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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진보, 중도 VS 부의, 빈의, 봉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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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진보, 중도 VS 부의, 빈의, 봉직의

한의계는 그동안 어떤 가치를 추구해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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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숙

국회사무처 부속한의원 원장

(前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 3월 10일은 COVID-19가 국내에 상륙한 지 50일이 되는 날이었다. 21대 총선이 채 1개월도 남지 않아서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로 불리워야 마땅한 요즈음인데 예비 국회의원들의 “정치적 미소” 위에 얹혀진 이름 석자를 “사회적 거리 두기” 현수막들이 가려버린 느낌이다. 

입춘(立春)이나 경칩(驚蟄)을 헤아리며 봄날의 들뜸을 즐기는 일 역시 실내외를 가리지 않고 마스크를 착용한 채 가뿐 숨을 몰아쉬어야 하는 우리 모두에게 당분간은 버거운 일이 되었다.  

31번 확진자에서부터 폭발적으로 늘었던 환자수 그래프가 몇 주 전 정점을 찍고 이제 겨우 아주 서서히 안정세를 찾아가는 듯한 국내의 “코로나19” 대처에 있어서도 처음에는 너무 당황스러운 나머지 그 어떤 갈등이 개입될 여유는 없어보였다. 여야의 갈등도 양한방의 구별도 지역갈등도 사치스럽게 보였던 날들도 있었다. 

여(與)는 몇 가지 과정에서의 착오와 실수는 있었지만 최선의 방역으로 이만큼 버텨내고 있다는 자평을 하였고 야(野)는 이게 나라냐며 여전히 정부의 모든 것을 질타 중이다. 의협은 면마스크를 권고한 적 없다며 마스크 부족사태를 미리 예측하지 못한 정부무능을 비난했고 정부에 “코로나19” 관련 자문을 한 교수들에게 “비선자문”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급기야는 자문팀을 해체시키기에 일조하기도 했다. 

 

코로나19에 기여하기 위한 눈물겨운 안간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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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의료진이 부족하다는 뉴스에 많은 한의사들이 자원봉사를 원했지만 의료계와 정부는 검체 채취는 일반의사의 업무라며 한의사의 의료봉사를 공식적으로 거부했고 의협은 그렇게도 봉사가 하고 싶으면 대구에는 내려오되 “비의료” 봉사나 하라며 의료 봉사에 “한의사들은 제외”라는 입장을 견지하였다. 이러한 무시에도 불구하고 한의협은 확진판정을 받고 자가격리 중인 경증 환자들을 위한 전화상담 센터(1668-1075)를 별도로 마련하여 환자들의 증상을 모니터하고 환자들이 원할 경우 무료로 한약처방을 배송해 주는 방식으로 “코로나19”에 어떻게든 기여해 보려는 눈물겨운 안간힘으로 간당간당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언론에도 일회성으로 한의사들의 의료봉사 센터 운영에 대한 보도가 나갔을 뿐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그 센터가 운영 중인지 보건당국의 경증환자 치료에 한의학적 개입이 “통계상의 오류”를 유발하는 “불필요한 개입”으로 간주되어 혹시라도 중단 권고조치를 받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지난 3월 9일 한의협으로부터 발송된 단체메일의 제목은 “코로나19 한의진료권고안 안내”였다. <중국위생위진료방안 6판>에 나오는 청폐배독탕(淸肺排毒湯)을 통치방으로 권유하였으며 이 처방은 급성 호흡기 질환 및 항바이러스효과가 입증된 마행감석탕(麻杏甘石湯), 사간마황탕(射幹麻黃湯), 소시호탕(小柴胡湯), 오령산(五笭散)을 조합한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중국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중의약 진료를 적극적으로 확대하고 있으며 1월23일부터 2월9일까지 중국임상실험등록센터에 등록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관련 임상연구의 53%가 중의약, 중서의결합 관련 연구였다는 사실도 “코로나19”에 한의학적 치료의 필요성을 지지하는 근거자료로 제시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편하게 의견을 주고받는 보건복지부의 한 국장님의 말을 빌자면 “코로나19”에 중국 내에서의 중의학과 중의사 활용방안을 인용하며 한국에서도 한의학과 한의사의 참여공간을 주장하는 것은 상당한 무리가 있으며 백신 개발 이전이라 별다른 치료약이 없으니 한약이라도 써 보자는 것을 한의사들을 뺀 그 누구가 인정하고 응원할른지 우려스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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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전우익 저술 


지금 한의협이 이 국가적 위기에 동참하고 싶은 그 순수한 의지를 모르는 바 아니나 지금은 그저 “노땡큐”이며 오히려 이 위기를 발판으로 한의사들의 쪼그라들고 있는 입지를 넓혀

보고자 협회 차원에서 정치하는 것처럼 괜한 오해를 살 수도 있고 가뜩이나 혼란스러운 국민들이 한의계에 보다 부정적인 시선을 가질까 걱정된다는 말씀도 보태주셨다. 

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19”를 위한 한의협의 의료봉사 소식이 전해짐과 동시에 많은 한의원들의 블로그와 홈페이지에는 “코로나19, 청폐배독탕으로 치료하세요”라는 광고글이 떴었고 의협의 한방대책특별위원회는 “코로나19 확진 환자에게 안전성과 유효성이 검증되지 않은 한방치료를 시험하려는 한의사단체의 비윤리적 행위를 국민을 상대로 하는 장사행위로 간주해 결코 묵과하지 않겠다”라며 강력하게 항의했다. 

물론 이 위기에 영양제, 유산균, 코로나19 예방주사 장사꾼으로 나선 비양심적인 의사들을 맞비난하며 손가락질이라도 하고 싶지만 “코로나19”의 최전선에서 고생하는 순수한 의료인들을 감안해서라도 지금은 각자의 진료공간에서 “코로나19”와 직간접적으로 노출된 상태에서 내원하고 있을지도 모를 환자분들에 대한 적절한 대처를 병행하며 우리의 일상을 이어가는 것만이 최선일 듯 하다.  

1993년 여름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고집쟁이 농사꾼 전우익 (1925~ 2004.12.19.) 선생님은 경북 봉화군의 부유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좌익계열의 반제국주의 청년운동가로 지내다가 6.25전쟁 후 낙향하여 평생 농사를 지으신 분으로 이름과는 달리 평생 “좌익”으로 사신 분이었다. 평소 좋아하는 분과 주고받던 편지글의 모음인 이 책을 추천하며 시인 신경림은 전우익 선생님을 “깊은 산 속 약초같은 사람”으로 회상하였다. 

“정신과 육체의 수많은 병이 나돌고 사람들은 약으로 수술로 병을 다스리려 드는데 말도 안 돼요. 병은 크게는 세상에서 작게는 생활에서 옵니다만 세상과 각자의 삶을 고치려 들지 않고 병만 고치려 하는 것 같아요.” 

한의대에 갓 입학했던 나로서는 이 단순해보이는 문장에서 현대의학의 한계와 피상성을 지적하고 한의학의 철학적인 기반을 지지받은 듯한 느낌을 가지기도 했었다. 그러나 구체적인 병리나 바이러스 질환 등에 천기(天氣)니 사기(邪氣)니 한열(寒熱) 등의 거시적이고 추상적인 한의학적 용어들을 꿰어맞추려는 경우 무리한 억지스러움이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코로나19”에 있어서 “청폐배독탕”이라는 중국과 한국의 권고처방이 “백신” 생산 이전의 대체제가 되기에는 보편성과 합리성이 부족해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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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자 데이비드 이스턴(David Easton)은 정치를 가리켜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고 했다. 한 사회 내의 한정적 권력과 자원을 배분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서울대 사회학과 장덕진 교수는 정치는 “제도화된 갈등”이며 그 갈등에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4·15 총선은 치러질 것이다.  한의사 출신 몇 분이 출사표를 던지셨다던데 각 지역구에 최종 후보로 공천이 되셨는지는 모르겠다. 늘 한의계 내외의 인사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한다. “한의계는 정치력이 부족하다” “한의계는 다른 의약단체들에 비해 로비력이 부족하다” “한의사 출신으로 공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뛰는 사람들이 너무 없다” 

한의계가 지금보다 더 잘 나갈 수 있는데 정치적인 파워가 없다는 말인가? 과연 한의사 출신 4년 임기의 국회의원 한 두명 나온다고 한의계의 정치력이 또는 한의학의 대한민국 안에서의 입지가 금방이라도 상승될 수 있을까? 

보수, 진보, 중도로 편을 갈라 싸우자는 것이 정치가 아니다. 정치과정에서의 사상과 지향점의 차이에서 나타난 결과적 그룹일 뿐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치이다. 우리는 어떤 가치를 지향하며 그 과정에서 어떤 전략을 가지고 있으며 그 사이 도출되는 갈등을 또 어떻게 풀어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진지한 토론이 당연히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가치가 공적인 기여로 이어지고 궁극적으로는 정의롭다는 평가를 받아야 그 직능 또는 이익단체는 지속적으로 “정치력”이라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개원가가 협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 마당에 개인희생을 감수하며 이러한 인정투쟁, 가치투쟁에 영혼과 시간을 갈아넣어 한의계의 정치력 향상을 위해 봉사할 사람이 있을까 모르겠다. 이 또한 자발적이어야 하기에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를 처음 읽었던 1993년. 그로부터 27년만에 다시 이 책을 집어든 이유는 단순히 책 제목 때문이었다. 

한의계는 그동안 어떤 가치를 추구해 왔을까? 의협과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합리적인 전략은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 중의, 중서의결합의를 적극 활용하는 오늘날의 중국의 의료환경은 어떻게 확립되었을까? 한의사들의 보다 넓은 사회참여를 위해서 전념해야 하는 공적인 영역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지난 27년간 한의계의 정치력은 과연 성장 중인가?  

대외적으로 더 큰 힘을 가지기 어려운 이유였는지 언젠가부터 한의계 역시 내부경쟁으로 초집중되어 개원가는 서로의 살을 깎아먹는 전쟁터가 되었다. 건물 하나에 2~3개가 옹기종기 간판을 내건 한의원들 사이에서 젊은 후배들은 365일 야간진료하는 시간파괴 진료를 고집하기도 하고 온라인 광고를 끝내주게 잘해서 전국적으로 초진환자를 잘 배분해준다는 비싼 프랜차이즈 한의원에 파트너 한의사로 투자를 감행하기도 한다. 

모두가 부의를 꿈꾸지만 녹록치 않은 현실에 많은 이들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반강제적으로 실천할 수밖에 없는 빈의라 불리우는 계급에 잠시(!) 쉬어가기도 한다. 부의와 빈의의 갈림길을 모두 거부한 귀차니즘의 신봉자들은 봉직의를 고집스럽게 유지하기도 한다. 

한 번 굳어진 취향이 바뀌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어서 면허취득 이후 본인 선택에 따른 이 세 갈래길은 긴 시간 평행선을 달린다고 보면 된다. 

“뉴 노멀(new normal)”은  “시대변화에 따라 새롭게 부상하는 표준”으로 주로 경제의 변화 흐름에 따른 새로운 기준을 의미한다. 바이러스 전문가 네이선 울프(Nathan Wolfe)는 우리 인류가 “바이러스 폭풍의 시대” 즉 “세계화된 전염병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시대”에 이미 진입해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진 이후 다시금 도래할 신종 바이러스성 전염병을 대비하려는 안전에 대한 의식과 열망은 더욱 강해질 것이고 개개인은 더욱 높은 수준의 안전감수성을 추구할 것이다. 

“코로나19”를 관통하며 제도권으로부터 철저히 배제되고 있는 일개한의사로서의 초라함이 냉정함을 되찾을 무렵 일반인들의 “안전에 대한 기대의식”에 부합할 수 있는 “뉴 노멀” 한의학의 변혁은 어디에서 시작되어야 할까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신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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