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이 연극 보실래요”

정우열교수정우열 명예교수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아무 때나 만나자고 부를 친구가 있다는 것,
만나자고 할 때, 아무말 없이 그저 “알았어!”하고
나올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 그런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아빠, 이 연극 보실래요?” 며칠 전 샌프란시코에 사는 딸로부터 카톡을 받았다.  연극 <앙리할아버지와 나>란 제목과 함께  “친구분들하고 같이 가실 분 있으시면  제가 표 알아 볼께요”했다.
5월은 가정의 달.  혼자 있는 아버지를 배려한 것이다. 딸의 고마움에 마음이 울컥했다. 딸은 아빠인 내가 엄마와 함께 대학로 극장을 자주 찾았던 걸 알았나 보다. 난 연극 보기를 좋아했다.
“그래, 두 장 예매해 보내줘! 고맙다!” “몇일날이 좋으세요? 가실 수 있는 날짜와 시간 알려주세요” “5월6일 3시경?” 얼마 뒤 또 ‘카톡’소리와 함께  ‘인터파크-예매완료’란 문자 및 좌석 안내도가 왔다. “최은영 이름으로 예매했어요. 자리는 17열, 그림에 빨간 동그라미로 되어있는 곳이예요. 표를 배송받을 수가 없어서 직접 가셔서 예매번호 알려 주고 현장 수령하셔야 해요. 가서 보시면 티켓 현장 수령하는 곳이 있어요. 가셔서 예매번호 알려 주시면 돼요”라는  자상하고도 친절한 문자까지 보냈다. 빈틈없이 매사에 철저한 딸이다.
“그래, 스콜라스틱카!  고맙다!”  또 바로 ‘카톡!’하고 문자가 왔다.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이예요. 4호선 혜화역에서 하차 후 2번 출구 방향 도보 5분. 종중사무실 들렸다가 가시면 될 것 같네요.”
“5월 5일이 일요일이라 6일(월요일)이 대체휴일이란다. 그래서 그날 종중사무실 출근 안해. 원택이 아저씨랑 대학로에서 만나 점심 먹고 가려해. 대학로 극장 길은 예전에 엄마랑 다니던 길이라 낯설지 않단다.  자상한 배려 고맙다.”

혼자되고 보니 동행할 수 있는 친구를 찾는다는게…

“아빠, 그럼 원택이 아저씨랑 재미있게 보고 오세요” 사실 난 탄월(원택이 아저씨)에게 사전 연락도 없이 내 뜻대로 정한 것이다. 허나 막상 표를 받고 보니 망설여졌다. 탄월 사정이 어떤지도 모르고 그랬으니 말이다. 예전엔 미처 몰랐는데, 혼자되고 보니 이러할 때 동행할 수 있는 친구를 찾는다는 게 정말 어려웠다.
생각 끝에 처지가 같은 우영(조동원)에게 카톡을 보냈다. 우영은 8년 전에 부인을 보냈다. “우영, 6일(월) 시간 어떤가? 연극 좋아하나? 대학로 연극 보러가세!” 바로 우영의 댓글이 왔다.  “한송, 미안하이. 그날은 약속이 있네.” 생각 끝에 허물없는 탄월에게 “탄월, 6일(월) 시간 어떤가 봐!”하고 카톡을 보냈다. 카톡 대신 바로 그의 전화가 왔다. “어떻게 하지? 5일이 어린이날이라 손주들이 와서 자고, 그 이튿날 6일 구석기 축제 보기로 했는데…왜? 무슨 좋은 일 있어?” 미안하다는 듯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그럼 알았어. 실은 딸이 극장표 2장을 보냈어…” “그래, 혜원이가. 그거 참 좋은 기횐데…” 그럼 누구랑 갈까? 망설여졌다. 아내가 살아 있을 땐 그 빈자리를 몰랐는데, 아내가 없으니 이렇게 아쉬웠다. 옆에 동행할 친구 ‘아내’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비로소 깨달았다.  “여보 당신 어디 갔어?”
그날 오전 10시, 연령회 모임이 있어 성당으로 갔다. 기도를 하고 있을 때 ‘카톡’하고 문자가 왔다. “간만에 딸네 모녀와 나들이 나왔어요. 한송! 허적하시겠네. 6일 대체휴일, 시간되면  나들이 갑시다. 탄월한테 가볼까? 아니면 대명항? 목적지는 한송이 정하시오!” 범산(이경회)의 문자다. 범산은 배려심이 깊은 친구다. 내가 혼자된 뒤 자주 문자를 보내 날 위로한다.
그도 몇년 전부터 부인의 건강 때문에 마음이 불편한 처지다. 그런 그가 혼자된 나를 걱정했다. “범산, 감사하오. 걱정해줘. 그럼, 시간 허락되시면 그날 우리 오랜만에 연극 보러 갑시다. 내 표 예매해 놨으니…” “한송, 고맙소.” 우여곡절 끝에 범산과 함께 대학로 유니플랙스에서 연극을 보기로 했다.
‘앙리할아버지와 나’는 불란서 작가 이방 칼베락 원작으로 원제는 ‘앙리할아버지와 여학생’이다.
출연은 이순재, 신구, 권유리, 채수빈, 김대령, 조달환, 김은희, 유지수가 맡았다.  공연장은 마치 영화관을 방불케 했다. 연극은 종합예술로 배우의 연기는 물론 표정, 행동, 대사, 무대 장치, 조명 등 종합적 관찰이 필요한 장르다. 조명이 밝아지며 파리의 한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는 앙리가 등장한다. 까칠까칠하고 도도하며 괴팍한 도시 할배다. 이순재가 맡았다. 이번 연극에서 앙리역을 이순재와 신구가 맡았는데, 우리가 보는 이 공연은 이순재가 나왔다.
앙리는 오래전에 아내와 사별하고 혼자 산다. 아마 이 때문에 딸 스콜라스틱카가 아빠인 나에게  이 작품을 추천했나 보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이라고나 할까? ㅎㅎㅎ^^
까칠한 도시 할배와 방황하는 청춘의 예측불허! 동거동락! 파리의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는 까칠까칠하고 도도한 괴팍한 도시 할배 앙리, 시골마을에서 뭐하나 제대로 되는 일 없이 아버지의 잔소리를 듣고 사는 여학생 콘스탄스, 그녀는 아버지에게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꿈꾸며 파리에서의 독립을 결심한다. 그 많은 관람석을 젊은이들로 꽉 메운 것은 이 콘스탄스 때문일 것이다.

아내에게 평소 늘 했던 소리 “감기 걸리지 마라”

흡연 금지! 애완동물 금지! 애인출입 금지! 등 까다로운 입주조항을 통과하고 가까스로 앙리의 룸메이트가 된 콘스탄스. 하지만 첫날부터 허락없이 앙리의 피아노를 건드려 쫓겨날 위기에 처하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콘스탄스는 시키는 것은 뭐던지 하겠다고 매달린다.
이 콘스탄스는 누구인가? 바로 오늘을  살고 있는 젊은 미혼여성들이다. 절대 어울리지 않는 앙리와 콘스탄스의 예측불허! 불협화음! 조금 특별한? 동거생활은 무사히 정착할 수 있을까? “삶이란 성공하거나 실패로 가르는 게 아니야. 사랑하는데 얼마나 성공했느냐야. 결국 그거였어.” 문득 아내 아녜스의 임종 순간이 떠올랐다. “그리고… 감기 걸리지 마라!” 앙리 이순재의 마지막 대사가 극장을 나와 집에 와서도 한동안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왜, 일까? 그건 결코 콘스탄스에게만 국한된  소리가 아니라 아내에게 평소 늘 했던 그 소리였기 때문이다. “감기 걸리지 마라!”
지하 4층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는 통로가 복잡하고 혼잡했다. “아, 범산, 이거 위험한데…어째 건물이 가건물 같아. 만일 화재라도 발생하면 어떻게 하나.”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 없길 바랄 따름이다.  오후 5시 10분, 저녁을 먹기엔 이른 시간이었다. “범산, 우리 모처럼 시간 냈으니 낙산 둘레길 걷세!”  사실 지난 탐방 때 성곽길은 걸었어도 동숭동, 이화동 골목길은 못 걸었었다.

인생은 성공하거나 실패하는데 있는 게 아니다

“한송, 을지로 3가 ‘양미옥’으로 가세!” 택시를 탔다. 범산이 자주 찾던 양고기, 대창 전문 식당이다.  “여기 양고기 2인분에 맥주 1병 우선 주세요” 오랜만에 범산과 단둘이서 먹는 술자리다. 탐방 때 회원들과 여럿이 어울렸던 일은 있어도 이처럼 둘이 먹는 건 처음이다.
평소 술을 마시지 않던 범산이 요즘 날 만나면 술을 많이 한다. 나 또한 평소 술을 안했는데 역사탐방을 하며 술이 늘었다. 우사, 우영과 대작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술이 늘었다. 범산이 평소 안마시던 술을 나를 만나면 마시는 것은 나를 위한 배려며 또한 범산 자신의 위로다. 나 또한 요즘의 허전함을 달래기 위한 자위다.
“酒食兄弟千個有나 急難之朋一個無라” 했던가. 대작을 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허심탄회(虛心坦懷)하게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 아무 때나 만나자고 부를 친구가 있다는 것, 만나자고 할 때, 아무말 없이 그저 “알았어!”하고 나올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 그런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그런데 난 그런 친구를  만나 술잔을 기울였다. “탄월, 나 지금 범산과 한잔 하고 있어!” “우영, 나 지금 범산과 한잔 하고 있네”, “범산 바꿔 줄께!” 행복한 시간이다. 범산은 3호선, 난 2호선, 동서로 석별의 정을 나눴다. ‘안녕!’ 딸에게 범산과 찍은 사진을 보냈다.
“잘 보셨어요? 원택 아저씨는 못가셨나 보네요” “그래, 원택이 아저씬 그날 손주들이 와서 못오고 대신 범산(한국환경연구원 이사장) 이경회 아저씨랑 같이 봤다. 이순재가 앙리역으로 나오더구나. 인생은 성공하거나 실패하는데 있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데 얼마나 성공했느냐다’란 대사가 여운을 남겼다.
고마웠어. 딸아, 사랑해!  범산, 정말 고마웠오! 
 -김포 하늘빛마을 여안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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