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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에서 느껴보는 醫藥文化 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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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에서 느껴보는 醫藥文化 ⑧

한증(汗蒸)과 불교의학의 유향(遺響)

안상우 박사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향약집성방』, 『의방유취』서 ‘증법(蒸法)’을 기록

민족전통 한증습속이 佛家 건강유지법으로 전승

신라시대의 ‘증기욕’ 풍습, 일본에까지 널리 전파



C2198-34



우리 민족의 오랜 습속 가운데 하나로 한증 문화를 들 수 있다. 요즈음은 새 시대의 감성 취향에 맞추어 갖가지 명칭이 붙은 사우나로 통칭되고 있지만 그 유래는 무엇보다도 삼국시대 이전부터 전해내려 한증, 혹은 한증막 전통과 맥락이 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근간에 이 민족전통의 한증습속이 불가의 건강유지법으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불교의학의 일면으로 분석한 논고가 발표되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우리 의서에서는 『향약집성방』과 『의방유취』에서 모두 ‘증법(蒸法)’이라고 기록했다. 알다시피 상한치법에서 마황이나 갈근 같은 발한약재를 탕약으로 내복하여 외부로 땀을 내게 하는 것을 ‘한법(汗法)’이라고 말하는데 비하여 외부에서 열수나 열기로 훈증하여 강제적으로 체온을 올려 땀을 내는 물리적인 발한법과 구분짓기 위하여 이렇게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경우에도 역시 상한을 다스리기 위한 방법 가운데 하나로 동원된 것임에 크게 다르지 않다.



한증의 유래가 된 불교에서는 『온실경(溫室經)』, 『사분율(四分律)』, 『십송율(十誦律)』 같은 율서에서 ‘온욕(溫浴) 혹은, 목욕(沐浴)’이라 기술되어 있을 뿐 별도로 명칭이 나와 있지 않지만, 몸에 낀 때와 먼지(塵垢)를 제거하는 목욕법이자 제계(齋戒)를 위한 청결방법으로서 의미가 강하므로 오늘날의 사우나나 증기탕, 일반적으로 ‘한증욕(汗蒸浴)’이라 부르는 것과 유사한 것이었으리라 보인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빈민구료를 위해 한때 한증승(汗蒸僧) 제도를 운용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증의 의학적 효과에 대해 기록한 우리 문헌으로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을 들 수 있다. 권5 상한문 가한형증(可汗形證)에 다음과 같이 기재되어 있다. “증법으로 땀을 내는데, 장작불로 바닥을 달구어, 한참 지난 다음에 불을 빼고 땅바닥에 물을 조금 뿌리는데, 이때 잠사(蠶沙)나 복숭아나무 잎, 측백나무 잎, 쌀겨, 보리 등을 바닥에 2~3치 가량 두텁게 깔고 자리 위에 누운 채로 땀이 날 때까지 이불로 몸을 덮어둔다. 지나치게 과열되지 않도록 간간히 세심하게 살펴야 하며, 온몸에 땀이 흘러나올 정도면 좋고 오랫동안 그대로 방치해 나중에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나와 너무 과다하게 땀내지 않게 해야 한다.”

또 『의방유취』 권28 상한문의 천금상한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의안이 실려 있다. “언젠가 어떤 사람이 일을 하여 땀이 나는데 삿자리 위에 누워 자다가 찬 기운을 받아 병을 얻었다. 그때의 증세는 오한이 나고 몸이 나른한 것이었다. 여러 의사들이 알약이나 가루약, 탕약을 주어서 4일 동안에 무려 8번이나 땀을 내려고 해도 땀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땅바닥에다 불을 피워서 달군 다음 복숭아 나뭇잎을 깔아놓고 그 위에 눕혀서 더운 김을 쏘이게 하였더니 곧 땀이 푹 나왔다. (중략) 한증을 하면 땀이 나지 않을 리가 없다.”



그러나 상한병을 치료하기 위해 시작되었던 한증이 민간에 널리 퍼져나가면서 절제없이 과도하게 남용됨으로써 피해가 적지 않았던 것 같다. 급기야 세종4년에 이르러서는 병자들이 한증소에 가서 땀을 내어 병을 낫게 하려다가 왕왕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으므로 널리 알아봐서 무익하면 철폐하고 만약 병 치료에 이롭다면 날마다 의원을 보내어 병자들의 증후를 진맥해 보고 땀을 내야할 경우를 가려내고 병이 심각하고 기운이 쇠약한 사람은 안정을 취하도록 하라고 전교를 내릴 정도였다.

한편 일본학자 오찌아이(落合茂)가 “한반도의 한증요법이 일본에 수입되어 세도가와(瀨戶)연안 ‘이시가제후로(石風呂)’(돌로 만든 욕실)를 갖게 하였고 헤이안 시대(794~1185) 말에 지방에 까지 서민들의 공동탕으로 널리 전파됐다”고 한 것을 보면 신라시대 ‘증기욕’ 풍습이 바다를 건너 일본에까지 널리 전파되어 한증탕이 보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앞서 이 글의 근저가 된 최근의 논고 「한증법을 통해 바라본 조선조 불교의학의 일면」에 따르면,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흠흠신서(欽欽新書)』에 “서북지방에는 한증하는 방법이 전하는데 대개 예맥의 풍속으로, 조선에 들어왔다”고 쓴 기록이 있다. 이로보아, 한반도의 한증 습속이 고구려의 시원인 예맥의 온돌문화에 기원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으니 한증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온 데에는 오랫동안 민족의 전통생활방식이 전승된 결과라는 점을 말해 주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전통생활방식도 조상의 지혜와 한의학적 지식, 그리고 오랜 시간에 걸쳐 경험이 집적되어 이뤄진 결과로 이뤄진 것이며, 단순히 무지에서 비롯된 민간요법으로 치부할 수 없다는 점을 돌이켜 봐야 한다.
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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