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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에서 느껴보는 醫藥文化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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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에서 느껴보는 醫藥文化 -16

구전설화(口傳說話)로 전해지는 명의의 숨결

안상우 박사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한의학 분야 명의 활약상 여러가지 양태로 전해져

異鄕見聞錄, 壺山外記, 逸史有事 등 구전 名醫談

구전 명의 발굴, 후대에 소개…현재 의학도의 소임


한가위 명절이 지나갔다. 요즘에야 세태가 달라져 많이 퇴색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명절만큼은 만사를 제쳐 두고 고향에 있는 산소와 일가친척들을 찾아보는 것이 우리 민족의 최대 풍속임에는 틀림이 없다. 성묘나 제사는 이미 오래 전에 유명을 달리한 선조의 죽음을 상기시키는 행위가 아니다. 집안어른들과 함께하는 성묘 길에 항상 존장자의 해설이 뒤따르기 마련인데, 적어도 무덤 앞에서 우리는 숙연한 마음가짐으로 돌아가신 선조의 명예와 살아생전에 힘써 지키고자 애썼던 삶의 가치에 대해서 되새겨 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특히 우리 주변에는 조상들의 훌륭한 삶에 대한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오는데, 전해지는 내용의 진위나 역사적 사실여부가 확인되지 않아도 우리가 삶의 가치를 인식하는데 많은 귀감이 되고 과거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표현해 주기 때문에 문학이나 민속학에서는 매우 중요한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다. 

한의학 분야에 있어서도 이러한 구전설화가 여러 가지 양태로 전해져 오는데, 이를테면 허준이나 양예수와 같은 이름난 명의들의 활약상이나 우리가 몰랐던 이면사를 그린 명의설화(名醫說話), 약초의 기원이나 효능을 빗대어 표현한 약초설화, 또 주체나 지역이 분명하게 전해지지는 않지만 의원들의 치료행적이나 기이한 사연을 담아 전하는 이적설화(異蹟說話) 등에 명의들의 행적이 전해지고 있다. 때로 그들의 활약상이 다소 과장되거나 때론 화자(話者)의 개성에 따라 묘하게 변형된 채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게 된다.   

현전 구전설화나 문헌설화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지고 유포된 의약설화로 대표적인 명의설화의 주인공으로는 허준이나 양예수 이외에도 이석간이나 유상, 유이태, 초객초삼 형제 명의 등과 같은 실존인물들이 주류를 이룬다. 그러나 과거 역사시대에 대부분의 명의들이 신분제약에 놓여 있었기에 매우 극소수의 인물을 제외하곤 사전(史傳)은 물론이요 가계 기록이나 성명 삼자도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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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늘날 단편적으로 전해지는 명의들의 사적이나 구전하는 명의담(名醫談)들은 대개 인근 지역에서 그들과 가까이서 접촉했던 문인 사대부들의 귀에 들어가 그들의 손에 의해서 채록된 것들이 잔존해 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18세기 여항문인들에 의해서 채집된 것들인데, 유재건(劉在建)의  『이향견문록(異鄕見聞錄)』, 조희룡(趙熙龍)의  『호산외기(壺山外記)』, 장지연(張志淵)의  『일사유사(逸史有事)』 같은 것들을 꼽을 수 있다. 이들 문헌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개 의원이나 역관 같은 중인신분이거나 화가, 승려, 몰락한 양반층이 주를 이루며, 때로는 이름을 밝히기 어려운 천민들에 대한 행적도 기재되어 있다. 

 예컨대, 18세기에 활약했던 누항의 인물들에 대해 자신의 보고 겪은 이야기를 수집하여 의인전(醫人傳)을 남긴 책으로 이규상(李奎象, 1727~1799)이 쓴  『병세재언록(幷世才彦錄)』을 들 수 있다. 

여기에는 종기를 잘 다스려 숙종대 신의로 이름을 떨쳤던 백광현을 비롯하여 사대부로서 정승의 지위에 올랐지만 의약동참으로 유명한 김석주(金錫冑), 그리고 서자보다도 더 천한 대접을 받은 얼자로 태어났지만 태의지사(太醫知事)에 올라 정승판서도 부럽지 않은 지위를 얻었던 유상(柳瑺), 병자호란에 어머니와 부인을 잃고 낙심하여 평생을 은거하며 의약활인에 자족하며 지냈던 주촌(舟村) 신만(申曼) 등에 얽힌 사연과 기병(奇病)을 다스린 치료담이 실려 있다. 

 또 허준과 양예수와 같이 당대에 이미 명성이 자자했던 인물도 실려 있지만 전혀 예상 밖의 이름이나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도 실려 있다. 예를 들면 온양 사람 조한숙(趙漢淑)이란 분은 진위현령까지 지낸 선비였지만 명의로 이름을 날렸던 것뿐 만 아니라 특별한 용약법으로 유명하였다. 매일 환자의 증세를 살핀 다음에 몇 첩만을 주었는데, 만일 증세에 적합하면 그대로 쓰고 맞지 않으면 다시 증세를 파악하여 새로 약을 주었다. 

그는 스스로 이것을 문안약(問安藥)이라고 불렀는데, “고방에는 약량은 많지만 약재의 가지 수는 적게 하였는데, 나는 고방에 따라 서너 가지 처방약을 합해서 쓰되, 약량을 적게 만든다. 시속의 의원들이 이런 묘리를 깨닫지 못하고 번번이 내 약방을 보고 잡탕이라고 비웃는다”고 하였다. 

그는 포저 조익의 후손으로 대대로 의약을 전습하였고 부인과 아들도 또한 의약에 밝았다고 적혀 있으니 가히 유의의 전형이자 조선에서 보기 드문 상한고방파를 지향하는 인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런 부류의 문헌 속에 등장하는 의원들은 피재길, 백광현 같이 정사에 기록되고 사전이 전해지는 명의도 있지만은 이동(李同)이나 노침의(老鍼醫), 조신선(趙神仙), 정노인과 같이 실명을 확인할 수 없는 분들도 다수를 이룬다. 이른바 누항에 묻힌 의인들로 앞서 문인 사대부의 글이나 문집에 채집된 극소수의 사례 말고는 기나긴 세월 속에 사적들이 모두 인멸되고 말았던 것이다.

 필자는 수년 전부터 기회가 닿을 때마다 노경에 이른 선배 한의사나 명의의 후손들을 만나 잊혀가는 명인이나 의학자들의 사적을 조사하고 채록하는 작업을 지속해오고 있다. 

오늘 우리 주변에서 수많은 인명을 구해냈던 의인들도 수십 년 후에 흔적 없이 잊혀지고 말 것이다. 우리가 기억하고 들은 명의들의 사적을 채집하고 기록하여 후대에 전해주는 것도 오늘을 사는 의학도가 해야 할 소임가운데 하나이리라.


한의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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