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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에서 느껴보는 醫藥文化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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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에서 느껴보는 醫藥文化 19

시대를 뛰어넘은 『동의보감』의 성가

안상우 박사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지난해 12월 도쿄 히도츠바시대학 한국학센터에서 ‘인문학으로 본 신체·생명·한의학’이란 주제로 마련된 한일학술심포지엄에서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동의보감’이야기가 화제로 떠올랐다. 이 자리는 3년여 진행되어온 식치 융합연구의 성과를 집약하고 미식(米食) 문화권으로 공통된 식문화를 소유하고 있는 한국과 일본의 식치문화를 비교 연구해 보기 위하여 마련된 자리였기에 ‘동의보감과 한·일 식치문화’라는 부제를 달아 공통분모를 설정하고자 하였다. 

잘 알다시피 『동의보감』은 전통의학 지식을 망라하여 집약한 고전의학문헌으로서 하나의 텍스트에 한정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한국으로부터 중국, 일본, 대만, 베트남 등지에서 생활지식으로 활용된 동아시아 전통지식의 집약체이자 의약문화 교류의 생생한 증거자료이기도 하다. 이러한 입장에서 비교적 넓은 범위의 주제영역을 설정했지만 연말을 앞두고 다급하게 마련된 자리인 만큼 가슴 한구석 제대로 심도 깊은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할까 우려하는 마음도 지울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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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간행한 일본판 정정동의보감(訂正東醫寶鑑)

일본, 한국학연구센터 운영 활발한 연구 진행

하지만 이러한 걱정은 발표를 위해 대학에 들어서면서 소심한 나의 쓸데없는 기우에 불과했음을 일순간에 깨닫게 해주었다. 우선 내가 잘 몰랐던 일본의 전통명문인 이 대학의 역사관에 전시된 탄탄한 역사기록물들과 일본 내에서 보기 드물게 한국학연구센터가 설치되어 대학원 과정에서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언어, 문학, 민속, 종교, 사회, 문화 등 다방면에 걸쳐, 전문연구자들이 치열하고 심도 있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기에 단지 세간의 명성에만 의존하여 해외에서의 한국학 연구가 다분히 제한적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지니고 있었던 나에게는 적지 않은 심적 동요가 일었을 정도다. 특히 이곳 한국학센터를 책임지고 있는 이연숙 교수는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사회언어학 및 문화사상사 연구를 주도하고 있지만 일치감치 젊은 시절부터 한의학에 심취되어 한의학 전공자 이상의 깊은 이해도를 갖고 있는 분이었으며, 특히 권도원 선생으로부터 팔상체질의학을 사숙한 바 있는, 속 깊은 한의사랑 애호가였다. 

더욱이 사전 행사 준비로부터 섭외, 진행에 이르기까지 일거수일투족 한국측 발표진의 편의를 돌보아준 이규수 교수는 나이를 잊은 채 젊은 연구생들을 리드하며 열정으로 가득 차신 분이었다.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동의보감 전파사라 할까, 아니면 이면사라 할 수 있는 새로운 이야기, 또한 그분의 발표로부터 비롯되었다. 

물론 19세기말 외세에 의해 근대로 접어들기 직전 조선에서 일본에 선물로 보내진 한질의『동의보감』은 곧이어 불어 닥친 제국주의 일본의 조선병탄과 식민지 강압통치의 전주곡 아래 파묻히고 말았기에 그리 영광스런 결말을 갖고 있진 않다. 

이규수 교수의 발표 제목은 ‘조선총독부의 의료 위생정책- 한의학 관련 자료를 중심으로’였으며, 그 첫 번째 단락은 ‘조선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동의보감’이란 타이틀을 갖고 있었다. 대략의 내용을 기술하자면 다음과 같다. 1884년 김옥균, 박영효, 서재필 등이 외세의 힘을 빌려 정권을 전복하고 개화의 꿈을 이루고자 했던 갑신정변이 단 3일만에 수포로 돌아가고 그들은 역적이 되어 조선 땅을 등져야 했다.


조선서 일본으로 선물 보내진 한질의 『동의보감』

이듬해인 1885년 2월 고종은 개화파인 서상우(徐相雨)를 참의교섭통상사무(參議交涉通商事務)란 이름의 직책에 임명한데 이어 예조참판에 임명하여 전권대신(全權大臣)의 자격으로 일본에 파견하였다. 정변 후 경색된 한일관계를 개선하고자 하는 의미를 부여했겠지만 실은 김옥균 등 개화파 인사들을 본국으로 송환시키기 위해 막후 교섭을 진행하고자 하는 의도가 다분했던 것이다.

이때 방일사절단은 일본 방문시 천황에게 줄 예물을 지참하였는데,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호피(虎皮) 2장, 인삼(人蔘) 10근, 그리고 『동의보감』 1질 25책이 그것이다. 이 예물은 외무성을 통해 공식 접수되어 황실에 전해졌다고 보도되었다. 당시 요미우리신문과 아사히신문 보도기사를 통해 이와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교수의 발표는 이 기사로부터 착안한 것이었다. 

이와 같은 사실은 단순히 외교상의 관례인 예물의 의미를 넘어 상징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는데, 임진왜란 이후 조선을 상징하는 호랑이 가죽과 불로장생의 신선초로 알려진 인삼, 그리고 조선의 대표의학서인 『동의보감』이었기 때문이다. 이들 3가지 물품은 모두 전통적으로 일본인들이 애타게 갈구하던 조선특산품들이라 할 수 있는데, 조선 후기 내내 사절이 오고갈 때마다 보물처럼 소중하게 여겼던 것들이다. 

『동의보감』 근대 의학서적 대응할 조선의학서 白眉

메이지 유신 이후 문명개화와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주창하며 서구인을 흉내 내고자 애쓰던 일본에 조선의 전통의학이 집대성된 『동의보감』을 예물로 준비한 것은 여러 가지 맥락에서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일찍이 근대 일본의 대표적인 의학자인 이시하라 야스히데(石原保秀)는 『동의보감』을 근대 의학 서적에 대응할 조선의학서의 백미(白眉)라고 정의한 바 있다(漢方と漢藥, 1939).

하지만 돌이켜보면, 한양도성까지 내려와 인명을 해칠 정도로 많았던 조선 호랑이는 일제강점기 내내 씨가 마를 정도까지 남획되어 멸종에 이르게 되었으며, 인삼은 일본인들에 의해 전매품으로 지정되어 통제를 받아야 했다.『동의보감』은 이미 오래 전인 18세기에 일본에서도 여러 차례 간행을 거듭하여 중국에까지 판목을 수출할 정도로 널리 보급되었다. 한국호랑이가 자취를 감춘 지 어언 반세기가 넘었고 조선삼 역시 화기삼에게 세계 건강식품 시장의 한복판을 내어주고 말았다. 민족의학 전통의 마지막 자존심이 담겨있는 『동의보감』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한의학에 계승될 수 있을지 우리 시대에 남겨진 숙제가 아닐 수 없다.

 

조선의 예물이 기재된 당시 요미우리와 아사히 신문기사.jpg
조선의 예물이 기재된 당시 요미우리와 아사히 신문기사

 

동의보감과 한일 식치문화 심포지엄 포스터와 발표 자료집.jpg
동의보감과 한일 식치문화 심포지엄 포스터와 발표 자료집

 

한의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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