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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에서 느껴보는 醫藥文化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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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에서 느껴보는 醫藥文化 11

바닷가로 유배된 사대부의 양생법(養生法)

안상우 박사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우암 송시열, 장기(현 포항시)로 유배돼 고역 감당

『우암선생적거기(尤庵先生謫居記)』, 유배생활 기록

해안가 인접 지역 생활, 질병 발생 의약지식 명료




46-1



경주와 포항의 지진으로 인한 피해와 충격의 여파가 아직 채 가시지 않았는데, 이번엔 지진 발생의 원인을 두고 자연재해가 아닌 지열 발전의 탓이라는 조사결과로 인해 많은 사람이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 포항 지진을 촉발시킨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포항의 지열발전소는 우연찮게도 다산과 우암이 처음 유배갔던 장기에 이웃해 있는 흥해의 바닷가에 위치해 있다. 그런 까닭에 유배시절 우암의 유배생활을 기록한 『우암적거기』가 뇌리에 떠올랐다.



잘 알다시피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은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으로부터 김집, 김장생으로 이어지는 기호학맥의 종장으로 『주자대전차의(朱子大全箚疑)』,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를 지어 조선 성리학을 이론적으로 정립한 학자로 알려져 있다. 또한 그는 병자호란 이후 청에 당한 치욕을 씻고자 절치부심하며 효종과 북벌 논의를 추진함으로써 당대 정국을 주도하였던 정치 사상가이자, 예송논쟁으로 불거진 정치적 갈등의 선두에서 당쟁의 주역이었던 인물이다.



그는 학문과 사상, 그리고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치열하고 격정적인 일생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83세라는 노경에 이르러서까지 유배길의 고역을 감당해 내었으며, 정읍에서 사사(賜死)될 때까지 정계 복귀 의지를 잃지 않았다. 이렇듯 그의 초인적이라 할 수 있을 생에 대한 애착과 건강 유지의 비결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근래 향토사학자에 의해 발견된 『우암선생적거기(尤庵先生謫居記)』(이하 우암적거기)란 문헌사료를 통해 이러한 궁금증을 다소 해소할 수 있다. 이 책은 우암이 경상도 동남쪽 끄트머리 장기로 이배된 이후 다시 거제로 귀양지를 옮기기까지 근 5년간에 걸쳐 해안가 외딴 곳에서 이루어진 유배생활의 실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우암은 1675년(숙종

1) 처음에 함경도 덕원에 유배되었다가 그해 윤5월 15일 남쪽으로 옮겨야 한다는 사헌부 요청에 따라 멀리 경상도 동남해안의 끝자락인 장기(長鬐, 현재는 포항시에 편입)로 옮겨 가게 되는데, 이곳은 경상북도 포항 구룡포와 경주 감포 사이에 위치한 해안 지역으로 매우 외진 곳이었다.



우암이 장기에서 지낸 120여년 뒤에 이곳에 귀양온 다산 정약용(1762~1836)은 훗날 이 고을에 대한 인상을 ‘瘴鄕陳荒之地’라고 적어 놓았다. 이 말은 곧 ‘역병이 잦고 풍토병이 생기는 지역이자 잡초가 우거진 척박한 곳’이라는 의미이다.

표면상으로는 추운 북쪽의 변경지역보다는 훨씬 남쪽의 바닷가로 이배되었기에 유족해 할 수 있으리라는 선입견을 가질 수 있지만 장기지역은 해무가 많은 바닷가에 인접한 해안지역이며, 왜구가 자주 출몰하는 곳이어서 애초부터 노구의 유배객에게 안락한 휴양처가 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당쟁의 와중에서 실각하여 한양에서 천리 머나먼 외지로 귀양길에 올라 가시울타리로 에워싸 위리안치(圍籬安置)된 중죄인에게 일상을 맘대로 영위할 수 있는 선택권이나 의식을 해결할 여건이 충족될 수 없는 처지였다. 69세 노인인 우암에게 동해에 인접한 장기라는 궁벽진 해안가 마을은 건강에 불리하고 지내기가 매우 불편한 곳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우암사적비에 따르면, 우암은 장기에서 만 4년간을 지내면서 마산촌의 집주인 오도전을 비롯한 많은 제자를 길러내는데, 그들은 나중에 우암을 기리는 영당과 죽림서원을 창건하고 유배생활의 실상을 기록한 『우암적거기』를 기록하여 후세에 남긴다. 기록은 숙종 원년(1675) 윤5월 우암이 덕원으로부터 장기로 이배되는 시점에서 시작한다.

우암이 장기에 도착한 것은 그해 6월10일이었다. 당시 우암의 나이는 이미 69세로 고령인데다가 함경도 북쪽에서 영남 해안까지 귀양지를 옮겨 다니는 일이란 몹시 힘겹고 건강에 위태로운 일이었다. 사실 장기는 서울 한양으로부터 천리나 떨어진 먼 지역으로 함경도에서 한양을 거쳐 다시 장기로 옮겨 가는 유배길 자체가 중죄인에게 내리는 징벌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우암적거기』는 다음과 같은 말로부터 시작한다. “우암 선생이 덕원으로부터 장기현으로 이배되어 올 때 당시 선생의 동생 시훈, 시걸 등이 함께 따라왔으나 나머지 사람들의 이름은 잊어버렸다. 이 때 선생의 연세는 69세였다.” 우암 일행이 처음에 장기현(馬山村)에 머무를 곳을 정했는데 거처가 해안과 너무 근접해 있었다. “馬山村은 해안(海門)과 서로 너무 가까웠기 때문에 산람장기(山嵐瘴氣)가 특히 심해 선생이 거처하는 방밖 처마 밑에 별도 이중벽을 치고 출입문을 별도로 만들어 놓고 다니셨다. 또한 뜰 안에 바람막이를 만들어 놓고 해풍을 막기도 했다.”

여기서 ‘산람장기’란 바닷가나 큰 강이 있는 지역에서 짙은 안개가 자주 끼고 해풍이 내륙으로 밀려오면서 산이나 숲에 아지랑이 같은 기운을 피게 하는 것인데, 대개 이러한 표현은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풍토병과 토질이 많은 지역임을 뜻하는 수사이다. 한의학에서 ‘산람장기’ 혹은 ‘불복수토(不伏水土)’라 하여 흔히 날씨가 무더운 남방의 습지나 수질이 좋지 않은 해안에서 물갈이로 배탈, 설사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를 말한다. 이질적 풍토에서 섭생이 곤란하고 이상기후에 적응장애가 수반되는 현상이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하여 중부내륙 지역인 회덕이나 대전지역을 연고로 살아왔던 우암에게는 매우 적응하기 어려운 현실이었을 것이다. 그는 나름대로 이에 대한 방비책으로 주변 환경을 보완하는 방법을 실행에 옮기게 되는데,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선생이 거처하는 방밖 처마 끝에 별도로 이중벽을 세우고 그 사이에 출입문을 만들어 놓고 다니셨다. 또한 뜰 앞에 초막(假家)을 지어 바닷바람(海風)을 막게 하였다.” 위의 행적으로 보아 우암은 해안가에 인접한 지역의 습기로 인한 침해와 이에서 질병이 비롯될 수 있다는 의약지식을 명료하게 인지하고 있었으며, 적극적인 방비책을 강구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지면관계상 다음 호에 계속하기로 한다.
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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