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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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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428)

1971년 6월 프랑스 피네박사 초청 강연 및 좌담회
“유럽과의 침구학술 교류의 역사를 짚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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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1971년 6월24일 5시 경희대 한의학과 학과장 이창빈 교수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프랑스의 침구학회 국제부장인 피네 박사가 26일 오전 10시40분 경희대 강당에서 강연을 했다. 같은 날 오후에는 8시 센추럴호텔 라운지에서 대한한의학회와 경희대가 공동으로 주관한 친목 좌담회가 열렸다(이하 1971년 6월30일자 한의사협보 참조함).

“피네 박사는 이날 오전 100여명의 교강사 및 한의사협회장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된 경희대에서의 강연에서 침구학술이 프랑스에 전래된 역사와 서구 각국에서의 침구의 활용에 대해 해설하였다. 프랑스는 300년 전 중국에 파견되었던 성직자들을 통해 침구학이 수입되었는데, 일반의 이해를 계몽하기 위해 자신의 선조들은 무수한 노력을 경주해서 오늘날은 세계 각국의 학자들과 학술적 교류를 하는 데까지 발전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프랑스를 위시한 이탈리아, 독일 등이 가장 성황을 이루고 있어서 외과의사라면 우선 침구학술을 연구체득해야 한다는 풍토가 마련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오후 8시 센추럴호텔에서 베풀어진 초청좌담회에서는 60여명의 한의사 회원들이 참석하여 이창빈 교수의 소개로 한의협 정·부회장, 홍순용 한의학회 이사장, 이동희 경희대 동문회장 등이 인사를 교환하고 이범성 한의사협회 회장의 환영인사가 있었는데, 이 회장은 한의학이 세계적인 붐을 조성하고 있는 이 때 서구의 한의학자의 한 분인 피네 박사의 내한을 환영하는 바라고 말하고 피네 박사는 프랑스 침구학회 국제부장으로 국제적인 교류에 공헌이 크고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개최될 세계침구총회에도 박사의 많은 관심과 협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피네 박사는 한국 한의학의 고도한 발전에 감명이 크다고 말하고 73년 한국에서 개최될 세계침구학술대회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이날 좌담회에서는 서구 침구학술에 대한 설명과 우리나라 학자들과의 연구과정에 관한 학술적 담론과 연구 분야에 대한 실정교류가 있었다. 피네 박사는 슬라이드를 통해 프랑스 학회의 연구 또는 임상 실기 등을 소개했다. 피네 박사는 또한 서구 각국도 침구학술연구를 통해 한의학의 진수를 깨달아 침구의 경지를 초월해서 모든 한방의술을 연구하고 있고, 그 결과로 한방의약이 치료면에서 크게 공헌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국제적인 한의학계 인사를 초청하여 한국 한의학과의 교류를 시도한 이창빈 교수의 노력이 주효하였다. 피네 박사는 30일경 한국을 떠날 예정인데 그동안 이창빈 교수의 안내로 한국의 명소를 관광한 후 일본으로 떠날 것이라고 한다. 또한 피네 박사 내한을 계기로 한의학에 대한 인식교류는 성공이지만 학술면에서의 새로운 연구의 발견은 할 수 없었다는 것이 학자들의 논평이었다.”

위의 내용은 1971년 6월30일자 『한의사협보』(훗날 『한의신문』)의 기사를 정리한 것이다. 피네 박사는 프랑스에서 침구학회의 국제부장을 지내고 있는 인물로서 경희대 이창빈 교수의 초청으로 한국에 와서 강연회와 좌담회에서 강의와 토론을 하였다. 마지막 부분에서 당시 한의사협보의 기자는 “한의학에 대한 인식교류는 성공이지만 학술면에서의 새로운 연구의 발견은 할 수 없었다는 것이 학자들의 논평이었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매우 정곡을 찌르는 논평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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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6월30일자 한의사협보에 나오는 프랑스 피네 박사의 강연 및 좌담회 기사.

 

김남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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