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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는 통제를 겪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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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는 통제를 겪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다”

탈북한의사 한봉희 원장 ‘노예공화국 북조선 탈출’ 출간
탈북민에서 한의사가 되기까지 한 원장의 파란만장한 삶 조명

한봉희1.JPG
탈북한의사 한봉희 원장

 

 

최근 북한의 참혹한 실상을 상세하게 다룬 책이 출간돼 화제다. 출간 한 달 만에 2쇄를 찍은 ‘노예공화국 북조선 탈출(행복에너지)’은 북한을 벗어났다 잡히기를 반복한 故한원채(1943~2000) 씨가 중국과 북한 구치소에서 수감 생활을 하며 직접 겪었던 일과 지옥 속에 갇혀 사는 북한 주민들의 결핍된 삶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낡고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 같은 원본 종이에 수놓은 그의 글씨가 북한의 부조리를 말하려는 듯 곧게 뻗쳐 있었다. 그 올곧은 이야기는 19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그의 둘째 딸 한봉희(백년한의원) 원장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고 있다.

북한은 어떤 곳이냐는 질문에 한 원장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지옥과도 같은 곳, 내 머릿속에는 그런 이미지밖에 생각나지 않는다”며 “자유는 통제를 겪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통제만이 존재하는 북한에서 벗어나 현재 대한민국에서 자유를 누리고 있다. 이에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으며, 북한의 저질스런 실체를 밝히기 위해 앞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Q. 어린시절, 북한에서의 삶은 어땠는가?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북한에서 인텔리에 속했다. 아버지는 큰 펄프회사 기계설계사였고, 어머니는 철도국병원 내과의사셨다. 어렸기 때문에 당국의 ‘통제’를 크게 인지하지 못했다. 단지 부모님과 같은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대학에 가고 싶었다. 세상을 잘 알지 못 했기에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Q. 그 당시 꿈이 있었다면?

대학에 진학해 이제껏 교육 받았던 지식을 기반으로 내 능력을 펼쳐 보이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대학에 진학해보니 내 주위는 온통 ‘통제’로 가득했다. 다시 한 번 북한에서의 내 인생을 되돌아보니 ‘통제’의 연속이었던 것 같아 소름끼친다.

나는 ‘북한이 모든 분야에서 세계 최고’라는 거짓된 역사를 공부했다. 역사서에는 백년에 한 명 나온다는 세계 위인으로 김일성을 찬양하는 글로 가득했다. 그것도 모르고 하루에도 몇 번씩 그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대학만 가면 꿈을 이룰 수 있을거야’ 생각했지만 북한 사회는 꿈을 이룰 수 있게 도와주는 그런 사회가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대학을 졸업한 뒤 졸업장을 들고 실습을 나가려했지만 공장과 기업들은 모두 멈춰있는 상태여서 일을 할 수도 없었다. 당시 사회주의는 무너지고 있었고, 난 꿈을 이루기 위해 이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가족들도 같은 마음이었다. 어머니는 “김일성·김정일의 노예로 살지 말자”고 말했다. 아버지는 “지금은 참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지만 “언젠가는 이런 악행들이 세상에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리고 98년 4월 우리가족은 두만강을 건너기로 결심했다.


Q. 북한을 탈출하기 위해 두만강을 건넜다. 

나는 어머니와 함께 98년 4월에 먼저 탈북했고, 나머지 가족은 8월에 두만강을 건넜다. 얼음이 녹아 강물에 빠지기를 수차례, 다행히 강물 바닥에 발이 닿았고 무사히 두만강을 건널 수 있었다.

두만강이 얼어있는 겨울이 탈북하기 가장 수월하지만 어느 누구도 특정 시기에 탈북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진 않는다. 이는 날씨에 대한 정보도 없을뿐더러 두만강 주위에 탈북자들을 감시하는 국경경비대가 배치돼 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북한에서 중국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했던 국경경비대의 도움이 필요한데 이들은 돈만 받으면 일처리를 깔끔하게 해준다. 그 날도 국경경비대에게 돈(집을 팔아 얻은)을 지불하고 약속한 시간에 나타난 그들을 따라서 중국의 연길로 이동할 수 있었다.

주위에서는 “북한을 탈출했으니 안전한 것이 아니냐”라는 말씀들을 많이 하시는데 화룡(허룽), 연길(옌지), 연변(옌볜) 등 탈북자들이 거쳐가는 이 지역은 조선족들이 탈북자를 돕기도 하지만 반대로 악행을 저지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들은 걸음걸이만 보고도 북한 사람이라는 것을 눈치채고 금전을 요구하며 이에 응하지 않으면 중국 공안에게 넘겨버리기 일쑤다.


Q. 탈북한 지 3년이 지나서야 한국 땅을 밟았다.

중국에 숨어 지내면서 KBS에 귀순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당시 정부는 햇볕정책을 펼치고 있어 탈북자에 대한 세부적인 대책이 없었다. 베이징주재 한국대사관에 찾아가 망명 요청도 했지만 허사였다.

북한 보위부에서 현상금을 걸고 추적 중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우리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하지만 99년 8월 나 그리고 아버지와 남동생이 공안에게 붙잡혔다. 북송된 아버지와 남동생은 다시 한 번 ‘지옥’에서 탈출했다. 아버지는 그 때 3개월 동안 구치소에서 겪은 북한 감옥의 실상을 낱낱이 글로 적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북한이 저질러온 악행들에 대해 누구보다 상세하게 쓰는 데 성공했다. 1주일 만에 200자 원고지 1000매 분량을 쓰셨다. 그러나 한국으로 오기 위해 길을 나섰다가 대련(다롄)에서 다시 체포돼 북송됐고, 고문에 의해 돌아가신 것으로 나중에 알게 됐다.

책은 아버지가 직접 겪고 느낀 북한의 악랄하고 부끄러운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Q. 한국에서의 삶, 시작은 어땠는가?

‘지옥’에서 탈출하니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인천공항에 내려 바로 국정원에서 조사를 받았다.

일주일을 국정원에 머무르면서 다양한 조사를 받았다. 얼마 후부터 운동도 하고, 음식도 먹고, 시내도 거닐 수 있는 시간도 주더라. 한강 부근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니 고층 건물들이 질서정연하게 빛나고 있었다. 문득 ‘북한은 도대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국정원 조사가 끝나고 하나원(탈북민을 정착할 수 있게 도와주는 교육기관)에서 2개월간 사회적응교육을 받았다. 하나원 과정을 수료하고, 배정받은 임대 아파트와 정착금을 받아 본격적인 한국에서의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Q. 얼마 지나지 않아 한의대에 진학했다.

그렇다. 사실 공부를 한다는 생각보다 의식주를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일자리를 알아보던 중 먼저 탈북해 정착한 선배가 “지금 당장 돈을 버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지식이 있어야 그에 상응하는 가치를 얻을 수 있다”고 조언을 해줬다.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에 위치한 수도학원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새로운 인생을 걸고 죽어라 공부했다. 마침내 재외국민 특별전형을 통해 강원도 원주에 위치한 상지대학교 한의학과에 입학하게 됐다.

시간이 흘러 함께 공부했던 그 선배는 지금의 남편이 됐고, 예나 지금이나 나에게 큰 힘이 되는 존재다.


Q. 어머니가 내과의사셨는데 한의학을 선택한 이유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어머니가 근무했던 병원에서 마주했던 환자들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다. 빨간 피를 흘리는 환자들을 떠올려보니 두려운 마음이 컸고, 의사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 판단했다. 또 다른 이유는 밤낮 가리지 않고 왕진을 가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자랐기 때문이다.

한의학을 선택했던 것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서양의학의 한계를 많이 느끼고 있다. 최근 영국에 머물 기회가 있었는데 약을 사용하지 않고 침 하나만으로 환자들을 치료했던 적이 있다. 물론 진단장비가 열악해 한계를 느끼기도 했지만 장소불문하고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의학이 한의학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됐다.

다시 태어나도 한의사가 돼 환자들을 돌볼 것이다. 특히 북한의 실체를 전 세계에 알리려 ‘노예공화국 북조선 탈출’ 영어판도 출간을 계획하고 있다. 지옥에 갇혀 벗어나지 못하는 북한주민들의 삶을 담은 이 책을 통해 그들이 자유를 찾을 수 있도록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 싶다. 

 

한봉희2.jpg
책 출간 후 독자들과의 만남

 


김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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