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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에 항거한 한의사 강우규…의거 100주년 기념식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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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행정

일제에 항거한 한의사 강우규…의거 100주년 기념식 개최

강우규 의사 의거, 항일투쟁·의열운동 도화선 평가
3.1절·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맞아 한의계도 독립운동 한 한의사 발굴
한의협 “보건의료계 남아있는 일제 잔재 청산…포괄적 의사로 갈 것”

강우규.JPG

 

[한의신문=최성훈 기자] 일제의 신임총독에 폭탄을 던진 독립운동가이자 한의사인 왈우(曰愚) 강우규 의사(1855년~1920년)의 의거 100주년을 맞아 이를 기리는 기념행사가 성대하게 마련됐다.

 

(사)강우규의사기념사업회는 2일 서울 구기동 이북5도청 대강당에서 ‘왈우 강우규 의사 의거 제100주년 기념식’을 갖고 그의 숭고한 정신을 기렸다.

 

이날 행사에는 박삼득 국가보훈처장과 방대건 대한한의사협회 수석부회장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가보훈처, 대한한의사협회, 광복회, 평안남도중앙도민회, 덕천군민회 등이 후원했다.

 

장원호 기념사업회장은 인사말에서 “항일투쟁과 독립운동을 한 독립운동가들은 많지만 강우규 의사처럼 독립운동과 청년 학교 설립, 한의사로서 민중을 치료하신 분들은 드물다”며 “그의 거사는 이후 항일투쟁의 표상이 되었고 의열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용기와 희생, 교육정신과 애국심에 다시 한 번 머리를 숙인다”고 말했다.

 

박삼득 보훈처장은 “흰 두루마기 차림과 백발의 나이로 의거를 단행한 강우규 의사님은 의거 이후 체포돼 마지막 순간까지도 일제에 결코 굴복하지 않으셨다”며 “의거 100주년이자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 올해 정부는 항구적 평화 한반도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오늘 기념행사가 의사님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국민적 힘과 지혜를 모으는 계기가 되길 기원하며 국민 통합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순국 직전에도 의연했던 왈우 강우규 의사

 

이날 기념식에서는 그의 고귀했던 자주독립의 정신을 기리고자 강우규 의사의 일대기를 소개하는 시간이 마련됐다.

 

강우규 의사는 1855년 평안남도 덕천군에서 태어나 형 강인규에게 한학과 한의학을 수학했다. 한의학과 한약방을 통해 얻은 명성과 수익으로 1887년에는 영명학교를 세우고 청년들에게 신학문을 가르치며 애국사상을 고취시켰다.

 

한일병합에 통분(痛憤)한 그는 1911년 동만주지방 러시아령의 이만시(市), 하바로스크시(市)로 넘어가 한인부락을 심방(深房)하면서 밋카루시카에 한인학교, 해삼위에 장로교회와 한인민회 등을 설립해 독립운동을 계속 전개했다.

 

강우규 의사는 1919년 3.1운동 소식을 듣고 신흥동(길림성 요하현)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며 본격적인 항일 투쟁에 나서게 됐으며, 이후 대한국민노인동맹단에 가입해 길림성 요하현 지부장을 역임하며 활발히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중 일제가 새로운 총독을 임명한다는 소식을 듣고 총독 처단을 결심했다. 이때 그의 나이 만 64세였다.

 

강우규 의사는 5월 30일 서백리아 철도 청용 정차장에서 러시아인으로부터 거금을 주고 영국제 폭탄 2개를 넘겨받아 그해 6월 11일 해삼위에서 일본기항 월후환으로 출발, 14일에 원산항에 도착했다.

 

이후 경성으로 온 강우규 의사는 9월 2일 남대문역에서 부임식을 마치고 막 관저로 떠나는 신임총독 사이토 마코토(齊藤 實)의 마차에 폭탄을 던졌다. 하지만 폭탄이 빗나가면서 조선총독부 관리 등 37명에게 중경상을 입혔을 뿐 아쉽게도 총독 피살에는 실패했다.

 

그는 훗날을 도모하고자 피신했지만 9월 17일 순사부장 김태석에게 붙잡히면서 결국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다.

 

이후 강우규 의사는 총독 암살사건으로 인해 이듬해 1920년 2월 25일 경성지방법원으로부터 사형을 언도받았고, 5월 27일에는 서울고등법원에서 사형이 최종 확정됐다.

 

강우규 의사는 아들에게 “내가 죽는다고 조금도 어쩌지 말라. 내 평생 나라를 위해 한 일이 아무 것도 없음이 도리어 부끄럽다. 내가 자나 깨나 잊을 수 없는 것은 우리 청년들의 교육이다. 내가 죽어서 청년들의 가슴에 조그마한 충격이라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내가 소원하는 일이다”라는 충절이 담긴 유언을 남기고 그해 11월 2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한다.

 

강우규 의사는 순국 직전에도 “단두대 위에 올라서니(斷頭臺上) 오히려 봄바람이 감도는구나(猶在春風). 몸은 있으나 나라가 없으니(有身無國) 어찌 감회가 없으리오(豈無感想)”라는 유시를 남기며 주권을 잃은 현 조선의 상황을 개탄했다.

 

강우규3.jpg

 

이후 대한민국 정부는 1962년 3월, 강우규 의사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1967년에는 그의 시신을 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으로 모셨으며, 이듬해부터는 덕천군민회 주최로 국립묘지에서 추모식을 매년 거행하고 있다.

 

순국 80주기를 맞아 2000년부터는 평안남도중앙도민회 주최로 통일회관에서 추모식을 올리고 국립묘지 참배행사를 갖고 있으며, 2011년에는 강우규의사기념사업회가 국가보훈처와 서울시의 후원으로 의거 장소인 서울역 광장(구 남대문역 광장)에 동상을 세우고 매년 의거일 행사를 거행하며 항일 투혼의 넋을 기리고 있다.

 

한의계, 한의학 정체성 재확립 나서

 

이에 한의계에서도 한의사였던 왈우 강우규 의사 의거 100주년과 3·1 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한의사 출신 독립운동가 발굴을 통한 한의학 정체성 재확립에 나서고 있다.

 

먼저 한의협은 항일 의거 100주년을 맞아 한의사이자 독립운동가로서 왈우 강우규 의사의 삶을 재조명하기 위한 학술대회를 기획 중에 있다.

 

또 한의사이자 독립운동가인 이원직 선생의 삶도 언론매체를 통해 소개했다. 그는 상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비밀연락기관인 국내교통연락원으로 활동하며 임시정부 발행의 신문과 문서를 국내에 배포하는 한편 임시정부의 독립공채 판매·군자금 모금 등의 활동을 했다. 그는 1944년 연합군의 한국상륙에 대비해 준비하던 중 체포·수감돼 1945년 옥사했다. 이원직 선생은 지난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된 바 있다.

 

자생의료재단도 지난달 19일 전북대학교에서 개최된 제15회 국제 동아시아 과학사 회의'에서 독립운동가였던 신홍균 선생(한의사)을 재조명했다.

 

그는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과 함께 독립군의 3대 대첩으로 꼽히고 있는 '대전자령 전투'에 직접 참여했으며, 신준식 자생의료재단 명예이사장의 선친인 신현표 선생과 함께 중국 용정시에서 항일단체 대진단을 이끌며 전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우규2.jpg

 

이와 함께 한의협은 보건의료계에 남아있는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고, 한의사가 역할과 영역에서 제한 없이 포괄적 의사로서 본연의 모습을 하루라도 빨리 찾을 수 있도록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X-ray)의 사용과 전문의약품 사용 확대를 위해 힘쓰고 있다.

 

한의협 관계자는 “과거 한의사의 영역은 수술이나 종두법과 같이 외과적 처치, 전염병 관리 등 다양한 진료 영역에서 활동해 왔음에도 현재는 그 역할 영역이 굉장히 축소된 상태”라며 “침, 뜸으로 대표되는 한의학의 독자성, 고유성은 다 일제와 해방 이후 우리나라 보건의료제도가 만들어 낸 허상이다. 다시 한의사가 치료의 전문가로서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한의사도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와 전문의약품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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