한의사들에게도 한 줄기 따사로운 회생의 틈새가 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품기에 충분했고, “행복의 척도, 이렇게 바뀐다”편에서는 경쟁의 시대는 가고 공존의 시대가 온다는 대목이 유독 마음에 들어왔다. 

눈만 돌리면 여기저기 새로운 동종업계의 개업을 알리는 간판과 광고들이 쏟아지고 있으니 언어치료사를 포함한 기존 치료는 모두 끊고 본인의 치료에만 집중하라는 무리수 전략도 나오는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경쟁의 시대에 내몰리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우리는 공존을 선택해야 최종적인 서바이버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있는 시장의 나눠쪼개 먹고 살아야 하는 레드오션의 판을 바꾸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에 대해서는 격한 성공(!) 없이 잔잔한 생활인으로 살아온 나로서는 감히 언급할 자격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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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어렵고 어렵다는 이 시대의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백과사전을 줄줄 읊는 박식함(ISTP)에도 섬세함을 보태보자. 깐깐한 환자들에게도 네이버 검색과는 차원이 다른 감동을 안겨줄  것이다. 때로는 성인군자를 능가하는 묵묵한 고지식함(ISFP)도 스트레스 많은 환자들에게는 상대적인 안정감을 줄 수도 있다. 스파크 가득한(ENFP) 튀는 아이디어(INTP)로 무장된 발명가(ENTP), 과학자(INTJ), 사업가(ESTJ)의 기질을 키운다면 그러한 그룹은 한의계의 잔다르크(INFP)로 이름을 드높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또한 뛰어난 언변(ENFJ), 남다른 사교성(ESFP)으로 수완 좋은 활동(ESTP)까지 이어간다면 교류하는 환자들과의 친선(ESFJ)을 기반으로 작게는 본인이 속한 지역사회의 명의로 넓게는 그 시대를 치료하는 귀한 소금(ISTJ)같은 난세를 구하는 큰 세의(世醫)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슬기로운 의사 생활>이라는 드라마 제목을 본 순간 결심했다. 올해 후반기 나의 목표는 슬기로운 한의사가 되는 것이다. Shall we dream together?    

 

 

신미숙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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