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403)

1974年 裵元植 先生의 제25회 日本東洋醫學會參觀의 所感
“日本 두 분 학자의 瘀血證에 대한 견해를 비교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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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간행된 『大韓漢醫學會誌』 제156호에는 裵元植 先生(1914〜2006)의 ‘第二五回 日本東洋醫學會 參觀의 所感’(소제목: 漢方科學은 日本이 앞지르고 있다)이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하고 있다.
裵元植 先生은 한의학의 국제화에 한몸 바친 한의계의 巨木으로서 1954년 한의학 학술잡지인 『醫林』을 창간해 학술토론의 장을 마련했고, 이후 1956년에는 동방의학회 회장, 1960년에는 동방장학회 회장, 1968년에는 대한한의사협회 회장(연임) 등으로 활동했다. 그의 활동으로 1970년 한국동양의학회 회장을 하면서 일본 한방의학계와 지속적인 학술적 교류를 이어간 것을 꼽을 수 있다.

‘第二五回 日本東洋醫學會 參觀의 所感’이라는 裵元植의 글 속에서 당시 일본 동양의학회에서 전개하는 과학적 한방의 모습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서 한국 한의학을 발전시킬 방안을 찾아보자는 그의 간절한 바람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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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회 일본동양의학 학술대회는 1974년 5월 18일부터 19일까지 이틀간 京都國際會館에서 開催됐다. 이 글에서 裵元植은 東京 醫大 矢數道明 博士의 「瘀血을 둘러싸고」라는 演題와 關西 醫大의 伊原信夫 博士의 「瘀血의 病理學的 考察」이라는 논제의 주장을 한의학의 과학화에 있어서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라는 입장에서 검토하고 있다.
아래에 그 내용을 裵元植의 목소리로 요약한다.

○ 東京 醫大 矢數道明 博士의 「瘀血을 둘러싸고」: 臨床治驗을 통해서 瘀血이란 것을 完全히 파악한 연후에 연구순서로서 ①瘀血에 대한 字義解釋 ②瘀血의 成因에 대한 諸說 ③ 臨床上의 瘀血處理에 대하여 등등의 순서를 갖추어 연구한다. 이를 위해서 瘀血을 硏究하는 一人이 행하여야 되는데 만일 科學的 能力이 없을 경우에는 하는 수 없이 科學을 하는 제3자와 合作推進하는 수밖에 없다. 그 科學者가 한방에 대한 전혀 門外漢이라면 相互間의 意見相反이 생겨 연구진행에 지장을 가져옴은 물론이다. 그러나 한방을 아는 科學者라면 그러한 弊端은 없을 줄 믿는다. 瘀血에 대한 지식을 얻으려면 書誌上의 文獻讀書나 所見만으로는 불가능한 것으로써 반드시 臨床治驗을 통하지 않고서는 안될 것이다.
○ 關西 醫大의 伊原信夫 博士의 「瘀血의 病理學的 考察」: 정형적인 瘀血證을 나타내는 골반 및 하복부 장기병변을 장기질환을 모토로 한다. 그러나 瘀血證이 남자보다 여자가 많고 발생부위가 하복부위의 우측보다 좌측이 많다는 등의 차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는 것은 유감이다. 또한 博士가 말한 前立腺肥大, 潰瘍性直腸炎, 糖尿病性脫疽, 慢性膵炎, 副腎萎縮, 淋巴球體甲狀腺 등의 질환을 한의학에서 瘀血과 관련성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드물다. 瘀血의 疾病은 月經時에 産後의 血液 등이 骨盤 및 下腹腔內에 瘀血로 轉變하여 그 부위의 臟器들의 조직과 기능에 지장을 주어 瘀血證을 일으킨다고 한의학의 견해가 있다. 그런데 伊原信夫 博士는 골반 및 下腹部의 臟器病變에 의하여 瘀血證에 이르는 것처럼 말하고 있는데 그와 같은 瘀血證에 한방치료제로서 치료가 될 것인가가 의문스럽다. 치료가 아니된다고 하면 한방에서 瘀血證과는 다르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러고 보면 先生의 硏究가 한방도 아니요 양방도 아닌 제3의 의학이 되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杞憂되는 바이다.
○ 이와 같이 한양방의 두 길로 분리하는 것을 지양하고 하루 속히 한방에 능한 분과 양방에 능한 분이 공동합작으로 추진한다면 所期의 目的 達成이 無難할 것으로 본다. 여기에 필수조건은 공동추진하는 연구기관을 속히 설립하여 한방을 科學化로 이끌어 갈 基本體系를 세우는데 한층 더 분발해주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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